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82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82화
사라는 딱딱하게 굳어 버린 제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그들이 미약하게 움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허공에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여기서 나는 더 이상 너희들이 알고 있는 스승으로서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 여기 있어선 안 돼.”
단호하지만 엄격한 말이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본 스승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저 얼굴, 저 목소리에 적응하기도 전에 스승에게 거부당했으니까.
그중 벤야민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사라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제가 있을 곳은 스승님 곁입니다.”
“네 스승인 마탑의 대장로는 마탑에 있지, 여기엔 없단다.”
부드럽지만 냉정하게 끊어 내는 스승의 말에 벤야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올리븐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울먹이며 말했다.
“없잖아요, 지금 마탑에는 스승님이 안 계시잖아요! 스승님이 계시지 않는 마탑 따위 저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야.”
“그, 그래서라니 그게 무슨…….”
“언제까지 스승의 그늘 아래 있을 생각이었어?”
그녀의 말에 올리븐은 허를 찔린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언제까지라니.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물음이었다.
스승의 곁에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너희 모두 이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 마법사야. 그런데 언제까지 내게 묶여 있을 생각이었니?”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벤야민, 그건 내가 원하지 않아.”
사라는 고개를 내저으며 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내가 마탑에서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너희들이 저지른 일을 보렴.”
“…….”
“나와 암브로시아 공작님이 수습하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제국의 황실을 공격한 세력이 됐을 거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벤야민과 벨루나, 그리고 올리븐은 얌전히 무릎을 꿇고 고개만 끄덕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마법사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크롬벨 제국은 어떻게 해서든 마법사의 힘을 손에 쥐려고 들 테고, 다른 제국과 왕국들은 크롬벨 제국의 힘을 경계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대륙 전쟁이 끝난 것도 이제 100년이 되었다.
평화가 지속되기엔 오래되었고, 그렇다고 다시 전쟁을 치르기엔 지금의 평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사라의 제자들이 100년 동안 이어진 평화를 깨 버리는 일에 도화선이 될 뻔한 것이다.
“마법사들이 왜 마탑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게 좋겠구나. 너희 셋 다.”
“네에에…….”
“알겠습니다.”
“…….”
저마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사라는 알고 있었다.
저렇게 얌전히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도 얼마든지 또 다른 사고를 칠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걸.
마탑에서도 수없이 많이 야단쳤지만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몰고 다니던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하아. 제발 너희가 친 사고가 이게 전부라고 말해 주렴.”
“……그럼요, 전부고 말고요.”
올리븐은 어색하게 말을 흐리면서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사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올리븐은 고개를 푹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너희들의 처분은 나와 마탑의 장로들이 상의해서 결정할 거란다. 그전까지만 여기서 반성하고 있으렴.”
사라의 말에 올리븐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충격으로 울렁이는 눈동자가 그녀에게 향했다.
“저희를 다시 마탑으로 보내실 거란 말씀이세요?”
“당연한 것 아니겠니?”
“스승님!”
벤야민이 간절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사라에겐 자비란 없었다.
마탑에서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한없이 약한 스승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세 명의 제자들이 전부 울상을 하고 있는 게 마음 아팠지만, 그들이 소중한 만큼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너희들의 스승은 마탑의 대장로지, 사라 밀런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어.”
“……!”
“그게 내 뜻이고 의지란다. 존중해 줬으면 해.”
사라의 말에 제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사라 밀런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스승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마탑 대장로의 제자인 이상은.
“여기서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겁니다. 스승님이 연구하시던 그 힘, 아직 완벽하게 알아내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벤야민은 필사적으로 사라를 설득하려고 했다.
어떻게서든 쓸모를 입증해서라도 스승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벤야민, 나는 더는 내 일을 너희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거란다.”
“……!”
그의 얼굴이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옆에서 조용히 벤야민을 응원하던 올리븐도 함께 무너졌다.
“스승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존중하겠습니다.”
오직 벨루나만이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이었다.
사라는 제자들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뒤로 돌아섰다.
현명한 아이들이니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고 열기 전에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뒤를 돌아 올리븐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올리븐?”
“네! 스승님!”
“나중에 나와 얘기 좀 하자꾸나. 네게 할 말이 아주 많아.”
“……윽.”
스산하게 흘러나오는 스승의 목소리에 올리븐의 얼굴은 바로 울상이 되었다.
“제게 화나셨어요?”
“당연한 소릴 하는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쾅, 하고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
“…….”
“…….”
사라가 나가고 난 뒤. 벤야민과 올리븐 그리고 벨루나는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겼다.
올리븐은 아예 바닥에 엎드려선 조용히 울었다. 그의 눈 주변부터 시작해서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벨루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올리븐.”
“……왜?”
“너 뭔가 더 있지?”
“뭐가?”
“그 마력석 말고, 뭔가 더 사고 친 게 있지?”
벨루나의 말에 올리븐의 어깨가 순간 움찔 떨려 왔다.
그는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없다니까아.”
“분명 있어.”
“없어!”
“있어.”
“없다고!”
결국 올리븐은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며 부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수상했던 벨루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이 조금 전 스승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올리븐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떨어져 있던 사이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다 말해 줬잖아. 마력석을 두 개나 중첩한 것도 다 털어놓았는데 내가 뭘 또 숨기겠어?”
“응, 너라면 충분히.”
확신이 가득한 단호한 대답에 올리븐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네놈이 하는 짓에 어울려 주지 않겠어.”
“야, 벨루나…….”
“네가 무슨 사고를 쳤든, 나와는 무관해. 스승님께도 확실하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야.”
벨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올리븐에게서 등을 돌렸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 스승님이 열고 나갔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나 문이 잠겼는지 덜컥거리며 열리지 않았다.
“[부서져라.]”
잠긴 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으로 문고리를 부숴서 여는 그 뒷모습을 보며 올리븐은 소름이 올라온 팔을 문질렀다.
하여튼 그는 벤야민보다 벨루나가 더 무서웠다.
올리븐은 그렇게 나가 버린 벨루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고서야 마지막 희망을 걸고 벤야민을 바라보았다.
“있잖아, 벤야민…….”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낌새를 눈치챈 벤야민은 사전에 그의 말을 막았다.
“내게 털어놓지도 말고, 말도 걸지 말고. 아, 그냥 숨도 쉬지 마.”
“……너무하네.”
벤야민 또한 싸늘한 눈으로 올리븐을 바라보다가 이내 벨루나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겨진 올리븐은 다시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렸다.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에 뺨을 문지르며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벨루나 쟤는 진짜 감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