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11)
제111화
111화. 후일담(1)
황궁(皇宮) 깊은 곳 어딘가.
그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복도의 끝.
두 명의 중년 남성이 거대한 문 앞에서 차분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루시드가의 가주인 루크 후작.
그리고 헤리제스가의 가주인 아시즈 후작이었다.
제국의 여덟 기둥 중 두 기둥.
감히 그 누가 이 둘을 기다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답은 간단했다. 앤스우드 제국의 지배자이자, 대륙의 하나뿐인 태양.
레온 드 라인하트 13세.
그렇다. 지금 그들은 황제의 부름을 받고 대기하는 중이었다.
제 성격처럼 꼿꼿이 선 채 눈을 감고 있는 루크 후작.
그런 그를 보며 아시즈 후작이 생각에 잠겼다.
‘루시드 가문…… 곤란한 가문이란 말이지.’
당파 싸움에서도, 기둥의 위치에서도, 그리고…….
‘황제가 되기 위한 길에서도.’
그렇다. 아시즈 후작은 황제의 자리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걸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두말할 것 없이 루시드 가문.
바로 눈앞에 있는 루크 후작의 가문 되시겠다.
‘황제에게 이상하리만치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단 말이지.’
억만금을 쥐여 줘도, 제국의 절반을 떼어 줘도, 심지어 황제의 자리를 양보한다고 할지라도.
온갖 것들로 회유를 해도, 루크 후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에게 검을 겨눌 것이다.
설령,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레스터 가문을 처리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 가문은 틈이 안 보이니 원.’
그렇다. 무엇을 숨길쏘냐.
레스터 가문을 몰락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자, 그들에게 반역죄의 누명을 씌운 흑막.
다름 아닌 아시즈 후작이었다.
‘어디까지나 ‘그’와 의견이 맞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먼저 레스터 가문을 쳐 내자는 제안에 놀라긴 했지만, 레스터 가문을 정리하는 건 마침 그도 원하던 일.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고, 물밑에서 암약하고 물 위에서 협력한 끝에 성공적으로 레스터 가문을 축출할 수 있었다.
레스터 가문을 축출한 이유?
루시드 가문과 레스터 가문.
대를 이어 황실에 충성을 바치는 가문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를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
그게 바로 아시즈 후작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 준비된 걸로도 충분히 황위를 노릴 수 있지만…….
‘적어도 내 대에서는 아니다.’
반란 이후 생긴 여러 분란으로 인해 제국이 쪼개진다면 황좌의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없다.
황위를 잇는 정당성과 명분을 등에 업으며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다음 대…… 아니, 안전하게 2대 이후에 계획을 실행하는 게 안전했다.
황좌라는 자리. 자신이 못 앉더라도 상관없다.
아시즈 후작은 그런 사람이었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황위가 있어도 꾹 참고 인내할 줄 아는.
매우 치밀한 사람.
고지식한 레스터 가문이 그의 계략에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레스터 가문은 잘 처리했고.’
루시드 가문도 문제지만, 일단은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갑자기 왜 부르신 거지?’
종종 알현할 때가 있긴 했지만, 이유도 말해 주지 않고 부른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루크 후작과 함께라니.
‘같이 부르셨다는 건 뭔가 엮인 일이 있다는 건데.’
영민한 아시즈 후작조차도 그 이유를 쉽게 유추할 수 없었다.
‘최악은 레스터 가문에 누명을 씌웠다는 게 밝혀졌을 경우…….’
하지만 그랬다면 꽁꽁 묶인 뒤 끌려왔을 것이다. 이렇게 자유로이 놓아줄 리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군.’
루크 후작은 이유를 알까 싶어 슬쩍 눈치를 봤지만,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예나 지금이나 참 바위 같은 남자다.
‘뭐, 누명을 씌웠다는 증거가 발견됐더라도 상관없긴 하다만…….’
이미 레스터 가문의 멸문으로 끝난 사건이다.
누명이었다는 게 밝혀져 봤자 이미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
끽해야 관직에서 몇 년 정도 물러나 있으라는 처벌이 내려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일에는 ‘그’도 연관되어 있으니, 본인의 정치적 생명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내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그 일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부르신 거란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거대한 문이 열리더니, 딱딱한 얼굴의 기사가 딱딱하게 말했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다리고 있던 건 자신들 쪽이었지만, 그런 말장난을 할 만큼 멍청하진 않다.
루크 후작과 아시즈 후작이 문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군악대의 팡파르도, 가문을 알리는 시종의 호언도 없다.
비공식적인 자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적막이 가득한 공간을 백 걸음쯤 걸었을까.
머리를 치켜들어야만 보이는 높다란 계단 위, 그 중앙에 있는 화려한 의자.
그곳에 그가 앉아 있었다.
제국의 지배자 레온 드 라인하트 13세가.
루크 후작과 함께 한쪽 무릎을 꿇자, 루크 후작이 우렁차게 외쳤다.
“작센강의 지배자이자 앤스우드의 자애로운 통치자, 제국의 주인이시며 대륙의…….”
“그만, 그만.”
황제가 손을 들어 올리며 제지했다.
이제는 빛나는 황금빛 머리칼보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더 많아진 그지만, 눈에 가득한 정순한 기운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쯤 해 두게.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지 않는가.”
루크 후작과 아시즈 후작이 일어서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황제의 입에서 곧장 본론이 나왔다.
“다들 들어서 알고 있겠지. 아카데미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모양이더군.”
바로 어제 생긴 일이지만, 루크 후작과 아시즈 후작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악마가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대사건.
자신들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루시아 경이 또 한 번 큰일을 해내 줬더군. 루크 후작, 자네에게는 해 주는 것 없이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라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모두 폐하의 은덕이지요.”
