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4)
144 비즈니스 관계
파푸아뉴기니 원시림에 살고 있는 어떤 원주민은 아무 옷도 걸치지 않는다. 자연과 동화된 육체는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옷을 입으면 상상력이 자극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시킨다. 박준희 사장이 슬쩍슬쩍 보여 주는 저 곡선은 찐일까, 기술일까? 어떤 컬러일까?
상상력을 발로 짓밟기 위해 말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늘 시각을 포기한다. 푸욱!
“김 사장님이 밑밥을 잘 깔아 두신 것 같아요. 내일도 얘기가 잘 풀릴 것 같지 않아요?”
오늘따라 맥주를 과하게 마시는 것 같은 박 사장이 다시 한 모금 들이켜더니, 그렇지 않을 것이란 표정을 짓는다.
“왕 종이니까 얘기가 수월하게 된 것이지, 내일은 좀 골치 아플 수도 있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래요?”
“왕 종 고향이 베이징이라고 하더라고요.”
“타향에서 성공한 사업가, 이런 건가요?”
“김 사장님한테 들은 건데, 황하 이북 태생이 좀 화끈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돈 버는 것보다 의리를 중시한다고. 남방 쪽은 겉으로 호탕한 척해도 따지는 것이 많다네요.”
이거 뭐 혈액형에 따른 성격 구분법 같은 건가? 중국 인구가 얼만데, 출신지에 따라 성향이 갈린다니 원. 에이전트 케이야 계약 성사시키려고 다 좋게 포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왕 종이랑 얘기가 잘 풀린 것은 우리가 제시한 조건이 좋아서 아닌가요?”
“물론 그게 첫 번째이지만, 꽌시란 것도 무시 못해요. 왕 종이 김 사장님이랑 아주 가까운 사이라잖아요. 김 사장님 부탁을 들어준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죠.”
“왕 종이 남방 쪽 사람이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란 뜻인가요?”
“그거예요. 남방 쪽은 직접적인 꽌시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다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정수 씨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랑 계약하겠다고 하겠어요? 김 사장님이 그만큼 노력을 많이 했다는 거죠.”
그럴싸한 해석이군.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꽌시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똥으로 메주를 쒀도 기꺼이 사 주는 것이 꽌시의 힘이라고 하지만, 꽌시라는 것이 만나서 술 사 주고 선물 준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직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오늘 얘기가 잘 풀린 것은 에이전트 케이의 공이다. 인정!
“내일 갈 업체는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한 걸 보니까, 진강특수변압기? 그 사장은 남방 출신인가 보네요?”
“창저우? 상주라고 부르는 게 편하네요. 하하. 거기 출신이라고 하더라고요. 뭐 김 사장님 말처럼 출신에 따라 구분하는 것도 딱 맞는 것은 아니니까, 뭐든 최선을 다해야죠.”
첫 판이 너무 수월했다면, 다음 판은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누나, 내일도 정신없겠죠? 중국 처음 왔는데, 하다못해 동방명주라도 보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출장이 뭐 그렇죠. 마지막 날은 여유가 있으니까 뭐라도 보고 가요. 저도 상하이는 처음이라서 이것저것 보고 싶긴 해요.”
박 사장이 소파에 등을 기대면서 시각과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마음 유지하면서 내일도 협상 잘하고, 시간 내서 관광도 잊지 말자.
내일 점심과 저녁은 무조건 중국식이다. 관광도 못하는데 음식이라도 즐겨야지.
왕 종이야 우리 생각한다고 한식당으로 데려갔겠지만, 아쉬운 결정이다. 내일은 꼭 기름으로 볶고 튀긴 것들로 위장을 혹사시키자.
“아까 김 사장님이 업체 두 군데 다 성사되면 물량 많아질 것이라고 했잖아요? 누나는 괜찮으세요?”
“월 삼사천 대면 많기는 하죠. 자동권선기 덕분에 캐파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은 확실히 물량이 엄청나네요. 혹시 자동권선기 더 주문하고 싶은데, 지금 주문 많이 밀렸죠?”
“어휴. 우리 회사 설비 제작부가 제일 바쁜 것 아시죠? 지금 조합 회원사에 보내기로 한 것도 벅찰 지경이에요. 제작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업체당 1대씩 일단 공급하려고요. 먼저 받는 업체가 이득 보니까 공평하게 해야죠.”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넉넉하게 주문할 것 그랬네요. 중국 수출하기로 맘먹었으니까 물량 많아도 어떻게든 처리해야죠. 정 힘들다 싶으면 정수 씨한테 부탁할게요. 하하.”
