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4)
024 게임체인저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서 아우성이다.
누구지? 지역번호가 061이면 전남인데……. 혹시?
“네, 여보세요?”
“대한전력 송정길입니다.”
“아! 네, 과장님!”
대한전력이라는 말에 괄약근에 힘이 팍 들어갔다. 드디어 전화를 했군. 저번에 퇴짜 놓은 것을 두고 화를 내야 마땅하지만, 빌어먹을 사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일단 내용을 듣자. 참아야 한다. 참자.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이거 정말 직접 개발하신 것 맞나요?”
뭐야? 억지로 참고 있는데, 싸움을 걸어? 한 따까리 하자는 것이야? 휴우, 참자. 참아.
“제가 갖다 드린 자료 말씀이시죠? 그럼요. 저희 연구진이 1년 넘게 고생해서 개발한 것입니다.”
“폄훼하자는 뜻은 아니니까 오해는 마시구요, 믿을 수가 없어서요.”
“믿을 수가 없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어떤 방법으로 개발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원하는 사양에 다 부합하니 이걸 안 쓰는 것이 오히려 문제겠네요.”
이 자식아! 빨리 좀 말해 주지! 으하하. 됐다! 됐어!
“아, 감사합니다!”
“일단 절차가 좀 걸릴 것입니다. 시제품 상용화 시험도 해야 하고, 구매 구격 신설하려면 공청회도 열어야 하구요.”
“물론이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저희는 경쟁 입찰이 원칙이라 개발에 성공한 회사가 복수여야 합니다. 다른 회사가 개발 늦어지면 어쩔 수 없이 수의 계약 하겠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저희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네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특허 개방하고 다른 기업들 많이 도와줘야죠.”
내가 미쳤다고 그냥 도와주겠냐. 얼마나 머리 조아리느냐를 봐야지. 후훗.
“아무튼 이거 개발하느라 고생하셨겠네요. 저번에 제가 출장 가는 것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바쁘게 일하시다 보면 그럴 수 있죠.”
“그럼 조만간 한번 들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간신배가 따로 없다. 비굴 모드가 하드하다 못해 신급 난이도까지 올라갔다. 공기업이 중소기업 상대로 갑질한다며 비분강개하던 난 어디 갔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어찌 비굴하지 않을 수 있겠냐!
우리나라 전기를 책임지는 공기업 대한전력이 우리 개발품을 채택해 주시겠다고 하지 않느냐! 3년간 20퍼센트가 떨어진다!
“다 모여 봐요! 대박이 떨어졌습니다!”
“사장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대한전력에서 고효율주상변압기 채택하겠답니다! 3년간 20프로라구요!”
“진짜야? 우하하하. 대박이네, 대박이야!”
잠시 동안 공장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차린 지 1년도 안 된 회사가 단박에 천억 매출을 올리게 생겼으니 누군들 안 좋아하겠는가!
“제가 느낀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마찌꼬바에 불과하지만, 확실한 기술이 있으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우리한테 기술 배워 가려고 변압기 사장들 줄줄이 와서 고개 수그리고 굽실굽실할 것입니다.”
“장하네, 장해! 나도 분발해야겠구만. 지 사장! 기다려 봐. 나도 곧 대박 하나 만들어 볼 테니까!”
공장장의 각성인가? 그래, 좋습니다. 뭐라도 턱턱 만들어 주세요! 적극 서포트해 드리겠습니다.
“참! 공장장님. 자동권선기 제작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어요?”
“말 잘했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자네 보러 온 것인데. 같이 현장 좀 가자고.”
자동권선기 제작을 위해 자재 주문하고 부품 수급하는 데만 4천만 원이 넘게 들었다. 기존 자동권선기 완제품이 비싸 봐야 2천만 원 정도이니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그래도 문자님의 신탁을 받았으니 몇 곱절로 뽑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거 완전 미친 설비야.”
“미친 정도입니까?”
“이거 봐 봐. 시트랑 선만 걸어 두면 자동으로 딱딱 감아서 내놓게 생겼잖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속도가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 되면 이거 한 대가 몇 사람 몫을 할 것 같어.”
예상대로 대박이 분명하다. 저 설비가 4명 몫은 거뜬히 할 것 같다. 그것도 쉬지 않고, 밥도 안 먹고, 돈도 안 받고 말이다.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이거 성공하면 한 열 대만 더 만들어 주세요!”
“허허허. 이러다 나 죽겠네. 이게 보통 복잡한 설비가 아니야. 재준이 없었으면 이거 만들지도 못해. 나야 뭐 도면 보면서 옆에서 잔소리하는 정도지. 역시 재준이가 보물이야, 보물. 어찌어찌 이번 주 중으로는 시운전 가능할 것 같으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봐.”
얼굴에 구리스 범벅인 유재준 과장이 화들짝 놀라면서도 쑥스러운 표정이다. 얘기는 들었다. 공장장이 설계 뽑느라 현장 관리하느라 신경을 못 쓰는 통에 유 과장이 대부분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
“공장장님만 굳게 믿습니다! 아니, 유 과장님도 같이!”
