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97)
197 굴러온 돌
가히 면접 위크이다. 우리 회사에 오겠다는, 혹은 왔으면 하는 사람들이 연일 회사를 찾아왔다.
면접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바삐 돌아가는 공장을 보면서 생기가 샘솟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 많은 회사라며 지레 겁먹는 사람도 있다.
이 바닥에서 밥 벌어먹었던 사람들은 보상이 두둑하다는 소문을 듣고 왔기에 하루라도 빨리 오고 싶어 하는 눈치다. 이제 막 험난한 사회로 진출한 햇병아리들은 자신을 받아 줄 곳이 중소기업밖에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면접은 별게 없다. 유수한 대기업들처럼 심오한 철학적 질문도 없고, 그저 일 잘할 수 있는지, 기존 직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만 평가한다. 나와 공장장, 부서 책임자가 모두 오케이하면 바로 채용이다.
만장일치가 잘 나오지 않는다. 내 성에 안 차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왜? 일 잘하고 성실해 보이는데?”
“그냥 감인데, 인상이 좋아 보이진 않아요. 평소엔 잘하겠지만, 위기나 긴급한 상황 되면 본색이 드러날 것 같네요.”
잦은 반대에 살짝 흥분한 공장장을 달래 줬다. 납득하기 어려울 얘기로 말이다. 신기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사람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과학적인 근거 따위는 없는 관상학이지만, 딱 보면 어떤 사람일지 윤곽이 보인다.
능력이야 회사의 조직이 얼마나 잘 끌어내 주느냐에 달려 있지만, 인성은 개인의 문제이다. 회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인성이 어떨지 대략이나마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좋다고 찬성을 하나?
“허허, 참. 뭐 우리 사장님이야 선택하면 그게 딱딱 맞아떨어졌으니 믿어야겠지만, 내가 보기엔 저 사람 좀 아까운데?”
“일 잘할 것 같아도 직원들이랑 잘 못 어울리면 오래 있기 힘들 거예요. 이게 낯가림 있고 소심한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 때문에 대인 관계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그런 냄새가 났어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인지 모르겠지만,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사업이니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사람 속은 누구도 미리 알 수는 없으니까.
문득 한 유명한 회장이 생각났다. 매출이 조 단위가 넘어가는데도 아직까지 상장조차 하지 않는 알짜 회사를 이끄는 수장인데, 회사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점을 본다는 그 회장 말이다.
경영 한번 샤머니즘스럽게 한다 생각했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와도 돈을 벌고, 태풍이 와도 돈을 벌고 계속 돈만 벌고 있다. 사업이라는 것이 과학과 비과학을 넘나드는 고차원적인 행위인가 싶다.
연일 계속된 면접 끝에 사무직 4명과 현장 중간 관리자급 5명을 채용했다. 이제 회사 직원은 179명에 달한다.
머지않아 200명대를 돌파하겠군. 그래도 직원 1인당 평균 매출이 12억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미친 수준이다. 판타지 소설이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
면접 위크의 대미는 대한전력 퇴직자인 최윤근 전 처장이 장식했다.
“처장님. 어서 오세요.”
“바로 오려고 했는데, 서울에서 일 좀 보느라고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이 있나요? 하하. 사무실에서 차 한잔하시고 공장 좀 둘러보시죠.”
최 전 처장이 사무실을 쭉 살펴본다. 책상이 20개 놓여 있지만, 아직은 반이나 비어 있는 사무실 말이다.
사무실 가득한 화분으로 아마존을 연상할 정도로 우거진 녹음 사이로 아마조네스들이 일어나서 어정쩡하게 인사를 한다. 저들끼리 모여서 저 사람 누군지 추리하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일 못하는 것은 용서해도 사무실 어지럽히는 건 용서 안 한다고 엄포를 놔서 그런지, 사무실 전임 수장이었던 황미연 사장이 깔끔 떨면서 사무실 청소했던 것이 그대로 이어진 것인지, 사무실은 깔끔 그 자체이다.
생산 현장이고 사무실이고, 정리정돈 잘되고 깔끔해야 일할 맛이 나는 법이다. 귀찮아도 습관을 들여 놔야지, 한 번 어지럽히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가 없다.
