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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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내가 회사 차린다 196화>196 정년퇴직
이 육회비빔밥집. 나주 내려온 지 2년 만에 나에게는 만남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자리 잡기 어려울 정도로 늘 사람이 북적거린다. 사람이 많아 여러모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맛있다.
용케 하나뿐인 방을 잡고 찾아올 손님을 기다렸다. 대한전력 손님들. 문자님이 인재라고 했으니, 기꺼이 받아 주겠다. 어떤 역할을 할지는 오늘 얘기하다 보면 윤곽이 드러나겠지.
“아이고,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대한전력 배전계획처 박윤찬 처장이 얌전해 보이는 사람과 방에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시간이 남아서 조금 일찍 온 것입니다. 하하.”
“사장님, 여기 인사 나누시죠. 최윤근 처장님이십니다. 기술기획처장 하시고 5월에 퇴직하셨지요.”
최 처장? 퇴직했으니 처장은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하네. 이럴 땐 상대방이 호칭을 정해 주는 것이 편한데.
“반갑습니다. 사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야 뭐 나이 먹고 승진 못해서 회사 나온 백수입니다. 허허.”
“지정수입니다. 정년퇴직하신 것이죠?”
“네, 맞습니다. 딱 32년 일했습니다. 그 정도 했으면 더 있는 것도 민폐죠.”
박 처장이 유난히 친한 척을 하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저한테는 아주 친형님 같은 분입니다. 우리 형님이 정년이 차서 승진 못하신 거지, 안 그랬으면 본부장 찍고 부사장까지 거침없이 가셨죠.”
“허허. 사람 민망하게 왜 그러나? 그나마 정년 연장돼서 이렇게라도 버텼지 뭐.”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일단 식사부터 주문하시죠. 여기가 고기도 좋지만 육회비빔밥이 아주 좋습니다.”
“하하. 이 집 괜찮은 거 모르면 이 동네에서 간첩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이 집도 대한전력 이춘배 부사장 소개로 알았다. 괜히 굼벵이 앞에서 주름 잡은 격이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떠들어야 한다. 친분이 없는 사람과 있을 때는 더 오버할 필요가 있다. 불편해도 어쩌겠나. 사람 만나는 것이 사장 일인데.
“저도 회사 다녀 보니까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계신 분들을 정말 존경하게 됐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허허. 뭐 구름 따라 바람 따라 그렇게 보내는 것이지요. 우리 회사도 별의별 사람 다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먹고 살려면 참고 다니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정년을 채웠습니다.”
한 직장에서 32년.
말만 들어도 저절로 욕이 나올 만큼 경이적이다. 공룡기업이라 대우도 좋고 순환보직제도 때문에 버틸 수 있었겠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월급쟁이 생활 3년도 죽을 것 같았는데, 32년이라니.
“우리 형님이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좋아요. 줄도 잘 타고 사바사바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합니다. 후배들은 다 치고 올라오는데 자리 다 내주고.”
“아이, 이 사람아. 나보다 능력이 좋으니까 먼저 올라간 거지. 그래도 박수 받으면서 퇴직했으면 됐어.”
“승진만이 전부는 아니겠죠. 본인이 만족하며 직장 생활했으면 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맞아요.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할 만큼 했고, 열심히 일했으니 뭐 바랄 것이 없지요. 허허.”
정년퇴직하려면 저렇게 멘탈이 강해야 하는구나. 한 귀로 들으면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있는 스킬을 더 연마해야겠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육회비빔밥이 나왔다. 언제 봐도 탐스러운 색깔이 군침을 흘리게 한다. 된장국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아밀라아제 분비를 촉진시킨다.
맛은 두말할 것 없는 육회비빔밥을 먹으며 장삼이사들이 할 만한 일상의 얘기를 주고받았다. 대충 빌드업하다가 분위기가 됐다 싶으면 취업 요청이 들어오겠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포문은 박 처장이 열었다.
“지 사장님, 회사가 너무 잘나가는 것 아닙니까? 하하. 거짓말 좀 보태서 우리 회사에서도 모였다 하면 프라임일렉트릭 얘기만 합니다.”
“아휴, 그 정도는 아닙니다. 나주에 빨리 정착해서 득 본 것 때문이죠. 대한전력 아니었으면, 지금도 마찌꼬바 신세였겠죠.”
