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282)
282 출산
월요일 아침부터 전력용 변압기 제작동이 바삐 돌아갔다.
154kV 60MVA짜리 설계가 나왔으니, 이제 만드는 일만 남았다. 기존 주력 제품인 22.9kV 50kVA보다 무려 1,200배나 큰 용량을 자랑하는 변압기! 잉태했으니 출산하는 법.
그 크고 아름다운 것을 제작하기 위해 모두가 달려들었다.
코아제작을 담당하는 원코어는 코아원단이 들어오기 무섭게 재단 작업에 들어갔고, 외함 담당 딥스케이스는 설계 확정과 동시에 철판 가공을 시작했다. 태인산업은 전력용 변압기에 들어가는 무지막지하게 큰 부싱을 뽑아냈다.
이제 무디스트랜스퍼에서 곡소리 내면서 만들면 된다.
내가 밭에서 돌 골라 가며 세운 프라임일렉트릭이 아니라, 민수 변압기 담당 자회사인 무디스트랜스퍼로 출발한 것이 좀 아쉽다. 좀이 아니라 많이.
대한전력이라는 달달한 꿀을 계속 빨아야겠다는 꼼수 때문이었다. 중도 아닌 소기업이 단박에 이렇게 커 버릴 줄 몰랐으니 뭐.
매출 1천억 원을 넘지 않기 위해서 꼼수 좀 부렸다. 중소기업일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할 정도로 등이 따스운 상황은 아니기에. 대한전력에는 아직 빨아야 할 꿀이 많이 남았다.
이 결정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 진짜 큰맘 먹고 시작하는 건데, 프라임일렉트릭 이름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어?”
어찌 보면 나보다 더 회사에 애착이 많은 공장장이 대표주자였다.
“저도 그게 아쉽습니다. 배전용 변압기가 아직까지는 우리 주력인데 포기할 수 없잖아요.”
“거참, 아쉽네, 아쉬워. 전력용 변압기 자리 잡으면 프라임일렉트릭으로 다 합치고, 주상은 아예 독립시켜 버리자고. 우리도 이제 큰 변압기 만들면서 큰 회사로 지내야지. 허허.”
“하하. 역시 공장장님은 귀신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귀신이라니. 내가 귀신이면 큰일 나지!”
배전용과 전력용 변압기는 주유와 제갈량 같은 존재다. 꼼수를 부리면 함께할 수 있어도, 잠시뿐이다.
이별을 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배전용 변압기 관수와 민수 사업체는 고생한 직원들에게 줄 생각이다. 그래도 내 회사 프라임일렉트릭은 전력용 변압기와 자재, 수출로 매 끼니를 이밥에 고깃국으로 채울 것이다.
회사를 이렇게 키우는 동안 조던 필도 놀랄 정도로 땀을 쏟아 냈는데, 그 정도 선물은 약과 아닐까? 난 배당 받아 가면서 팔자 좋게 살면 그만이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야! 우리 회장님, 자네가 뼈 빠지게 노력해서 이렇게 끌고 온 것을 왜 넘겨! 우리 회사라고 하지만, 이건 엄연히 자네 회사라고!”
공장장이 또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저리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 아흔 살까지 나랑 같이 일할 것이란 약속만 꼭 지켜 주셔.
“우선배정 다 끝나면 연매출 200억 하는 회사밖에 안 될 텐데, 그 정도야 고생한 직원들에게 줄 선물로 딱이지 않습니까? 회사 쪼개 놓긴 했어도 여기서 더 크면 자산, 매출 다 합산되거든요. 그럼 중소기업 인정 못 받아서 어차피 내보내야 해요. 이럴 때 기분 내는 거죠 뭐.”
“그래. 뭐 내가 복잡한 것까지는 모르겠고, 자네가 직원들 잘 챙겨 주려고 하는 거 아주 잘 알지. 직원들도 그걸 아니까 단내 나게 일하고 있는 거고. 그렇다고 자네가 고생해서 세운 걸 그냥 넘겨? 그건 아니지.”
“하하. 공짜로 퍼줄 것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흥분하지 마세요. 이게 법적으로 저나 프라임일렉트릭이 지배기업만 아니면 되거든요. 적당한 가격에 지분 넘기고, 남은 지분으로 배당 받아먹으면서 살면 됩니다.”
회사 운영해 보니까 알게 된 것이 있다.
법이 결코 허술하지 않다는 것과 국회가 놀고만 있지 않다는 것 말이다. 쪼개고 나눠도 형식적 지배, 실질적 지배, 직접 지배 등등 법과 시행령에 꼼꼼하게 규정된 것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회사같이 연결재무제표상으로 중소와 중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회사들은 갈등하기 마련이다. 중소기업 혜택 받으며 이대로 살 것인가, 확 치고 올라가 중견을 거쳐 대기업으로 갈 것인가 말이다.
