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7)
017 뜻밖의 선물
“과장님, 이따 퇴근하시고 저희랑 저녁 한 끼 하시죠?”
“아이쿠야. 사 주신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그 대리님인가요? 그분도 시간되면 같이하시죠?”
로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뭐 거창한 것은 아니고 이정용 과장과 밥 먹으면서 뒷얘기나 캐물을 생각이다. 아직 피아 식별이 끝나지 않았지만, 적이 될 가능성은 낮은 사람이니 뭐라도 먹이자. 먹이면 뭐라도 토해 내겠지. 겸사겸사 덕준이한테 좋은 일도 하고!
“유아란 대리요? 유 대리! 오늘 저녁에 여기 사장님께서 저녁 사 주신다는데, 콜?”
“오늘 저녁요? 흐음. 네, 알겠습니다.”
내가 괜히 소중한 저녁 시간 뺏나 싶네. 젊은 사람들끼리 가볍게 반주 삼아 저녁 한 끼 하는 걸로 생각하자고요?
“저희가 여기 낯설어서 그런데, 어디 괜찮은 데 있으면 대신 좀 알아봐 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유 대리! 오늘 뭐 먹고 싶어?”
“음…… 글쎄요. 과장님이 정해 주세요. 딱히 가리는 것 없어요. 이왕이면 곱창이…….”
“그렇단 말이지. 그럼 제 마음대로 곱창으로 하겠습니다. 장소 정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 유 대리란 사람 접근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군. 아무래도 몇 번 보지 않았으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더군다나 일로 엮인 사람이니 불편한 것도 크겠지.
그래도 털털한 척하며 남자들의 관심을 빨아먹는 여우보다는 백번 천번 낫다. 그 모습에 홀려 접근하다 보면 남는 건 카드 할부뿐이다. 덕준아, 부디 잘해 보렴.
건물을 나오자마자 찬 기운에 뼈마디가 시려 왔다. 날이 꽤 추워졌군. 여기도 눈이 많이 오려나?
기온 변화는 군부대와 공장에서 제일 먼저 감지할 수 있다. 추울 때는 엄청 춥고, 더울 때는 엄청 덥다. 날이 추워지면 이 갈 일이 생긴다. 바야흐로 제설 작전!
악몽 같던 태양전기 시절이 생각난다. 지긋지긋한 눈 치우기. 제대하고 나서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던 넉가래를 다시 잡을지 감히 상상도 못했다.
한 포대에 만 원도 안 하는 염화칼슘이 아까워 넉가래로 하염없이 눈을 치워야 했다. 넉가래 밀다가 손잡이가 배를 강타하기라도 하면 바로 누워서 ‘오겡끼데스까’가 절로 나온다. 넉가래 부러지면 얼마나 갈구던지 원……. 끔찍했다. 겨울 되면 염화칼슘 잔뜩 사자.
“사장님아, 들어 보니까 이 동네도 이것저것 얽힌 것이 장난 아닌 것 같다야?”
“총선이면 아직도 한참 남았구만. 정치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움직이는 모양이야. 우리가 왜 그 물결에 휩쓸려야 하는지 원.”
“뭐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니야? 보육원 퇴소 애들 고용하겠다는 것 말이야. 나중에 보육원이랑 협약식 맺으면 보도 자료로 만들어서 여기저기 뿌릴까? 자꾸 이름이 알려져야 누구든 함부로 못하지.”
“오호, 우리 한 과장. 언제는 일 많이 시킨다고 지랄하시더만, 이제는 알아서 일을 하시려고 합니다요?”
“그러게. 내가 얘기해 놓고도 아차 싶다. 내 주둥이가 일을 버네, 일을 벌어.”
“아까 대근 사장이 그러잖아. 언론들이 뭐 하나 트집 잡을라고 눈에 불 켜고 있다고. 아직 먼 일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준비를 해 놔야 해.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놈들이 언론들인데 아주 들들 볶지 않겠어? 우리야 뭐 문제 될 것 없고, 떳떳하니까 시끄럽다 싶으면 팩트로 조져 주자고.”
“그래. 내가 해야지 어쩌겠냐. 에휴, 내 주둥이가 문제다. 사장님! 일단 곱창이나 먹으러 갑시다!”
곱창이래서 1인분에 3~4만 원 정도 깨지겠구나 각오했는데, 이 과장이 안내한 곱창집은 저렴함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었다. 소박한 친구들이군. 고마워! 싼 집을 찾은 것을 보니 아군임이 분명해.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가 싸고 맛도 괜찮습니다.”
곱창이 익기 전까지 상견례 자리 같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긴장이 풀린 표정들이다. 그래, 사람은 먹어야 평온해 지는 법이지.
“안쪽부터 드시면 됩니다. 이건 좀 더 익혔다가 드시고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싼 곱창집인데도 종업원이 직접 잘라 준다. 이 과장이 손님 신경 쓴다고 나름 그럴싸한 식당으로 데리고 왔군.