“회사 세운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신제품 척척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 많은 물량 받고도 연체 한 번 없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하하. 너무 띄워 주십니다. 겁 없이 나섰는데, 운때를 잘 만난 것이겠죠.”
박 처장이 최 전 처장을 슬쩍 쳐다보고 나서는 살짝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 형님이 너무 아까운 분이라 지 사장님께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형님이 행당대 공대 나오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 행당대 공대라고 하면 다들 엄지 척이었죠.”
“아이, 뭘 옛날 얘기를 하고 그래. 사장님, 제가 얘기를 하자면, 퇴직하고 나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보람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프라임일렉트릭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박 처장이 판을 깔고, 최 전 처장이 매조지했다. 어차피 뽑을 것이긴 하지만, 중역 면접치고 너무 허술하게 한다는 느낌이다. 전문 분야는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정도는 얘기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뜸이 더 들여야 해.
“우리 회사를 높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대한전력 처장까지 하셨으면 대기업에서 연락이 많이 왔을 것 같은데요?”
“오라고 하는 데 많았지요. 다 마다했습니다. 대기업 가면 뭐 합니까? 소파에 앉아서 바둑이나 두고 있겠지요. 거긴 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처장 했다는 경력이 필요한 것이죠.”
“다들 편하게 하려고 하시는데, 정열이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말처럼 쉬운 곳이 아닙니다. 큰 회사처럼 체계가 확 잡혀 있지도 않고, 페이퍼워크도 제대로 되는 곳이 아닙니다.”
“허허. 잘 알지요. 제가 품질만 15년을 했습니다. 전국 다 돌아다니면서 별의별 회사를 다 봤습니다. 보니까, 사장 마인드가 회사 운명을 좌우하는 것 같습디다. 20년 전에 찾아갔던 회사들 중에 지금 남은 회사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름 괜찮은 빌드업이다. 중소기업들이 마찌꼬바 신세를 못 벗어나는 것이 사장 마인드가 개판이라는 분석인데, 우리 회사 오겠다는 것은 내 마인드를 좋게 봤다는 뜻 아니겠나? 잘 봤네. 근데 꼭 저렇게 되물어 봐야 하나.
“글쎄요. 그래도 꽤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열에 하나도 안 됩니다. 내규도 없고, 절차도 없고, 체계도 없고, 그냥 막무가내로 회사를 운영하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지 사장님. 우리 형님이 회사 사규랑 내규 다 만드신 분입니다. 아, 물론 전에도 있었지만, 형님이 시스템 쪽 맡으면서 확 뜯어고쳤죠. 형님이 품질하고 시스템 쪽에서는 아주 전문가입니다. 형님, ISO 심사자격증도 있잖습니까?”
박 처장의 어시스트가 적절하게 들어왔다. 우리 회사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어찌 알고 훅 들어오는지 원. 내규나 QM 관련 문서들은 덕준이가 개고생하며 만들어 놓긴 했지만, 대한전력이 요구해서 만들어 둔 것이지 실제 업무에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장인 나부터 경험이 부족하다. 회사 베테랑들은 페이퍼워크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고.
등이 간지러운데 와서 시원하게 긁어 주겠단다. 거기에 갓 퇴임해 생생히 살아 있는 인맥을 가지고 말이다.
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잠시간의 침묵이 불편했던지 최 전 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말을 좀 오해하게끔 했습니다. 프라임일렉트릭이 그런 회사란 얘기가 절대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도 우리 회사가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듣기로 사장님께서 아주 열정적이시면서도 여타 회사랑 많이 다르게 운영한다고 하셔서, 좀 애가 탔습니다.”
“애가 타다니요?”
“경험상 이런 회사는 조금만 잡아 주면 확 치고 올라갈 수 있는데, 혹시나 그러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더군요.”
나에게는 문자님이 계시기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심 사상누각이 되는 것은 아닌가, 너무 빨리 달리다 지쳐 버리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제일 간지러운 부분이지만, 이 지점에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면 박힌 돌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회사를 너무 좋게만 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처장님께서 회사의 부족한 부분을 손봐 주시면 저야 아주 고맙죠. 근데 일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체제를 잘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요즘 요구되는 것이 생산성, 효율성 아니겠습니까? 기반이 잘 닦여 있어야 능률이 오르죠.”
“그건 동의합니다. 저도 그래서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뭔가를 고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존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단번에 바꾼다는 것도 어렵고 말입니다.”
