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5)
195 망아지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날씨는 이 정도면 살 만하겠다 싶을 정도로 바뀌었고, 직원들은 생기가 넘친다.
잘 놀고 푹 쉬었으니 생기가 안 돌면 이상할 것이다. 반면, 나는 피로 누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최유리와 밤새 자맥질 한 여파가 꽤 오래간다. 30대 접어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 말고 오늘부터 호수공원에 나가야겠다.
“사장님, 나오셨습니까?”
“어, 그래. 잘 쉬었어?”
박아름 대리가 덤덤한 표정으로 사장실에 들어왔다. 감정 기복 없이 늘 변함없는 저 모습이 맘에 든다. 일이 적을 때나 많을 때나, 술을 마셨을 때나 맨 정신일 때나 똑같아야지.
“네. 대한전력 첫 발주 나왔습니다.”
“오후쯤에나 나올 줄 알았더니 일찍 나왔네?”
“우선배정은 금요일 오후 늦게 나왔고, 조합배정은 좀 전에 나왔어요. 총 3,760대고 액수로는 약 38억 6천만입니다.”
무난하게 나왔다. 이렇게 군불을 지피다가 아침저녁으로 뼈마디가 시려 올 정도의 추위가 찾아오면 또 폭발하겠지.
“관수는 당분간 발주량 생각하지 말고, 여유 있을 때 재고 생산 많이 해 두자고. 생산 일정은 공장장님이랑 잘 상의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따 점심 먹고 혁신산단 가서 신규 분양 논의하고 오겠습니다.”
“월요일이라 바쁘지 않아? 바쁘면 내가 갔다 올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할 일인데요.”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는 최대한 편의를 봐주는 것이 내 역할이지. 그런 배려를 거부하며 강한 책임감을 보이는 박 대리도 제 역할을 잘하는 것이고.
이번엔 신규 분양을 자금이 허용하는 한에서 최대한 넓게 받을 생각이다.
도연테크 이전도 고려해야지. 박민창 사장이 아직 확답을 주지 않았지만, 별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기꺼이 돈 대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늘어난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도 기숙사 냄새 안 나게 제대로 지을 생각이다.
단기간에 급하게 짓느라 누가 봐도 기숙사스러운 건물. 좁고 다다닥 붙어 있어 닭장 느낌도 나서 별로다. 아파트 못지않게 번지르르하게 한 채 올리고 싶다.
계획은 여섯 필지 더 받는 것이다. 그러면 기존 9천 평 공장과 하역장 부지로 분양 받은 2천 평을 포함해 총 1만 5천 평으로 늘어난다.
이 정도 규모면 대기업 일개 공장 정도에는 버금가는 수준이다. 단일 공장이 아니라, 하나둘씩 붙으며 조금 난잡해진 것이 아쉽긴 하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갖춰 놓고 시작할 수 없는 노릇이니,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살자고.
박 대리가 나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민희가 들어왔다. 무덤덤한 표정의 박 대리와 달리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는 민영이.
“사장니임.”
“그래, 얘기해 봐.”
“우선 아까 아침에 중국 업체들이랑 통화했는데, 제품은 아주 좋대요. 창저우트란스퍼로 보낸 것 중에 컨테이너 하나가 흔들렸는지 나무가 빠개진 채로 들어온 것이 있다고 하네요?”
“고박을 제대로 안 했나 보구만. 그래서 그쪽에서는 뭐래?”
“네, 사진 받아서 확인했고, 일단 변압기 파손된 것은 없어서 그냥 쓰겠다고 해서, 다음부터 포장 잘하겠다고 했죠.”
지금까지 수출용 변압기 보내기 위해 작업한 컨테이너가 거의 200개에 가까울 정도다. 그중에서 나무 패킹 한 번 빠개진 것이라면 아주 양호하다.
중국 수출은 물량이 워낙 많아 하자 보수도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한 달에 컨테이너 한두 개 겨우 나갈 정도인 필리핀 같았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거의 대부분의 하자는 변압기 파손으로 인한 누유이다. 그럼 비행기에 직원 태워 보내 그 무더위 속에서 수리하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하고. 마진도 안 좋은데, 그 마진마저도 다 날아가는 것이다.
“잘했어. 민수 변압기 얘기는 안 하데?”
