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05)
105 남는 장사
혁신도시 중식당에 고급 세단이 줄지어 들어간다. 호남 일대를 주름잡는 주먹들이 결연식 맺는 줄 알고 신고가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올해 대한전력 입찰로 내년 관수 농사의 향배를 결정하는 변압기혁신조합 신년회가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오늘 회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있을 입찰에서 중전기조합을 밟을지 말지 결정된다. 난 무조건 밟아 버리고 싶다. 확실한 카드가 있다. 저들이 따라오지 못할 단가로 모든 입찰을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사장도, 박 사장도 그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만이 단가를 낮추고도 손해를 안 볼 솔루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인 자동권선기. 부싱체결기는 놀란 것도 아닐 정도로 놀래 버린 사장들 표정에 답이 나와 있다.
내가 회원사 전부에 팔아 줘야 답이 나올 테지. 대당 6억 원에 우리 회사 경쟁력을 넘기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에게는 훌륭한 인재들이 있었다. 이젠 남는 장사를 잘 포장하면 된다.
“사장님들, 추운데 아침부터 고생 많으셨습니다. 천천히 음식 드시면서 담소 나누시죠. 회의는 배 채우고 시작하겠습니다.”
조합 상근자인 이호영 상무가 운을 띄웠다. 금성전기에서 퇴직한 자로 조합의 산파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이 상무. 지 사장 공장 구경하면서 담소 다 나눴어. 하하. 먹으면서 바로 시작하지?”
“아, 그렇습니까? 사장님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그럼 이사장님께서 신년사 읽으시는 것으로 신년회 시작하겠습니다.”
“뭘 번거롭게 신년사를 읽어. 어차피 뻔한 내용인데.”
“하하. 이사장님. 그래도 할 건 해야지요.”
강호창 사장이 신년사를 읽기 시작하자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음식이 들어왔다. 다들 경청하고 있는 표정이지만, 눈은 음식을 향한다. 강 사장 말대로 신년사 낭독은 그냥 패스하지.
낭독이 끝나자마자 젓가락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냄새까지 맡으니 얼마나 참기 어려웠을까?
“다들 시장하셨나 봅니다. 그럼 안건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사장님?”
“음, 뻔한 얘기 다 집어치우고 얘기하자면, 다들 소문은 들었을 것입니다. 중전기조합 회원사 몇 군데가 새 변압기 회사를 차려서 대한전력 입찰 자격을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듣기론 6개사인 것 같은데, 더 늘어날 수도 있겠죠.”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던 사장들 표정에 비장함이 감돈다. 중소기업들 판로 개척 용이하게 하라고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졌는데, 조합끼리 치고받고 싸워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중전기조합이 회원사 늘리려고 하는 이유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입찰에서 가져가는 금액 늘려 보겠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가져가면 이삼십억 투자해도 이삼 년이면 본전 뽑으니까.”
“이사장님! 우리가 두려울 것이 있습니까? 저번 입찰에서 중전기조합 장난쳤을 때 했던 대로 매운맛을 보여 줘야지요!”
일심전기 유원태 사장이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선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중전기조합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사람이다.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 말로는 중전기조합이 배정으로 장난칠 때 가장 많이 항의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만큼 손해를 많이 봐서 중전기조합이라면 치를 떤다고 하더라. 지금까지 그렇게 당했는데, 또 당할 수는 없겠지.
“유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눈 뜨고 당할 수는 없죠. 단가가 좀 떨어지더라도 중전기조합이 그런 짓을 못하게 강경하게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다들 설계 수정해서 원가 낮추고, 조합 차원에서 자재 공동 구매하면 낙찰가 떨어져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또 다른 강경파 사장이 맞장구를 친다. 조합끼리 입찰경쟁 붙으면 단가 하락 무시무시할 텐데, 너무 감정적이 아닌지 걱정되기까지 한다.
