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12
분신으로 절대무신 12화
5장. 집
저 산을 넘으면 집이 보일까?
저 강을 건너면 집이 보일까?
몇 번이고 꿈에서 보았던 산기슭을 지나.
올라선 언덕 아래에는 거짓말처럼 고향이 펼쳐져 있었다.
-덜컹덜컹.
언젠가부터 장일은 말을 타고 가는 길보다 수레를 밀고 가는 때가 많아졌다.
낡은 수레 안에는 하사받은 비단 다섯 필 말고도 면포만 오십 필이 더 있었다. 이 외에도 여러 도시에서나 구할 법한 잡다한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그의 고향이 외부 사람이 잘 오기 힘든 곳에 위치하다 보니 이런 물품들은 최소 2배 이상의 가치로 거래가 되어서다.
그가 타는 말이 군에서 짐말로 이용되는 녀석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같은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대로 된 길이 없는 만큼 수레가 가기에는 길이 험해서다.
하지만 말은 큰 투정 없이 묵묵히 수레를 끌고 올라갔으며, 장일도 비탈길이 어려울 때면 짐을 덜거나 내공을 긁어모아 밀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장일은 고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아!”
어릴 때는 그저 지겹고 지루했던 광경이 어째서 이리 눈물을 핑 돌게 하는지, 장일은 그 연유를 몰랐다.
잠시 떨리는 눈길로 고향을 더듬듯 매만지던 장일은, 어느새 외곽에 위치한 작고 작은 집에 시선이 닿았다.
“어머니…….”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장일은 집이 뿌옇게 일그러지며 흐릿해져 가는 것을 막으러 손을 몇 차례고 올렸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볼을 적시는 물기에 그는 결국 무너져 버렸다.
-어허헝!
그렇게 장일은 한참이나 바보같이 울어댔다.
뭐가 그리 서러웠던지, 뭐가 그리 힘들었던 건지 장일은 한참이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푸르릉.
그런 주인의 모습이 걱정이 된 것인지 말은 그 옆에 다가와 그를 위로해 주었다.
별것 아닌 말의 의사에 장일은 그제야 겨우 무너진 몸을 일으켰다.
“그래, 고맙다.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힘내다오.”
-이히힝!
걱정 말라는 듯 크게 울음을 흘리는 말의 모습에 장일은 입가에 큰 호선을 그리며, 그렇게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숙아! 다숙아!”
“오, 아주머니? 뭔 일이래요?”
흐트러진 머리에 낡은 옷.
어린 소녀의 풋풋함마저 밀어내는 짙은 빈곤.
다숙은 이제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촌장댁이나 나름 유지라 할 수 있는 집에서 작은 품앗이 같은 걸로 잡곡 한 말(9㎏) 정도를 받는 게 다였다.
잡곡 한 말이라고 하니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보통 인심 사나운 곳에서는 먹고 재우는 것도 제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어린 그녀에게 이만큼이라도 내어주는 것은 나름의 인심을 베푼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숙에 오 아주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콩콩 쳤다.
“이럴 때가 아니라니께! 네 오빠가 왔어! 장일이 돌아왔다니께?”
“……네?”
“뭐 하냐? 일어나지 않고. 오빠 안 볼 거여?”
“저, 정말이어요?”
“내가 너에게 거짓말해서 뭐에 쓰려나. 얼렁 집으로 가! 이건 내가 마저 할 터이니.”
“어…… 네. 알겠어요. 부탁해요.”
꿈에서도 바라마지않았던 일이 일어났다고 하니 그녀는 그게 그저 믿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알자, 멍하던 그녀의 눈빛에는 반짝거릴 만큼 빛이 일었고 이내 그녀는 날쌘 다람쥐처럼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일하는 오 씨 아주머니 집에서 자기 집과의 거리가 멀다 보니, 어느새 숨은 헐떡거리기 바빴다.
옆구리가 아릿하게 아프기까지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컸다던 아버지를 닮아 어릴 때부터 큰 체격을 가졌던 오라버니의 넓은 등짝이 보인 것이다.
“오빠! 오빠!”
다숙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녀의 오라버니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처럼 눈가가 시뻘겋게 한 오라버니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하지만 아직도 집까지는 먼 터라 그녀는 이제 걷다시피 한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탁!
그런 그녀에게 장일이 순식간에 다가와 그녀를 잡아채며 소리쳤다.
“뭐하러 뛰어왔어! 이 바보야……. 어휴. 어째 갔을 때와 달라진 게 없냐.”
장일은 장녀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너무 어린 다숙을 복잡한 심경으로 다그쳤다.
무엇보다 헤어지기 전과도 다르지 않았던 특유의 빼빼 마른 체형이 그대로라는 게, 그는 너무도 미안하고 화가 날 따름이다.
“크흥. 어어엉! 오빠! 오빠…… 오라버니.”
그런 장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며 그를 몇 번이고 불러댔다. 결국, 장일은 참았던 눈물을 다시금 쏟아내야 했다.
“형!”
“오바.”
형이 큰 칼과 말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철없는 어린 동생 두 명도 어느새 다가왔고, 장일은 그런 그들 또한 함께 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보이듯이, 장일은 동생들이 숨이 막힐 듯 꼬옥 안아댔다.
“울보라고 소문나겠네. 진짜.”
“훌쩍. 누가 오라버니 보고 울보라고 하겠어요.”
“마자마자.”
“우리 형님이 마을에서 제일 멋있어.”
장일은 그저 자신이 최고라는 동생들의 모습에 피식 웃어댔다.
하지만 다숙도 장이와 막내 다미도 그저 형이라서 오빠라서 그리 말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도 웬만한 어른 체격을 지녔던 그가 어느새 머리 반 개쯤 더 커져 돌아왔다.
