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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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럴 리가.”
“설마…”
품에 안긴 다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애교 가득한 딸의 행동에 입이 헤 벌어진 상황에서도 형진은 마뇰들의 그와 같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가. 뭔가 느낌이 오나?”
“느낌…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를테면, 오래도록 기다렸던 누군가를 만났다는 느낌이라든가.”
“…”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씨익 웃는 형진의 모습에 마뇰들은 우왕좌왕했고, 장로인 프텔이 그들을 대신해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 저희들끼리 얘기를 좀 나눠봐도 좋겠습니까.”
누에나 클로리스들과는 조금 다른 반응에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굳이 강요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기에 선선히 허락했다.
“좋을 대로 해. 그 정도도 못 기다려줄 이유가 있겠나.”
“감사… 합니다.”
형진의 허락을 얻은 마뇰들은 일단 조금 떨어진 곳으로 물러나 자신들끼리 머리를 맞댄 채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런 일이…”
“허어, 그 융통성 없는 누에들이 단숨에 변심했다기에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는데… 이래서였던 건가 싶습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그들과 다르니까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신체를 통해 확인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단순히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서 냉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앞서의 두 종족과는 어쩐지 좀 다른, 보다 신중한 태도에 형진은 얘들이 왜 이러나 싶은 기분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체라고?”
“그렇습니다. 만약 이분이 저희들의 신이 맞으시다면, 분명 신체가 호응하겠지요. 우매한 저희들의 느낌이나 판단보다 그쪽이 더욱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흠…”
어쩐지 일이 좀 복잡해졌다. 단숨에 새로운 종족을 홀라당 입에 털어 넣나 싶었는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신체라는 것은 이들이 오래도록 모셔온 일종의 성물인 모양이었다. 다른 세상으로 널리 퍼져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조금은 구석진 이런 행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도 결국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냥 좀 쉽게 쉽게 갈 것이지. 귀찮게스리.”
“하하. 괜찮습니다. 저도 흥미가 생기는 군요. 저와 비슷한 느낌의 성물이라니.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원한다면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형진이 걱정하는 건 만에 하나 신체가 비와 낭만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단순히 비와 낭만만의 문제가 아니라, 꽃과 바람이나 보호와 균형처럼 이 우주의 다른 종족을 받아들인 신들에게도 이번 일이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하는 것이 그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부하면 그것 역시 일이 복잡해지기는 매한가지다. 정 안되면 그 신체를 통한 시험이란 것을 힘으로 굴복시킬 생각마저 형진은 품고 있었다.
“알겠다. 안내하도록.”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마뇰들로서도 모험인 것은 매한가지다. 신체는 그들 종족에게 있어 으뜸가는 보물. 만에 하나라도 다른 우주의 신들이 욕심을 내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서로 조금은 복잡한 심경을 감춘 채, 그들은 신체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건… 블루 홀이군.”
블루 홀이란 바다에 존재하는 일종의 싱크 홀이다. 대부분의 경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그대로 바다에 잠기며 생겨나는데, 바다에 뚫린 시퍼런 구멍의 모습은 일견 보는 이의 가슴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다.
상당히 희귀한 지형이기 때문에 바다 속을 탐험하는 것을 즐기는 다이버들의 로망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조류등의 변화에 따라 강력한 와류가 발생하여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지형이기도 하기 때문에 탐사에는 매우 숙련된 다이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지금 형진의 눈앞에 펼쳐진 블루 홀은 크기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항상 강력한 소용돌이가 발생하여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고 있는 모습이 매우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 아래 신체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보시다시피 매우 강력한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물을 다루는 능력을 지닌 저희들도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위험한 장소입니다.”
“음…”
혹시 이것들이 뭔가 다른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이 들어서 형진은 마뇰들을 쏘아보았지만, 비와 낭만은 의외로 눈앞에 펼쳐진 푸른 구멍에 흥미를 보였다.
“재미있군요. 한번 안쪽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어?”
“괜찮습니다. 나름대로 그 동안 연습도 많이 했으니까요. 이 정도의 흐름이라면 한번쯤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형진은 이전에 비와 낭만에게 신격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비는 따지고 보면 거대한 에너지 순환의 일부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다른 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신격의 확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의 얘기였다. 비와 낭만은 그와의 대화 이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신격의 확장을 이루고자 노력해 왔고, 현재는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아가는 도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꽤 그럴 듯한 시험 대상으로 보였다. 행성 규모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과는 비교하기 힘들지만, 눈앞의 소용돌이 역시 결국은 강력한 힘이 서로 부딪혀서 생겨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더 쉬운 방법도 없는 건 아닌데.”
어차피 눈앞의 소용돌이는 주위의 물을 끌어들이는 어떤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결계를 세워 물의 공급을 차단하게 되면 소용돌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소용돌이를 만드는 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에 공기가 물의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형진이라면 그것조차도 막아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빨아들일 공기나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힘을 전달할 방법이 없으니 결국 어떤 식으로든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공간마저 이런 식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가 아닌 이상은.
“괜찮습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 나서주십시오.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마침내, 형진에게서 허락이 나자 비와 낭만은 천천히 블루 홀을 향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형진의 목을 꼭 껴안은 채 매달려 있던 다희가 폴짝 뛰어 내려 그에게로 다가갔다.
