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1978)
1991. 신의 아틀란티스
“너, 내 여자가 돼라.”
포세이돈은 기겁했다. 저게 여자에게 다짜고짜 할 말인가? 자신의 형제가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일 줄이야. 솔직히 형제로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메두사를 봐라. 어찌할 줄 몰라 하지 않나.’
올림푸스의 주신이 갑자기 나타나 요구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메두사가 인간이 아닌 존재라 할지라도 말이다.
포세이돈은 서둘러 제우스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탄 말은 하늘을 날아 제우스의 옆에 도착했다.
“제우스! 그게 여자를 대하는 태도냐! 같은 형제로서 부끄럽구나!”
포세이돈은 수염을 휘날리며 제우스를 타박했다.
솔직히 좀 쫄리긴 했다. 제우스의 성질머리가 어마어마하게 더럽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지 않나.
하지만 자신은 올림푸스에서 제우스 다음가는 신. 아무리 제우스라도 막 나오지 못 하리라. 그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직후 바로 깨달았지만.
“미쳤느냐, 포세이돈. 나는 하늘의 주인으로서 이 세상 모든 여자를 가질 권한이 있다. 괜히 끼어들지 말고 저리 꺼져라.”
“…….”
자신의 권위 따윈 하나도 존중해주지 않는 폭언!
평소라면 찌그러졌을지도 몰라도 지금은 자신의 운명인 메두사가 눈앞에 있었다. 포세이돈은 물러나지 않았다.
“제우스. 네가 아무리 하늘의 신이라 할지라도 그럴 권한은 없다.”
“정말로 미쳐버린 건가. 헛소리하지 말고 바다로 돌아가라. 여긴 네 권역이 아니다.”
“이놈, 제우스…!”
포세이돈의 분노에 바다가 반응했다. 잠잠하던 바다가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육지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짐승 같았다.
제우스가 눈살을 팍 찡그렸다. 그의 불편한 심기를 느낀 하늘이 반응했다. 먹구름이 몰려온다. 차가우면서도 강렬한 바람이 허공에 휘몰아친다.
쿠르르르르릉.
먹구름 속에서 시퍼런 번개가 꿈틀거린다. 그것만으로 지상의 모든 이들은 공포에 떨었다.
메두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두 대신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흐느끼듯 몸을 떨 뿐이었다.
‘이 자식, 진심이다.’
근엄한 얼굴의 포세이돈은 속으로 당황했다.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분통이 터졌다.
‘여신이고 인간이고 할 것 없이 아름다운 여자란 여자는 죄다 건드는 거냐? 저번에는 페르세포네가 태어나자마자 건드렸다지? 제우스. 이놈은 진정 미친놈이다. 올림푸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가 나서야겠군!’
아프로디테에게 흑심을 품었다가 타르타로스에 처박힌 조카의 이야기는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제우스. 둘이서 이야기하지. 우리가 여기서 으르렁거리면 그녀가 너무 두려워한다.”
“네가 물러나면 될 일이 아닌가. 나는 그냥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기간토마키아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넌 도가 지나쳤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하늘로 솟구쳤다. 구름 위에 올라온 그들은 누구의 시선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포세이돈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우스.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소. 보자마자 강렬한 운명을 느꼈지. 그녀와 나를 인정해주시오.”
“이거 우연이군. 나 또한 그녀에게 운명을 느꼈다. 내가 직접 하늘에서 내려온 걸 보면 모르나?”
“제우스여, 신들의 왕이여. 그대에겐 많은 여자가 있지 않소? 메두사. 그녀는 내게 넘겨주시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여자가 있지. 허나 똑같은 여자는 없다. 메두사는 내 여자다. 내 여자를 노리겠다면 아무리 너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파지지지직.
제우스의 주위에 벼락이 튄다. 지금 제우스는 진심이었다. 포세이돈은 호승심을 내려놓았다. 제우스와 1대1로 싸운다? 자살 행위였다. 자신이 패배하는 순간 제우스는 망설임 없이 타르타로스로 처박겠지. 언제나 그래왔듯이.
“제우스. 진정하시오. 우리는 무식한 티탄이 아니라 빛나는 지성의 올림푸스의 신이 아닌가. 우리가 싸우면 기껏 진정시킨 세상이 개판이 될 터. 평화적으로 해결하세.”
“평화적으로? 어떻게 말이냐?”
“메두사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오. 혹시 자신 없으시오?”
“자신 없기는 좋지.”
타협은 간단히 이루어졌다. 포세이돈과 제우스는 아직까지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메두사의 앞에 나타났다.
포세이돈이 먼저 나섰다.
“메두사. 나의 사랑. 당신의 운명은 나요. 그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소. 이 말을 보시오. 바다 위를 달릴 수 있는 말이오. 뿐만이 아니라 그대를 위해 백만이 넘는 바다 생물들이 목숨을 바칠 것이오. 나를 선택하면 이 모든 게 당신의 것이 되오. 바다의 어머니가 되어 주시오.”
“그, 그게.”
메두사는 오들오들 떨었다. 옆에 서 있는 제우스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우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메두사. 넌 내 여자다. 날 선택하지 않으면…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모조리.”
“히익…!”
모조리.