거기에 수련으로 인해 좀 더 몸의 균형이 맞춰지고 체격이 좋아졌으며, 자연스레 피부 또한 시골가 사람 같지 않게 윤택이 흘렀다.
어디 그뿐일까?
죽음에서 부활하면서 깊어진 의식과 과거의 제 삶의 공유로 인해 그의 눈은 심연처럼 깊어졌다.
그 나이대 정도가 아닌 큰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분위기가 그에게 흘러나왔으니, 그들이 그리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를 인지하지 못한 장일은 그저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동생들이 치켜세우는 것이라 여길 뿐이다.
-끼이익!
그때, 작은 집안의 방문이 열리며 장일의 어머니 오향이 들어섰다.
그녀의 눈가는 장일이나 다숙 이상으로 퉁퉁 부은 붉은 기가 가득했으나, 그 입가에는 밝은 미소만이 가득했다. 들어서는 그녀의 손의 광주리에는 방금 삶은 감자가 가득했다.
“감자다! 감자가 이렇게나 많아.”
“꼴깍! 이거 다 먹어도 돼?”
“장이, 다미 오라버니부터 먹어야 돼. 참아.”
“히잉.”
다숙은 그리 말하면서도 걱정이라는 듯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실 지금 가져온 감자면 이틀은 먹어도 될 양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걱정을 알아본 장일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말고 마음껏 먹어. 오라버니가 가져온 수레 못 봤어? 저거면 네 옷도 해주고 시집도 보내주고도 한참이나 남아.”
“시, 시집이라니요. 오라버니.”
시골에서 열두 살이라지만 알 것 다 아는 나이였다. 예전과 달리 자신의 장난에 크게 부끄러움을 타는 동생에 장일은 되려 당황스러워했다.
그런 장일에 그의 어미가 나무랐다.
“이 녀석아. 네 동생이 달거리를 한지가 언제인데 그리 말하면 쓰냐. 이제 다숙이도 숙녀여.”
“엄마! 무슨 그런 말을 오라버니께 해요.”
“이 꼬마가 시집이라니요! 나는 반대다. 절대 안 됩니다. 어머니.”
“누나? 시집가?”
“시지비 뭐야?”
장이와 다미에게도 애정이 아니 간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다숙은 장일에게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순하고 착해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신을 잘 따라,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는 다숙과 종종 같이 놀기도 했다.
-짝!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아들의 등짝에 오향은 큰 소리가 나게 때리며 말했다.
“다숙이 결혼하려면 아직 몇 년은 있어야 하니 흰소리 그만하고 감자나 먹어.”
“어휴. 그래도 이 조그만 걸 어찌 보내요, 어머니.”
장일은 그리 말하다 이내 장이와 다미가 감자 광주리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걸 보고는 서둘러 감자 하나를 잡아 쥐었다.
“와아아!”
“이거 내 거야. 이것도.”
“하하하.”
그제야 장이와 다미는 그 작은 두 손으로 큰 감자를 두 개씩이나 잡아 챙겨댔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닌지라 장일은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귀환한 기념으로 차려진 식사는 감자에 물 한 대접밖에 되지 않았지만, 장일에게 있어서는 어느 진수성찬보다도 더 푸짐하고 즐거웠다.
자신의 주먹보다 큰 감자를 5개나 먹고 배가 올챙이가 된 장이와 3개를 먹고 그 옆에 같은 꼴을 한 다미의 말랑이는 배를 매만지던 장일에게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칼이고 말이고 수레고, 이게 다 무어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장일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전역증이었는데, 장일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게 군에서 전역을 할 때 주는 증서예요. 나중에 군에 어쩔 수 없이 군에 끌려가거나 혹은 입대를 하게 될 때, 이 증서를 보이면 그만큼의 근무를 인정해 주는 거죠. 그리고 이 증서에는 바로 백인장으로서 근무했다고 적혀 있어요.”
“……그게 뭔 말이니?”
글을 모르는 장일이 그 안에 내용을 설명하는 것을 듣던 오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운이 닿아서 백인장까지 올랐어요. 이것들은 그 보상금을 받은 걸로 산 거예요.”
“에구머니나!”
잘 모르는 시골 사람이라지만 오향 또한 백인장이 대단한 관직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리 놀랄 만도 했다.
그러나 오향이 놀랄 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장일은 이것 외에도 다른 쪽 안 주머니에 꼭꼭 숨겨둔 작은 주머니를 꺼내었다.
-쩔렁쩔렁.
묵직한 금속 비음 소리가 일어난 그것을 장일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내어주었다.
오향은 그것을 떨리는 손길로 받아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열었다.
“!!”
“은으로 76냥이에요. 이걸로 집도 새로 짓고, 땅도 사고, 가축도 기르고 그래요, 어머니.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게 꿈은 아니겠지.”
사람은 자신의 상상을 넘어선 기쁜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 불안하게 되게 마련이었다.
지금의 오향이 그러했다.
생사조차도 알기 어렵다는 전쟁터.
어린 아들이 그곳에 끌려갔을 때, 그녀는 피가 말라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지아비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와는 또 다른 슬픔이며 공포였다.
그랬던 아들이 거짓말처럼 돌아왔다.
그것도 모자라 금의환향(錦衣還鄕 :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옴)하기까지 했으니, 그녀로서는 마냥 불안할 뿐이다.
혹시나 깨어나 다시 그 비정한 현실을 또다시 마주할까? 불안해하는 어머니에 장일은 다가와 안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
“그래…… 그래.”
그제야 안도가 되었던지 오향은 아들의 팔을 움켜잡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