“하하, 이 사람. 그게 어떻게 내 덕인가. 그러고 보니 그전의 일도 그랬지. 악마의 편린이라 했던가?”
아카데미 지하에 수십 년 동안 도사리고 있던 악마의 씨앗.
루시드가의 막내인 로델린이 처치했고, 그곳에 있던 연구실에서 ‘침식’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어 낼 수 있었다.
현재 대륙 곳곳을 위협하고 있는 침식의 맹위를 고려한다면, 이건 엄청난 성과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악마와 계약한 이를 찾아내고, 처단하기까지 하다니. 막내딸의 나이가 몇이지?”
“……열여섯입니다.”
“그렇군. 그 나이에 악마와 맞서 싸우는 기상과 용기라니. 내 자네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를 것이야.”
“과찬이십니다.”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대부분이 아카데미와 악마 습격에 관한 이야기였다.
“……?”
아시즈 후작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까부터 아카데미에 대한 얘기뿐이다.
이게 자신을 부른 이유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난 관련이 없는 일인데?’
아카데미에 잠들어 있던 악마, 악마의 편린.
악마와 계약한 선생, 르앵.
아카데미를 습격한 4계위 악마, 비네스까지.
셋 모두 아시즈 후작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막내 아들놈인데…….’
총학생회장 아윈 드 헤리제스.
하지만 이게 자신을 부른 이유는 아닐 거다.
저 세 가지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고 아윈에게서 전해 들었으니까.
계속해서 의문을 품던 때였다. 황제가 루크 후작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아시즈 후작도 고생했소.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제야 이해가 되더군.”
“……예?”
“드웨너 자작 말이야. 자네가 추천한 이유를 알겠어. 위기 극복에 능한 인재더군. 그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지 뭔가.”
“……?”
황제가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드웨너’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천한 인재 중에 저런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던가?
하지만 황제가 치하할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면 자신이 기억 못 할 리가 없다.
‘……내게 치매가 온 건가? 이 나이에?’
드웨너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던 때였다.
“드웨너 자작…… 아니, 이제는 총장이라고 정식으로 불러 줘야 할 듯하군. 당분간 자리가 바뀌지 않을 듯하니 말이야.”
총장?
그제야 아시즈 후작은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자신이 앤우드 아카데미로 내려 보낸 낙하산이다.
동시에 한 기억이 떠올랐다.
드웨너를 처음 만난 날 겪었던.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이.
* * *
헤리제스가의 지원을 받아 주최한 영세 가문의 한 파티장.
아시즈 후작이 와인을 들이켜며 파티장을 살폈다.
‘영세한 가문이지만, 인망이 상당하군.’
누구나 얼굴을 보면 알 사람부터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기사, 실력 있는 행정관까지.
인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원래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왔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군.’
사실 아시즈 후작은 무능한 인물을 찾고 있었다.
일반인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무능한 사람.
하지만 지원금을 너무 많이 준 모양이다.
“없는 인맥 있는 인맥 모두 끌어모아 초대했습니다. 후작님의 마음에 드시는 인재가 꼭 있을 겁니다.”
영주가 너무 힘을 발휘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쓸 만한 인재를 영입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듯했다.
“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날파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두리번두리번-.
어디 먹을 게 없나, 손을 비빌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날파리.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아시즈 후작의 입장에서 그는 날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놈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사삭- 사삭.
날파리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참 볼품없는 짓이다. 귀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어딘가 들러붙고 싶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저자는 누구인가?”
“어디 보자…… 음…….”
그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가르타 백작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가르타 백작이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이 지역의 마당발인 그조차 모르는 인물이라니.
날파리 중의 날파리가 분명했다.
보통 무능한 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머지않아 가르타 백작이 날파리를 데려왔다.
“드, 드웨너 자작이라고 합니다. 저, 저를 찾으셨다고…….”
“유능한 인재가 이런 곳에 빛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니. 내 마음이 다 안 좋구먼.”
“……후후, 숨기려 했는데 티가 났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위대한 영웅 세이건 가문의 후손. 그게 바로 저, 드웨너입니다.”
조금 떠받들어 줬다고 자화자찬하는 꼴이라니.
이제 보니 입을 대야 할 곳도 알지 못하는 날파리 아닌가.
아시즈 후작의 마음에 아주 쏙 드는 날파리였다.
‘멍청하고 덜떨어진 자의 노력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
배운 것도, 쌓아 온 경험도, 지식과 지혜도.
쥐뿔도 없는 놈이 여기저기 손을 댄다.
사건 사고가 잇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딱 적격이야.’
앤우드 아카데미의 총장 자리.
저 날파리의 일 처리 솜씨를 본다면 엘레스터가 놀라 맨발로 달려올 것이다.
엘레스터가 아니더라도, 꽤 높은 직위에 있는 인물이 아카데미로 와야 할 거다.
드웨너가 친 사고를 수습할 사람은 있어야 할 테니까.
‘황제파의 인재를 멀리 내쫓고, 그 자리를 우리가 차지한다.’
아시즈 후작의 계략이었다.
그러다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큰 사고가 터지면 어떡하냐고?
‘경력을 속였다며 꼬리를 싹둑 자르면 간단히 끝날 일이지.’
아시즈 후작이 기분 좋게 와인을 들이켤 때였다.
“후, 후작님…… 이 유능한 드웨너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비틀거리며 자신의 앞에 선 드웨너.
그가 갑자기 자신 쪽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 비밀스러운 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아시즈 후작이 귀를 가까이 갖다 댔을 때였다.
“우웩-.”
뜨거운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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