“네. 세 업체 모두 아직은 주상 위주로 가겠다고 하네요. 아마 겨울부터는 물량 확보해야 하니까 그때쯤 발주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좋았어. 별일 없어도 종종 통화하면서 담당자랑 친분 좀 쌓아 둬.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다?”
“대금 결제!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좀 기어오르는 것 같지만, 업무는 문제없이 처리하고 있으니 모른 척해 두자. 군대도 아니고 사람이 살다 보면 기어오를 수도 있지 뭐.
“잘했어. 보고할 것 다 했지? 가서 일 봐.”
민희가 할 얘기 다 했을 텐데, 안 가고 비시시 웃는다.
“왜, 할 말 있어?”
“사장님, 약속하신 거요. 이번 주 금요일 어때요?”
“무슨 약속? 술 사 주겠다고 한 거?”
“네!”
많은 사람을 겪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더라. 처음엔 조심스러워하고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고삐가 풀리면 그때부터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 말이다. 민희 이 녀석도 고삐가 제대로 풀리셨군.
“그래. 김 대리한테 얘기해 둘 테니까, 그날 회식하자고.”
“아니요, 아니요. 저랑 술 마신다고 하셨잖아요? 저랑!”
살짝 높아진 언성이 앙탈을 부리는 것 같아서 몹시 속이 부대낀다.
나보다 9살 어린 저 녀석. 여자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왜 자꾸 이러는지 원. 하긴 3살 많은 박준희 사장도 그랬다가, 지금은 안 그러지. 사람 일 모른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냐? 뭐 나 꼬시기라고 할려고?”
“푸히힛. 어떻게 아셨어요?”
“확! 마. 1절만 해라. 할 얘기 다 했으면 가서 일해!”
“금요일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날 저랑 약속 잡은 겁니다. 아셨죠? 다른 직원들한테는 절대 비밀로 하겠습니다아.”
저 아양과 앙탈을 언제까지 들어 줘야 하는 것일까?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회사 일을 생각하면 또 그렇게 못하겠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직원들 혼낸 적이 없다. 아니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애들 싸웠을 때 언성을 높이긴 했구나.
뭔가 수렁에 빠진 기분이다. 진퇴양난이랄까? 그래, 약속은 지키되, 아주 싹부터 밟아 줘야겠다.
“알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제 됐지? 가서 일해.”
“넵, 사장님! 일 열심히 하겠습니다아!”
민희 말하는 톤이 너무 커서 넝마주이 같아 보이는 군복 입고 어설프게 거수경례하는 느낌이랄까? 저 고삐 풀린 망아지를 어째야 할꼬.
다음 타자로 김지연 대리가 들어왔다. 보고만 받다가 하루가 다 가겠다.
“대리님, 여기 앉으세요. 제가 지시한 건 잘 준비되고 있죠?”
“네, 그럼요. 일주일에 두 번씩 회의하고 있어요.”
“회의는 짧게. 결정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
분사 계획 가안을 잡아 오라고 지시했는데, 2주가 지나도록 회의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계획이 빨리 잡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말이다.
“아, 이게요. 박 대리가 공장 배치도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서, 유원종합건설이랑 의논해 보려고요. 그거 준비한다고 시간 좀 걸리네요.”
“그건 좋네요. 박 대리가 아이디어 잘 낸단 말이죠.”
“걔가 안 그런 것 같아도 할 얘기는 다 해요. 부지 추가해서 공장 또 지으면 동선도 좀 복잡해질 것 같고, 지금 기숙사 건물도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하고, 체크할 게 많더라구요. 아무튼 예산까지 제대로 뽑아 볼 테니까 조금 기다려 주세요.”
“그렇다면 기다려 줘야죠. 빨리 짜 오면 좋긴 한데, 그렇다고 건성으로 하면 안 되니까 꼼꼼하게 플랜 잡아 보세요.”
“네. 근데요, 사장님.”
김 대리도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할 얘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랄까? 첫 보고자로 들어왔던 박 대리가 그립다. 할 말만 담백하게 하고 끝내는 그 녀석.
“네, 말씀하세요.”
“왜 그, 직원 채용하는 것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이번 주 내내 면접 보니까 빠르면 다음 주부터는 신입 직원 들어올 겁니다. 그런데 들어와도 교육 때문에 다음 달부터나 같이 일할 수 있을 거예요.”
공장은 현장이 중요하다. 아무리 사무직이라도 현장을 모르고서야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맡아야 하는 업무가 많고, 멀티플레이가 요구되는 중소기업 사무직은 더할 것이다.
