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06)
106 포장의 달인
변압기혁신조합 신년회가 나를 위한 독무대로 변했다.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혜성처럼 등장해 이 업계 판도를 바꿔 버린 신예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이야.
“제가 조합 회원사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자동권선기를 판매하겠습니다. 대당 6억 원입니다. 비싸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자동권선기만으로도 원가 절감 10프로 이상 가능합니다.”
나에게 인재가 있다는 말. 김신우 이사가 데려온 최형택 부장이 아니었다면, 팔지 말지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 부장이 자동권선기 설계를 며칠 밤낮 들여다보더니, 성능을 크게 개선한 새 설계를 뽑아냈다. 제작 속도가 전보다 30퍼센트나 빨라졌다. 어마어마한 개선이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들에게는 기존 제품을 팔고, 난 새 제품으로 재미 보면 된다. 최 부장! 하고 싶은 것 다 해!
“6억이면 비싸긴 하네요.”
온건파 이충원 사장이 가격을 문제 삼는다. 안성파워나 금성전기같이 큰 회사들은 6억 원이라도 금방 본전을 뽑지만, 작은 회사들은 부담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신통방통한 설비를 싸게 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설비가 아니라 게임체인저인 명기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도 원가가 그렇게 절감이 된다면 꼭 사야죠. 지 사장님께서 이렇게 도와주겠다는데 중전기조합이랑 붙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니깐. 온건파 이 사장도 결국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왕 싸우기로 한 것 제대로 싸워 보는 것이 좋겠지.
“자동권선기 판매를 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 회사 경쟁력의 원천인 만큼, 제 고민을 충분히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베네핏이 있었으면 합니다.”
“지 사장님. 우리 지 사장께서 조합을 위해서 통 큰 결단을 해 주셨는데, 혜택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최소한 올해 입찰에서는 수수료 면제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사장님들 동의하십니까?”
“좋습니다. 그 정도는 해 드려야지요.”
생각지도 못하게 강 사장이 수수료 면제를 꺼내 들었다. 납품액의 2퍼센트이니 몇억 원 정도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군.
그래도 내가 고작 몇억 벌겠다고 운을 띄운 것은 아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설 타이밍이다.
중전기조합과 일전으로 내가 가장 큰 손해를 보게 생겼지만, 난 남는 장사를 할 것이다. 남는 장사를 위해서는 이 사람들을 고객으로 삼아야 한다.
“조합 수수료 면제 제안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 말고 제가 생각한 것이 있는데,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운 그만 띄우고 말씀해 보시죠. 지 사장님이 무대를 활용할 줄 아네. 하하.”
어디선가 꿀꺽 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왜 그리 감질나게 하는지 알 것 같다. 쪼는 맛이 꽤 좋다.
“우리 회사가 자재도 생산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 자재를 사용해 주십시오.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자재까지 한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네, 우리 회사는 주요 자재를 직접 생산합니다. 코아, 외함, 부싱, 각선과 시트까지 말입니다. 기존 가격보다 최소한 5프로 이상 저렴하게 공급하겠습니다.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우리 지 사장님 보통 분이 아닌 것 같더니, 역시 대단하신 분입니다. 자재 싸게 공급해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당장 직원 내려 보내겠습니다.”
일심전기 유원태 사장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강경파답게 중전기조합 밟자는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내가 그 솔루션을 내놨으니 이몽룡이 춘향이 만난 기분일 것이다.
자동권선기에, 자재까지 기존보다 낮게 공급한다면 못해도 원가 15퍼센트 이상은 절감할 수 있으니, 박수가 나오지 않을 수 없겠지. 중전기조합도 죽이고, 재미도 볼 수 있는 일이다.
내 제안에 강 사장이 주의를 집중시켰다. 이 정도 제안이면 조합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 맞겠지.