역시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전에 경쟁 입찰했을 때 결과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때야 조합과 변압기 회사 경쟁이었지만, 이번엔 조합끼리 경쟁 아닙니까? 단가 10프로, 15프로 하락은 우스울 것이란 말이죠. 조합의 명운이 걸린 일인데, 무조건 입찰 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지적이다. 이달 말에 혁신산단에 공장 착공한다는 아주전기 이충원 사장이다. 나주 내려오니 우선배정 물량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겠지. 단가 떨어지면 우선배정 물량도 똥이 되니 말이다.
제일 큰 피해자는 내가 될 것이다. 난 이미 우선배정으로만 20퍼센트 정도는 확보한 상황이니, 단가가 떨어질수록 재미가 없다.
이거 고민이네. 중전기조합 죽이고 싶긴 한데…….
“이 사장님. 솔직히 툭 까놓고 얘기해 봅시다. 우리 회사가 말이지요, 대한전력에 납품하면 15프로가 남아요. 설계 좀 뜯어고치고, 자재가격 낮추면 20프로까지도 가능하단 말이지요? 그럼 입찰 때 낙찰률 좀 떨어져도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저놈들 기를 죽여 놔야죠.”
유 사장이 재차 강경 대응을 주문한다. 유 사장 말도 맞다. 그렇게 1년만 고생하면 중전기조합 나가떨어질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내 타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 계속 걸린다. 낙찰률이 10퍼센트만 떨어져도 영업 이익이 꽤 날아간다. 어림짐작해도 100억 원 가까이 허공에 날아가는 것이다.
“유 사장님. 중전기조합이 여섯 개 늘어난다고 해도 끽해야 10억 정도 빠지는 것인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있습니까? 중전기조합 하는 짓이 못마땅하지만, 우리가 굳이 손해 감수하면서까지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지요.”
“맞습니다. 차라리 올해는 그렇게 하라고 하고, 우리가 다 같이 나주 내려가서 우선배정으로 물량 확보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지역우선배정도 3년인데, 법대로 5년까지 늘려 달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요.”
온건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전기조합도 죽이고, 적정 단가에 대한전력 물량도 확보하는 묘수가 없으니, 강온 대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준희 사장이 오늘 따라 조용하네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발언권을 얻어 입을 연다.
“중전기조합이 꼼수로 물량 더 받아 가려는 것을 용인해 주면, 내년에는 더한 짓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잖아요? 친한 업체들끼리 물량 더 챙겨 가고, 조용히 있는 업체한테는 만들기 어려운 물량 배정하고. 얼마나 못되게 굴었나요? 잊으시면 안 되죠.”
똑같은 변압기라도 용량에 따라 제작 난이도가 차이가 난다. 밉보인 업체들한테는 만들기 어려운 큰 용량 위주로 배정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 피해자들이 여기 모여 있으니, 아픈 기억에 속이 부글부글할 테지.
“제가 봤을 때는 중전기조합이랑 경쟁 붙는다고 해도, 단가 크게 떨어질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작년 입찰에서도 물 먹었는데, 올해 단가까지 떨어지면 저들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에요.”
“그렇지! 자금 여력 있는 것들도 회사 새로 차리면 투자비 부담도 있을 테니, 예전처럼 10프로, 15프로 이렇게 떨어트릴 수 없다고. 대한전력 변압기가 뻔한데, 내려 봐야 얼마나 내리겠어?”
강호창 사장도 참전했다. 강 사장, 박 사장 둘 다 강경 대응하자는 것이로군. 출혈 경쟁은 없을 것이니, 작년 입찰에서처럼 강 사장의 귀신같은 감을 믿어 보자는 뜻인가?
“네, 이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출혈 없이 중전기조합 물량 뺏어 올 수 있어요. 어렵겠지만 그게 가능하게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이참에 중전기조합 짓밟지 않으면 저것들 매번 이딴 식으로 나와요.”
