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6)
016 착한 일
“아이고 머리야.”
어제 술을 과하게 마셨다. 원체 술을 못 마시는 체질이라 한 잔만 마셔도 힘들 지경인데, 소주 한 병은 마신 것 같다. 자려고 누웠을 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일어나서도 증상이 여전하다.
머리에 피가 마른 뒤부터 항상 힘들게 겪은 것이 술 문제였다.
마시기 싫지만 온갖 이유로 술잔을 강요받았다. 사회생활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느니, 남자가 말이야 술을 못 마시면 쓰나라는 둥 말이다. 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술자리 지켜보면 여자에게 오히려 더 술 먹이려 하더만…….
누구 닮아서 이리 술을 못 마시나? 아버지는 술을 입에 달고 사셨으니 아버지는 아닌 것 같고, 집 나간 어머니를 닮았나? 어머니라는 사람은 어디서 뭐 하고 살까? 가끔씩 궁금하긴 하지만, 굳이 찾고 싶지는 않다.
엄마 없이 보냈던 학창 시절은 상처투성이였다. 특히 소풍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이 꺼낸 도시락에는 대여섯 가지 재료 넣고 정성스럽게 말은 김밥에, 깨도 예쁘게 뿌려져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차마 도시락 통을 열지 못했다. 단무지랑 햄만 들어간 김밥. 칼로 썰었다기보다 손으로 끊은 것 같은 김밥은 정말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김밥이라도 싸 준 날은 아빠가 정말 신경 쓴 것이었다. 대부분 소풍은 슈퍼에서 산 빵과 함께했다. 에휴…….
슬픈 생각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이놈의 술이 원수로구나.
내가 돈 벌면 부모 없이 자란 애들 기죽지 않게 기부하겠다고 다짐해 왔다.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얼렁 돈부터 벌자.
가만있어 보자.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잡게 만들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보육원 애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걔네들 성인이 되면 퇴소해 독립해야 한다고 하던데, 직원으로 뽑는다면 좋지 않을까?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 당면할 가장 큰 문제는 돈과 사람이다. 돈이야 내가 발로 뛰며 구하면 해결되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나주에 공장 세운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사람 구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보육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가족같이 지냈던 이들이 함께 우리 회사로 들어오면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될 것 같다.
젊은이들이 많은 회사는 확실히 생기가 넘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노인네가 많은 회사와는 정말 분위기가 다르다.
젊은 친구들이 대체적으로 힘든 일을 마다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그래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낫지 않을까? 좋아하지 않을까? 내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난 그런 회사를 만들 생각이 확고하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 덕준이에게 UFC가 금지한 기술 사커킥을 날렸다. 난 프라이드 FC를 즐겨 봤거든.
“일어나, 이 새끼야!”
“으…… 으으음. 왜 그래 왜.”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
“으음. 그래그래. 좋아. 아주 좋은 생각이야. 나 더 잘래.”
“일어나라고!”
“으아아아악!”
어젯밤 향연의 깊은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덕준이가 거친 스크리밍과 함께 겨우 정신을 차려 냈다. 이 자식 북유럽 가면 메탈 밴드 보컬로 인기 좀 얻겠는데? 그나저나 술은 내가 다 마신 것 같구만, 왜 네가 이 난리야!
“나 좋은 일 하면서 살라고!”
“자다가 뭔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우리가 나주 내려가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단 말이지? 젊은이들이 많아야 하는데, 누가 쉽게 오려고 하겠어?”
“그거야 월급 쥐꼬리만 한데 일은 힘들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그러지. 안 그런 회사라면 누군들 안 오겠냐?”
인식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채용 공고에 석식 제공이라고 쓰여 있는 기업은 일단 거르고 봐야 한다.
“일은 힘들 것이 맞는데, 월급은 제대로 챙겨 주기로 했잖아. 그리고 분위기가 얼마나 좋냐? 너야 일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진짜 우리 회사만 한 분위기 없다. 직원들이 사장 구박하는 회사가 어디 있어!”
“아 쫌! 본론부터 들어가자고.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다는 거야?”
“보육원 퇴소하는 애들 고용하는 거야. 내가 알기론, 성인이 되면 보육원 퇴소해야 하거든. 400만 원인가? 그 돈 받고 말이야. 우리 어차피 사람 많이 필요하니까 내가 다 뽑는 거야. 기숙사 1인 1실로 제공하면서!”
“못 도망가게 강제로 붙잡고 있겠다는 거구만? 푸흡. 그렇지, 한참 때인데 1인실은 필수지. 그래야 화장실이 깨끗해진다고. 암튼 뭐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인터넷이랑 두루마리 휴지는 필히 제공해야지.”