“이거 묘수네, 묘수야. 우리 지 사장은 자재 팔아서 돈 벌고, 우리는 기존보다 싸게 공급 받아서 돈 벌자? 이거 말 나온 김에 여기서 결론을 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들 동의한다면, 조합 차원에서 움직이는 걸로 하죠? 지 사장님께서 조합이랑 단가를 결정해서 모든 회원사에 동일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으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유 사장이 분위기를 확 이끌어 버렸다. 중전기조합과 일전을 바라는 유 사장이 일사불란한 행동을 주장하고 나서니, 반대 분위기는 흔적을 찾기 힘들어졌다.
강경파 유 사장 덕분에 우리 회사 자재 사업이 고속 질주하게 생겼다. 회사 들어가면 올해 매출 계획부터 수정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결론이 났다. 올해 8월에 있을 대한전력 입찰에서 중전기조합과 결전을 벌이기로 했다. 90프로대 낙찰률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조금 더 떨어져도 문제없다. 자재 공급으로 충분히 남는 장사 했다.
전쟁 선언이 이어지면서 신년회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갔다.
마지막 매실차가 나올 때까지 회의 주제는 나였다. 나를 칭찬하는 목소리로 귀가 너무 간지러웠다. 매실차 달달하니 좋네.
“사장님들, 우리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 되기로 했으니, 내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매실차를 원샷한 강호창 사장이 주위를 집중시켰다.
“우리가 이러나저러나 지 사장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지요. 내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고. 하하.”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우리 17개 회원사 중에서 나주로 내려오거나 내려올 회사가 여덟 군데죠? 아직 결심 못하신 사장님도 이번 기회에 다 내려오시지요.”
“저도 내려가고 싶은데,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 구하는 것도 그렇고, 자재 수급도 그렇고.”
“자재야 지 사장님께서 책임지고 해 준다지 않습니까? 사람도 뭐가 문제입니까? 지 사장님 보시요. 올해 그 많은 물량 처리하는 데 아무 문제없이 하지 않습니까? 다 같이 나주 내려와서 제대로 해 봅시다.”
“17개사 다 내려가면 우선배정으로 해 봐야 1프로 남짓 받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내년이면 끝나는데.”
“유 사장님. 내가 괜히 이런 소리 하겠습니까? 나 강호창이란 말입니다. 지금 대한전력이랑 얘기하고 있는데, 지역우선배정 5년으로 늘릴 것 같습니다. 배정 수량 늘리는 것도 계속 얘기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보세요.”
이런 희소식이 다 있나!
혁신산단 입주 기업 늘어나서 우선배정으로 재미 볼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기간이 2년 연장된단다!
이거 쏠쏠하겠군. 매년 40~50억 원씩은 보장되니 나쁘지 않다. 입찰로도 챙겨 먹고, 우선배정으로도 챙겨 먹고.
“하하. 강 사장님은 역시 대한전력이 인정한 사업가답습니다.”
“나야 버는 돈 중에 변압기는 얼마 안 되지만, 이렇게 이사장 자리까지 앉았으니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좋아요. 내 당장 은행 가서 대출부터 받아야겠습니다. 하하.”
나도 조언 한마디 해 줘야겠군.
“제가 제일 먼저 온 사람이니 조언해 드리자면, 혁신산단 입주 기업은 대출 우대 조건이 많습니다. 아마 돈 부족해서 공장 못 지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전력에서 펀드도 운용하고 있으니, 활용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맞아. 지 사장 말대로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오. 우리 사장님들은 부지런히 벌어서 빚 갚을 걱정만 하면 됩니다. 하하.”
내가 원했던 나주 대 수도권 구도가 만들어지는 그림이다. 이 그림으로 중전기조합 놈들 내치고, 우리 조합 회사들과 민수 시장에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 되겠군.
얼마 안 되는 민수 시장에서는 욕심낼 필요도 없다. 악착같이 쥐어짜는 못된 회사들 사라지면, 개판인 민수 시장도 정화될 테니 말이다.
“자, 자, 서울 올라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합시다. 중전기조합 움직임은 포착되는 대로 그때그때 공지할 테니까 다들 대비들 잘하시고. 고효율변압기? 그것도 빨리 개발해 봅시다.”