내가 태양전기 다닐 때 수시로 하던 일이 사무실과 현장 정리하는 것이었다. 정리하는 것 빤히 보면서도 공구 던지고 가는 직원, 바빠 죽겠는데 뭐 하고 있냐고 소리 지르는 직원, 할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시비 걸고 가는 직원. 그런 회사가 태양전기였다.
“사무실이 참 깔끔하네요. 직원들 표정도 생기가 넘치고.”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곳이 직장인데, 내 집처럼 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한전력 실사항목 중에 사무실과 생산현장 청결유지 점검표 작성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다른 것까지는 매번 못해도 그건 매일 체크합니다.”
“허허. 대단하십니다. 그건 그냥 요식 행위로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실사 다닐 때도 그건 그냥 점수 주는 항목이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시어머니 잔소리꾼이라 직원들이 고생을 좀 합니다. 하하.”
사장실에서 차를 마시는 둥 마는 둥 별 영양가 없는 얘기들로 시간을 때우다, 현장으로 내려갔다.
사무실처럼 현장도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참 아쉽다. 변압기가 습도에 예민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봤는데, 창원에 있는 한 공장은 직원들을 위해 공장을 수목원처럼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게 심리 안정에 도움을 주는지 생산성이 더 높아졌다는 후문까지.
그 정도는 아니라도, 여느 공장보다는 나은 환경이라고 자부한다. 올 여름 미쳐 버린 무더위를 이겨 내게 해 준 공조 장치. 깔끔하게 정리된 현장. 동선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배치된 설비들.
“사무실에서도 느꼈지만, 현장도 참 깔끔하고 좋네요.”
“실무야 직원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어서, 저는 청결이나 신경 쓰며 잔소리하는 것이죠 뭐.”
최 전 처장이 창문틀을 슬쩍 보더니 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감춘다.
여름을 보내고 나면 창문틀이 정체불명의 벌레들의 무덤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직원들이 그 꼴을 그냥 놔둘 리 없지.
정작 놀랄 것은 공장 청결이 아닌데 말이야. 최 전 처장을 쇼킹 에어리어로 데리고 갔다. 누구라도 이곳에 온다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턱이 빠지는 경험을 한다는 권선제작동.
“사장님, 저 설비는 뭡니까? 권선 관련된 것 같은데 본 적이 없네요.”
“네, 저게 대한전력 그 많은 물량 연체 없이 납품하게 만들어 준 자동권선기라는 겁니다. 말 그대로 자동으로 권선을 감아 냅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허허. 이거 권선공들 다 밥 굶게 생겼습니다.”
나야 문자님의 은총 덕분에 바로 완성품으로 뛰어들었지만, 변압기회사 다니다 독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선 공장으로 시작한다. 권선이 늘 부족하기에 권선공 몇 명 데려다 외주로 권선을 감아 주는 것이다. 그러다 돈 벌면 완성품으로 넘어간다.
그 정도로 권선은 중요하면서도 사람 없이 만들 수 없다. 겉핥기로나마 변압기를 알고 있는 최 전 처장이 당연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권선 감는 속도도 꽤 빠릅니다? 이 정도면 사람보다 훨씬 낫겠는데요?”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했더니 지금은 하루에 24대에서 25대 분량까지 나옵니다.”
“이야, 엄청나군요. 이게 꽤 많은데 한 달 생산량이 어마어마하겠습니다?”
“25대가 가동 중인데, 그렇게 해도 한 달에 18,000대 정도입니다. 민수랑 수출도 하니까 그 정도는 해야 납품량을 맞출 수 있습니다.”
최 전 처장 턱이 빠지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이것뿐만이 아닌데, 처음부터 너무 놀라는 것 같다. 아직 보여 줄 것이 많은데…….
가는 곳마다 길을 막아서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놀라는 통에 공장 견학이 한 시간이 족히 흘러 버렸다.
견학을 끝내고 현장 사무실에서 공장장과 상견례를 가졌다.
“공장장님, 인사하시죠. 대한전력 기술기획처장으로 계시다 얼마 전에 정년퇴직한 최윤근 처장님이십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공장장 맡고 있는 박호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윤근입니다. 앞으로 여기서 제2의 인생을 보내려고 하는데, 많은 가르침 바라겠습니다.”
공장장의 눈빛이 많은 것을 얘기한다. 눈치로 우리 회사 들어올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지만, 심경이 복잡한 모양이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정년을 하셨다구요?”