매출 상위권 업체들이 강경론을 주장하니, 분위기가 단번에 쏠려 버렸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하니, 슬슬 나도 카드를 꺼내야 할 것 같군.
“자, 자, 내가 정리를 하겠습니다. 조합 취지가 상부상조 아닙니까? 경쟁 입찰로 단가가 좀 떨어져도 조합 수수료 조정하는 식으로 손해 보는 업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더 버는 회사가 더 내면서 서로 돕고 사는 식으로 해 봅시다.”
조합 이사장인 강 사장이 결론을 내 버렸다. 중전기조합은 죽이더라도, 우리 조합 내에서는 죽는 회사 없도록 하겠다는 선언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다! 이번 기회에 중전기조합 제대로 죽여 보자.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지 사장. 오늘따라 왜 이리 얌전히 있나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 당연히 수십 마디라도 해야지. 허허.”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중전기조합 이 자식, 다 죽었어!
“우선 앞으로 진행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갑작스런 설명 타령에 사장들 귀가 쫑긋해진 것 같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서론을 확실히 해 줘야지.
“소문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대한전력에서 일반형변압기를 고효율주상변압기로 대체합니다. 두성전기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개발했습니다. 4월에 새로운 구매규격이 나오고, 8월 입찰부터 바로 적용되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젓가락질 소리가 멈췄다. 당연히 놀랄 테지. 변압기 입찰에서 가장 덩치가 큰 품목이 바뀌는 것이니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야.
“아니 그럼, 딸랑 4개월 줄 테니 개발을 끝내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게 됩니까?”
“4개월이면 충분하지요. 어차피 규격 나오면 특성이랑 외형도 다 나올 텐데 뭐 어려울 것이 있습니까?”
“그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시험 기간하고 성적서 나오는 것만 잡아도 두 달이 족히 걸리는데, 그럼 두 달 만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소란스럽다. 일정이 촉박하니 초조해서 눈앞의 음식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밥은 먹게 해 줘야겠군.
“조합을 위해서 확정된 특성치와 외형도를 미리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시면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설계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특성하고 외형도라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어딥니까! 지 사장님, 감사합니다.”
염치가 있는 사람들이네. 양아치들이었다면 설계까지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을지도 모른다.
“저는 우리 조합 회원사 모두가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에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게 되면 중전기조합과 입찰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술력 있는 회사들은 별문제 없을 것이다. 설계 인력조차 없는 회사들이 문제겠지. 내가 숟가락으로 밥 떠서 입에 넣어 줄 수는 없으니, 잘하라고 격려할 수밖에.
신제품 따위야 금방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해 보이는 강 사장이 입을 열었다.
“지 사장. 구매규격 새로 나와도 실력 있는 회사는 입찰 전까지 개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외형도에 맞춰서 코아랑 권선 설계만 잘 짜면 될 것 같은데? 중전기조합이 양아치들이라고 해도, 그래도 변압기 만드는 회사들인데 말이야.”
“네, 강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회의 끝나면 외형도를 보내 드릴 테니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중전기조합 쪽으로 이 소식 알려지지 않게 비밀 유지 잘해 주십시오.”
“사장님들, 우리 지 사장님 말씀 들었지요? 다들 각서 하나씩 쓰세요. 혹시라도 유출한 사람 있으면 바로 조합에서 제명하겠습니다.”
다들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대한전력 공식 발표보다 석 달 먼저 준비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주겠다는데, 강 사장의 엄포에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열심히들 해 보셔. 온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거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전기조합도 개발에 성공한 회사가 나올 것입니다. 어떻게 되든 올해 입찰에서 경쟁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뭔가 나올 것이란 기대감을 주니 시선이 확 집중된다. 무대에 서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기분이 이거로군.
“경쟁 입찰로 단가가 조금 떨어져도 물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제가 솔루션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젓가락질이 멈춘 지는 오래됐다. 우리 공장 견학하면서 한껏 놀랐으니, 다들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