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3)
023 다가오는 자
“농담이에요, 농담. 너무 딱딱하게 대하시는 것 같아서 분위기 좀 띄워 보려고요.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먹던 회가 살아 움직이는 줄 알았다. 놀래라.
민수에서만 200억 넘게 팔아먹는 금성전기가 우리 잡겠다고 움직이면 서로 피가 쩍쩍 말라비틀어지는 것이다. 박 사장, 이거 사람을 가지고 놀 줄 아는구만. 한 방 맞은 느낌이 좋지 않다. 아직 농을 던질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이제 막 사업 시작한 상황이라 여러 가지로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재미있는 농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저를 은근히 경계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 나쁜 사람 아닌데, 너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인데, 도리어 언짢게 해 버렸네요. 사과드릴게요.”
“저도 과하게 정색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슴 같은 눈망울이 촉촉해진다는 느낌이 들자 내가 너무 정색했나 싶다. 오늘 이래저래 페이스에 말리는 분위기이구만. 그저 편할 수 있었던 자리를 내가 여러 생각과 경계심으로 불편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아니에요. 이러면서 친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오늘 여기는 사장님하고 친해지려고 마련한 자리예요. 저는 같은 사업 하는 분들과 싸워 가면서까지 회사를 키우고 싶지 않아요. 솔직히 태양전기 때문에 좀 무리하긴 했지만, 선의의 경쟁 하면서 지내면 좀 좋아요?”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러나 싶다.
“제가 생각지도 못하게 회사를 이끌고 있긴 한데, 저는 경영 수업 받아 본 적이 없어요. 그저 제가 생각한 대로 했을 뿐이죠. 사장 자리 있는 동안 딱 하나는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솔직함이죠. 전 직원들한테도 회사에 대해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합니다. 제가 아까 사장들 문법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씀드렸죠. 말 그대로예요. 뭐 종종 눈치 없다는 얘기를 듣긴 하지만요.”
솔직하게 얘기할 테니 너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솔직하게 대하자?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원. 일단 적절하게 받아 주자. 동의해 주는 척 받아 주다 보면 본심이 나오지 않겠나?
“사장님께서 회사 맡으시고 회사가 엄청 성장했다고 하던데, 그게 비결이었나 봅니다.”
“저도 뭐 믿기지는 않는데요. 결과가 그러니 계속 그렇게 갈 수밖에요. 그런데 사업이라는 것이 제 맘 같지 않더라고요.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경쟁자 죽이겠다고 뛰어드는 회사도 많고 말이죠.”
“부관참시도 서슴지 않죠.”
“네! 맞아요. 솔직히 실망도 많이 했어요. 저는 일단 사람을 믿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 하면 간이며 쓸개며 다 내줄 것처럼 하다가도 나중에 뒤통수 치고 그러더라고요.”
“멀리 보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해서 그렇죠.”
“잘 아시네요. 제가 보니까 뒤통수치고 잘되는 사람 없더라고요.”
“저도 뭐 민수 시장에서 사장님과 경쟁하겠지만, 선의의 경쟁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저는 사장님께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는 것이에요. 우리가 싸울 이유도 없고, 서로 친밀하게 지내다 보면 도울 일 많지 않겠어요? 젊은 사장들 모임 있다고 그랬잖아요? 정말 서로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물론 그 와중에 이익 챙기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박 사장이 적 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으니, 나쁘진 않다. 그래도 아군이 될지는 모르겠다.
“저도 솔직히 민수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지금은 시장이 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자고 일어나면 단가 떨어지는 판이에요. 이거 누구 때문인지 아시죠?”
그럼, 잘 알고말고.
“최 사장님, 아니 지금은 고문이시구나. 그분이 태양전기 세워서 뛰어들면서 시장이 엉망 됐잖아요. 그분이 태양전기 세울 때 아버지가 얼마나 도와주셨다고요. 욕심 안 내면 서로 잘될 것을 왜 그리 욕심을 냈는지 원.”
태양전기 최 사장. 그 성질 더러운 최현아의 아버지를 말이다. 나도 전해 들은 얘기지만, 금성전기 창업주, 그러니까 박 사장 아버지와 민수 시장을 놓고 엄청나게 싸워 댔다고 했다.
덕분에 태양전기는 금성전기 매출을 상당수 뺏어 오며 회사를 키우는 데 성공했지만, 시장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고 하더라. 박 사장 말이 맞다. 뒤통수치고 잘되는 사람은 없다.