나와 최 전 처장의 대화를 들으며 묵묵히 육회비빔밥을 집어넣고 있던 박 처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나섰다.
“좋은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하. 우리 형님이 노조 활동도 하고 그랬는데, 내규 뜯어고치기 시작하니까 노조에서도 등을 돌립디다. 그래도 우리 형님이 보통 분입니까?”
“너 오늘 너무 띄우는 것 아니냐? 여기 사장님이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오해하겠다야.”
“아니, 형님. 대단한 분 맞지요. 사람들 다 만나면서 술 마시고 설득하고,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남들은 승진하겠다고 윗사람 비위 맞추고 있는데, 고과에 도움도 안 되는 일 한다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좋은 사람이구나. 좋은 사람은 인내심이 장난 아니다. 얘기 다 들어 주고, 어떻게든 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안 되면 왜 안 됐는지 얘기해 주고. 그걸 해낸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 만나서 대화하고, 계속 두들기셨군요?”
“뭐, 맡은 일이 그건데 별수 있습니까? 허허. 저도 잘 압니다. 선배들도 퇴직하고 사기업 들어가서 제일 힘든 점이 사람 대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라도 그러죠. 우리 회사도 낙하산 아닌 사장이 없었죠. 우리가 낙하산 들어오면 좋게 보겠습니까?”
“중소기업이야 낙하산이 일상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대한전력 같으면 직원들이 좋게 보진 않겠죠.”
“그래도 어쩌다 오는 좋은 사장들은 그걸 이겨 내고 잘 융화를 합디다. 안 그런 사장이 대부분이긴 하지만요. 허허.”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역시 우리 문자님은 사람 보는 눈도 대단하시다.
“그나저나 식사를 좀 하시죠. 한두 숟가락만 뜨고 통 안 드시는 것 같습니다.”
“허허. 제가 좀 말이 많았습니다.”
1부 공연이 끝났으면 인터미션을 갖는 것이 예의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얘기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적당히 먹었다 싶을 때 박 처장이 또 나섰다.
“사장님. 우리 형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뭐 힘은 없지만, 저도 많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오히려 제가 부탁을 드려야지요. 최 처장님, 그런데 우리 회사가 규모가 작아서 조건이 맘에 안 드실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허허. 저요, 벌 만큼 벌었습니다. 뭐 당장이야 연금이 안 나와서 좀 아쉽긴 해도 어디 가서도 체면치레할 정도는 하고 삽니다.”
“좋습니다. 편하실 때 아무 때나 회사 한번 방문해 주시죠. 우리 회사 면접 본다 생각하시면서 공장도 좀 둘러보시고, 직원들 일하는 것도 보시죠?”
“제가 뭐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니지요. 아무튼 초대해 주시니 곧 들르겠습니다.”
인재 영입이 마무리됐다. 문자님이 인재라고 하니 인재가 맞고, 내가 생각해도 인재 같으니 인재가 맞다. 물량 뽑느라 달리기만 한 우리 회사를 위해 이온음료를 건네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제가 사장님께 좀 부담을 드린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하하. 제가 조만간 처장님 찾아뵙고 부담 좀 드리겠습니다.”
박 처장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다. 난 신기술 계속 개발할 테니, 당신은 부지런히 채택해 주면 돼.
“혹시 또 뭐 개발하셨습니까? 아니, 이번에 고효율주상변압기하셨고, 내년 입찰에 패드랑 아몰퍼스 들어가고. 또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지금도 우선배정 많이 받는데, 또 받는 건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거참. 뭘 그리 또 하셨습니까? 하하.”
각진 코아와 소음 개선. 아직 두 발 남았다. 품질 개선 인정받으면 각각 10퍼센트 받을 수 있다. 좀 묵혀 두자.
그릇을 싹싹 비워 내고 계산까지 말끔히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이거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요. 하하. 잘 먹었습니다.”
“처장님께서 좋은 분 소개해 주셨는데, 어찌 제가 가만있겠습니까? 밥값이라도 내야죠.”
“이거 또 이렇게 신세를 집니다. 저기, 우리 회사 관련해서 하실 얘기 있으면 언제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말씀해 주세요. 제가 그거라도 잘 들어 줘야지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한전력 덕분에 먹고 사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인재 영입에 더해서 대한전력 핵심 부서인 배전계획처장과 강력한 끈도 이어졌다.
이젠 진짜 친하게 굴어도 되겠군. 역시 육회비빔밥은 항상 옳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