“난 진짜 그 나이 때 하루에 젤 많이 했을 때…… 아니다. 얘기해 봐야 우울하기만 하지. 근데, 그건 그거고. 애들이 우리 회사 들어오려고 할 것인지, 그것부터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말했잖아! 우리 회사만큼 좋은 회사가 어디 있어! 결정적으로 앞으로가 더 좋아질 회사라고!”
우리 회사는 히든 챔피언이 될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서로 들어오겠다고 입사 원서 밀어 넣는 그런 회사를 만들 것이다.
“우리 사장님 포부가 아주 죽여 주십니다. 그건 내가 인정할게. 직원들 다들 빡세게 일하는 것도 돈 많이 벌게 해 주겠다고 약 쳐서 그러는 것이니까.”
“약을 치다니! 이 지정수를 뭘로 보고!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그래. 그렇다 치고. 뭔가 유인책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좀 약한 것 같은데?”
“그것도 다 생각해 뒀지! 보육원 애들 고용하잖아? 그럼 월급에서 얼마씩을 떼서 적금을 들게 하는 거야. 회사에서도 매달 몇 푼이라도 같이 부어 주는 거지. 한 3년 정도 근속하면 못해도 천만 원 정도는 되게 말이지. 어떠냐?”
우리 회사에서 평생 일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디 나가서 비 맞고 밥 굶지 않게 해 주고 싶다. 동정심이 아니다. 그렇게 회사 이미지 좋아지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니, 나도 이익이다.
“이거 진짜 못 도망가게 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그나저나 회사도 부담이 장난 아닐 텐데, 괜찮겠냐?”
“아나. 회사 있는 동안 부지런히 일하면 정착 자금 확실하게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데, 이런 회사가 어디 있냐! 우리 회사 돈 충분히 벌 것이니까 그 정도는 끄떡없어.”
“으음…… 뭐 사회적 기업 그런 건가? 그거 하면 이런저런 혜택이 있을 거야. 내가 알기론 세금도 면제해 주고 직원 월급도 일부 지원해 주는 것 같던데…….”
“역시 한덕준! 그래, 잘 생각했어. 인천 올라가면 준비해 보자고!”
“에휴. 내 주둥이가 문제야. 나 또 얘기하면서 아차 싶더니만, 이놈의 주둥이 어째야 하냐? 아까 그냥 때려죽이든 말든 잠이나 잘 걸 그랬다.”
덕준이도 긍정적이다. 당연하지! 내가 착한 일 하겠다는데! 회사를 그냥 키우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좋은 일 하는 회사로 키우는 것은 어렵지만, 어려운 만큼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는다.
착한 일 하면서 좋은 대접 받으면서 회사 키우자고! 어제 대한전력에서 당한 수모가 살짝 씻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좋은 일 하는 좋은 회사 사장이라고 했을 때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어디 보자고!
“자, 자, 해장하고 지원센터나 가자. 빨리 공장 짓게 해 달라고 좀 조져야지.”
“그래? 그럼 난 그 키 작은데 이쁘장한 직원을 조져야겠군.”
“뭐냐, 그 멘트는? 걔 맘에 드냐? 슬쩍 알아봐 줘?”
“내가 뭐 맨날 하는 소리지. 뭘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
민망해하는 것이 뭔가 있구만? 나쁘지 않은 표정이다. 혹시 알아? 둘이 잘돼서 꽁냥꽁냥할지. 저놈이 꽁냥꽁냥이라…… 아오 퉤!
생각만 해도 속이 더부룩하고 쓰린 것이 게비스콘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 착한 일 하기로 했으니, 덕준이를 위해 착한 일 더 해 보자.
* * *
이정용 과장과 보기로 약속한 수요일 오후 2시에 딱 맞춰 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여자 직원은 여전히 삼디다스를 끌고 다녔다. 이제 몇 번 봤다고 먼저 알은척하는 표정까지 지어 준다. 살짝 여우기가 있구만. 우리 곰덕준께서 잘 공략할 수 있을라나?
“이 과장님, 저희 왔습니다.”
“아이고. 멀리서 내려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기 사장님실로 가시죠.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
말끝을 흐리는 것이 법이나 조례, 규정의 문제는 지나간 것 같았다. 정무적인 문제라는 것이지? 정무적인 문제라면 말로 잘 구워삶아야지!
“사장님, 프라임의 지 사장님 오셨습니다.”
“아이고, 지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우리 지 사장님이 아주 복을 몰고 다니십니다. 사장님이 계약하고 나서부터 분양 문의가 아주 난리도 아닙니다. 하하. 내 정신 좀 보소. 여기 앉으세요. 손님 오셨는데 세워 놓고 말이 많았네요. 이 과장? 차 좀 준비해 줘.”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다니! 우리 대근 사장 정치하면 참 잘할 것 같어.