“강 사장님. 지 사장님한테 공로패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
“지 사장님. 큰 결단해 주셔서 고맙소.”
가는 순간까지도 귀가 간지럽다. 이쯤 하면 헹가래 쳐 줄 법도 한데 말이야. 식당을 나서면서 두 손으로 손을 감아쥐며 고마움을 표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자동권선기나 팍팍 사서 돈 많이 벌게만 해 주셔.
신년회도 잘 끝났으니, 집에 가서 편히 잘 생각을 하는데, 오늘 기공식 한다고 한껏 치장한 박 사장이 다가왔다.
인천 올라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텐데 왜 안 가는 것이야?
“사장님! 저녁에 시간 괜찮으면 맥주 한잔 어때요?”
단둘이 술이라, 이거 위험한데? 오늘 날개까지 달고 온 사람이 술 먹자고 하면, 내 이성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유리 생각이 났지만,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사이로 선이 그어졌으니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지.
“인천 안 올라가십니까?”
“오늘 바쁠 것 같아서 하루 묵고 내일 올라가려구요. 신년회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 버렸네요.”
“좋습니다. 가볍게 한잔하시죠.”
“그럼 가시죠. 이따 강 사장님도 오시기로 했어요.”
팔짱 끼고 가는 방향으로 이끄는 박 사장 행동에 이성을 잃을 뻔했다가, 강 사장도 온다는 말에 이성이 급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호프 테이블에 생맥주 3잔이 올라왔다. 이들과 만나면 늘 좋은 일이 있으니, 이 자리도 은근 기대가 된다.
“우리 지 사장,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자네 덕분에 중전기조합 그놈들 아주 신 나게 밟아 줄 수 있겠어! 하하.”
박 사장과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나 했더니, 강 사장이 속도 모르고 기분 좋게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사장님은 오늘 안 올라가십니까?”
“우리 준희가 같이 맥주 한잔하자는데, 내가 어찌 올라가나. 하하.”
“오늘 기분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기분 좋게 만든 사람이 기분이 좋냐고 얘기하면 어쩌나! 내가 자네 덕분에 사업하는 재미를 다시 느끼네.”
나에게도 남는 장사이지만, 겉으로 보이기엔 내가 큰 희생을 한 것처럼 꾸며졌을 것이다. 사업도 결국 포장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
고효율주상변압기야 대한전력 구매구격 나오면 모든 변압기 회사가 개발에 뛰어들 것이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8월까지 개발하는 업체가 꽤 나올 것이다.
그럴 바엔 우리 조합 회원사에 생색내듯이 정보 흘려주는 것이야 일도 아니다.
자동권선기도 꿩 먹고 알 먹기이다. 대당 6억 원이면 50대만 팔아도 300억 원이다! 자재비와 인건비 제해도 250억 원은 남는 개꿀 중에 개꿀이다.
더군다나 성능이 크게 개선된 신제품까지 있으니, 우리 회사의 우위는 계속된다. 풀 HD라고 좋아한들, 난 UHD로 아이돌 직캠을 즐길 것이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전기조합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구요. 하하.”
“사장님! 저는 사장님이 고효율주상변압기 개발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어쩜 미리 얘기도 안 하셨데요.”
박 사장이 타박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꾸미고 오니 저 눈빛도 예사롭지 않네. 진짜 박 사장은 외모가 최고의 경쟁력이다.
“확정되면 알려 드리려고 했는데, 미처 말씀을 못 드렸네요. 확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요새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왜요? 요새 무슨 일 있었어요?”
연초부터 혁신산단을 두고 벌어진 일을 적절히 가감해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기레기 농간질에 회사 휘청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 번 재미 보면 계속 빨아먹으려는 습성을 가진 것들이 기레기 아니겠는가? 큰 스캔들로 번질 수 있었던 일을 사전에 잘 차단했다.
강 사장과 박 사장도 함께 분개하며 맥주를 빠르게 비워 냈다. 나쁜 짓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선량한 사람에게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의사 표시이다. 오늘 이래저래 포장이 잘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