그 단어에 메두사는 자매들을 떠올렸다. 스테노, 에우리알레. 그녀의 못생긴 언니들이지만, 피를 나눈 가족들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제우스는 얼마 전에 제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수만 명을 학살한 신.
“누굴 선택할 것이냐?”
“제, 제우스 님이요.”
메두사가 벌벌 떨며 선택했다. 제우스가 만족스럽게 씩 웃으며 메두사에게 다가가 한 팔을 들어 그 어깨를 감쌌다. 바들바들 떠는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인정할 수 없다!!”
포세이돈이 소리쳤다. 거센 파도가 일어나 육지를 때렸다.
“또 뭘 인정할 수 없다는 거지? 포세이돈. 올림포스의 신으로서 체통을 지켜라.”
“체통을 지켜야 할 건 너다!! 메두사를 협박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은 거냐! 인정할 수 없다!”
“네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쩔 거냐?”
제우스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포세이돈은 흠칫 놀랐으나 이미 기세를 탔다.
“운명! 나는 메두사에게서 운명을 느꼈다!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를 찾아가 메두사와의 운명을 확인하자!”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이미 메두사는 날 선택했다.”
“쫄리는 거냐, 제우스!!”
“하찮은 도발이군. 시간이 남으니 어울려 주마. 대신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곧바로 모이라이를 찾아갔다.
과거의 클로토, 현재의 라케시스, 미래의 아트로포스. 세 명의 노파는 각각 운명의 실을 자아내고, 감으며, 끊어냈다.
성실하게 일해야 할 노파들은 일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들은 한곳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고, 운명의 실들은 바닥을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켜 있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누군가의 운명을 뜻하는 운명의 실을 짓밟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특히 포세이돈이 기겁했다.
“모이라이! 꼴이 이게 대체 뭐요? 왜 일을 하지 않는 것이오?!”
“시끄러운 바다의 신이 왔구나.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몰라도 보다시피 모든 운명은 우리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대체 무슨….”
포세이돈은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실타래들을 쳐다봤다. 운명의 실들은 저절로 나타났으며, 저절로 움직여 얽혔고, 저절로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렇다. 운명은 통제되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본래 영웅이 되어야 할 자들은 그 찬란한 이야기를 꽃피우지 못하고, 태어날 선 안 될 자들이 태어나고 있다. 예언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신들 또한 한 치 앞도 볼 수 없으니… 이 운명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모이라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대들이 태만하여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니오! 지금도 늦지 않았소! 운명을 바로 잡으시오!”
“바다의 지배자여, 이곳에 네가 원하는 운명은 없다. 그리고 운명이 이렇게 된 원인을 정녕 모르는 것이냐?”
“원인?”
모이라이가 제우스를 쳐다봤다.
“모든 운명은 네가 태어나고 나서 이렇게 되었다.”
제우스는 흐트러진 운명의 실을 무감정하게 쳐다봤다.
“운명이 없다면, 스스로 선택한 메두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 메두사는 내 여자다.”
포세이돈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금 운명이 엉망이 되었소! 메두사가 중요한 게 아니오!”
“이따위 알 수 없는 운명보다 메두사가 더 중요하다. 운명이 없는 메두사의 운명을 내가 정했으니, 내기는 내가 이긴 것이다. 포세이돈. 대가를 치러라.”
“…돌아버리겠군. 운명의 상태가 이렇다는 걸 알고 있었소?”
“아니. 이곳에 온 건 나도 처음이다.”
“그런데도 그리 침착하다고?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거요?”
“이미 끝난 운명이다. 이제와서 운명 어쩌고 해 봤자 관심도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대체 뭘 알고 있는 것이오?”
“됐고, 대가를 치러라.”
“……날 타르타로스에 처박을 것이오? 내가 없는 바다를 감당할 수 있겠소?”
포세이돈이 자신만만하게 제우스에게 대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지금 바다는 포세이돈에 의해 안정화되어 있었다. 바다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알 수 없는 괴물신이 있고, 그 괴물신이 권속들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이상 자신을 어찌하지 못 하리라 계산한 것이다.
“그럴 리가. 내가 원하는 건 너의 딸들이다. 딸만 50명이라지? 모두 내놓아라.”
“이런 미친놈이….”
“내놓지 않겠다면 널 타르타로스에 처박아 버릴 수밖에 없다…. 이건 형제에게 주는 배려이다. 부디 내 마음을 헤아려줬으면 하는군.”
삼지창을 쥔 포세이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녕 이렇게 나올 것이오?! 내가 없으면 바다의 혼란이 일어날 것이오! 바다의 혼란이 육지로 향하기를 원하오?!”
“포세이돈. 바다는 넓으나 그뿐이다. 역사는 지상에서 쓰이고, 하늘은 모든 것을 아우르니. 오만해지지 마라.”
“진정 오만한 자는 누구인가…!”
포세이돈은 이를 악물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여기서 제우스와 싸워도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동시에 제우스의 본질을 깨달았다.
신들의 왕.
그는 권력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는, 탐욕으로 이루어진 폭군이었다.
포세이돈은 고개를 숙였다.
당장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7할의 주인이 한탄합니다.」
낯선 음성이 포세이돈의 귓가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