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86)
186 내 편
입찰이 끝났다. 바보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결과가 남았다.
사장단 및 중역 회의를 소집했다. 기쁜 소식은 함께해야 커지는 법이다.
“어제 대한전력 입찰이 아주 잘 마무리됐습니다. 입찰 결과는 정리해 놨으니까 한 번씩 보세요.”
“791억? 어휴. 여전히 계속 바쁘겠네.”
“공장장님. 관수만 하다 마실 것은 아니죠? 민수도 있고, 수출도 있습니다.”
“하하. 이거 뭐 일만 하다가 영산포 할망구들 다 놓치겠네요.”
“할망구들이 아닐 텐데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 자, 일단 회의부터 하시죠.”
공장장이 백지원 최봉숙 원장을 만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후훗. 빤히 아는데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는 공장장. 은근 가증스러운데? 재혼이지만, 성대하게 치르시길.
“입찰 끝났으니, 이제 내년 초까지 물량 정신없이 쏟아질 겁니다. 공장 풀가동해서 재고품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세요.”
“그래야지. 연초의 그 고생은 다시 하고 싶지 않네. 근데, 일반형주상변압기 남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없어지는 것이라 어디다 팔 수도 없고.”
“몇 대나 됩니까?”
“9월 2차 발주분까지 처리하는데도 300대 정도 남았을 것이야.”
“사장님. 287대입니다.”
자재 담장이자 회의 서기를 겸하는 박아름 대리가 빈틈을 치고 들어왔다. 박 대리, 상점 100점!
“287대면 많긴 한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민수로도 주상변압기가 나가니까 3대씩 세트로 묶어 두시고. 나머지는 수출용으로 외함갈이해서 내보내면 됩니다.”
“대한전력은 이런 것 좀 처리해 주지 말이야. 품목이 바뀌면 기존품은 사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역시 사업은 정보가 중요하다. 대한전력이 어떤 계획을 세웠고, 그걸 또 왜 무산시켰는지 전혀 모르는 공장장은 애먼 대한전력을 탓하고 있다. 사장이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정보 얻고, 그걸 알려 주는 역할이지.
“대한전력이 원래 재고품 처리해 줄 계획이었는데, 우리 조합에서 무산시켰습니다.”
“응? 아니 왜?”
“중전기조합 쪽도 그걸 알고 있거든요. 재고품 팔아먹으려고 엄청 만들어 놨을 겁니다. 한 부장!”
“넵!”
영문을 몰라하는 공장장을 뒤로 하고 덕준이를 소환했다. 이제 덕준이가 부지런히 돌아다닐 때지.
“중전기조합 소속사들은 아마 미칠 것이야. 연말쯤에 슬슬 돌면서 매입하자고. 수출품으로 팔려면 외함 갈아야 하니까 그거 감안해서 가격 엄청 후려치는 것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덕준이가 신 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중전기조합이 대한전력 본사까지 찾아와 집회할 때 깔깔거리고 웃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 그때처럼 신 나게 중전기조합 구겨 주고 오라고.
“공장장님은 재고 생산 넉넉하게 해 주시고, 외함도 풀로 돌려 주세요. 김 사장님, 황 사장님. 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부부 사장들. 이제 본격적으로 자회사 키울 때이다. 내가 판 깔아 놨으니 그 판 위에서 윈드밀 시원하게 돌리셔.
“자료 보니까, 우리 회사 제외하고 우리 조합이 받아 온 금액이 2,338억이네요? 여기에 우리 회사까지 더하면 3,130억 원. 어후야. 엄청 만들어 놔야겠네요?”
황미연 사장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이다. 저번 입찰 이후로 본사가 고생했다면, 이번 입찰 이후에는 자회사들이 고생할 때이다.
본사야 그 고생을 하면서 캐파를 크게 늘려 놨으니 물량에 파묻혀 허우적거릴 일은 없다.
반면 자회사 두 곳은 이제 막 캐파 늘리고 있는 때라 아주 바쁘다. 내가 그 고생하기 싫어서 분사해서 사장들한테 맡겼지. 후훗.
“다 해서 30만 대가 넘으니까 일찌감치 준비해 두셔야 합니다. 조합 회원들이 전량 우리한테 발주하지 않겠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으니까 자재 발주량을 늘리긴 할 겁니다.”
“공장도 여유 있고, 설비만 충분히 갖춰지면 쭉쭉 뽑아낼 수 있어. 유 이사! 잘 좀 부탁해!”
김희철 사장이야 원체 걱정도 없고 머릿속에 긍정만 남은 사람이긴 하지만, 정답을 말하긴 했다. 유재준 이사가 얼마나 설비 빨리 만들어 주느냐에 달렸지.