* * *
공장장과 유 과장의 끙끙거림이 쌓여 가다 더 이상 쌓일 곳이 없을 때, 드디어 이 업계를 뒤흔들 게임체인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놈 만들라고 근 한 달을 뺑이 쳤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나를 기억해 줘!”
위트니스 미! 공장장과 유재준 과장이 드디어 해냈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내다니, 내가 사람 복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 직원이 몰려들었다. 오늘 하루 정도는 일 쉬어도 괜찮다. 잔치를 벌여도 모자랄 판 아닌가!
“자, 가동 들어갑니다.”
완전 자동은 아닌 모양이다. 세팅하는 시간이 꽤 걸렸다. 뭐 이 정도야 기존 설비나 큰 차이가 없으니 넘어가자.
30분 정도 세팅이 끝나고 나서 설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조용하다.
미리 준비해 둔 자재들이 척척 자리를 잡더니 권선이 착착 감아진다.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베틀 같기도 하고 3D 프린터 같기도 하다. 상단 프로파일에 달린 장치들이 분주히 움직이면서 세팅해 놓은 설계대로 물건을 뽑아낸다.
“와! 절연지에 풀칠까지 하는 것 좀 봐 봐. 장난 아니네.”
“권선공들 다 굶게 생겼네.”
“저게 망치질이야? 야무지게 두들기네.”
다들 감탄사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감탄하지 않으면 감히 전기쟁이라고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언빌리버블이다. 자동권선기가 움직이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마냥 재미있을 정도이다. 중간 중간 에어 빠지는 소리도 예술이다.
감탄사를 자아내는 예술적 행위가 이어지면서 2차 권선을 넘어 1차 권선까지 야무지게 뽑아냈다. 이건 한 편의 오페라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43분이 걸렸다. 두 명이서 권선 하나 만드는 데 40~50분 정도 걸리니까, 이건 뭐 사람이 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
“와! 입이 안 다물어지네요. 공장장님 어떤가요?”
“세상에나…….”
말 많던 공장장이 네 글자로 말을 끝냈다. 아마 30년 가까운 전기쟁이 짬밥에서 가장 놀라운 일일 것이다. 권선은 사람이 손으로 감을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이 산산이 깨지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영웅! 우리 재준이! 브리핑 좀 해 봐.”
공장장이 유 과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순간 가슴팍이 찡하게 아려 왔다. 유 과장이 많은 일을 하기는 했지만, 공장장이 없었다면 가능했겠나? 그런데도 유 과장에게 공을 넘겨준다.
이런 직원이 또 있을까? 다들 자기만 빛을 보려고 동료들 내리깎기 바쁜 세상에 말이다.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니 탓이 횡행하는 회사 문화가 그토록 증오스러웠는데, 공장장과 함께라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내가 우리 공장장 업고 다니리라! 시커멓고 큰 차도 꼭 사 주리라!
“아휴, 뭐 영웅까지요. 나야 조립만 했죠. 공장장님이 옆에 없었으면 내가 무슨 수로 이걸 만들겠어요.”
이거 뭐 의좋은 형제들도 아니고. 감동의 도가니탕이라도 만들 생각입니까?
“주절주절 말 그만하고 얼렁 브리핑이나 해 봐!”
“뭐 브리핑이랄 것도 없습니다. 아주 쉬워요. 일단 세팅하는 것이 중요한데, 설계도에 매뉴얼까지 나와 있으니까 보면서 익히긴 해야 합니다. 다 됐으면 여기 스타트 버튼 보이죠? 누르면 끝입니다. 매뉴얼은 읽기 편하게 손봐야 할 것 같네요. 요것만 확실하게 숙지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네요.”
“과장님도 고생 많았습니다. 용량 바뀌면 세팅 다시 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죠. 그게 좀 번거롭긴 한데, 뭐 우리도 새로운 것 감으려면 옮기고 바꾸고 그렇잖아. 똑같다고 봐야지.”
“관리만 잘해 주면 주야장천 권선 뽑아내겠는데요?”
“계속 돌리다 보면 문제가 생길 텐데 그걸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가 문제일 것 같긴 해. 그건 뭐, 하면서 익히는 수밖에 없어요. 자꾸 만져 보고 고쳐 보고 그래야지, 그러다 보면 더 개선시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짜 공장장님, 과장님 최고입니다. 완전 능력자!”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절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잡혀 버렸다. 언빌리버블! 공장장을 데려와 따로 자리를 잡았다. 이건 좋은 사업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공장장님. 이건 진짜 대박입니다. 저 설비가 아니라 공장장님하고 유 과장님이 말입니다.”
“허허. 남사스럽게 뭘 그러나. 나도 재준이가 저 정도일 줄 몰랐네. 변압기 조립만 하면서 썩히기엔 아까운 인재야.”
공장장도 눈치가 예사롭지 않구나. 내 생각을 읽고 있는 듯했다. 이미 읽혔으니 바로 얘기하자.