이번에 뽑은 신입들은 현장별로 일주일씩은 돌릴 계획이다. 다들 사람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라도 교육만큼은 확실하게 시켜야 한다.
교육을 버티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 인연이 아닌데, 추노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아휴. 애들이 아는 애들 데려온다고 해서 일손 좀 덜겠구나 했더니, 아직 멀었네요?”
“하하. 점점 나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직원들 덜 힘들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네, 알았어요. 근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이 대화는 언제 마무리되는가? 마무리하는 톤으로 얘기했는데도, 그걸 또 이어받네.
“못해도 한 달은 기다리셔야죠.”
“아니요. 그거 말구요. 사장님한테 언제 국수 얻어먹을 수 있냐구요. 호호.”
이 아줌마가 또 시작이네. 이게 대화 끝났다는 신호란 말인가! 대체 황미연 사장은 인수인계를 어떻게 했기에 틈만 나면 연애 타령, 결혼 타령이란 말인가!
“자, 이제 가서 일하세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구요.”
“호호호.”
하나는 들이대고, 하나는 들들 볶고. 내가 사무실에 있으면 안 되겠다. 에잇, 현장이나 가자.
공장장과 담소나 나눌까 해서 현장으로 가는데, 전화가 발길을 잡는다. 에잇, 진짜. 전화 좀 그만 와라.
대한전력 배전계획처 박윤찬 처장? 무슨 일이지? 일단 최대한 반갑게 받아 줘야지.
“네, 처장님.”
“사장님. 아이고, 저번 주에 대접 잘 받았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운딩은 괜찮았습니까?”
“부사장님이 다 쓸어 갔습니다. 하하. 직급이 깡패죠. 하하하.”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이 있지 않은데, 과하게 친한 척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다. 뭔가 부탁할 일이 있나?
“저도 지금 부지런히 배우고 있으니까 다음에 같이 한 바퀴 도시죠.”
“그거 좋지요. 그날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언제 식사 한번 하시죠? 제가 소개해 드릴 사람도 있고.”
“저는 좋습니다. 처장님 괜찮은 시간 말씀해 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근데 소개해 주실 분이라면?”
“아, 뭐. 처장까지 하고 퇴직하신 형님이 계신데, 너무 아까운 분이라 사장님한테 인사 좀 시켜 드릴까 합니다. 괜찮으시죠?”
“네, 그럼요.”
올 것이 왔군. 기분 좋으면서도 살짝 불안해지기도 한다.
큰 회사에 있던 사람이 퇴직하면 단계를 낮춰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무원은 대기업으로, 대기업은 중견으로, 중견은 중소로. 능력보다는 인맥의 힘이 미치는 크기에 따라 옮겨 가는 것이다.
대한전력 퇴직자는 일단 대기업 건설회사 감리로 들어간다. 대한전력 출신은 어지간하면 전기감리원 자격을 받기 때문이다. 2년 정도 건설 현장 사무실에 누워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월급 꼬박꼬박 받아먹다가 약빨 떨어지면 아래 등급 회사로 간다.
우리 회사 같은 중소기업은 약빨이랄 것도 없을 상황에서야 들어온다. 그것만으로도 본전은 뽑게 해 주니, 대한전력 출신들이 꽤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처장까지 끝내고 갓 퇴직한 사람이 우리 회사로 오겠다? 대한전력에서 우리 회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것 같다. 이건 뿌듯하다.
그건 그거고, 낙하산으로 고위직을 받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처장까지 한 사람이면 못해도 상무는 달아 줘야 한다. 급여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직원들이 좋게 볼지가 염려된다. 가끔씩 절제 못하고 날뛰는 사무실 직원들을 잡아 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만.
영입한다고 해도 무슨 일을 시킬지도 고민이다. 변압기야 이미 짱짱한 기반이 마련돼 있으니 굳이 도움이 필요 없다. 다른 분야?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는 현장이 아닌 마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단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생각을 정리하자.
내가 어디 좀 가려고 하면 전화가 걸려 오듯이, 고민 좀 하겠다 싶으면 문자가 오던데, 문자님은 뭐 하시나?
액정보호필름 옆으로 흙먼지가 껴 있는 핸드폰은 조용하다. 검은 화면이 변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진동과 함께 화면이 켜진다. 문자다! 문자가 왔다고!
-인재 영입에 고민할 필요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