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3)
193 소시민
호텔에 왔으면 조식은 무조건 먹어야 한다. 꼭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6시 반에 눈이 떠졌다.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도 귀신같이 일어나네.
예상대로 식당에는 태반도 안 나왔다. 가족을 데리고 온 직원들만 눈에 띈다. 어제 아주 광란의 밤을 보낸 모양이네.
“우리 사장님들 잘 주무셨습니까?”
딸 소연이를 데리고 온 김희철, 황미연 사장 부부. 김 사장은 어제 술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역력했다.
“아휴, 여기 너무 좋네요. 다음에 상우 수능 끝나면 다 같이 와야겠어요.”
아쉬워하는 김 사장과 달리 황 사장은 아주 만족하는 표정이다. 여수가 좋은 곳이지요.
“그때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숙박권 해 드릴게요.”
“어머, 감사해라. 우리 사장님 짱! 소연아, 넌 나중에 커서 사장님 같은 분 만나야 한다. 알았지?”
낯 간지러워서 더 있기 힘들다.
“자리 남는데, 여기서 식사하세요!”
“아니에요. 가족끼리 소중한 시간 보내야죠.”
아침이라 간단히 요기만 하려고 했는데, 이놈의 음식은 나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것저것 담다 보니 접시가 묵직해졌다. ‘공공의 적’에서 펀드 매니저 조규환이 이 모습을 봤다면 썩소를 날렸을 것이 분명하다.
해장할 겸 수프를 떠서 입에 넣는데, 민희가 어느새 옆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너 어제 일은 기억나니?”
“아, 몰라요. 묻지 마세요. 그냥 비밀로 해 주세요.”
싱글벙글한 표정을 보니 천진난만한 건지, 여우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민희야. 직장 내에서 민망하고 껄끄러운 상황은 만들지 말자. 알았지?”
“크로와상 드셔 보세요. 되게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으음. 참, 사장님. 술 사 주기로 약속한 것 잊지 마세요!”
좋게 말하면 당돌하고, 나쁘게 말하면 꼴통기가 다분하다.
민희가 나를 좋아하든 말든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겠지만, 상황 자체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다다익선이라지만, 여자가 많아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골치만 아플 뿐.
당연히 이런 속내를 모를 민희는 아무렇지 않게 조잘거린다. 민희가 입을 다문 것은 초대 손님인 은하무역 김상진 사장과 도연테크 박민창 사장이 나타난 이후였다.
“어제 술 얼마나 드셨어요?”
“어휴, 말도 마세요. 방까지 겨우 들어갔습니다. 하하. 이상철 이사님 아주 말술이시데요.”
“저기 앉아서 식사하고 계시잖아요. 저분은 신나를 드럼통째 마셔도 끄떡없으신 분이에요.”
공장장과 이 이사가 숙취 따위 없다는 듯이 밥과 김치를 한 움큼 담아 흡입한다. 공장장 옆에 백지원 최봉숙 원장이 앉아 있네? 소문 따윈 두렵지 않다 이건가?
“사장님 덕분에 좀 쉬는가 했더니, 이거 몸만 상하고 가는 기분입니다. 하하하.”
내가 사라진 이후 술상무 역할을 완수해 준 두 사장들에게 경의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이다.
“박 사장님은 나주 언제 오실 겁니까?”
도연테크 박 사장이 나주 입성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으니, 오늘 확답을 받아야겠다. 납품처 대부분이 나주에 있으니 당장이라도 내려와야 하는데, 왜 시화에서 버티는지 원.
“내려가야죠. 물류비도 많이 들고 아무래도 나주에서 하는 것이 낫겠다 싶긴 합니다. 내년엔 준비해 봐야죠.”
“지금 준비해도 내년 하반기나 가능할 텐데, 내년에 준비하신다구요?”
“네, 좀 뭐. 사업이 그렇잖습니까? 돈 쌓아 놓고 사업하는 사람 없잖아요. 하하.”
아차 싶다. 사업이 잘나가고 돈 잘 버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것으로 착각했구나 싶다. 박 사장도 왜 빨리 나주 내려오고 싶지 않겠나.
“박 사장님, 원자재는 대부분 수입하지요?”
“네. 예전에야 우리나라도 알루미늄이랑 구리 제련 많이 했는데, 요즘은 단가 때문에 많이 없어졌죠. 스크랩 처리만 하는 정도라 대부분 수입합니다.”
