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70)
270 웃음전도사
안성파워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니, 계산기 소리만 요란했다.
내가 우선배정 권리를 가진 품목 2개를 올해 입찰에서 행사하지 않기로 했으니, 이번 입찰 계산이 달라진 탓이다. 양보 아닌 양보로 업체당 11억 정도 더 돌아갈 것이다. 나에 대한 찬양 열기가 극에 달하겠군. 후훗.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호영 상무가 계산을 끝내고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미리 얘기해 줄 걸 좀 미안하네.
“프라임일렉트릭이 가져갈 개발우선배정은 작년과 똑같습니다. 일단 680억으로 잡겠습니다. 원래대로 전 품목 다 우선배정 받아 가셨으면 900억인데, 사장님께서 많이 양보해 주셨습니다. 조합을 대신해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내 옆에 앉은 누나 자리에서 작게 박수 소리가 났다. 귀여운 누나 같으니.
“지역우선배정은 총 1,146억입니다. 이걸 열여섯 곳이 나누니 업체당 72억 잡겠습니다. 우선배정 빼면 일반입찰로 2,674억이 들어가는데, 품목당 개발업체 수로 나누면 업체당 108억씩 가져가게 됩니다. 지역배정까지 합하면 180억입니다.”
“원래는 170억이 좀 못 되지 않았나?”
“맞습니다, 이사장님. 지 사장님께서 우선배정 2건을 행사 안 한다고 하셔서 11억 정도 늘어났습니다.”
강호창 사장이 내 덕에 업체당 배정액이 늘어났음을 확인 사살시켜 줬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숙연해졌다는 표현도 맞을 것 같다.
다들 표정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좋아하는 표정 지었다가는 속물처럼 보일까 봐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땐 860억이 예약돼 있는 내가 일빠로 웃어 주는 수밖에.
“아, 너무 좋습니다! 하하. 작년에 그렇게 싸워서 150억 가져갔는데, 올해는 웃으면서 180억 가져가네요.”
내 역할은 신바람 이박사였다. 웃음 물길을 터 주니, 표정 관리하던 사장들도 기쁨을 만끽하며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브리핑을 끝낸 이 상무가 좌중을 진정시키며 마무리 발언에 나섰다.
“이건 단순 계산이고, 입찰 결과에 따라서 약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확실한 건, 작년처럼 경쟁 입찰이 아니라 단가가 확 떨어질 일은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우리 회사가 확보한 860억 원. 작년처럼 낙찰률이 떨어질 이유도 없으니 고스란히 먹을 수 있다. 아휴, 좋다. 기분 좋게 한잔하러 가자고!
강 사장도 빨리 회의 끝내고 싶다는 표정으로 그만 얘기하자는 무언의 압박을 뿌렸다.
“이번 입찰은 결과가 아주 좋을 것이니까 걱정들 마시고, 연체 안 먹게 미리미리 준비해 두세요. 회의는 이 정도로 하고 저녁이나 먹으러 갑시다. 뭐 더 할 얘기 있습니까?”
“이거 다들 술 마시러 갈 생각에 정신들이 없으십니다. 체육대회 얘기도 안 해 놓고 무슨 회의를 끝낸다고 합니까!”
일심전기 유원태 사장이 인저리타임에 터진 역전골 같은 발언을 토해 냈다. 이번 회의 핵심 중의 핵심인 체육대회! 다들 돈 벌고, 고기 먹을 생각에 넋을 놓고 있었네.
강 사장이 광이 번쩍번쩍 나는 이마를 치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맞네, 맞아. 제가 깜빡했습니다. 이거 맘이 콩밭에 가 있었습니다. 하하.”
혁신산단 변압기협의체 회장배로 출발했던 체육대회가 올해는 변압기혁신조합 이사장배로 확대됐다. 인천에 공장이 있는 전우산업을 빼고 모든 조합사가 혁신산단으로 내려왔다.
규모가 커진 만큼 올해 체육대회도 우승을 놓칠 수 없지. 이미 한덕준 단장을 필두로 한 프라임일렉트릭 체육단은 봄부터 몸을 풀며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체육대회는 작년처럼 유 사장님이 맡아서 진행해 주시죠. 변압기협의체 회장님, 어떻습니까?”
강 사장이 회의를 연장시킨 일심전기 유 사장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떠넘겼다.
“아니, 이제 우리 조합 다 내려왔는데, 변압기협의체는 유령조직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거 감투 씌워 놓고 부려 먹겠다 이거 아닙니까? 하하.”