“그래서 조직을 개편할 생각입니다. 설비 제작과 유지 보수를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어서 유 과장님을 부서장으로 만들고, 공장장님은 변압기와 설비 제작 모두를 총괄하는 것으로 말이죠.”
“으음…….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당장이야 자동권선기 더 만들어야 하니까 필요하겠지만, 그거 다 만들고 나면 어차피 다들 현장으로 올 텐데.”
“우리 나주 내려가면 사야 할 설비가 많잖아요? 월 4천 대씩 뽑으려면 지금 설비로는 어림도 없죠. 시험 설비는 어렵겠지만, 제작 설비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자동권선기도 만들어서 팔아야죠? 이건 나중 일이지만요.”
“제작 설비를 다 직접 만들겠다고?”
“그 족제비 같은 박 사장한테 비싼 돈 주고 사느니 우리가 만드는 것이 낫지요. 저렇게 복잡한 설비도 만들어 냈는데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지 사장은 생각하는 것이 참 남다르단 말이야. 재준이 같은 보물한테는 제격인 자리긴 하지. 우리 실정에 딱 맞는 설비를 만들 수도 있고. 좋은 생각이야, 아주 좋아.”
“대신 공장장님이 설계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유 과장님은 아직 설계할 줄 모르잖아요?”
“허허. 지 사장 입을 막아야겠어. 내가 무슨 일복을 타고났는지 원. 걱정 말게. 회사 잘되라고 하는 것인데 뭔들 못하겠나.”
“하하. 내년 입찰 때까지만 고생하자구요. 그러면 확실하게 자리 잡으니까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
마구 신이 난다. 대박에 사람 복까지 이리 척척 터지니 말이다.
자동권선기는 사람하고 만드는 속도는 비슷했지만, 한 번 세팅하면 계속 뽑아내니 오히려 생산성이 높았다.
넉넉하게 시간당 1개니까 한 대분 뽑으려면 2시간. 하루 풀로 돌리면 15대는 족히 나올 것이다. 자동권선기 10대씩 돌리면 하루에 150대니까 한 달에 4천 대 생산이 가능하고도 남는다. 으아아아! 대박이다. 대한전력 그 많은 물량을 다 먹어도 소화불량 걸릴 일이 없다!
생산 맞출 걱정에 오만상을 지을 뻔했지만, 개비콘스 하나 먹은 듯 말끔히 펴졌다. 오늘은 무조건 회식이다. 이런 대박인 상황에서 돈을 아낀다면 그건 사장의 자격이 없는 것이지!
* * *
“마셔! 오늘 다 죽자!”
“다 죽어도 우리 재준이는 죽으면 안 돼!”
“우하하하.”
분위기가 절정이다. 가장 오래 걸리는 공정인 권선 작업이 기계로 대처됐으니 얼마나 좋겠나. 벌써부터 통장 두둑해지는 소리에 술이 절로 넘어갈 것이다.
“과장님, 진짜 고생 많았습니다. 이건 고생했으니까 드리는 겁니다. 한 잔 받으시지요.”
이미 한바탕 술벼락을 맞은 통에 얼굴이 얼큰한 유 과장이 손사래를 치며 도망가려고 한다.
“어휴. 나 초장부터 너무 달리는데……. 넙쭉. 아이고야.”
“이건 앞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시라고 드리는 겁니다.”
“뭐야? 또 줘? 사장님, 나 죽어.”
“이거 원샷 때리고 설비 10대로 채워 주세요.”
콸콸콸.
“사장님, 이거 사약이잖아! 에라이 모르겠다. 마시고 죽자.”
“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일단 과장님은 부장 승진입니다.”
“아이고 사장님. 나를 얼마나 들들 볶을라고 그러십니까.”
“과장님, 통장 두둑해지는 것이 싫으십니까? 부장이 지금이야 연봉 4천이지, 내년에는 최소한 5천은 넘을 겁니다. 뭐 평안감사도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요.”
“사장님! 한 번 정도는 예의상 튕겨 줘야지, 안 그래? 9대 더 만들라고? 내일부터 날밤 깔게.”
“푸하하. 그럼 한 잔 더 받으셔야지요. 어라? 여기 맥주잔이 비어 있네?”
콸콸콸콸콸.
“아이고, 우리 사장님이 나를 죽일라고 하네!”
김 상무는 와이프인 황 대리 눈치를 이겨 내지 못하고 일찍 도망갔고, 나머지 인원들은 공장 숙소까지 와서 끈질기게 끝장을 봤다. 덕준아! 제발 술자리에서는 미쳐 날뛰지 좀 말아 주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느라 내일 일에 지장을 주게 생겼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난 나대로 계획이 현실화된다는 기쁨에 취했고, 직원들은 내가 했던 얘기들이 허황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며 취했다. 꿈이 이뤄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어려운 것을 해냈고, 해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 사장! 지 사장! 정신 차려!”
내가 술에 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