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31)
131 대륙이 부른다
알코올 6도짜리 막걸리가 체내에 가득한 상황에서 17도짜리 소주가 가미되니 간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위장도 덩달아 요동친다.
배 속에 싸한 기운이 넘실거리는데, 공장장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타고난 술꾼들. 부럽다.
공장장이 소주 한 잔 들이켜고는 입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사장님, 우리도 어디 좋은 데 리조트 좀 분양 받자고.”
“축구장 지어 주면 됐지, 무슨 또 리조트 타령이야?”
이번엔 김 사장이 딜을 꽂아 넣는다. 오늘 먹이사슬이 아주 잘 돌아간다.
“왜 이번에 직원들 휴가 내고 많이 놀러 갔잖아? 내가 생각해 보니까 회사 리조트 있어서 직원들 싸게 이용하게 해 주면 아주 좋겠다 싶더라고.”
“공장장님! 아니 좀 전까지 사장님한테 잘하라고 그래 놓고, 가만 보면 제일 불만 많아. 먹여 줘, 재워 줘, 월급 꼬박꼬박 잘 나와, 일 잘했다고 성과급 줘,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내가 그랬냐? 하하. 아니, 왜 그런 거 있잖아, 가족들하고 놀러 갔는데 말이야. 이 리조트가 회사에서 분양 받은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가오가 산다니까?”
“좋겠우. 놀러 갈 여유도 있고. 우리 애 수험생이라 어디 가지도 못하고 죽겄어 아주.”
공장장과 김 사장이 또 만담에 빠져든다. 배 들고 무등산 올라갈 기세다.
“공장장님! 안 그래도 물 좋은 곳에 리조트 좀 알아보려고 합니다. 올해는 투자할 곳이 많아서 여력이 안 나는데, 내년에는 전국에 있는 리조트 다 사 버릴라니까 기대하십시오.”
“사장님! 아이 진짜. 리조트 분양이 아파트 분양 받듯이 하는 것이 아니야. 회원권 사면 그 회사 체인 전부를 이용할 수 있는 거야. 회원권 분양도 있지만, 전세같이 보증금 내는 것도 있어.”
김 사장 조언에 살짝 부끄럽다. 그런 여가와 거리가 멀었던 삶이었기에 내가 알 리가 없지. 조합 사장들 모임 같은 데서 그 소리 했으면 많이 민망할 뻔했네.
“하하. 일만 하고 사니까 모르는 것투성입니다. 직원들 넉넉하게 이용할 수 있게 회원권 사 놓겠습니다.”
“내 맘 알아주는 사람은 역시 우리 사장님뿐이네. 그런 의미에서 내 잔 한 잔 받아야지!”
공포의 잔 돌리기가 시작된 것인가!
헬리코박터균 감염과 정신줄 탈출의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지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먹은 것을 테이블에 쏟아 내기 전에 수출 얘기는 하고 쓰러져야겠다.
태양전기를 망하게 한 수출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약이 되리라 믿고 있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우리 회사 체력은 튼튼하다.
“공장장님, 이번 달엔 많이 한가하죠?”
“본사야 유 이사 말고는 한가하지. 생산부 인원들 설비 쪽으로 몽땅 붙였는데도 만들 것이 워낙 많아서 원. ODI랑 태인산업은 자리 잡을 때까지 고생 좀 해야 할 것이고.”
“여기서 제일 한가하시겠네요?”
“하하. 나도 좀 살자. 오늘 내가 거하게 쏘는데, 몇 달 편안하게 지내 보자고.”
공장장 발언에 OB 멤버들이 눈을 부라린다. 대한전력 물량만 줄어들었지, 여전히 바쁜 것은 마찬가지이다. 공장장 혼자만 살 만해진 것을 가만둘 사람들이 아니지.
역시나 레골라스에게 김리 같은 존재인 이상철 이사가 소리를 지른다.
“이 형 진짜 혼자만 편해졌다고 이리 팔자 좋은 소리를 하네? 이 동생은 뺑이치다가 ODI 넘어가서 또 뺑이치게 생겼는데, 뭐? 편안하게 지내보자고? 고작 막걸리 몇 잔 먹여 놓고 그런 소리를 해?”
“하하. 이사님 진정하세요. 제가 그래서 공장장님 안 심심하라고 중국 좀 다녀오려고 합니다.”
“중국? 설마 수출?”
“네, 맞습니다. 대한전력 물량 떨어지면 시작할 생각이었으니, 지금이 딱이죠.”
소주잔을 집어삼키던 공장장이 팔자에 무슨 편안이냐는 표정으로 소주잔을 내려놨다.
“수출 좋지. 좋고말고. 하여간 우리 사장님은 쉴 틈을 안 주는구만. 허허.”
