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새하얀 별. 그건 분명, 나의 능력이었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능력을 사용한 적이 없다. 바닥을 뒹굴고 멈추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렇다면 저것은 무엇인가.
나는 눈만 겨우 굴려 주변을 살폈다. 다들 기사에게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 이 이상 현상을 보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함정? 아니, 그렇다기엔 아무런 느낌도 안 드는데.’
그렇다면 환영. 그래, 환영일 수도 있었다. 몸을 너무 혹사한 나머지 헛것이 보이는 걸지도.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있는 별이 살랑였다. 마치 유인하는 것만 같은 모습에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손을 뻗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누가 봐도 함정인데 만지려 하다니.
그러나 별은 닿지 않았다. 몸만 일으키면 닿을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지쳤다.
별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살랑이며 손끝으로 내려왔다.
퐁.
손끝의 저릿한 감각이 이윽고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나를 해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작았던 하얀 별의 몸체가 커지고, 이윽고 익숙한 형태로 변했다. 손아귀에 들어온 새하얀 것의 모습이 너무나 익숙했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무기의 모습이었으니까.
내가 새하얀 낫을 든 채 겨우 일어나자, 가까이 있던 신서하가 먼저 뒤돌았다. 그러곤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한지언 헌터? 무기 못 얻으셨던―”
신서하가 말을 잇지 못한 채 당황한 상태로 기사에게 다가가는 나를 바라보았다.
턱. 기사에게 좀 더 다가가던 순간,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위험해. 물러나.”
나를 가로막은 건 형이었다. 머리에서 시작된 상처의 유혈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처지면서 누가 누굴 막는 건지. 내가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내가 낫을 고쳐 잡자 하얀 낫의 존재를 눈치챈 형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그건… 어디서 났어.”
“몰라. 그냥 생겨나던데.”
“생겨나다니?”
“나한테 묻지 마. 나도 몰라. 비켜.”
“그 꼴로?”
“사돈 남 말 하네.”
“…생떼 부리지 마.”
“허?”
“낫도 제대로 못 쥐어서 계속 고쳐 잡고 있으면서, 공격은 제대로 할 수 있어? 나나 승현 길드장도 겨우 막고 있어. 그런데 비척거리는 네가 다가가면 어떨 거 같아?”
“싸우겠지.”
“…많이 다치겠지.”
“그럼 1초 정도만 잡고 있든가. 못해도 0.5초.”
“…장담 못 해.”
“장담은 원래 하는 거 아니야.”
형이 검을 고쳐 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어 숨을 옅게 내쉬며 하얀 반가면을 개방했다. 그 즉시 거의 미쳐 있는 기사가 고개를 형 쪽으로 부리나케 돌렸다. 기사를 상대하던 승현 헌터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한지운 헌터!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형의 근처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기사가 몸을 던지듯 형에게 다가들었다.
쩌어엉! 기사의 날이 나간 검과 형의 검이 부닥쳤다. 형이 뒤로 밀려났지만 애초에 노린 건 검을 맞대 이기는 것이 아니었으니.
스멀스멀 피어오른 검은 안개가 형과 기사를 뒤덮었다. 기사는 사방을 가로막는 안개에 순간 놀란 듯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어차피 본인이 이길 것을 확신하는 것 같았다. 다만, 안개는 단순 시야 가림막이 아니었다.
나는 안개가 덮이자마자 달려 나갔다. 그러곤 있는 힘을 다해 기사에게 뛰어들었다.
휘익! 몸을 안개에 던지자 안개가 뻥 뚫린 듯 부분적으로 걷혔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려는 기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안개가 걷히고 나서야 기사가 다가온 나를 눈치챘다. 그것이 이 기술의 능력이었다. 안개 안과 너머의 시야 뿐만 아니라 기척까지 차단하는 가림막.
나를 눈치챈 기사가 재빨리 막으려 했으나, 형이 뒤에서 기사를 붙잡았다.
“이제 진짜 그만하자.”
그 말을 내뱉으며 나는 무기에 담긴 능력을 사용했다.
파아앗. 사방이 하얀 별로 뒤덮이며, 별들이 기사의 반토막 난 꼬리를 타고 올라갔다. 기사의 몸이 점점 녹아내렸다. 몰려오는 고통에 기사가 발버둥을 쳤으나 형이 제 몸에 나는 상처에도 물러서지 않고 기사를 붙잡았다.
기사가 입을 열어 힘을 다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난……!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에도 형을 밀쳐 내며, 기사는 자신에게 날아든 낫을 막아 냈다. 손바닥에서 수없이 많은 유혈이 흘러내림에도 기사는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절대, 너희를 이 너머에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닌 거 같은데. 난 저 문을 넘어가야 하거든.”
하얀 낫 위로 핏방울이 맺혔다. 기사가 뒤로 밀려났다. 지느러미가, 상체가, 이윽고 팔이 녹아 무너져 내리고 있음에도 기사는 꿋꿋이 버텨 냈다. 저 문 너머에 있다는 왕 때문에.
기사가 떨림 하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고통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억울해하는 표정이었다.
낫을 붙잡고 있던 기사의 손이 땅으로 추락했다. 더 이상 막아서는 것이 없는 낫이 이윽고 기사의 목을 쳤다.
퉁. 퉁. 기사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이윽고 형이 기사의 몸에서 손을 떼자, 몸마저 바닥에 철퍼덕 내려앉았다.
사방에 퍼진 별들이 유리가 깨진 것처럼 부서지며 이윽고 흩어져 사라졌다. 손에 쥐고 있던 하얀 낫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었습니까?”
승현 헌터가 다가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 분해된 기사를 응시하다 답했다.
“네.”