“자, 자. 마음껏 드세요. 서로 일로 만났지만, 비슷한 연배니까 편하게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네, 잘 먹겠습니다.”
술이 좀 들어가야 분위기가 풀리려나. 오늘 저 두 사람한테서 대체 혁신산단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확실하게 파악해야 한다. 분위기를 최대한 편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우리 사장님께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다. 제가 보증할 테니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덕준이가 웬일로 칭찬을 다 하나 싶은데, 칭찬이 아닌 것도 같고 아리송하네. 칭찬 맞지?
“이 과장님, 유 대리님, 제 술 한 잔씩 받으시죠.”
“네, 네.”
극도로 공손한 자세로 술잔을 갖다 붙이는 꼴이 불편하다. 하긴, 내가 저 상황이었어도 불편했을 테지. 뭐 이러면서 친해지는 것 아닌가.
“과장님 편하게 받으세요. 술잔은 평등하다지 않습니까? 저보다 연배도 많아 보이시는데.”
“그런데 사장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조용히 곱창을 흡입하며 술병이 오길 대기하던 유 대리가 대뜸 나이를 물어본다. 다들 그게 궁금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여자가 먼저 나이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저요? 올해로 서른하나입니다.”
“젊어 보이셔서 엄청 동안이신가 했는데, 진짜 젊으시네요?”
이 나이에 사업 한다고 십몇억씩 쓰고 다니니 놀랄 만도 하지. 누가 내 속을 알아주랴. 정작 난 로또 됐어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있으니 원. 그냥 속 편한 사람처럼 웃으며 대꾸해 줄 수밖에…….
“운 좋게 젊은 나이에 사장 타이틀 달게 됐네요. 뭐 말만 사장이지, 바지사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참 많이 하셨습니다. 저만큼 잘 아는 사람도 또 없지요. 전 나중에 돈 벌면 사장님 자서전 꼭 내 드릴 생각입니다.”
덕준이가 대화 빈틈마다 적재적소로 치고 들어온다. 대화에 양념을 쳐 주는 것은 좋은데, 저게 칭찬인지 아닌지 자꾸 아리송하단 말이지.
“한 과장이 제 친구예요. 청운의 꿈을 안고 사는 녀석이었는데, 제가 잽싸게 데려와서 같이 이러고 있습니다.”
“아, 두 분이 친구세요? 서로 대하는 것이 엄청 편해 보여서 회사가 참 좋은 분위기구나 했어요.”
이 과장이 은근 부럽다는 눈치로 말을 이어받았다. 이런 분위기 가진 회사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는 회사가 기강이 있어야 한다느니, 위계가 서릿발처럼 꼿꼿이 서 있어야 한다느니 강조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업무가 명확히 구분돼 있고, 권한과 책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면 그 안에서 자신의 업무만 잘하면 그만이다. 나이 따지고, 태도 따진다고 못할 업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눈치만 볼 뿐이지.
물론, 덕준이가 행정 업무 외에도 온갖 잡일을 다 떠안고 있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미안하다. 태양전기 시절 내 꼴은 안 되게 할 테니 조금만 참자!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뭐 담배 피우면서 노가리 깔 때는 이놈 저놈 하긴 하는데, 제가 사장님하고 친구라고 해서 일 허투로 하지 않습니다. 일은 확실하게! 사장님 대우도 확실하게!”
“보기 좋습니다. 제가 뭐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좋은 회사 같아 보입니다.”
“실제로 좋은 회사 맞습니다. 앞으로 더 좋아질 회사고요.”
공장 짓는 일만 잘 해결되면 좋아질 일만 남는다. 이번 일만 잘 해결하자.
“이 과장님은 나이가?”
“저는 서른다섯입니다. 여기 유 대리는 스물일곱이고.”
“과장님! 제 나이 그렇게 막 공개하시면…….”
“하하. 과장님만 5차 교육 과정이고, 저희는 다 6차 교육 과정입니다.”
“어쩐지 세대 차이가 좀 느껴진다 싶더니, 그래서였군요.”
분위기가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어색한 대화 속에서 별로 안 웃기는 농담에도 적당히 웃으며 받아쳐 주는 것은 풀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장님, 형님이시네요. 형님 제 술 한 잔 받으시죠.”
“아이고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이 술 한 잔 받고, 공장 좀 빨리 짓게 해 주세요. 속이 타들어 갑니다.”
“안 그래도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희 사장님이 내후년 총선 나가려고 준비하고 계시거든요.”
“아, 그래요?”
말발이 아주 좋은 것이 정치하면 잘하겠구나 생각했더니, 딱 들어맞았네. 이 신통력이란.