“하하. 요즘에 어디 환갑이 환갑처럼 보입니까? 제가 57년 닭띠입니다.”
“아, 그래요? 나는 말띱니다.”
“형님이셨네. 저는 워낙 젊어 뵈셔서 한참 밑인 줄 알았습니다. 하하.”
두 노인들의 화기애애한 대화이지만, 대화로 신경전을 끝마친 느낌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나이가 깡패니까.
간단한 상견례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본격적인 영입 협상에 들어갔다.
“처장님. 우리와 함께 일해 보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으십니까?”
“아, 그럼요. 현장 둘러보고 나니까 제가 딱히 할 일이 있을까 싶지만, 뭐든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처장님이 대한전력에서 갈고닦은 노하우만 잘 전수해 줘도 저야 아무 감사하죠. 직급은 상무로 하고자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대한전력 처장이면 중소기업에서는 상무 그 이상일 것이다. 그래도 급여가 세니까 만족하겠지 뭐.
“일하게만 해 주시면 뭐든 좋습니다. 그리고 ISO 심사는 제가 하면 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우리 회사 180번째 직원이 계약서를 작성했다. 관리 및 QM 총괄.
생산을 공장장이 책임진다면, 품질과 사무는 최 전 처장, 아니 최 상무가 책임지도록 했다. 우리 회사의 질적인 업그레이드를 기대해 봐도 되겠지?
“김 대리님. 인사 나누세요. 다음 주부터 출근하실 최윤근 상무님이십니다. 작업복이랑 안전화 주문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김지연입니다. 경리예요.”
“잘 부탁합니다. 저 있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평소처럼 지내 주세요.”
최 상무와 악수를 나누는 김 대리 눈빛에서 여러 얘기가 흘러나온다. 여인천하였던 사무실에 지나가는 나그네가, 그것도 상급자로 나타났으니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면접 위크의 모든 면접을 마무리하고, 다시 현장에 내려가 공장장을 찾았다. 바빠서 미리 말을 못했으니 좀 당황했을 것이다.
“공장장님. 처장님은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최 상무라고 해 주시면 됩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합니다.”
“뭐 나한테 보고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죄송해하고 그래. 최 상무는 그래서 무슨 일을 맡는 건가?”
“품질 쪽 전문가라고 하더라구요. 관리업무 총괄하면서 회사 체제 다듬는 일을 할 겁니다.”
“으음. 사장님이 선택했으니까 잘하겠지만, 괜찮겠지?”
공장장의 불안해하는 눈빛을 읽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다. 앞으로 여러 가지로 부딪힐 것을 걱정하는 것이겠지?
30년 넘게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오고 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겪어 내야 할 친밀의 과정이 지난하게 느껴질 것이다.
“문제 일으킬 만한 사람이면 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본인이 우리 회사 다니고 싶다고 하는데, 점령군처럼 행세하지는 않을 것이에요.”
“품질이라고 하니까 박진호 그 새끼가 떠올라서 말이야.”
“하하. 실력도 없는데 완장 차고 와서는 현장에다 이러쿵저러쿵 시비나 걸던 사람이랑 비교가 됩니까?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박진호가 우리 회사 오겠다고 찾아왔을 때 인정에 못 이겨서 받아 줬다면 최 상무 영입은 힘들었을 것이다.
문자님의 계시가 이해가 된다. 박진호를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 말 하지 않으셨지만, 최 상무에 대해서는 고민하기 무섭게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최 상무 확실한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하긴, 그런 놈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일하다가 좀 안 맞는다 싶으면 술 좀 먹이지 뭐. 하하. 그 최 상무 술 좀 하나?”
“전기쟁이가 술 못 마시면 그게 어디 전기쟁이입니까?”
“그 말이 맞네. 하하. 근데 우리 사장님 말이야. 진짜 전기쟁이 되려면 술 좀 늘려야겠어? 그거 가지고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겠나?”
술을 못 마시는 것과 최악의 노래 실력. 이 두 가지는 빨리 이겨 내고 싶다.
인재 채용과 영입이 마무리됐다. 180명을 이끄는 이 회사의 수장으로서, 이번 영입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 전에 망아지 한 마리 볼기짝 좀 때려 줘야 한다. 금요일 저녁. 피할 수 없으면 지그시 밟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