“진짜 끝이에요?”
뒤늦게 일어난 강희민이 멍하니 싸움이 끝난 현장을 바라봤다. 윤시아가 신서하에게 물었다.
“아까 한지언 헌터 무기는 뭐였어요? 신서하 헌터는 알아요?”
“…가까이서 본 게 아니라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우리 무기가 파괴되면서 합체된 집합체일 거야.”
“주인공 역할 같은 거네요.”
옆에서 듣던 마허윤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한 명만 빼놓은 이유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신서하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면, 이 모든 건 전부 짜인 건가.
기사를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쥐여 주고, 마지막에 확실한 타격을 주기 위해 간절한 타이밍에 모든 무기를 합친 무기를 쥐여 준다. 그리고 기사를 처단.
‘…왜?’
이상한 일은 첫 번째 탑에서부터 계속됐다.
‘그러고 보니, 폰이 그런 소리를 했었지.’
「애초에 우리의 것들이 너희 세상에 생겨난 시점부터 너희는 이미 진 거야!」
그냥 평소대로 다 나와서 우리를 처리하면 되는 마당에, 굳이 탑까지 만들고 기회를 주었다. 왜?
‘목적이 뭐지?’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 목표인 듯 보였지만, 다른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일부러 우리가 탑을 오를수록 탑주의 힘을 약하게 해서, 탑주들을 죽이게 하는 이유.
‘알 리가.’
왕이란 작자를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알 턱이 있나.
‘유흥거리라도 원했나.’
골똘히 생각하던 와중,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승현 헌터였다.
“한지언 헌터.”
“예? 무슨 일이세요?”
“치료하십시오.”
“치료요? 아.”
다른 사람들은 이미 포션을 제 몸에 왕창 뿌리고 있었다. 형은 겔탄이 쓸 만하다 생각했는지 물로 공격하듯 겔탄에게 포션을 뿌렸다.
승현 헌터의 말에 나 역시 치료를 했다.
“바로 문으로 안 들어갈 건가요?”
“다들 많이 지친 상태입니다. 안쪽에 왕이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니,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렇죠.”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별건 아니고요. 왜 탑이 생겼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생긴 이유 말입니까.”
“네. 조금 뜬금없잖아요. 던전이 생긴 직후에 나타나도 됐을 텐데 인제야 나타난 것도 그렇고, 탑을 오르며 자신들을 처리하라는데 딱히 특별한 목표를 들은 적이 없어서요. 단순 유흥이라기엔, 지성이 있는 것들인데 과연 그럴까 싶고.”
“그건… 다른 길드장 분들과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만, 끝내 마땅한 이유를 도출해 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제가 겔탄이랑 같은 애들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거든요.”
“괴인들 말입니까.”
“…걔네를 그렇게 불러요?”
“특별한 이름이 없으니 일단 괴인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별건 아니고, 우리의 것들이 너희 세상에 생겨난 시점부터 너희는 이미 진 것이라 하더라고요.”
“…….”
승현 헌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지금 저희가 탑을 잘 처리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약간 걸려서 고민을 조금 했어요.”
“확실히 걸리는군요. 이 문제는 저 혼자 생각하고 답을 내리긴 어려울 듯합니다. 탑을 해결하고 나가서 다른 분들과 마저 얘기하도록 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이내 승현 헌터가 시계를 바라보고, 이어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슬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쉬고 싶은데 차마 말을 할 순 없는 것 같았다.
“드디어 왕을 보는 건가?”
겔탄이 신난 듯 내 옆에 들러붙었다. 기사에게 그렇게 맞아 놓고,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의외긴 했지.’
겔탄은 나만 구해 낸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는 공격도 수차례 막아 냈고, 기사에게 몇몇 치명타를 가했다. 치명타는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줄은 몰랐는데.
‘이래 놓고 뒤통수칠 거 같은데.’
쿠르릉. 승현 헌터의 손이 거대한 문을 천천히 밀었다. 열리기 시작한 문 틈으로 맑은 기운이 퍼져 나왔다.
“이 이상 안 열리는 것 같습니다.”
“한 명씩 들어가야겠네요.”
“저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천천히 들어와 주시길 바랍니다.”
제일 먼저 승현 헌터가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갔다. 뒤이어 형이, 박주완이, 마허윤이, 신서하가, 강희민, 겔탄, 그리고 나,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윤시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쿠르릉. 문이 도로 닫혔다. 닫힌 문을 뒤로하고 앞을 바라보자 반짝이는 보석들이 벽에 박혀 있는 화려한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보석에 눈이 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것이, 레드 카펫 너머에 앉아 있었다.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되는 크기의 왕좌.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왕.
드레스처럼 길게 내려온 인어의 지느러미. 물속이어서인지는 몰라도 푸르게 보이는 머리카락과 물속임에도 붉게 빛나는 흰자 없이 붉은 눈. 양 귀에 달린 액세서리. 화려히 꾸미지 않아도 화려한 모습의 여성형 인어.
“저게… 다음 층으로 가려면 죽여야 하는 거겠죠?”
강희민이 조용히 물었다. 그러나 나는 답해 주지 못했다. 조용히 응시하는 붉은 눈에 기선 제압 됐다.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은, 우리가 들어왔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그 감각에 다들 무기를 강하게 쥐었다. 다만 나는 좀 달랐다.
왕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저 모습은 내게 익숙하디익숙했으니까. 미친 것같이 소리 지르며, 우리를 죽여 온 자와 같은 모습이었으니.
여기가 끝 층인가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그렇다기엔 탑에 머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왜.’
왕좌에 앉은 왕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매섭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곧장 전투에 대비했다.
‘왜, 탑주가 벌써 모습을 드러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