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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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발견된 것은, 왕성 라이언하트의 신년 행사가 있고 보름 정도 지난 뒤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딸내미들과 함께 거짓된 천국에서의 모험을 신나게 즐기고 있던 형진은, 링월드의 탐색 과정을 관리하고 있던 당직의 급한 보고를 받았다.
“대형 우주선이라고?”
“그렇습니다. 살펴보시지요.”
당직을 맡고 있던 잡신은 급히 달려온 형진의 모습을 보고는 부동자세를 취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직도 잡신들 중에는 형진을 운 좋은 애송이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개중에는 지금 당직을 서고 있는 신처럼 그를 선망하고 두려워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호오, 이거 참 대단하군.”
각각의 위성이 포착한 모습에는 거대한 우주선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주 공간을 유유히 지나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흰수염고래를 연상시킨다.
“어떻게 할까요.”
역시 급한 전갈을 받고 달려온 규설이 조심스럽게 묻자, 형진은 화면에 나타난 우주선의 모습을 잠시 더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확인해 봐야겠지. 이 정도 거리에서 먼저 발견하다니, 아주 잘했어. 상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규설이 보기엔 상 그 자체보다도 형진의 눈에 들었다는 사실을 더욱 기뻐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굳이 그 부분을 더 파고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비록 지금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저 당직 역시 엄연히 신격과 권능을 지닌 절대적인 존재 가운데 한 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같이 갈래?”
“모시겠습니다.”
규설은 처음 보는 거대한 우주선의 모습에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우주와의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혹시라도 새로운 적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형진은 별로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우주선은 수치로 확인된 대략적인 크기만으로도 일반적인 우주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행성급의 괴수인 티폰이나 그것을 기반으로 만든 기동요새 스틱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더구나 그에게는 신조차 막지 못하는, 빛보다 빠른 창인 아스트라페 또한 갖추고 있다. 그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이들 전력만 움직여도 어지간한 상대는 모두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형진이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우주선의 형식이나 구조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링 월드. 항성계를 통째로 뜯어 만든 거대한 구조물.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우주선의 기본 골격과 구조, 겉모습은 링 월드의 일부라도 봐도 좋을 만큼 닮아 있었다.
“방랑하던 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싶어.”
“움리드… 말씀이십니까?”
“맞아. 탈출한 자가 아주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저 거대한 우주선은 그 자체로 방주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성경이나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이 만든 것처럼.
형진의 말에 규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녀에게도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여기서 그녀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인물은 당연히 움리드의 마지막 생존자이며 성녀였던 릴을 말한다.
하지만 형진은 규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글쎄. 일단 그건 미뤄두도록 하지. 저 배가 유령선이 아니라는 보장도 아직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모처럼 그녀를 불러와서 같이 확인을 했는데, 링 월드와 마찬가지로 이미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 버린 상태라면 차라리 부르지 않은 것만 못한 일이 될 것이다.
형진은 곧바로 다른 우주와의 연결 통로에 배치되어 있는 스틱스로 넘어가 그것을 타고 링 월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만약 우주선 안에 생존자가 있다면 그 규모와 모습만으로도 질려 버릴 것이고, 만에 하나 상대가 적대적으로 나오더라도 스틱스라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스틱스의 거대한 몸체는 공간을 넘어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링 월드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거대한 우주선으로 향했다.
“상대의 움직임은?”
“아직 별다른… 아! 회피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규설이 그렇게 외치며 형진을 바라보았다. 기동 요새 스틱스의 모습을 확인하고 회피 기동을 행했다면, 그 안에 생존자가 살아남아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수동으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보다는, 자동 항법 시스템과 같은 무언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스틱스와의 충돌을 막기 위해 방향을 틀었을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링 월드에 대한 탐색과 분석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지만, 그 동안 밝혀진 사실들을 통해 미루어 보면 멸망 당시 움리드라는 종족은 광속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였다. 비록 그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상태이긴 하지만, 형진은 설령 생존자가 있더라도 그렇게 간단하게 광속을 넘어서진 못했을 거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기술이라는 것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기반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의 터전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했고, 그런 상황에서는 본래 가지고 있었던 기반을 다시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유기 발광 다이오드의 제작기술을 가진 자들을 사막에 던져 놓는다고 그들이 바로 모래알에서 실리콘을 추출해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 식량과 물을 찾는 것이 먼저가 될 것이고, 그렇게 목숨을 연명하고 나면 이제는 그러한 식량과 물을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한 방책을 찾아야만 한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반도체니 뭐니 하는 걸 만들 여력이나 있겠는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지고 있던 기반을 본래대로 갖추는 것에만 족히 몇 세대는 지나야 하는 일. 물론 아무런 기술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들보다야 확실히 빠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저들에게는 단순히 이전의 기반을 회복하는 일 이전에 자신들을 고향으로부터 쫓아내버린 사건의 해결이라는 막중한 짐 또한 지고 있는 상태다. 링 월드 자체가 붕괴되어 파괴된 것이 아닌 이상, 저들은 우선 자신들을 도망치게 만들었던 병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부터 시작했을 것이고, 그만큼 다른 기반을 복원하는 일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즉, 설령 생존자가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진보는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예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진입을 준비하도록.”
“네? 하지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주시자들을 부르는 편이.”
“혹시 모를 위험이 있다면, 당신이 지켜주면 되겠네.”
형진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규설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그럼 일단 붙잡아 볼까. 트랙터 빔 준비.”