“식사는 자셨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시간 맞춰서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저번에 곰탕집 괜찮았죠? 거기서 또 한 그릇 하는 건데 말입니다. 하하하.”
밥보다 내 공장이 더 중요하다! 인사야 저번에 봤을 때 충분히 했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전 그냥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릴게요. 저희 공장 착공 문제 말입니다. 가능합니까? 저는 당장이라도 공장 지었으면 싶은데요.”
“아따 사장님이 성질이 급하시네요. 하하. 안 그래도 내년 1월 초에 공단 준공을 끝내는 것으로 협의 중입니다. 여름이나 돼야 준공 나온다는 것을 내가 계획대로 가자고 강하게 어필했지 않겠습니까? 하하. 어차피 조성은 다 끝났고, 행정 절차만 밟으면 되는 것잉께, 제가 무조건 내년 1월 준공 나오게 해 놓겠습니다. 준공 떨어지면…….”
“그럼 준공 떨어지면 바로 공장 착공해도 되는 것이지요?”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할라는 참이었는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그것이 참…….”
“문제가 없는데,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최 사장이 허리를 수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남들이 들어서는 안 될 중요한 얘기를 할 때나 하는 포즈인데?
“아시다시피 위에서 도끼눈을 뜨고 보고 있어서, 도에서도 자칫 특혜니 뭐니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계획이 1월 준공이긴 한데, 지금 연기하겠다고 한단 말이지요. 근데 그걸 다 물리치고 1월 준공이 떨어졌어. 준공하자마자 사장님이 공장을 세운다네? 그럼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위라니요?”
“파란 지붕 있잖습니까? 총선도 1년 반 정도밖에 안 남았고, 이짝에 당선자 하나라도 내려면 뭐든 꼬투리 잡아서 크게 조질 것이란 얘기가 파다해요. 아무래도 몸을 사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 참. 그런데 내가 봤을 땐 핑계 같아요.”
최 사장이 몸을 더 수그리더니 속삭이듯 말을 꺼낸다.
“핑계라니요?”
“위에서 온갖 짓을 해도 여기야 달라질 것 없을 것이고, 문제는 지금 공천 받으려고 준비하는 것들이 아주 눈에 불 켜고 지켜보고 있단께요. 지금 한자리 하는 양반들이 다들 총선 나가겠다고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경쟁자 많아져야 좋을 것이 없응께 조금만 시끄러운 일 생기면 아조 아작을 내 버리려 벼르고 있어서…….”
뭔가 빙빙 돌려 얘기하는 것이 정확한 속내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정무적인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내가 무슨 게이트의 주인공이 된다? 웃겨서 말도 안 나온다.
“법대로 하겠다는데 시끄러운 일이 생길 이유가 있습니까? 저야 솔직히 말해서 창업한 지 몇 달 되지도 않고 매출도 없는 초짜 아닙니까? 제가 무슨 특혜를 받기나 했습니까? 아니면 제가 뇌물을 주기라도 했습니까? 저 여기 올 때 비타300 한 상자도 안 사 왔어요.”
“언론들이 들쑤시면 없던 것도 만들어 낸다지 않습니까? 괜히 언론에 트집 잡혀서 시끄러울까 그러는 것이죠 뭐. 안성파워 1호 기업 협약식도 계속 미루고 있다니까요.”
그냥 속 시원하게 이러저러하니 이렇다고 얘기해 주면 좀 좋나?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데요?”
“안성파워가 내년 하반기나 내후년 초에 착공할 것이라고 하는데, 여러 업체가 착공하겠다고 하면 아무래도 모양새도 좋고……. 나야 지 사장님이 바로 공장 착공하면 좋지요. 그런데 도에서 그리 난리이니까……. 혹시 하반기 착공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반기 착공? 나보고 죽으란 소리인가? 누가 감히 나를!
“안 됩니다. 내년 1월에 공단 준공이라고 하셨죠? 전 그럼 준공되자마자 바로 공장 착공할 것입니다. 이건 특혜가 아니라요, 오히려 중소기업 죽이기예요. 언론 놈들 실컷 떠들으라고 하세요. 전 잘못한 것 하나도 없으니까 꿀릴 것도 없어요.”
“사장님께서 뭐 1호 기업 간판도 양보해 주셨으니까, 당연히 원하시는 대로 맞춰 드려야 하는 것이 맞죠.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고…….”
“그것이 맞으면 그냥 그렇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정치 세계, 공무원 사회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제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 주세요. 제가 안 되는 것을 뇌물 줘 가면서 해 달라는 것 아니잖아요? 저 착한 일 많이 할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