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99
00998 [무도회] =========================
동의를 받는 일이 끝나자 먼저 아바타가 지급되었다.
“어때?”
“그, 그게…”
루이스는 마치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여자아이를 보고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당황하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옆에 서있는 탑와와 루벨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새로운 여신의 아바타가 자신과 닮은 모습일 거라고 미리 언질을 받기는 했지만, 그건 이를테면 일종의 변신 같은 거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기존에 자신과 함께 지내고 있던 여신은 그대로 있는 상태로 새롭게 또 하나의 자신이 추가되는 형태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놀랬어?”
“여신님?”
“맞아. 이쪽도 틀림없이 나야. 쿡쿡.”
“아…”
사실 그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여신과 함께 생활한다는 현실에 긴장하고 떨렸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좋은 언니 같은 느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딱히 권능을 막 써대는 것도 아닌 이상 신이라고는 해도 뭔가 특별한 점을 찾기가 어려웠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생활이 되자 루이스는 확실하게 깨닫고 말았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같은 장소에 서로 다른 몸으로 존재하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닮은 모습이라 기분 나쁘거나 한 건 아니지?”
“아뇨. 좀 놀라긴 했지만.”
“다행이다. 후후후.”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역시 얼떨떨한 모습이다. 탑와와 루벨라가 그런 루이스를 가만히 안아주고 있는데, 문득 룩스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주신께서 보내신 물품이 있습니다.”
“응? 무슨?”
룩스는 자신의 여동생이 둘로 늘어나 버린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여신이 루이스의 모습을 빌려 무도회에 참석하리라는 것은 이미 그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눈앞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에는 아무리 그라도 역시 조금쯤은 놀랄 수밖에 없다,
“크흠. 그러니까… 드레스라든가, 장신구라든가…”
“아하. 그런 얘기구나. 한번 볼까? 루이스도 같이 보자.”
“저도요?”
“응. 일단 새로운 아바타를 위한 물품이긴 하지만, 같은 모습이니까 너도 쓸 수 있을 거야.”
“네? 하지만…”
“애초에 난 드레스 같은 거 별로거든. 싫어?”
“아뇨. 전혀요.”
“후후. 다행이다.”
룩스는 그렇게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복잡한 표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세히 보면 분위기 같은 것이 역시 다르구나 싶긴 하다. 그러나 만약 둘이서 작정하고 속이려고 마음먹는다면 아마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의 여동생일지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기야 단순히 변장 같은 것이 아니라 신의 권능으로 상대의 모습을 복제한 수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조금은 떠들썩한 느낌으로 형진이 보내온 드레스를 살펴본다.
이 옷들은 왕성에서 일하는 요정들이 지은 것이다. 루이스가 입고 왔던 드레스라든가, 바츠크렌이라는 나라에서 흔히 사용되는 복식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문화권의 복식을 경험한 요정들이 나름대로 어레인지를 시도한 탓에 바츠크렌의 복식과 닮았으면서도 좀 더 세련된 느낌의 옷으로 완성된 것이다.
“어때?”
“와아… 예뻐요.”
“루이스도 입어봐. 도와줄게.”
“네? 아, 아니… 그게…”
탑와와 루벨라는 드레스 입는 것을 도와주던 루이스를 끌고 가서 마련된 옷을 입혀 보았다. 똑같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바츠크렌의 복식에 익숙해져 있는 탓인지 역시 뭔가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 하는 건가?”
“자세… 말씀이신가요?”
“응.”
“저도 잘은 모르지만…”
여신의 추종자이며 대리인으로 참석하는 것이지만 그녀를 어릴 적부터 봐왔던 왕실의 인사들 역시 참석하는 곳이므로 자세라든가 말투라든가 여러 가지로 참고를 해야만 했다. 그래봐야 벼락치기라 별 차이가 있을까 싶기는 해도, 최소한의 연습 정도는 해둘 필요가 있다.
“어때요?”
탑와와 루벨라가 루이스를 데리고 나오자 룩스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네요.”
“쳇. 내가 입었을 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으면서.”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루이스는 조금 부끄러운 기색이었지만, 룩스가 잔잔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보다도… 주신께서 내리신 물품이 더 있습니다.”
“옷 말고요? 아… 장신구도 있다고 그랬었나.”
“장신구는 장신구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장신구와는 좀 다릅니다.”
“무슨…”
룩스는 인벤토리에 담아온 물품을 하나씩 꺼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반짝이는 금속제 고리에 커튼처럼 베일이 달려 있는 것이 가장 먼저 나왔고, 어른 주먹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공 같은 것이 세 개 정도 더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장신구와는 여러모로 다른 형태다.
“여기 보시는 이 베일은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착용해 보시죠.”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네.”
그렇다고 짧게 대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딱히 뭔가 고정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여신은 물론이고 루이스도 도대체 어떻게 착용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전에 본 지구의 마술사가 사람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와도 닮은 느낌. 혹시 안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어딘가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떠올리게 만든다. 반투명한 베일 탓에 갑자기 사라지거나 하면 눈에 훤히 보일 것 같긴 하지만.
