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101)
〈 101화 〉 10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101.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처음 뵙겠습니다. 유진 공자. 마켈로스 헬브리트 공작의 아들인 할리오스 헬브리트라 합니다.”
왕국의 재상 헬브리트 공작의 후계자다. 큰일이 없다면 할리오스 또한 아버지를 따라 왕국의 재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리아의 배다른 오라버니다. 유리아는 헬브리트 공작 가문 자체에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그 또한 복수대상이다.
“유진 프루커스입니다. 할리오스 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차기 재상의 재목으로 국왕 전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시니…. 할리오스 님은 라펠리 왕국의 홍복입니다.”
“하하. 과찬입니다. 제 소문이 프루커스 영지까지 닿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홍복이라 한다면 유진 공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유진 공자가 발명한 물건들. 특히나 화장품의 경우엔 왕비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오. 정말입니까?”
제법 놀라운 사실이다. 내가 화장품을 유통한 것은 프루커스 영지와 그 근처 일대뿐이다. 설마하니 왕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왕궁에까지 화장품에 대한 소문이 났을 줄은 몰랐다. 언젠가는 소문이 날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빠르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화장품은 아직 정식으로 판매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직 준비된 게 없습니다만, 내년에는 정식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정 일이 어렵다면 저희 헬브리트 공작가에 도움을 요청하셔도 됩니다.”
“하하.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헬브리트 공작가와 손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놈들은 겉으로는 신사적인 척해도 속으로는 깡패나 다름없는 놈들이니까. 또 헬브리트 공작가는 유리아의 원수다. 내겐 헬브리트 공작가보다 유리아의 가치가 더 높다.
젠트와 나, 할리오스 일행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음식이 맛있다니, 프루커스 영지에 있는 호수가 아름답다니 등의 실속 없는 대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유진 공자.”
“네. 할리오스 님. 말씀하시죠.”
“유진 공자의 전속 메이드가 청은발과 벽안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제가 직접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유리아에 대한 것이다.
유리아가 헬브리트의 사생아임을 의심하고 있는 건가?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걸로 보인다.
“그녀는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굳이 할리오스님께서 만날 신분도 아닙니다. 왜 그러신지요?”
“저와 같은 머리색과 눈색이라 궁금했을 뿐입니다. 거기다 듣자하니 뛰어난 미색을 갖췄다고 하던데….”
“그래봤자 일개 메이드입니다. 직접 보신다면 실망할 겁니다.”
“음. 그런가요. 그 메이드의 출신이 프루커스 집사장의 친척이라던데 맞습니까?”
유리아의 출신을 알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사전에 조사했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유리아를 의심하고 있는 단계일지도 모른다.
‘의심까지는 괜찮아. 그 시선이 좀 귀찮아 질뿐이지.’
유리아의 정체를 의심하더라도 섣불리 손을 쓰지 못한다. 여긴 프루커스 영지니까. 다만 암살자로 활용할 유리아에게 시선이 붙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센트 집사장의 친척입니다. 그녀의 마을은 몬스터에게 습격받아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부모님도 잃고 빈곤한 생활을 하던 와중에 하센트 집사장이 저택으로 데려왔습니다.”
“저런.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래도 요즘은 제 전속 메이드로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다른 귀족들에게 인사를 나눈다는 명목 하에 할리오스로부터 헤어졌다. 할리오스는 뛰어난 검술 실력이나 마법 실력도 없지만 여러 가지로 위험한 놈이다.
‘저 놈은….’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그 무리의 중심에 있는 남자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금발머리의 남자가 현실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다.
“푸핫! 이 술의 이름이 막걸리라고 했더냐? 색다른 맛이라 좋구나!”
에이든 라펠리.
라펠리 왕국의 왕자다. 국왕의 장자임에도 세자위를 받지 못했다. 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동생 밖에 없으니 차기 국왕은 에이든으로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에이든은 헬브리트 공작가를 비롯한 일부 귀족들의 은밀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귀족들 입장에서 무능한 에이든이 국왕이 되는 편이 부당한 이익을 얻기 쉽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에이든은 결국 왕이 되지 못하고 현명한 여동생이 왕위를 계승하지.’
아일린 라펠리.
에이든의 여동생이자 라펠리 왕국의 공주다. 5명의 히로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연회에는 참석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일린은 아직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나.’
원작에선 아일린 공주는 카일의 많은 도움을 받아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리고 엔딩에서 영웅 카일과 결혼하는 히로인 중 한 명이다.
‘음. 아일린 쪽에 줄을 서야 하나?’
나는 아직 왕자와 공주. 어느 쪽의 줄을 잡아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에이든은 이용하기 쉬워. 문제는 왕국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그를 지지하는 헬브리트 공작가야 결국 다 뒤질테니 신경 쓸 건 없고.’
무능한 왕자.
‘아일린은 이용하기 어렵지. 장점으로는 왕국을 잘 운영한다는 점이지. 그녀가 왕이 된다면 왕국은 흔들리지 않아.’
현명한 공주.
왕국이 흔들리면 내 사업도 흔들릴 테고. 반면에 왕국이 멀쩡하면 내 사업도 멀쩡할 것이다. 하지만 멍청한 국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섣불리 아일린을 선택할 수 없다.
‘아직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니… 굳이 지금 줄을 설 필요는 없겠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물론 아일린은 내가 따먹을 것이다. 한 나라의 공주를 따먹는다.
‘츄릅. 공주 보지는 무슨 맛일지 기대되는군.’
