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화
“허, 허억! 헉! 주군, 여기, 계셨……! 쿨럭!”
암브로시아 기사단의 제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그는 에단 암브로시아의 보좌관 제이드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제이드는 등에는 집사를 업고, 품에는 시녀장을 안은 채였다.
“제이드 님, 이제 내려 주셔도 좋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제이드 님.”
집사와 시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제이드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암브로시아 공작의 뒤로 가 시립하는 그 둘을 보며 제이드는 잠시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 그는 공작에게 다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갑자기 혼자 뛰어가시면 어떡합니까!”
“아.”
“주군께서 갑자기 마차에서 뛰어내리셔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제이드가 펄쩍펄쩍 뛸 때마다 그의 붉은색 머리칼이 흩날렸다.
에단은 펄펄 뛰는 제 보좌관을 보며 그제야 자신이 마차 안에 뭘 두고 왔는지 깨닫고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서한은?”
“지금 기사단이 잘 지키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다행이어야지요! 아시는 분이 그걸 그렇게 버리고 가십니까? 예?”
제이드는 제 가슴을 치며 성을 내다가 이젠 서러운 것처럼 웅얼거리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기사단은 주군 따라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남은 몇몇은 서한을 지켜야 한다며 마차를 호위해야 하고! 베론 집사랑 론다 시녀장은 왜 주군을 따라 안 가냐며 저를 닦달하고!”
“저런…….”
누가 보아도 백 년은 더 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제이드를 보며 암브로시아 공작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서 집사와 시녀장을 업고 여기까지 온 거로군.
암브로시아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사실 제이드는 무력보다는 지력이 뛰어나 에단의 보좌관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집사와 시녀장을 업고 오기까지 얼마나 힘겨웠을지를 생각해 보니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서러웠는데요! 뛰쳐나가신 건 주군이신데 제가 왜…….”
정말 서러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에단 암브로시아는 타박하듯 뒤에 시립해 있는 집사와 시녀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주인에게 찡찡거리는 제이드를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암브로시아 공작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 보좌관을 달래 주었다.
“미안하네. 고의는 아니었어. 절대.”
“고의는 아니셨겠죠. 고의면 저 정말 웁니다!”
“물론 경을 울리는 재미는 아주 일품이지만, 이번엔 정말 아니야.”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난처하게 흐려지자 제이드는 순간 꼭 저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암브로시아 공작이 사과를 하자 사용인들과 집사, 그리고 시녀장 쪽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어서 빨리 공작의 사과를 받고 그만 찡찡거리라는 뜻이었다.
“내가 서러워서 정말!”
그는 결국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며 절망했다.
하여튼 이 저택에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주군에게 홀려서는!
이러니 주군이 제멋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이 아닌가. 결국 수습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공작의 신뢰를 받는 만큼 그는 그만한 일 처리를 해내야만 했다.
“하하.”
실없이 웃는 공작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제이드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흉흉한 눈빛들 사이로 무참히 깨진 창문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아까 났던 굉음이…….”
그제야 제이드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사라와 그녀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클로드를 본 제이드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사라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굉음의 출처가 어딘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공자님께서 저리 얌전하게 낯선 사람 품에……!’
두 뺨에 홍조가 올라온 것으로 보아 클로드의 기분은 엄청 좋아 보였다.
암브로시아 공작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제이드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놀라운 광경도 잠시, 사라를 알아본 제이드가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 한쪽 팔을 굽혀 예를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밀런 소백작님.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제이드 하퍼입니다.”
“사정이 있어 이리 화답하는 무례를 하퍼 경께서 이해해 주신다면 용서하겠습니다.”
사라 또한 클로드를 안고 있는지라 가볍게 무릎을 굽히며 웃어 보였다.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은 제 수하의 귓불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밀런 소백작께서는 넓은 아량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소백작님의 관대함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금 전까지 찡찡거리던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제이드는 사라 앞에서 늠름하게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에단은 한숨을 쉬며 사라에게 말을 걸었다.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으니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밀런 소백작.”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죠.”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물론 한 손에는 제 보좌관의 뒷덜미를 낚아챈 상태였다.
“가지, 하퍼 경.”
“어, 엇! 주군 잠시……! 제 체면이!”