“그 얘긴 익히 들었습니다. 시장은 한정돼 있고 업체는 자꾸 늘어나니 그런 건가 싶기도 하더군요.”
“시장이 한정됐다고, 뒤통수치면서 상대방 죽이겠다고 하면 됩니까? 중고 사다가 외함갈이 해서 팔기 시작한 사람이 누군데요! 돈 벌겠다고 시장 다 망치면 됩니까? 아휴, 죄송해요. 제가 좀 흥분했네요.”
적어도 태양전기에 대해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한 것 같다. 태양전기 죽이자고 손을 내밀면 덥석 잡을 것 같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태양전기도 민수 쪽으로 매출 키운다고 손해 엄청 봤을 거예요. 직원들도 고생 많이 했고 말이죠.”
흥분해 눈알이 쏟아질 것 같던 표정이 금세 차분해졌다. 천상 연기자 얼굴이다. 얼굴의 리드미컬한 변화만 바라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이다.
“태양전기 계실 때 고생 많이 하셨죠?”
“뭐 굳이 과거 얘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좋은 기억은 아니라서요.”
“거기 일 잘하는 젊은 직원이 엄청 고생한다는 얘기 듣고 스카우트할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사장님으로 나타나셨네요. 나이가 서른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서른하나입니다.”
“전 올해 서른넷이에요. 나이도 비슷한데 친구처럼 지내요 우리. 앞으로 서로 도울 일도 많을 것 같고. 나쁘진 않죠?”
아군이 되겠다는 선언인가? 아, 정말 모르겠다. 여자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가? 박 사장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
“혹시나 일거리 없으면 연락 주세요. 저흰 일이 넘쳐 나서 문제거든요. 처음에는 외주 받아 가면서 회사 키우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서로 돕고 살죠.”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저도 뭐 도울 일 있으면 적극 돕겠습니다.”
“오늘 시간 너무 뺏어서 죄송하구. 다음에 또 뵙죠.”
박준희 사장이 작별의 뜻으로 손을 내민다. 독일 유학 갔었다고 하던데 포옹 인사는 안 하나? 비쥬인가 그것도 괜찮은데…… 그건 프랑스인가.
* * *
그냥 인사차 밥 먹자고 한 것은 확실히 아니다. 내가 태양전기 출신이라고 하니 어떤 포지션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하겠다는 속셈 같기도 하고, 민수 시장에서 적수가 될지 와꾸를 재 보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데, 의도는 아직 모르겠다. 적이 되지 않겠다는 것은 분명히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이다. 아군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박 사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니 내가 괜히 뒷걸음치면서 거리를 두려는 것은 아닌가?
주변 사람 조언이 필요하겠군. 일단 덕준이부터 시작해 볼까?
“뭐? 여자랑 저녁을 먹었다고? 이거 며칠 전부터 발정 나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네. 그거 자랑할라고 담배 피우러 나오자고 했구만? 진짜 대단하십니다!”
“아니라고 미친놈아! 변압기 회사 사장이라니깐.”
“사장이니까 허접하게 모텔은 안 갔겠네? 와! 사장 되더니 호텔도 가고 성공했네.”
음란마귀가 가득한 덕준이한테 왜 얘기를 꺼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정말로 손만 잡았다고!
“네가 봤을 때는 왜 보자고 했을 것 같냐?”
“신랑감으로 괜찮을지 면접 본 거겠지. 뭐 별거 있겠냐?”
여기서 받아 주면 안 된다. 호응해 주면 그때부터 개드립 향연이 펼쳐진다. 사전 차단 신공!
“개소리 그만하고, 느낌이 어때?”
“솔직히 너무 뻔하지 않아? 관수는 어차피 나눠 먹기라면서? 그럼 경쟁할 것이 민수밖에 없잖아? 민수 시장에서 서로 출혈하지 말자는 거겠지. 경쟁자가 될지 조력자가 될지 와꾸도 살필 겸 말이지. 아니면 진짜 신랑감 찾으려고 했거나.”
“내가 태양전기 출신이라는 것을 자꾸 꺼내는 걸 보니 그런 뉘앙스인 것 같긴 하더라. 근데 자꾸 자기는 솔직하게 얘기하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니 애매하더라고. 뭐 꽤 호의적이긴 했어.”
“내가 여자 심리를 아나 뭐. 이따 황 대리님한테 물어봐 봐. 그래도 같은 여자니까 좀 알지 않겠어?”