“하하. 동의하시는 분들 시원하게 박수 한 번씩 칩시다.”
짝짝짝.
“유 사장님. 이번에도 송인 꼭 좀 부릅시다.”
“지 사장님. 이번에도 바비큐 쏘는 겁니까? 하하.”
“김 사장님! 얻어먹을 생각만 하지 말고, 찬조금 두둑하게 내셔. 개폐기로 돈 많이 벌었다면서 이럴 때 시원하게 쏩시다. 하하.”
저마다 한마디씩. 회의가 끝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원중전기 박철원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자 배가 고파서 더 있지도 못하겄습니다. 못다 한 얘기는 먹으면서 합시다. 먹고살자고 이리 모였는데,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하하. 그래요. 그럼 변압기혁신조합 전체 조합원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쾅쾅쾅.
회의가 끝나자 누나가 웃으며 말을 건네려는데, 방해꾼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지 사장님! 한 대 피우러 가셔야지요?”
흡연파들에 납치돼 끌려가면서 누나에게 투 비 컨티뉴드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얘기할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하자고.
안성파워 회의실 한편에 마련된 흡연실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내가 말이야. 이번에 아차 싶어서 직원들한테 근로계약서 다 교부했다니까. 취업규칙도 현장에 비치해 놓고.”
“아니, 그걸 아직도 안 하고 있었습니까? 유 사장님도 참. 그건 기본입니다, 기본.”
“하하. 그래서 내가 요새 팔자에도 없는 법 공부를 하고 있다니까. 난 근로계약서 사인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나마 내가 직원들 대접 섭섭하지 않게 해 줬으니 망정이지. 걸렸으면 큰일 날 뻔했어.”
“이번에 중전기조합 그 사장들 기소된 거 보니까 온갖 걸로 다 걸렸더라고. 어휴, 우리 회사도 그렇게 뒤집었으면 나도 콩밥 먹을 뻔했어요.”
일심전기 유 사장과 수원중전기 박 사장이 반성을 화두로 대화에 나섰다. 사소한 것부터 고쳐 나가는 자세, 보기 좋아.
아주전기 이충원 사장이 쐐기를 박았다.
“그러고 보면 노조가 있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어요. 우리 회사는 노조 생긴 지 꽤 됐잖습니까? 처음 노조 만든다고 할 때는 좀 부글부글하긴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편해. 알아서 고쳐 달라, 바꿔 달라 한다니까요.”
“아주전기 노조 생긴다고 할 때 다들 회사 망한다고 그 난리였는데 말이야. 이 사장, 알고 보니 아주 선진적인 사람이야? 하하.”
아주전기는 이 바닥에서 안성파워와 함께 노조가 있는 유이한 회사다. 태양전기 시절 꼰대들은 툭하면 아주전기에 노조 생겨서 사장이 찍소리 못한다면서 그게 무슨 회사냐고 욕을 했었다.
월급쟁이가 월급쟁이를 욕하는 풍토.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하던 사람들이 국정농단으로 재벌 총수가 구속되자 그리 걱정했다는 얘기가 현실인 나라다. 구속됐어도 1년에 배당으로만 몇천억씩 받는 사람을 말이다. 정이 넘쳐 나는 곳이야 참.
“말도 마셔. 처음엔 어찌나 지랄을 하던지 회사 팔아 버리려고 했다니까요. 그래도 자리 잡으니까 낫더라고.”
“그래도 월급 왜 이거밖에 안 주냐고 뭐라 그럴 거 아니야? 솔직히 인건비 부담이 제일 큰데 직원들이 그걸 알아주나?”
“처음에야 좀 그랬죠. 그래도 이 바닥이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걔들도 눈치가 있어서 무리한 요구는 안 해요. 요샌 좀 걱정이긴 하죠. 혹시나 프라임일렉트릭 얘기하면서 월급 올려 달라고 할까 봐. 하하.”
아주전기 이 사장과 일심전기 유 사장의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저도 우리 직원들한테 노조 만들 생각 없냐고 했더니, 절레절레 흔들더라구요. 준비할 서류도 많고 귀찮다고요.”
“그거 귀찮은 일이지요. 회사에서 노조 일 담당하는 직원 보니까 아주 죽어납디다. 근데, 프라임일렉트릭이야 대우 좋은 걸로 소문 다 났는데, 노조가 뭔 필요가 있습니까? 하하.”
아주전기 이 사장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김지연 과장이 종이 하나를 들고 온 적이 있다. 직원들 만족도 조사였다.