“월급 많이 주고, 퇴근 정시에 하고, 휴가 많이 주겠습니다. 대신 일과 시간에는 일 아주 빡세게 시킬 겁니다.”
“좋아. 받아먹었으니 돈값을 해야지. 근데 중국이면 단가를 맞출 수 있을까? 그 언제야? 기억도 안 나네. 여튼, 예전에 유진변압기에서 중국 수출해 보겠다고 하다가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때려치웠다고 하더만.”
“맞아. 유진변압기가 하려다가 말았지. 그때 영업이사랑 얘기해 보니까 단가야 어떻게든 맞춰 보려고 했는데, 리베이트니 이런저런 나갈 돈 따지니까 수익 날 구석이 전혀 안 났다고 하더라고.”
공장장에 이어 김희철 사장도 다른 회사의 실패담을 거론하며 걱정한다. 아무래도 이 자리가 수출하다 망한 태양전기의 명복을 비는 자리이니 더 그렇겠지.
“부딪혀 봐야죠. 우리가 직접 뛰어들 실력은 아니니까, 우선은 에이전트 통해서 진행하다가, 경험이 쌓이면 직접 뛰어들 생각입니다. 그건 뭐 나중 일이지만요.”
“저번에 캐파를 월 만 대로 늘린다고 한 것이 수출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구만? 솔직히 8천 대도 많은 것 아닌가 했는데, 내가 너무 소심했어.”
“맞습니다, 공장장님. 사업에 만족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도 충분히 크게 성장했지만, 계속 성장해야죠. 멈추면 도태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장님 말야. 이런 순둥이가 사업 얘기만 하면 눈에서 빛이 난단 말이야. 하하. 뭐든 부지런히 물어다만 주게. 내가 이놈들 데리고 죽을힘을 다해 보겠네.”
“자, 우리 박호연 공장장 뺑이치는 걸 기념하는 의미로 건배해야지?”
이 이사가 신 났다. 겉으로야 저래 티격태격이지만, 불알친구나 다를 바 없는 끈끈한 관계. 다들 일중독이라 좀 한가해진 공장장이 일 없다고 몸져누울까 걱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고도 너무 억지스러운 해석인데?
술자리는 온갖 얘기를 꺼내어 안주 삼으며 하염없이 이어졌다.
지겹게 들었던 얘기를 또 들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몰랐던 얘기도 들으며 태양전기 OB 팀 멤버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덕준이도 오라고 할 걸 아쉽네. 덕준이도 명예 멤버나 마찬가지 아니야?”
분위기 메이커 노릇 하던 김 사장이 힘에 부친다는 듯이 덕준이를 떠올렸다. 이 멤버와 임시로 세운 인천 공장에서 의지를 다질 때부터 덕준이는 한 식구였다. 덕준 형제가 요즘 바쁘다. 나쁜 놈.
“덕준이 그놈 요새 연애하느라 바빠요. 영업한다고 밖에 싸돌아다니는데, 어디서 연애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러고 보면 덕준이가 자네보다 나아. 덕준이는 일도 잘해, 연애도 잘해. 자네야 일은 잘해도 연애는 못하지 않나? 하하.”
“하하. 공장장님 두고 보십시오. 내가 덕준이 올해 장가보내 놓고 바로 갈 테니까 축의금이나 두둑이 마련해 두세요.”
결국 술자리 주제가 돌고 돌아 또 나다. 방심하기 무섭게 결혼 얘기네. 올해 33세니까 35세 넘기 전엔 이 얘기 그만 들을 수 있도록 하자. 나도 이제 명절이 두려울 나이네.
“공장장님! 뭐 틈만 나면 우리 사장님 결혼 타령이야! 와이프도 밤낮이고 그 소리 하더만. 사장님 귀에 딱지 앉겠어! 사장님, 결혼은 최대한 천천히 해. 인생을 즐겨야지, 안 그래?”
결혼 생활이 몹시 행복할 것으로 추정하는 김 사장이 지원 사격에 나섰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듯이, 지원 사격이 아니라 어째 불을 더 지르는 것 같기도 하네.
“아이 진짜. 사장님 인생은 사장님이 알아서 잘할 거니까 술이나 마셔. 다들 뭐 하는 거야? 술을 이것밖에 안 마셨잖아!”
구석에 쌓인 막걸리 병과 소주병 개수가 몹시 못마땅한 이 이사가 알코올 전력질주를 선언하며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술이 하염없이 들어가니 죽을 지경이다. 술 잘 마시는 사람들 참 부러워.
태양전기 부도 기념 술자리가 정신 잃기 전에 잘 마무리됐다.
태양전기가 나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회사도 태양전기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교사가 대부분이지만 많이 배웠고, 저렇게 살지 말자는 오기를 키울 수 있었다.