아일린 공주와 결혼하는 것도 한 방법 일지도 모른다. 허나 별로 끌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여왕의 부군이 되니… 실질적인 권력은 프루커스 백작 쪽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 술의 이름이 소주라고? 음. 이건 미묘하군!”
나는 에이든으로부터 시선을 뗐다. 이곳엔 젠트와 할리오스가 있다. 구태여 에이든에게 인사하기 위해 다가가 쓸데없는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유진 프루커스 님?”
누군가가 나를 불렸다. 내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 몸을 훑어본다. 귀족이라면 가문의 표식이 몸 어딘가에 존재할 터다. 표식은 발견했지만 처음 보는 모양이다.
‘내가 이 날을 위해 라펠리 왕국에 존재하는 귀족 가문의 마크를 달달 외웠지. 내가 모른다는 것은 귀족이 아닌 경우지.’
이 경우엔 부유한 상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네. 제가 유진 프루커스입니다. 당신은?”
“처음 뵙겠습니다! 오르렐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메일이라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진님이 개발하신 화장품에 관해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유진 공자님! 저는 뮤트렌 상단의 노지아라 합니다! 저는 유진 공자님이 개발하신 화장품은 물론이고 담배와 향수 등 모든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상인들은 경쟁하듯이 앞다투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마탑까지 끼어 있었다.
나는 웃었다. 내가 연회에 참가한 목적 중 하나가 그들과 안면을 트는 것이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저는 여러분 모두와 대화할 의향이 있습니다.”
딱 대화까지만 할 거다.
•••
연회 중간에 엔티온과 엘라인이 연회장 내에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더욱더 올라갔다. 앞으로 사흘. 연회장의 불이 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연회 첫째 날.
나는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일단 가신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내 얼굴과 존재감을 그들에게 재차 알린 것이다.
그리고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와 상인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린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현대의 물건들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연회 둘째 날.
이날도 비슷했다. 마법사와 상인들이 나를 들들 볶았다. 마법사의 경우 내가 개발했다고 알려진 제품들을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접근했다. 현대의 물건들은 마법을 사용해 만든 것이 아닌지라, 마법사들의 상식으로는 그 제조법을 쉽게 알아낼 수 없다.
나는 마법사들의 질문에 최대한 에둘러 피했다. 제조법?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나는 현대에서 완성된 물건들을 구입해 이 세계에 판매하는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사재기다.
상인들의 경우엔 제조법 보다는 구입과 판매에 관심 있었다. 장사가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인들에게도 애매하게 대했다.
둘째 날 자정에 귀족들간의 결투가 일어났다.
귀족영애 한 명을 두고 귀족 두 명이 검을 들고 싸운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치정싸움이다.
연회장에 피가 흘렀지만 사람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광했다. 나는 이 세계가 중세 판타지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연회 셋째 날. 마지막 날이기도 한 이날에 사고가 터졌다.
술은 만악의 근원이다.
이건 현실이나 여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사실이다. 귀족이라 하더라도 사람이고, 사람은 술을 마시면 술에 취한다. 물론 보통은 술을 조절한다. 귀족의 경우엔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길 마련이다.
요컨대 가신 중 한 명이 술 먹고 사고 쳤다.
얼마 전에 남작의 작위를 이어받은 젊은 귀족이었다. 그는 포도주를 2병정도 마시고 소주를 3병정도 빨았다.
“엔티온 프루커스 백작 각하!”
남자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몸을 비틀거리지 않았더라면 술에 취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침 음악이 끝났던 참인지라 남자의 목소리가 연회장 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주카이 남작이군.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엔티온은 언제나와 같았다. 침착하고 냉정했다.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뭐가 그리도 궁금한가?”
“프루커스의 후계자! 다른 대영주들은 모두 이미 후계자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각하의 후계자를 정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
모두가 놀랐다. 젊음의 패기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설마 엔티온의 정면에서 그리 물을 줄 몰랐다. 하지만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주는 물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두 엔티온을 주목했다.
“후계자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어째서 입니까?! 젠트 공자님은 각하의 뒤를 잇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젊은 귀족은 젠트에 줄을 선 모양이었다. 엔티온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있으니 불안했던 모양이다.
“젠트는 뛰어나다. 허나 둘째인 카일도 젠트에 못지않게 뛰어나다. 유진 또한 가주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필사적으로 얼굴 표정을 관리했다. 엔티온에게서 내 이름이 언급됐다는 것은 후계자 후보로서 생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카일 공자님과 유진 공자님은 너무 어립니다.”
“모두 성인식을 치렀다. 카일과 유진은 아이가 아니다.”
“……도대체 언제 후계자를 정하실 생각이십니까?”
“무례하군. 주카이 남작.”
엔티온은 주위를 둘러봤다. 프루커스의 가신들은 모두 엔티온을 열렬히 쳐다보고 있다. 가신들에게 후계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차기 권력자에 관한 것이니까. 엔티온이 후계자를 정하는 순간, 가신들은 무척이나 바빠질 것이다.
나는 제 아무리 엔티온이라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그냥은 넘어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프루커스의 후계자는 때가 되면 정해질 것이다.”
결국 명확한 답은 없었다. 가신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려 나왔다.
엔티온은 그 말을 끝으로 연회장을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엔티온의 생각을 모르겠어.’
엔티온이 빠르게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질질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겐 좋은 일이지만 가문의 입장에선 썩 좋지 않다.
‘그리고 엔티온은 내 생각보다 더 독선적이야.’
가신들은 엔티온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