“어휴, 괜히 소문날까 불안하네. 대리님은 분명 상무님한테 얘기할 거고, 상무님은 영업 다니면서 얘기하고, 금방 이상한 소문 나는 것 아니냐?”
“서동요 부르는 소리 하고 있네. 근데 말이야. 자동권선기 만들어지면 원가 10프로 정도는 절감된다고 했잖아? 일이만 원에 거래처 옮기는 판인데, 살짝 몇 프로만 내리면 다 먹을 수 있지 않아? 출혈이고 나발이고 싹 집어삼켜야 하지 않겠어?”
역시 덕준이는 영업맨으로 제격이다. 저리 공격적이라니! 회사 말아먹기 딱 좋겠군.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좀 달리 생각이 들더라고. 아군이 될지도 모르는데, 괜히 적 만들어 봐야 좋을 것 없잖아? 몇 달 해 보니까 주변에 든든한 아군이 많아야겠더라구.”
“이놈 이거 구미호한테 홀리셨구만. 그래서 그 사장이랑 손잡고 강강술래라도 추실라고?”
“그렇지! 빙고! 그 사장이랑 손잡고 민수 시장 적당히 나눠 먹으면 매출도 높아지면서 마진이 확 좋아질 것 아니냐? 그럴싸하지?”
“음…… 어차피 우리가 먹지도 못하니, 금성전기한테 생색 좀 내고 재미 보겠다? 금성전기가 그걸 받아들일까? 우리야 상관없지만, 금성전기가 우리랑 가격 맞춰 가면서 한배를 탈 이유가 없잖아?”
“자동권선기! 아군이 확실하다면 자동권선기 팔아서 서로 부담 없이 단가 낮춰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겠지.”
원래 계획은 덕준이 생각과 다를 게 없었다. 자동권선기가 원하는 기능을 한다면 단가를 5프로 정도 내려서 시장을 혼자 다 먹을 생각이었다. 욕은 먹겠지만, 욕이 무서워서 업체들 살려 줄 생각은 없다. 특히 태양전기!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시장도 아니다. 전국을 어찌 다 커버하겠나? 엄청난 관수 물량도 벅찰 텐데, 민수까지 욕심낼 상황은 아니지.
가격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평판이다. 단돈 몇천 원이라도 싸면 팔리는 시장이라 초반에 기선제압용으로 화끈함을 보여 주려고 했지만, 평판 잃을 것이 뻔했다. 경쟁사들은 복종이 아닌 저항을 택할 것이다.
내가 생각이 많이, 아주 많이 짧았다. 제대로 된 아군도 없이 적들을 무찌르려 했으니 말이다. 금성전기하고 손잡고 가격 조금만 내리면 무리하지 않아도 야금야금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
아직 섣부른 생각이지만, 박 사장과 계속 마주칠 테니 피아 식별을 확실히 해야겠다. 아군이 분명하다면, 아군은 살려 주고 적한테만 총질하면 된다.
다음은 황미연 대리! 상무 때문에 세상 구경하기도 전에 결혼했다고 한탄하던데, 도움이 될까?
“그렇게까지 얘기해요? 사장님이 맘에 들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 아닐까요?”
“처음 본 사람이에요.”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 사장님 인물 좋잖아요! 뭐 그분 성격이 솔직한 것일 수 있지만,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정말 맘에 들었나 봐요!”
헛다리를 짚으셨네요, 황 대리님. 전 연상한테는 관심 없습니다요. 뭐 예쁘긴 하지만, 내가 사업을 하지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공장장!
“내가 그 딸은 잘 모르는데, 박정호 사장은 잘 알지. 싸우다 보니까 정들었다고 할까.”
“그래서 공장장님이 생각하시기엔 어떤 것 같나요?”
“박 사장이 사람이 너무 좋아. 그래서 많이 당했지. 실력 좋고 인품 좋은 사람인데 한참 때에 안타깝게 됐지 뭐.”
“그래서 박준희 사장이 아군이 될 것 같습니까?”
“글쎄. 그러지 말고 자주 만나 봐. 이제 한 번 만나 놓고 아군이니 뭐니 생각하는 건 너무 이른 것 같은데?”
그렇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았다. 여자라서 괜히 설렌 것인가 싶네.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나 싶어 이불을 냅다 걷어찼다.
공장장 말대로 더 지켜보자. 지금 중요한 것은 나에게 든든한 무기가 될 자동권선기 제작이다. 빨리 가동을 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