OB 멤버들도 노예처럼 살았던 것을 자각하며 그 분노를 우리 회사를 키우는 데 쏟고 있다. 문자님의 가호가 모세혈관까지 스며드는 과정에는 태양전기가 안겨 준 오기와 분노가 동력이 됐을 것이다.
만나서 더러웠고, 이제 영원히 안녕이다. 과음으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지만, 아주 깊은 잠을 잘 것 같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면서 새 아침이 밝았다. 좁디좁은 국내를 벗어나 광활한 대륙을 달릴 준비를 시작할 아침이다.
“네, 정수 씨! 어쩐 일이에요?”
“다음 주면 공장 완공하는데 선물 준비해야죠. 직원이 다 해서 몇 명입니까?”
“하하. LA갈비 보내 주시려구요? 인심 좋은 나주 지 부자님, 감사합니다.”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눴다.
이달에만 금성전기를 포함해 6개 회사가 나주에 안착한다. 우리 회사와 안성파워까지 8개 변압기 회사가 자리 잡으니, 이제 변압기 클러스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누나는 공장 지었으니 정신없이 바쁘겠지만, 저희는 관수 물량 줄어들어서 한가합니다. 이때가 수출 시작할 때 아니겠습니까?”
“역시나 한시도 쉬지 않네요. 다음 주 공장 완공식 할 때 에이전트도 오라고 할게요. 그때 같이 얘기 나눠요. 안 그래도 에이전트가 작년부터 계속 중국 수출해 보자고 꼬드겼으니까, 얘기 잘될 거예요.”
“네, 좋습니다. 혹시 에이전트가 활동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장쑤성요. 상하이 옆 동네라고 하더라구요. 벌써부터 공부하려구요?”
“시간 날 때 틈틈이 알아 둬야죠. 그럼 다음 주에 고기 사 들고 가겠습니다.”
수출은 에이전트 없이 전력 회사와 계약 맺는 것이 가장 좋다. 사기당할 위험도, 수수료 뜯길 걱정도 없으니 말이다. 가장 좋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작정 대한전력 찾아 우리 변압기 써 달라고 해서 될 리가 없듯이 수출도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중국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에이전트의 보살핌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수출 준비를 위해 덕준이를 불렀다. 국내 영업과 해외 영업을 나누고 싶었지만, 일단은 덕준이도 둘 다 맛보게 해 줘야지.
“수출을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예전 같으면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겠지만, 지금은 뭐 걱정도 안 되네. 우리 위대하신 영도자께서 하시는 일은 이제 걱정할 일도 없지.”
“이 자식, 아주 자신감이 넘쳐 나네. 거래처는 다 돌았지?”
“그럼! 잊을 만할 때 찾아가서 술 한잔씩 하면 돼. 전화 받는 일이야 신입한테 맡기면 되고. 이제 수출도 해 보자고.”
예전에 티 안 나고 정신만 없던 일에서 벗어나 움직일수록 매출 증가라는 실적이 보이는 일을 맡으니, 덕준이 얼굴에 윤기가 흐른다. 수출도 잘해 보자고.
“일단 너도 중국 시장에 대해서 공부해야 할 거야. 우리가 중국, 중국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크잖아? 성 하나가 우리나라만 한데, 성마다 문화가 달라서 사전에 충분히 숙지해 놔야 해.”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데 시험 범위가 너무 넓지 않아?”
“우리가 갈 곳은 아마 장쑤성이 될 거야.”
“장쑤? 그 왜, 우리 절연지랑 아몰퍼스 메탈 수입하는 데가 난퉁이잖아? 난퉁이 장쑤성인데, 이거 중국도 의외로 좁네?”
“그거 좋네. 수입상한테 대충 어떤 지역인지 물어보면 되겠다야.”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막연한 기대는 뭘까? 그 넓은 대륙에서 우리랑 줄이 있는 지역이라니, 대륙 진출의 출발은 아주 얕은 인연에서부터 시작하는군.
“그건 그거고, 우선은 전력 시장이랑 송변전 계통에 대해서 기본적인 공부를 해 둬.”
“중국 말 배워야 하는 건 아니지? 통역 있지?”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한테 맡겨. 오늘은 내가 중국 전기 시장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겠어.”
나도 뭐 인터넷 그적거리면서 파악한 것이지만, 개괄적으로나마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지.
“뭐 좀 전문가 냄새가 나는데?”
“전문가가 별거냐? 몰라도 그럴싸하게 아는 척하면서 전문가 흉내 내는 거지.”
“좋소이다! 과외 시작해 보시지요.”
덕준이가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의 모습으로 수첩을 펼치며 필기할 준비를 한다.
저 멀리 대륙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려라, 대륙아.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주겠다.
가자! 대륙으로! 대륙이 우릴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