때가 왔다. 박 사장에게 점수 딸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누나, 혹시 중고라도 괜찮으십니까?”
“중고요? 정수 씨네 쓰던 거 팔 생각이에요?”
“네. 우리 쓰려고 제작한 것이 너무 많아서 5대 정도는 팔까 생각 중이긴 한데, 생각 있으세요?”
박 사장에게 점수 딸 기회라고 생각하면서도, 좀 미안하다.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저 표정 보니까 기우로구나. 몸을 들썩거리면서 저리 기뻐하다니 원.
“정수 씨! 너무 고마워요! 제가 5대 다 살게요. 일단 찜했으니까 다른 데 팔면 안 돼요!”
“근데 우리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물량 처리 고민하고 있는 것 좀 웃기지 않나요?”
아무도 없는 휑한 펍에 박 사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연간으로 따지면 대략 300억 원 정도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이니 김칫국물 좀 드링킹하면 어떠랴.
서로 엄청난 매출 신장을 꿈꾸며 환한 미소로 맥주잔을 부딪쳤다. 이럴 때는 원샷이지!
박 사장의 부탁으로 필리핀 수출 변압기를 만들며 간을 봤고, 역시 박 사장의 도움으로 에이전트 케이를 만나 여기까지 왔다. 고마운 사람이다.
“누나, 고맙습니다.”
“예? 뭐예요, 뜬금없이.”
“누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잖아요.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요.”
“하하. 정수 씨 아니었으면 중국 수출은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뭐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이 말 할 때 우리 늘 하던 거 알죠?”
박 사장이 내민 손을 잡았다.
악수하겠다고 손을 내미는 통에 박 사장의 양어깨가 130도 정도의 각도를 만들어 낸다. 그 덕에 헐렁한 면티가 이격되면서 Y골이 더 선명하다. 아휴, 눈을 어디에 둬야 하나. 손은 왜 이리 뜨거운 거야!
“홀짝홀짝하더니 꽤 마셨네요? 우리 6병이나 마셨어요!”
나보다는 박 사장이 다 마신 것 같은데? 슬슬 들어가서 자야 할 시간이 됐군.
“정수 씨, 술 좀 깰 겸 산책하고 들어갈까요? 아까 객실에서 보니까 야경이 좋더라고요.”
“그래요. 관광은 못해도 밤거리 구경이라도 해야죠.”
계산하는데 호텔이라 그런지 더럽게 비싸네. 힐튼 이 자식. 이 돈으로 호화롭게 살아라!
5월 말 난징은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다. 우리나라보다 많이 남쪽이지만, 덥다는 느낌은 없다. 하늘이 꾸물꾸물한 것이 비가 올 것 같은 예감이지만, 덕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너무 좋다.
“저건 백화점인가 보네요? 아휴, 간체자는 알아볼 수가 없네요. 백 자 빼고는 전혀 모르겠어요.”
“세종대왕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한글 없었으면 학교 다닐 때 한자로 깜지 썼을 거예요.”
“정수 씨도 깜지 썼어요? 푸하하. 누나 누나 하더니 별 차이도 없네요 뭐.”
3살 차이면 엄청난 것이지! 대학 신입생 때 세 학번 선배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구만.
“이렇게 기분 좋게 술 한잔하고 산책하니까 좋네요. 날씨도 선선하고. 그쵸?”
“난징의 밤거리를 누나와 걷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네요, 네에.”
박 사장같이 착한 사람한테는 착하게 굴어야 하는데,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뭐예요? 제가 어때서 그래요!”
불시에 들어온 앙탈. 팔짱을 그렇게 껴 버리면 어쩌란 말이냐! 전신에 퍼져 있는 촉감이 팔로 쏠린단 말이다.
박 사장은 사기 캐릭터가 분명하다. 출중한 능력, 그 능력을 빛나게 하는 외모와 선한 성품. 대체 단점이 뭘까?
어깨 깡패로 유명한 한 연예인의 유일한 단점이 2종 보통 면허라고 하던데, 박 사장은 도무지 단점이 안 보인다. 내 오른쪽 팔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뭉클함으로 미루어 보건대 확실하다. 지덕체를 두루 갖춘 인재로다.