“힘내세요. 파이팅!”
“하하…”
얼른 뺨에 뽀뽀를 하고 물러나는 다희의 행동에 비와 낭만은 당황하며 형진의 눈치를 살폈다. 이전에도 아주 가끔 그런 식의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아버지인 형진이 보는 앞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
아니나 다를까, 형진의 눈길이 가늘어지며 뭔가 말이 나올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얼른 다희가 돌아가 뺨을 부비며 여우 짓을 하자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벌죽 입이 벌어지고 만다. 참 여전히 한결 같은 딸바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와 낭만은 눈앞에 펼쳐진 블루 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그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힘을 느끼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마뇰들 또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 솔직히 그들로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말로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던 그 신이 맞는지, 맞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여러모로 머리 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괜찮을까요?”
역시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다희가 형진에게 작게 속삭인다. 형진은 그런 딸의 모습에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을 거다. 그가 어떤 신인지는, 누구보다도 네가 더 잘 알고 있잖니.”
“음…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마라.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아빠가 지켜보고 있는 이상 아무 문제도 없을테니까.”
“헤헷.”
다희는 조금 부끄러운지 볼을 살짝 붉힌 채 다시 형진의 뺨에 얼굴을 맞대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딸의 스킨십에 형진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이 헤 벌어지고 만다.
네아는 그런 형진과 다희의 모습을 어쩐지 조금은 흐뭇한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뭐랄까. 이 모습 하나만으로도 어쩐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좋은 부모가 항상 좋은 지배자가 되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기대를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출신의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와 낭만은 한참이나 블루 홀 앞에 서서 그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힘의 본질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지켜보던 다희의 표정에서 아주 약간 지루함이 어릴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에게서 다른 행동이 나왔다.
마치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무 행동이 없던 그가 마치 스스로 소용돌이 안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것처럼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은 것이다.
조금은 기대 어린 시선으로, 또 조금은 불안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던 마뇰들은 순간 블루 홀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의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소용돌이가…”
태어날 때부터 물을 다루는 힘을 가진 마뇰들조차도 아주 잠깐 마음을 놓으면 그대로 휩쓸려 들어가 목숨을 잃고 마는, 그래서 신체가 모셔진 성스러운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함부로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그 소용돌이가 차츰 강해지고 있었다. 강해지면서 물의 흐름 사이로 태풍의 눈과 같은 빈 공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호오, 성공한 건가.”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블루홀 주위에 결계를 발동해서 물의 유입을 차단하려 했던 형진은 비와 낭만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길이 열리듯 변화하는 소용돌이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간에 비와 낭만이 해답을 얻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따라가 봐요.”
“그럴까.”
다희의 말에 형진은 천천히 비와 낭만의 뒤를 따라 허공을 걷기 시작했고, 그가 움직이자 네아 역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공중을 날 수도 허공을 걸을 수도 없는 마뇰들은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은데 정작 그들로서는 뒤를 따를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희를 안은 채 소용돌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마치 무저갱처럼 어두컴컴한 물의 통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네아.”
“네?”
“옆으로 붙어. 말려들기라도 하면 아무리 너라도 빠져 나오기 어려울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네아는 그 말을 듣고는 얼른 형진의 옆에 달라붙었다. 주시자가 되어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상당부분 떨쳐버리긴 했지만, 이런 식의 현상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자 다희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와, 예쁘다.”
“고마워요. 공주님.”
“근데 아줌마는 누구에요?”
“…”
대뜸 아줌마 소리를 들은 네아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고, 형진은 처음 보는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딸아이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비와 낭만이 무언가를 향해 다가서는 모습이 보인다.
어렴풋하게 옅은 빛이 안쪽에서 흘러내리는 것으로 보아, 마뇰들이 신체라고 부르는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아, 오셨군요.”
형진이 다가서자, 비와 낭만은 잠시 손에 쥔 것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게 바로 그 신체인가?”
“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파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호오. 폭풍의 신이 남긴 파편이라.”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아마도.”
혹시 그런 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이곳의 신이 남긴 파편이라는 말에 형진은 흥미가 생겼다.
“잠깐 봐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다른 신들 같았으면 혹시라도 그가 파편을 빼앗지 않을까 싶어 망설이는 기색이라도 보였겠지만, 비와 낭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쥐고 있던 신체를 형진에게 넘겼다.
“과연. 파편과 상당히 비슷하군.”
“역시 그렇습니까.”
이 중에서 파편을 가장 많이 접해 본 이는 당연히 형진이다. 애초에 그가 신의 자리에 오른 것부터가 파괴와 재생의 파편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일을 반복한 덕분이다.
“와아… 예쁘다.”
“그렇지?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이건 상당히 위험한 것이기도 하거든.”
“그래요?”
“응.”
다희는 눈앞에서 빛을 발하는 둥근 구슬 모양의 신체를 보며 호기심이 잔뜩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지거나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바로 그때, 비와 낭만이 문득 이렇게 말했다.
“진님.”
“응?”
“이거… 다희양에게 주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뭐?”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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