“그럼 나주로 내려오는 것이 낫긴 하겠네요. 어제 코일 거래 원하던 업체들도 다 나주에 있지 않습니까? 사장님, 나주로 내려오시고, 제가 이참에 제가 원자재 수입 좀 알아보면 안 되겠습니까?”
김 사장이 끼어들어 자기 사업으로 얘기를 끌고 간다. 둘이 난퉁전기 코일 수입으로 협력을 하고 있으니, 손잡은 김에 양손으로 잡는 것이 나아 보인다.
“박 사장님, 사업장도 옮기고 회사도 키우고 싶은데 제약이 많지요?”
“안 그런 사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장님 덕분에 잘나가고 있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쪽이 마진이 박하지 않습니까? 직원들 월급 주고 이것저것 내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리고 사장님 몫도 두둑이 챙겨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하하.”
“회사 잘 키워서 회사 가치 높이는 것이 많이 챙겨 주는 겁니다. 그런데, 사장님.”
“네, 말씀하시죠.”
“제가 도움드릴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도연테크에 이미 내 돈 5억 포함해 15억 원이 투자돼 있다. 대여금 10억 원까지 하면 25억. 사실상 내 회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약속대로 경영에는 일체 관여를 안 하고 있다. 그래도 도연테크를 키우려면 엔젤투자자 역할 확실히 해 줄 필요가 있겠다.
“원자재 수입도 몇 다리 거쳐서 하고 계시죠?”
“뭐 그렇죠. 우리같이 조그만 회사가 수입 유통까지 하기에는 부담이 크니깐요.”
“자, 그럼 공장 이전하고 원자재 수입 유통단계 줄이려면 얼마 정도 더 있으면 됩니까? 원자재 수입은 여기 김 사장님이 적극 도와주실 거구요. 김 사장님, 그렇죠?”
“하하. 이거 아침부터 사업 얘기 한번 진합니다. 저야 지 사장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든 적극 협조해 드려야죠. 그게 저 돈 버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하.”
내가 돈을 대고, 김 사장이 협력한다.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더 있을까? 어쩌다 아침부터 얘기가 이렇게 진행됐는지 모르겠지만, 박 사장이 잘나가야 우리 회사에도 도움이 되니 밀어붙이자.
“아휴, 매번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좀. 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박 사장이 이 좋은 조건을 안 받고 머뭇거린다. 안 받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 말이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랑 박 사장님이 하루 이틀 밥 먹은 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네, 그게…… 솔직히 지 사장님 도움 없었으면 회사 차리는 거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내 회사라는 자부심은 있단 말이죠. 이번에 또 투자를 받으면 제 회사가 아니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좀 심경이 복잡합니다.”
회사는 누가 경영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주식회사라면 누가 대주주인지가 더 중요하다.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과반 의결권. 그걸 놓치고 싶지 않다는 박 사장의 생각은 존중한다. 그렇다고 회사 이익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다한다? 존중하지만, 이해는 가지 않는다.
“박 사장님! 제가 뭐 이런 얘기 하는 것이 주제넘긴 하지만, 지 사장님 같은 좋은 투자자가 있는데 왜 그걸 마다하십니까? 회사 경영 잘하라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그걸로 회사 키우셔야죠. 우리 같은 소기업들한테 지분이 뭐 중요합니까?”
김 사장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박 사장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너무 세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내 속마음을 아주 잘 전달해 줘서 고맙기도 하다. 역시 김 사장은 재리에 밝은 타고난 사업가다.
“박 사장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니까, 제가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도연테크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니 괜한 오해는 마시구요. 차차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오해라니요. 그런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기분이 허해질 것 같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제가 사업이 처음이잖습니까? 애착이 좀 커서 그렇습니다.”
이구, 이 답답한 양반아. 그런 생각일수록 돈 준다고 할 때 냉큼 받아서 회사 키울 생각을 해야지.
“박 사장님, 여기 지 사장님이 투자 얘기할 때 냉큼 받으시죠. 회사가 성장하고 봐야지. 고만고만한 회사면 지분 그런 거 아무 의미 없습니다. 지 사장님! 저한테도 투자 좀 해 주시죠? 하하.”
“투자 계획서 잘 만들어서 오시죠. 저는 돈 되는 것에는 투자 아끼지 않습니다.”
옆에 앉은 민희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꾹 참는 것이 보인다. 넌 조용히 밥 먹고 있어라. 괜히 애먼 얘기해서 상황 민망하게 만들지 말고.