자문변호사로 한몫하고 있는 임필성 변호사는 사회적기업 인증이 있으니까 걱정 말고 회사 마구 키우라고 하긴 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회사부터 키우고, 나중에 한계가 오면 매각하면 된다는 조언. 매각한다면 함께 고생한 직원들이 우선협상 대상자가 돼야겠지.
“아이고, 얘기만 들어도 머리가 다 아프네. 그러니까 회장님 말은 그만 흥분하라는 거지? 허허. 그래, 뭐 희철이나 덕준이가 돈 좀 벌었으니까, 그놈들한테 회사 사라고 하면 되겠네, 그치?”
“아이고, 공장장님. 아직 멀었어요. 벌써부터 팔 생각하고 계시면 어쩝니까!”
“아, 그런 거야? 난 또 당장 내년에 넘긴다는 줄 알고. 허허. 경영은 우리 회장님이 알아서 잘할 거니까 내가 오지랖 부릴 필요가 없지. 암.”
“하하. 언제라도 좋으니까 오지랖 마음껏 부려 주세요.”
우리 직원들이 퍼붓는 잔소리와 오지랖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연애 시작하고 나서 김지연 과장의 잔소리가 확 줄어든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염병. 잔소리한다고 뭐라 할 거면서. 하하. 그래도 하나 명심할 것은 말이야. 우리 회장님 돈 욕심 없는 건 좋은데, 욕심 부릴 때는 좀 부리라고.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혼자 그 누구야? 백이 뭐라고 하던데…….”
“백이숙제요?”
“어, 맞아. 고고하게 살아 봐야 좋을 것 없어. 돈도 시원하게 벌고 펑펑 쓰고 그렇게 살아야 사는 맛이 있지. 안 그래?”
공장장의 저 착각. 언제까지 이어질까 궁금하다. 내가 종합소득세로 100억 넘게 내는 것을 알고도 돈 욕심 좀 부리라고 할까 싶다.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 공장장에게 나는 태양전기 시절 욕 나올 정도의 박봉을 받으며 개같이 일하는 잡부 이미지로 각인돼 있을 것이다.
나만 보면 안쓰러워하면서 뭐 하나라도 챙겨 주려는 저 사람. 벌로 나이 아흔까지 돈벼락 때리면서 호되게 굴려야겠어.
“근데, 공장장님.”
“응?”
“일은 언제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하하하. 이거 노가리를 너무 많이 깠네그려. 그만 떠들고 일이나 하러 가자고. 자! 변압기 한번 두들기러 가 볼까나아.”
그렇게 무디스트랜스퍼에서 전력용 변압기 시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한 대에 9억 원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변압기이다. 크고 비싼 명성과 달리 제작은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8,000kVA짜리로 충분히 연습한 것도 있지만, 역시 설비의 덕이 크다.
하마만 한 권선도 척척 감아 내는 대형 자동권선기, 수천장의 코아를 예쁘게 잘 쌓아 올리는 코아제작기, 집채만 한 외함을 깔끔하게 뽑아내는 외함제작기까지.
기상천외한 설비들이 만들어 낸 덩어리들이 전력용 변압기 제작동에 모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구만. 크윽, 크.”
공장장이 팔을 걷어붙이며 빙하도 녹을 정도의 뜨거운 전의를 내비쳤다. 수분에 취약한 전기 특성상 피도 말라 버릴 정도로 건조한 공장이라 마른기침을 하면서도 전의를 마구 불살랐다.
5명으로 시작해 10명으로 늘어난 제작 인원이 덩어리들에 달려들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안전! 항상 조심해! 저거 떨어지면 우리 다 죽는 거야! 정신 바짝 차려!”
50톤이 넘는 중신이 사전 작업을 끝낸 외함으로 이동하려는데 공장장의 고함이 공장에 울려 퍼졌다. 저 정도 무게면 안전모 따위로 소용이 없다. 떨어지면 그냥 다 같이 향냄새 맡으러 가는 거다.
몇 달 전에 유에스산전에서 빌딩만 한 변압기 만들다 180톤짜리 중신이 떨어져 2명이 죽는 사고가 있었다. 크레인 줄이 끊어져 발생한 사고였는데, 1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다른 한 명은 중신을 다시 들 때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만들다가 죽고, 시험하다가 죽고, 설치하다가 죽고. 진짜 무시무시한 변압기이다.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었어도 불안함이 가시질 않는다. 제발 돈 안 벌어도 좋으니 다치지만 말길.
“자! 천천히! 각자 위치 잡고! 서두르지 말고 위치 확실히 잡아!”
육중한 중신이 외함 안으로 들어오자 공장장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세 번째로 중요한 순간이다.