“차릴 것도 없어 보이는데.”
주군의 손에 잡혀 추하게 질질 끌려가는 굴욕을 보인 제이드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사라는 그 광경을 보며 사르르 웃다가도, 이내 단 한 번도 클로드를 바라보지 않은 공작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웠다.
“…….”
아이는 제게 그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체념이 깃든 클로드의 얼굴이 아이답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차라리 대놓고 실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기대가 없으니 실망 또한 없다는 것처럼 보여서 사라는 가슴 한편이 저려 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방을 나서려는 공작을 붙잡았다.
“공작님.”
“……? 말씀하십시오.”
“제 힘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게 해 주신다면, 1시간 더 줄여 드리지요.”
사라의 말에 클로드의 몸이 움찔 떨려 왔다.
그녀는 아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어 주며 웃어 보였다.
사라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에단은 이윽고 웃으며 답했다.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에단은 뒤를 돌아보느라 잠시 놓아줬던 제이드의 목덜미를 다시 잡아채고 걸음을 옮겼다.
제이드는 다시 한번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뻥 뚫린 문을 나서서 복도를 걸으며 에단은 제 뒤를 조용히 따르는 집사와 시녀장에게 말했다.
“베론, 그녀가 암브로시아에게 가장 필요한 걸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보고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공작의 명에 집사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 클로드의 방으로 향했다.
집사가 저 멀리 사라질 때쯤 공작은 제이드의 뒷덜미를 놓아주었다.
“하, 정말 너무 하십니다. 주군.”
“경이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걸 견딜 수 있어야 말이지. 소백작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암브로시아 공작의 보좌관은 참 귀엽구나, 라고 생각하시겠지요.”
“하하, 헛소리도 그 정도면 정성이야.”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주군의 뒷모습을 보며 제이드는 불충하게도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 아직 시녀장 론다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집어넣었다.
그녀는 서늘한 얼굴로 묵묵히 제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년을 함께 주군을 모셔 왔지만 베론과 론다, 이 쌍둥이 남매는 제이드에겐 너무 어려웠다.
주군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야 제이드 또한 갖고 있었지만 저들은 아주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늘 주인에게 말대답을 하며 능글거리는 제이드를 싫어했다.
에단은 한숨을 내쉰 뒤 론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사용인들 입단속 시켜. 내가 그녀에게 할애해야 하는 시간이 부디 한 시간으로 끝났으면 해.”
“예.”
고개를 숙여 대답한 론다가 점차 멀어지자 제이드는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퍼 경. 사라 밀런을 잘 아나?”
제이드는 기억을 더듬어 한때 사교계를 뒤집어 놓았던 사라 밀런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얼굴에 총기 어린 눈동자.
대륙 제일의 미인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게다가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태도 이면에는 기품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알다마다요. 제 친우들이 레이디 밀런, 레이디 밀런, 하면서 얼마나 끙끙 앓았는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열일곱에 치른 데뷔탕트를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소백작의 지위를 약속받은 뒤 칩거하지 않았던가.
그녀를 볼 길이 없어진 귀족들의 입과 입을 통해 그저 추측성 가십만이 무성하게 번졌을 뿐이었다.
“그녀가 그 정도였던가?”
“돌아가신 공작 부인과 황녀 전하의 예절 교육을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던 그녀가 담당했으니 얼마나 기품이 넘쳤겠습니까.”
“……그랬었지.”
“그런 밀런 소백작께서 마법사라니! 크롬벨 제국에서 무려 40년 만에 마법사가 나타난 겁니다, 주군. 아마 제국인 그 누구도 그녀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그는 마냥 해맑은 제 보좌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 누구도 몰라야 할 거야. 내 소중한 시간을 더 절약하려면.”
에단의 말에 제이드는 약간 주저하며 물었다.
“그런데, 만일 쥐새끼가 일을 망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야 물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주군의 얼굴을 보며 제이드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조금 더 즐거워지겠지.”
“으.”
누가 알아야 할 텐데.
저 다정한 웃음이 사실 제일 위험하다는 것을.
제이드는 절로 소름이 올라오는 뒷덜미를 무시하며 마차의 문을 열었다.
“흠!”
그러자 결박당한 채 입에 재갈을 물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