“이 지역이야 공천 받는 것이 더 어려운 곳 아닙니까? 그래서 도지사한테 잘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는 중인데, 혹시나 사장님 일로 괜한 시비 걸릴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요? 그런데 문제 생길 일이 뭐가 있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다른 쪽에서 시비 걸기 시작하면 일단 시끄러워지지 않습니까? 이 동네가 워낙 좁아서 소문이 금방 퍼져 버리니까. 이 지역 언론도 다들 유지들이 가지고 있어서 한번 얽히면 정말 시끄러워져요.”
“하 참, 진짜.”
몇 자리 안 되는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애먼 내가 피해를 입어야 하냔 말이다. 행여나 내년 초 공장 착공 안 되면 도청 건물 불사질러 버릴 테다.
“시청 일자리 창출과 주무관도 일자리가 생기니까 어떻게든 빨리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도청 어공들이 자꾸 태클을 건다고 하더라고요.”
“어공요?”
“어쩌다 공무원이라고 정무직으로 들어온 사람들 말이죠. 아마 대부분 총선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전 걔네들이 총선에 나가든 말든 관심 없습니다. 아까 최 사장님도 그러시던데, 안성파워 들어올 때 맞춰서 같이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전 절대 안 됩니다. 내년에 바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요.”
“저도 계속 신경 쓰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오셔서 계약까지 해 주셨는데 당연히 최선을 다 해야죠. 내년 1월에 공단 준공만 떨어지면 공장 착공 문제없도록 해 놓겠습니다.”
총선 출마자들끼리 경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혁신산단을 맡고 있는 최 사장이 행여나 잘 풀려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까 봐, 미리부터 약을 치고 있다는 소리다.
그들에게는 나 같은 초짜 신생 회사 정도야 고려할 대상조차 안 된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또 내 자존심을 긁어 버리는군.
“아니면 제가 도지사라도 직접 만나 볼까요? 기업하는 데 이런 애로 사항이 있으니 해결해 달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묵묵히 곱창을 우겨 넣던 유 대리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움찔하더니 이제 잠잠해졌다. 이거 감이 왔다. 뭔가 있구나!
“유 대리님. 혹시 뭐 좋은 방안이라도 있으세요?”
“저요? 아…… 아니요. 그냥 뭐, 사장님네 회사가 좋은 회사인 것 같은데, 자꾸 이런저런 일로 걸리는 것이 안타깝고 그래서요.”
그것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대리님, 도지사 얘기 하니까 반응 보이는 것이 뭔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지 말고 저희 도와주실 일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저나 우리 사장님 똥줄이 탑니다.”
눈치 빠른 덕준이도 눈치를 챘군. 그래, 이것이 협공이지!
“아니 뭐. 대단한 건 아닌데요.”
아니야!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같아! 어서 얘기해 줘!
“저희 아빠가 라이온스 클럽도 하시고, 몇 년 전에는 산악회 회장도 하셨거든요. 그때 도지사님이랑 명함 주고받으면서 얘기도 하고 그러셨다고 저한테 엄청 자랑하신 것이 생각나서요.”
도지사? 딱히 친밀한 관계 같지 않지만, 알음알음 어떻게 연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유 대리, 여기 사장님 어떻게 좀 도와 드릴 수 없을까? 난 뭐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긴 한데, 지 사장님은 우리 첫 고객이시잖아. 첫 고객이 잘되면 그 뿌듯한 느낌 알지? 솔직히 그런 맛으로 일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렇게 얘기하니까 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근데,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도지사님이 엄청나신 분이거든요. 그냥 악수만 한 사이래도 다 기억해서 꼼꼼하게 챙기시는 분이라,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는데……. 제가 괜히 설레발 친 것 같네요.”
이 남매 같은 사람들 뭐야! 이거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잖아! 덕준아! 곱창 더 시켜라! 사이다도!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 제가 초조해서 괜히 부담드리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감사합니다.”
“유 대리님, 혹시 모르니까 한번 알아봐 주시면 안 될까요? 잠깐이라도 만나서 얘기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희 사장님 좀 도와주세요.”
유 대리 얼굴에 괜한 얘기를 꺼냈나 하는 걱정 어린 표정이 가시지 않자, 덕준이가 적극 나서서 구애를 펴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런 구애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는데……. 덕준이 이 자식 살신성인하는구나!
“뭐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제가 일단 아빠한테 물어는 볼게요. 저희 아빠가 남들 도와주고 그런 것 좋아하시기는 한데, 안 될 수 있으니까 기대는 마세요.”
“이렇게 신경 써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혹시 뭐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사장님. 그러면 저 사이다 하나 시켜도 돼요?”
“하하하. 마음껏 시키세요.”
왁자지껄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자리치고 꽤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끝났다. 옷에 곱창 냄새가 진동하는 만큼 서로 적당한 높이로 쌓여 있던 경계심은 사라졌다. 이렇게 인맥을 하나하나 쌓아 가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도지사와 면담이라……. 성사만 돼라. 내가 확실하게 답을 얻어 내고 올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