산책이 힘들어질 것 같아 자연스럽게 팔짱을 풀었다. 이내 나와 박 사장의 거리가 적당하게 멀어졌지만, 나주에서 산책할 때보다 많이 가까워졌다.
오늘 딱 이 정도로만 유지하자. 본능을 억제하기 힘들다야.
“그나저나 12시가 다 돼 가는데, 한 부장님은 언제 올까요?”
행방이 묘연한 덕준이 생각에 다소 숙연해졌다. 다행이다. 숙연해지지 않았다면 주머니에 손 넣고 의관을 정제할 뻔했다. 엉덩이를 살짝 뒤로 뺀 채로 손가락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모습, 정말 꼴불견인데, 다행이야.
“살아서는 돌아오겠죠. 붙임성 좋은 녀석이라 잘 놀고 있을 겁니다. 아마 왕 종이랑 의형제 맺었을지도 몰라요. 하하.”
“아, 그래요? 역시 내가 한 부장님 잘 본 것 맞죠? 워낙 조용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아니죠?”
당신 앞에서만 그렇습니다요. 박 사장은 자신이 사기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영업 아무나 시키는 것 아니잖아요? 하하. 근데 중국도 아파트가 참 많네요. 우리나라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만 그런 줄 알았는데, 중국도 사람 사는 곳이네요.”
“오래된 아파트 보니까 개포동 느낌 나네요. 옛날 생각 나고 그러네요.”
“강남 개포동요? 거기서 살았었어요?”
“네, 거기서 초중고 다 나왔어요. 아빠가 출퇴근 힘들고,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송도로 이사 갔죠. 그것도 몰랐어요? 나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아니에요? 하하.”
박 사장한테서 부티가 난다 싶더니 강남 스타일이었군. 난 워낙 궁핍하게 살았기에 강남, 분당보다는 신림이나 미아리, 연신내가 그냥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강남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인데 말이야.
“앞으로 누나 뒷조사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여기 보니까 아파트도 많고, 나무도 참 많네요. 근데 왜 그리 미세먼지를 보내는지 원.”
“여기 사는 사람만 800만 명이 넘는다잖아요. 황사에 매연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심하겠어요?”
“하여간 우리나라는 이웃나라 복도 없어요. 뭐 덕분에 수출도 하게 됐지만요.”
시답잖은 얘기로 대화를 이끌었다. 부교감신경을 억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알코올 기운이 퍼지고 있으니, 난 조조를 속이기 위해 매질을 당한 황개가 돼야 한다.
20분가량의 위험한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복귀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중딩 시절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엘리베이터’란 노래가 생각났다. 이 상황에서 왜 그 노래가 생각날까? 일본 놈들이 난징에서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며 경건함을 유지하자.
23층. 객실은 왜 이리 높은 곳에 잡았을까?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길었던 오름이 끝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박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맥주 잘 마셨어요. 내일 아침 먹으러 몇 시에 나올 거예요?”
“7시쯤이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때 봐요. 오늘 고생 많았어요. 잘 자요.”
난 분명히 읽었다. 박 사장의 뭔가 아쉬워하는 눈빛을 말이다.
이성의 끈을 놓지 말자. 누나 동생 하는 친밀한 사이가 됐지만, 비즈니스 관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한편으론 뭐 어때라는 생각이 샘솟기도 했다. 벽을 치며 멋진 남자, 멋진 여자 노래만 부르고 있을 텐가! 하아, 참아야 한다. 끓어오르는 박력 따위는 빨리 식히자. 괜한 망상으로 중국 공안에게 끌려갈 일은 만들지 말자.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안도와 아쉬움이 섞인 한숨을 토해 내고는, 박 사장이 준 중화 담배를 꺼냈다.
니코틴 1.1mg에 타르 13mg. 어휴, 이거 피우다가 골로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음, 생각보다 부드럽다. 근데 향이 영 아니네.
네 모금 정도 빨았을 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설마? 박 사장이 그 정도로 대범할 리가 없는데? 아, 이를 어쩐담? 농밀 시리즈처럼 문 열자마자 격렬하게 덤벼야 하나?
담배를 급히 지져 끄고는 문을 열었다. 닝기리.
“아이고, 정수야. 나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