“트랙터 빔을 준비합니다.”
거대 우주선은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스틱스를 피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따라잡혀 버렸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규설은 트랙터 빔을 발사해 거대 우주선과 스틱스 사이의 거리를 고정시켰다.
“그럼, 건너가 볼까.”
“모시겠습니다.”
규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벗더니, 그대로 본신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모습을 지닌 환수, 산군이 형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멋지군. 다른 환수들도 그렇지만 산군은 확실히 멋진 것 같아. 뭐랄까. 나랑 속성이 잘 맞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과찬이십니다.”
미엘이나 하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규설 역시 형진과 맺어지면서 그 힘이 한층 더 강해진 상태다. 어떻게 보면 그 자체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만큼, 그녀는 이미 다른 일반적인 산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다.
형진은 가만히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얼핏 봐서는 검은 구름 속에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만 빛나는 듯한 모습이지만, 가만히 손을 뻗어 어루만지자 그 안에 감추어진 몸이 확실하게 만져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산군의 몸을 직접 만질 수 있는 이는 별로 없겠지?”
“산군끼리도 이런 식으로 본신을 접촉시키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규설의 목소리에 어쩐지 부끄러움이 배어나온다. 같은 산군끼리라도 서로 몸을 부대낄 만한 경우는 후손을 만들 때 외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라 더욱 그렇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부탁해.”
형진은 그녀의 한쪽 어깨 위에 슬쩍 올라타는 듯한 느낌으로 자리를 잡은 뒤 공간을 열었고, 규설은 그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음을 확인하자 곧바로 열려진 공간에 뛰어들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스틱스의 외부, 그 중에서도 트랙터 빔이 발사되고 있는 장소였다. 푸른빛의 파도가 뻗어나가 상대의 우주선과 맞닿아 있는 모습은, 마치 우주 공간에 놓여진 빛의 길처럼 보였다.
규설은 그렇게 놓여진 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혹시라도 우주선 쪽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뭔가 공격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라면 몰라도, 그는 지금 형진을 모시고 있는 중이니까.
물론 형진의 입장에서 봐면 그런 규설의 신중함은 조금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일이다. 사실 지금 보호를 받아야할 쪽은 자신이 아니라 그녀 쪽이 아닌가. 물론 겉모습만으로 따진다면야 보통 인간에서 벗어나지 않은 느낌의 형진 쪽이 더 약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길게 놓여진 푸른빛의 길을 따라 움직이자,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빛의 그물로부터 벗어나려고 상대 우주선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방향 제어용의 스러스터가 이리저리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다.
“흠… 역시 생존자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어째서요?”
“공격을 가해오지 않고 있잖아.”
형진의 대답에 규설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 그건…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요? 생존자가 있다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적어도 이렇게 천천히 자신들에게로 건너오고 있는 존재가 없다면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야.”
“아… 저희들의 모습을 보고 주저하고 있는 거란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야. 특히 당신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겁먹은 건지도 모르고.”
“놀리시면 미워요.”
“하하. 미안, 미안.”
지금 같은 상황에서라면 사실 겁에 질려서 일단 발악을 해본다든가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때문에 규설은 형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 가해질지 모르는 상대의 공격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은 느긋한 모습으로, 마치 우주 위를 산보하듯이 나아가던 둘은 마침내 거대한 우주선에 도달했다. 그들이 도달할 즈음이 되자, 상대 우주선 역시 트랙터 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을 그만 둔 상태로 가만히 멈추어 있었다.
“순순히 문을 열어 주진 않겠지?”
“아마도요. 부수고 들어갈까요?”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모처럼의 전리품인데 부서지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지.”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금 손을 뻗었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다시금 우주선의 격벽 너머와 통하는 경계가 열린다.
“들어가겠습니다.”
경계가 열리자 규설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곧바로 기습이 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딱히 문제가 될 만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이건… 꽤 허름하구만.”
조명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 오직 규설의 붉은 눈동자만이 번뜩이며 빛을 발하는 모습이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지만, 형진은 어렵지 않게 그 어둠을 뚫고 내부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딱 봐도 만들어진지 꽤나 오래되었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냥 시간이 오래 지나서 먼지가 쌓인 느낌이라기보다는, 이래저래 사람 손이 많이 탄 분위기다.
“위성을 뿌려 둘까요.”
휴대용 위성을 살포해서 내부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 어떻느냐는 말이었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잠깐 기다려 봐.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 찾아가도 문제될 것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기다리자 우주복인지 장갑복인지 모를 것을 착용한 서너명 정도의 무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단순히 미지의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우주복 같은 것조차 입지 않고 우주 공간을 산보하듯이 걸어서 넘어온 형진은 물론이고 그를 태우고 있는 규설의 모습까지 더해진 탓에 그들은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형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에 규설이 먼저 나섰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무례하게 구는 것이냐!”
산군의 존재감이 순식간에 공간을 장악하고, 그녀의 붉은 눈빛이 상대의 마음속에 새겨진다. 본래 산군의 능력은 고작해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제 형진과 맺어짐으로서 다른 존재로 진화해 가고 있는 규설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존재와 감정을 그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급히 달려와 형진과 규설을 에워쌌던 자들은 순간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그들의 심령을 제압하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산속에서 커다란 호랑이를 만난 나뭇꾼이 되어 버린 것처럼, 그 눈빛을 마주하고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인텔은 왜 또 난리라냐.
업뎃들 하셨나요. 아직 안하신 분들 언능 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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