설계가 첫 번째, 권선과 코아, 외함 제작이 두 번째,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중신을 외함에 고정하는 과정이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카스트라토의 유리창 깨는 소리에 10리 밖에서도 변압기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만든다. 변압기 소음은 겪어 봐야 그 진가를 알게 된다.
“회장님! 직접 조립할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지켜보고 있어?”
구경 나온 희철 사장이 구찌를 날리며 존재를 드러냈다.
“처음이라 긴장되니까요. 뭐 이렇게라도 보고 있으면 좀 안정이 되네요. 하하.”
“아이고, 며칠 걸릴 텐데 계속 그러고 있을라고? 괜히 일하는 사람들 부담 주지 말고 나와.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가자고. 보니까 뭐 잘하고 있구만.”
희철 사장에 끌려 나오듯 공장을 나왔다. 월급쟁이일 때 생각해 보니, 회사 대표가 팔짱 끼고 지켜보고 있으면 잘되던 일도 안 되기 마련이었다. 개구리 됐다고 올챙이 적 생각을 못했네.
담배를 꺼내려는데 희철 사장이 다급하게 막아섰다.
“하하. 회장님, 이걸로 해.”
중국 출장 때 사 온 중화 담배. 중국 갔다 온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남아 있네.
“사장님, 대체 몇 보루를 샀길래 아직까지 있어요?”
“하하. 입국할 때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어. 이게 첨엔 그냥 그랬는데, 입에 익어서 그런지 괜찮더라고. 확실히 비싼 건 비싼 값을 해.”
“시제품 잘 나오겠죠?”
담배 얘기로 여유롭게 들어간 희철 사장의 말을 바로 받아쳤다. 머릿속엔 오로지 전력용 변압기 시제품 생각뿐이다.
“잘 나와야지. 안 나오면 또다시 만들면 되지. 우리 첫술에 배부를 생각 말자고. 그동안 충분히 배불렀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이게 참. 제가 돈 욕심은 없는데 저런 건 괜히 욕심이 나더라구요. 한 방에 딱 끝나면 최곤데…….”
희철 사장이 친구 같은 막내삼촌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친척도 없이 살았지만, 이모와 막내삼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딱 그 얼굴이다.
“투자도 제대로 했고, 다들 열심히 노력했고. 성과가 있을 거야. 나도 부싱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하하.”
“다들 고생한 것 아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혹시라도 성능 제대로 안 나오면 실망이 커질 것 같아서 말이죠.”
“회장님. 내가 울산도 가 봤고, 창원, 부산 다 가 봤잖아? 우리 공장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지만, 시설이나 설비는 우리만 못해. 직원들도 봐 봐. 우리 직원같이 일 열심히 하는 데가 어디 있어? 좋은 결과 나올 일만 남았으니까 맘 편히 먹으라고.”
비싼 담배라 그런지 달달하네. 공장장도 그렇지만, 희철 사장도 나 조련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랑 함께 일하고 있으니, 담배가 달달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
“하하. 그래야죠. 설계부터 해서 다 잘됐으니까 조립도 잘하겠죠.”
“맞다. 이욱현 부장 말이야. 내가 현성 쪽 아는 사람한테 들어 보니까, 퇴사 못하게 하려고 엄청 공들인 모양이더라고.”
현성중공업에서 설계로 이름 날리던 이 부장이 후배 2명 데리고 우리 회사로 온 것을 두고 업계에서 말이 많았다. 그만큼 쇼킹한 일이었고, 우리 회사가 국내 탑 회사 직원도 선망하는 곳이 됐음을 만방에 널리 알린 일이기도 했다.
“아니, 평소에 잘해 줬으면 사표를 왜 냅니까? 막 굴리다가 나간다고 하면 그때부터 돌변해서 잘해 줄 것처럼 하고. 대기업도 똑같네요.”
“그러게. 이 부장이 사표 내기 전까지 진짜 사람 미칠 정도로 들들 볶았나 봐. 뭐 거기 사정이 안 좋았으니까 이해는 하지. 그 덕분에 우리 회사로 왔으니까. 그래도 왜 다들 못 잡아서 안달인가 싶어.”
“사장님은 직원들 굴리지 말고 잘 좀 챙겨 줘요. 그러라고 월급 많이 주는 거니깐요.”
“하하. 아이고,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직원들 눈치 보느라 아주 죽겠어.”
점점 내 역할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 팔자 좋은 사장 노릇도 머지않았다.
“자, 자. 다 피웠으면 들어가자고. 저긴 공장장님한테 맡겨 두고, 사무실 들어가서 에어컨이나 쐬면서 낮잠 한숨 자. 하하.”
희철 사장의 엄포에 발길을 돌렸다.
궁금함 참기가 8일째에 다다른 날, 전력용 변압기 시제품이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