“어?”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은 느낌으로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금속제 고리로부터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허공에 알아서 자리를 잡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머리위 어디쯤에 고리를 받쳐 들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베일은 이런 식으로 젖혀 둘 수 있습니다.”
“아하. 꼭 휴대용 커튼 같네요.”
“맞습니다. 다만 이건 안쪽의 사람을 다른 이들의 이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물품만은 아닙니다.”
“그래요?”
“이것은 일종의 방어구 역할도 합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여러 가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베일 안쪽의 인물을 보호하는 장신구인 셈이죠.”
“그럼 이건요?”
“이쪽의 구슬 세 가지는 휴대용 인공위성을 개조한 물건입니다. 각각의 위성이 성역을 발동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적대적인 무언가를 향해 반격을 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바타라고는 해도 공격을 받으면 타격을 받는 건 마찬가지다. 사실 신들이 인간 세상에서 함부로 활동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단순히 타격을 받는 것뿐이라면 몰라도, 자칫하면 신격에 손상이 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두 가지 물품을 착용한 상태라면 그런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성역의 효과를 넘어서는 강력한 타격, 예를 들자면 대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나 주신인 형진의 공격이 가해질 경우엔 이것도 무용지물이겠으나, 그건 바꿔 말하면 대신 이상의 존재가 공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안쪽의 인물을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위성 세 개까지 장착을 마치자 베일 주위로 반짝이는 위성 세 개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다. 루이스는 물론이고 여신도 잠시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말씀하십시오.”
“성역을 세 개나 동시에 발동하고 있으면 딱히 베일의 방어능력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그 말에 룩스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답했다.
“성역은 안쪽의 인물에게 가해지는 타격을 무효화 하기는 하지만, 물체가 와서 닿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온다든가 하게 되면 위성만으로는 옷이 물에 젖는 걸 막을 수가 없겠으나, 베일을 착용하면 그러한 것 또한 차단이 가능해집니다.”
“아하.”
탑와와 루벨라는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지만,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베일의 진정한 용도를 알아채버린 것이다.
바츠크렌의 왕성에는 여기 있는 오누이 외에 배다른 형제들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다소 불행한 얘기긴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룩스나 루이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순히 사이가 안 좋은 것 정도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예전부터 그들은 이런 저런 못된 장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실수인 척 물이나 와인을 쏟아 드레스를 적신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번에 루이스의 모습을 빌려 무도회에 참석하는 탑와와 루벨라의 진면목을 저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건 바꿔 말해서, 누군가에는 여신을 대리해 무도회에 출석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이전에 자신들의 장난에도 묵묵히 참고 버티기만 했던 루이스를 연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설마 그 정도로 정신 빠진 놈들이 있을까 싶긴 해도, 갑자기 자신들의 머리 위에 서버린 배다른 천덕꾸러기를 해코지하려고 드는 자가 없을 거라고 완전히 단정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단순히 비가 내린다든가 하는 상황에서 옷을 망가뜨리지 않는 용도라고만 이해한 탑와와 루벨라였지만, 몸 주위를 완전히 감싸는 베일과 그 주위를 맴도는 세 개의 위성이 주는 신비로움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거울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던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룩스에게 말했다.
“기왕이니까 예비로 한 세트 더 달라고 주신께 말씀해주세요.”
“예비… 말입니까?”
“네. 어려우면 제가 직접 말씀드려도 되고요.”
“아닙니다. 주신께 그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위성과 베일의 조합이라면 문자 그대로 공성병기가 날아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굳이 예비 물품을 받을 이유가 없는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예비 물품을 요구하는 이유는 사실상 가족 같은 느낌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첫 번째 추종자, 루이스를 챙겨주려는 의도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당분간 루이스가 왕성을 나갈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밖으로 나갈 경우를 대비해 든든한 보호구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다른 까닭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일이니 룩스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감사합니다.”
“뭐가요?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
딴청을 부리는 여신의 모습에 루이스는 작게 미소를 짓고, 룩스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아. 맞다.”
“뭐가요?”
“나… 그쪽 사람들 이름 하나도 모르는데.”
예법이야 그렇다 쳐도 얼마 전까지 자주 봐왔던 사람들의 이름조차 모른대서야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룩스는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주신께서는 주시자들에게 명해 바츠크렌의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이전부터 수집하고 계셨습니다. 이 위성은 그렇게 모인 정보망에 접속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나 단말기 역할도 합니다. 굳이 인물들의 이름이나 얼굴, 성향, 특징 등을 외울 필요가 없는 거죠.”
“어떻게 쓰면 되나요?”
“그냥 머리 속으로 정보 열람을 명하시면 됩니다.”
“와아…”
그 말에 따라 정보 열람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자, 곧바로 룩스와 루이스에 대한 간략화된 정보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이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이력을 바로 알아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좀 더 세밀한 부분의 정보도 열람이 가능했다. 이것이라면 바츠크렌에서 누구와 마주치더라도 알아보지 못해서 버벅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