어째 매번 회의만 하면 유 이사로 화살이 돌아가는 모양새다. 2년째 일복에 싸여 사는 불쌍한 유 이사. 당신은 내년에 무조건 억대 연봉이오!
“다들 나만 바라보는구만. 하하하. 인원도 넉넉하고, 정신없이 만들어야지 뭐. 나중에 내 탓 못하게 팍팍 만들어 줄 테니까 걱정들 마셔.”
유 이사가 이제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좋은 자세다. 내가 돈으로 보상할 테니 일 한번 원 없이 해 보시라.
“그리고 인원 필요하면 최소한 석 달 전에는 말씀을 해 주세요. 전에야 워낙 급해서 교육도 제대로 안 하고 현장에 투입했지만, 이제는 못해도 두 달 정도는 교육시킬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이야. 잘 교육시켜 놓으면 써먹기 좋지. 왜 저번에 급하게 30명 뽑아서 바로 현장 보내지 않았나? 가르치느라고 아주 애 먹었어.”
공장장이 적극 찬성하면 무조건 가는 것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들은 교육이란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신입 같은 월급을 주면서 경력자 같은 일 처리를 원하니 교육시킬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다. 그저 갈아 대다가 제풀에 지쳐서 나가면 새로 뽑는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은 사람이 안 온다고 아우성이라니.
나도 나름 신입들 교육시킨다고 2주씩은 직무 훈련을 돌렸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회사도 안정을 찾아가니 신입을 경력자로 만드는 일에 신경 좀 써야지.
“하실 말씀들 있습니까?”
다들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심전심이라고 서로 말 안 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회의는 더 줄어들겠군.
“그럼 회의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엄청 더우니까 더위 안 먹게 직원들 신경 좀 써 주세요.”
“참! 하나 말할 것 생각났습니다.”
뒤늦게 뒷북치는 덕준이 이 자식. 말 나온 김에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빨려고 했더니만.
“네, 말씀하세요.”
“2주 뒤면 회사 창립 기념일입니다! 작년에는 바빠서 그냥 넘어갔지만 올해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다. 9월 1일 회사 창립일. 그 역사적인 날을 올해도 그냥 넘어갈 뻔했네. 창립 2년 만에 중견기업을 넘볼 수준으로 성장한 회사를 위해 성대한 잔치를 열어야지!
“아주 좋은 의견입니다. 작년엔 진짜 넋을 놓고 다녔는데, 올해도 그럴 수 없지요. 아무리 바빠도 할 것은 해야죠.”
“호텔 하나 통째로 빌려서 직원들 럭셔리하게 놀게 해 줍시다.”
“아휴, 쫌! 자기 돈 아니라고 막 쓰려고 그러네.”
김 사장의 호기로운 의견에 황 사장이 구박을 쏟아 낸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변함이 없으셔.
“아닙니다. 우리 직원들 2년 동안 고생만 했는데, 그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죠. 서너 가지 뽑아서 설문 조사 돌리죠 뭐. 박 대리, 맡아서 할 수 있겠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미 머릿속에는 호텔 뷔페 배터지게 먹고, 연회장에서 유라유라하고 보라보라한 아이돌이 춤추고 노래 부르는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몇억이 들더라도 꼭 성사시키자. 우리 노인네들을 위해서 체육대회 때 뿅 가게 만든 송인도 꼭 부르리라.
“창립기념일이 목요일이긴 한데, 그날은 일하고. 금요일에 쉬는 걸로 하죠. 금요일에 호텔 들어가서 밤새 놀면 딱이지 않습니까? 초대 가수도 부르고 말이죠. 이왕이면 아이돌로요.”
덕준이가 내 맘에 쏙 드는 얘기들을 줄줄 꺼낸다. 역시 우린 영혼의 단짝이야.
“오늘 중으로 설문지 만들어서 내일까지 끝냅시다. 계획 결정되면 바로 예산 짜고 행사 준비해야 하니까 좀 촉박하긴 하네요. 박 대리, 수고 좀 해 줘.”
“네, 알겠습니다.”
늘 알겠다고만 대답하는 박 대리다. 한편으론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하는데, 일 잘하니 암 소리 말자. 베프라는 민희는 방방 뛰는 느낌인데, 이렇게 다른 성격이 서로 베프로 지내는 것도 어메이징하다.
“자, 자, 회의가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이제 각자 자리에서 부지런히 달려 주세요.”
“네!”
회의는 공식적으로 끝냈지만, 비공식 회의인 담배 타임이 기다리고 있다. 흡연자들끼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에서 마음껏 피우는 그런 환경은 이제 전설 속에서나 찾을 수 있겠지?
“후아. 뜨겁다. 오늘도 아침부터 지글지글 끓네.”