“박 사장님한테는 말 몇 마디로 투자하겠다고 하시고, 저한테는 투자 계획서까지 내라고 하시네요. 이거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하하. 박 사장님은 제 은인이라 회사 세우면서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결심했지요.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사장님. 은혜라뇨. 저야 뭐 같이 담배 피운 거 말고는 없는데요.”
박 사장은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지만, 태양전기 시절 같이 담배 피워 준 것은 나에게 큰 힘이 됐다.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대화가 고팠을 때, 매일같이 찾아와 말 걸어 준 박 사장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박 사장도 굳이 올 일도 없는데 찾아와서 단 몇 분이라도 있어 주고 갔었지.
“말 나온 김에 식사 다 하셨으면 담배나 피우러 가시죠.”
호텔 식당 측의 배려로 시원하게 내린 커피 한 잔씩 들고 흡연 구역으로 갔다. 아침 선선한 바람에 바다 바라보며 아메와 함께하는 담배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이 맛에 내가 산다.
“박 사장님, 아직도 고민하십니까? 돈 나올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요. 박 사장님 당장 나주 내려오면 지 사장님도 그렇지만, 저도 편하지요. 시화랑 부산 왔다 갔다 하기가 보통 일입니까?”
“제가 좀 생각이 많긴 합니다. 결론 내리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근데, 두 분 동갑이시죠?”
“맞습니다. 74년 범띠죠.”
동갑내기 사업가. 한 사람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과감하고, 다른 사람은 포부는 지대하지만 안정지향적인 소시민이다. 누가 더 대성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제 술 마실 때 보니까 두 분 잘 맞는 거 같던데, 서로 손잡고 코일 유통 시작한 김에 사업 한번 크게 일으켜 주시죠.”
“그러고말고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화끈하게 해야지요. 박 사장님, 안 그렇습니까? 어허, 이분 아직도 고민이 가득하시네. 하하.”
박 사장은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별 얘기가 없다. 내가 아침부터 너무 큰 과제를 안겨 줬나? 고민은 집에서 좀 하지.
담배 다 피우고 슬슬 들어가려는데, 김 사장이 새로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 간다.
“지 사장님, 아까 밥 먹을 때 보니까 민희 씨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데, 두 분이서 뭐 썸씽이라도 있습니까?”
아나. 담배 한 대로는 어림도 없게 만드네.
“썸씽이라뇨! 직장 내에서 그러면 큰일 나죠.”
“지 사장님은 회사에서 인기가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역시 젊은 사장님이라 다르긴 다르네요. 하하.”
“우리 사장님이 예전부터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았습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도 여직원이 목소리 좋다고 사진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 줬더니 소개시켜 달라고 몇 달을 졸랐던 적도 있지요.”
“왜 소개 안 시켜 주셨어요?”
“제가 지 사장님한테 민폐를 끼쳐 드리면 됩니까? 하하.”
박 사장 전 회사인 영성기업의 직원. 기억난다. 많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괜히 엮였다가 큰일 날 것 같아서 그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를 세웠었지.
김 사장이 개운하게 아메 원샷하며 잔을 깨끗이 비우고 나서 대화를 이어 갔다.
“사장님, 저도 뭐 직장 생활도 하고, 사장 생활도 좀 해 보지 않았습니까? 이게 사장 되고 돈 좀 만진다는 소문이 도니까 주변에 유혹이 많습디다. 저도 그런데, 사장님같이 인물 좋고 훤칠한 분이면 오죽하겠습니까? 여자고 남자고 사람 조심해야 합니다.”
“이건 김 사장님 말이 맞아요. 내가 우리 지 사장님 그래도 오래 봐 왔잖습니까? 사람이 너무 좋아. 좋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거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뭐 직원들한테 인기 많은 거야 좋지만, 그래도 조심할 필요는 있지요.”
이러다 민희 꽃뱀설이 회자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민희야, 앞으로 깜빡이 없이 끼어들기 하지 말자. 내가 이럴까 봐 그런 것이야.
“잘 새겨듣겠습니다. 근데, 저 민희랑 아무것도 없습니다. 민희는 제가 월급 주는 직원일 뿐이죠.”
담배 두 대가 순식간이다. 별일도 아닌 걸로 고민할 정도로 내가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이제 놀 것 다 놀았으니, 주말 푸욱 쉬고 월요일부터 정신없이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