사장 지지율 97퍼센트! 독도가 우리 땅 맞느냐는 질문에도 3퍼센트 정도는 아니라는 답변이 나온다는 여론조사상의 불가사의가 그대로 적용된 결과였다.
불만 사항으로는 일이 힘들다는 것, 선물세트로 스팸 말고 참치로 해 달라는 것 정도? 일은 변함없이 빡세게 시킬 것이고, 참치는 생각해 보겠다.
“하하. 지 사장님 고개 끄덕끄덕 하는 것 보니까 아니라고는 못하네요. 우리 회사는 언제 저렇게 커지나…….”
일심전기 유 사장의 장단에 수원중전기 박 사장이 운을 띄웠다.
“유 사장님, 변압기만 팔지 말고 사업 하나 새로 해 보지 그래요? 요새 ESS가 난리라더만.”
“ESS? 안 그래도 그거 생각하고는 있어. 금성전기 뛰어든 것 보니까 혹하긴 하더라고. 안성파워도 그걸로 엄청 재미 봤다잖아?”
ESS 타령은 이 초여름에도 여전하구나. 난 변압기나 부지런히 팔 테니까 열심히들 해 보셔.
금성전기가 결국 ESS 사업을 개시했다. 반년 넘게 부지런히 준비하더니, 공장 하나 세웠다. 한편으론 말리고 싶었지만, 누나의 뚝심을 믿었다. 위기야 있겠지만 잘 할 것이다.
잘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내 돈 20억이 들어갔는데 당연히 잘해야지.
누나는 100억 원의 투자금을 다 마련하지 못해 은행 문턱이 닳아질 정도로 돌아다녔다. 나한테 언제 도움을 요청할지 마냥 기다렸는데, 끝끝내 아쉬운 소리를 안 하더라. 결국 내가 참지 못하고 투자자를 자처했다.
그렇게 금성전기의 ESS 사업 신설법인에 들어간 내 돈 20억. 진심을 담아 전하는 고맙다는 말에 그냥 한 번 안아 주고 말았다. 돈 벌어서 배당이나 시원하게 하라고!
“지 사장님. 국수는 언제 먹게 해 줄 겁니까? 하하.”
금성전기의 ESS 진출에 거금을 투자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와 누나 사이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우리 조합에서는 이미 둘이 결혼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아, 똑같아.
“유 사장님, 아까는 박 사장님이 아깝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좀 그러네요. 하하.”
“하하. 우리 지 사장님이야 최고의 신랑감이지요. 훤칠하고 인물 좋고, 능력 좋고. 싸울 때 아주 잘 싸우고.”
칭찬이 맞나? 몇 번 싸우지도 않았는데 쌈닭이 된 기분이다. 이젠 좀 평화롭게 살아야지.
“근데 내가 박 사장을 애틋하게 생각하잖습니까? 박 사장이 박정호 사장님 쓰러지고 갑자기 회사 맡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내가 뭐 도와줄 형편도 안 되고, 좀 그랬지요.”
“사장님께서 박 사장님 생각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수원중전기 박 사장이 유 사장의 신파를 깨며 들어왔다.
“선남선녀가 만났는데, 아깝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 보면 박 사장님이 유 사장님 딸인 줄 알겠습니다. 하하. 둘 다 인물들이 좋아서 2세가 기대된다니까.”
“내가 박 사장 생각하면 미안한 게 많아서 그래.”
“누가 금성전기 출신 아니랄까 봐. 우리는 조용히 있다가 축의금이나 두둑이 내면 그만이에요.”
일심전기 유 사장이 금성전기 출신이었다니. 난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사장님, 금성전기에서 독립하신 겁니까? 전 여태 모르고 있었네요.”
“뭐 15년 전 일이지요. 박 사장님, 그러니까 박정호 사장님한테 도움 많이 받았죠. 사장님 아니었으면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겁니다. 근데 사장님 쓰러지고, 딸이 회사 맡아서 그 고생할 때 도움을 못 줬으니 그게 참 걸립디다.”
“박 사장님이 사장님한테 얼마나 고마워하는데요. 우리 조합 세울 때 사장님께서 젤 앞장서시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일심전기 유 사장의 과거 얘기가 불을 내뿜을 찰나에 강 사장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뭐. 담배를 하루 종일 피울 거야! 고기 먹으러 가자고! 내가 화끈하게 사겠다는데도 뭐 이리 뜸을 들여!”
고기 산다는 우리 따거의 외침에 난 최선을 다해 먹었다.
아, 배불러. 두 달 뒤에 있을 대한전력 입찰에서도 이리 배가 부를 것이다. 신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