옥상 문을 열자마자 감탄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를 감동케 하는 이 더위는 대체 언제 물러날 것인가!
“공장장님!”
“응? 왜? 뭐 할 얘기 있어?”
서로 아는 사이끼리는 그냥 멀뚱히 부르지 않는다. 부름과 동시에 할 말을 쏟아 내는 것이 국룰이지. 공장장이 뭔 일인가 싶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저 눈동자, 사랑에 빠진 눈동자이다.
“담배 끊으라고 안 해요?”
“응? 누가?”
“그러게요. 누굴까요?”
“뭐야, 싱겁게. 그러고 보니까 아까도 뭔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뭔데 그래?”
“덕준아!”
마이크를 덕준이에게 넘겼다. 영혼의 단짝답게 날름 주워 받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건너 마을 최 진사 댁에, 딸이 셋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오호, 그래그래. 그 최 진사 셋째 딸 이름이 뭐였더라?”
“잠깐만, 내가 또 들려줄 노래가 있지.”
덕준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장미여인숙을 만방에 알린 봉숙이.
“허허허. 뭐야?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이야?”
노래 2연타에 공장장이 두 손을 들었다.
“공장장님, 안 그러실 줄 알았는데, 응큼하십니다. 하하하.”
“아니 뭐, 자꾸 보다 보니까 뭐 그렇게 됐네. 허허허.”
계속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다른 쪽에서 담배를 피우던 무리가 몰려들었다.
“공장장님. 왜 그리 웃어? 뭐 좋은 일 있어?”
“공장장님, 연애하신답니다.”
“뭐? 우리 공장장이 연애를 해? 우하하하. 내가 그렇게 소개해 준다고 할 때는 마다하더니, 이거 얌전한 고양이 다 됐네.”
공장장의 첫 번째 의좋은 형제인 김 사장이 물 만난 고기처럼 떠들어 댔다. 그렇다면 두 번째 형제인 유 이사도 가만있을 수 없지.
“공장장님, 그렇게 바쁜 척 다 하더니, 언제 또 애인을 만드셨대? 우리 공장장님 아주 대단하셔.”
“야, 인마. 우리 형님이 연애 좀 하겠다는데, 축하는 못해 줄망정 무슨 소리들이야! 다들 오늘 일 끝나고 시간 비워 놔. 우리 형님이 거하게 쏠 거야. 하하하.”
이상철 이사가 왜 조용하나 했다. 절친들의 다구리에 공장장은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웃고만 있는다. 그렇게 좋은가?
“상철이 형님. 축하는 축하지만, 이건 경우가 아니지. 우리 사장님은 이 나이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있는데, 공장장이 결혼 두 번이나 하면 되겠어? 그럼 오늘은 어디서 마실까?”
“인마, 무슨 결혼이야! 그냥 뭐, 서로 외로우니까 말동무나 하는 거지.”
날이 더워서 그런가? 공장장 얼굴에 홍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이는 먹었지만, 마음은 사춘기 소년이로구나. 근데, 김 사장은 왜 나를 걸고넘어지는 거야?
“공장장님. 우리 사장님 결혼하기 전까지는 안 돼. 알았어?”
“아휴, 왜 또 저한테 그러십니까? 덕준이도 있구만. 나한테만 그럽니까?”
“한 부장은 연애 잘하고 있잖아. 안 되겠어. 내가 우리 사장님 끌고 가서라도 결혼정보회사 가입시키고 와야겠어. 어때? 다들 돈 좀 모으자고.”
“그거 좋지. 얼마씩 내면 돼?”
시댕. 괜히 말 꺼냈다 싶네.
“덕준아. 너라도 빨리 결혼해라. 내가 이 노인네들 등쌀에 못살겠다.”
“사장님. 나 이따가 외출 좀 하고 오겠습니다.”
“뭐 언제는 말하고 외출했냐? 뭐 할라고?”
“결혼정보회사 가입시킨다잖아? 돈 찾아와야지.”
“그래, 한 부장 잘했어. 친구가 옆에서 닦달해 주는 것이지. 상철이 형님, 사장님 연애는 한 부장한테 맡기고, 우리는 오늘 한잔할 곳이나 알아볼까?”
덕준이의 배신에 김 사장이 신이 났다. 그래도 가장 신 난 사람은 이 이사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오늘 술 얻어먹을 기회가 생겼으니, 아까부터 몸이 들썩들썩한다.
“그래,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술이나 마시자고. 김 사장, 아까 보니까 황 사장한테 구박 받더만, 집에 일찍 가서 뭐 해! 오늘 마시고 죽자고.”
오로지 술 마실 생각만 하는 이 이사가 여기서 제일 내 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