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really good RAW novel - Chapter 73
73
제73화: 채 낚기(1)
조태수는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내렸다.
마가디노를 찾아 정식 보고를 하기 전에 그보다 앞서 만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을 누른 사람이 조태수라는 것을 확인한 경비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조!”
캐서린의 개인 경호원 로이가 반가워했다.
“잘 있었습니까?”
“물론이지. 아주 잘 있네.”
로이의 얼굴이 밝은 것을 보면 요즘은 캐서린이 몰래 도망쳐 나온다든가 하는 개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조태수의 걸음이 중간에서 멈췄다.
현관 밖에 캐서린이 실내복 차림으로 서 있었는데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연락도 없이 음악회에 빠진 것에 대해 잔뜩 화가 났을 줄 알았는데 표정이 밝은 것에 조태수는 더 불안해졌다.
저러다 날벼락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들었다더군. 축하해.”
와락!
캐서린은 조태수를 힘껏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아버지가 감비노 패밀리 고위 간부이다.
자신의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시카고까지 온 남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경험상 뻔한 일이었다.
조직으로부터 중대한 명령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오직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아버지는?”
가볍게 밀어내며 물었다.
“아빠는 나가셨어. 뻔하지 뭐.”
조태수는 뭐가 뻔하냐는 시선을 던졌다.
“보스한테 갔을 걸, 전화해 볼까?”
“아냐. 그만 들어가지.”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왔다.
“커피 줄까?”
“오케이.”
조태수는 소파에 앉았고, 일하는 가정부가 있는데도 캐서린은 자기 손으로 커피를 준비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커피를 준비하는 캐서린을 보는 가정부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려서부터 캐서린을 봐 왔는데 요즘처럼 명랑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본적이 없었다.
도대체 저 동양 남자의 어디가 그렇게 매력이 있어 말괄량이 같던 캐서린이 고분고분한 요조숙녀가 되었단 말인가.
“어때요?”
조태수가 한 모금을 마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턱밑에 얼굴을 들이밀고 묻는다.
“훌륭해. 역시 캐서린의 커피 솜씨는 알아줘야 해.”
“아빠가 그러셨어. 나 커피 만드는 솜씨가 바리스타 뺨친대.”
“인정!”
캐서린은 조태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듯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태수는 음악회에 대한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함으로써 부득이 참석은 못했지만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캐서린은 NBC에서 자신의 쇼팽 소화력에 평점 9.5를 매겼다고 말하면서 참고로 10점이 만점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에 대한 평론가들의 찬사를 쉴 사이 없이 쏟아 놓았다.
“조가 왔다고?”
문밖에서 맥보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태수가 일어났고 맥보란이 들어섰는데 두 사람이 마주 서 있는 걸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헛헛! 얘기들 하고 있었구나.”
“네, 아빠.”
“어서 오십시오, 위원장님.”
“오자마자 이곳으로 온 건가?”
“그렇게 됐습니다.”
“보스가 서운하게 생각하겠군. 자신보다 더 먼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말이야.”
맥보란은 농담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여행은 잘 다녀왔나?”
그러면서 몸을 살폈다.
그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부상은 없는지, 다친 곳이 있지는 않는지, 아픈 곳이 있는데도 참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때마침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조태수는 맥보란의 눈빛에서 많은 것을 읽어냈다.
맥보란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난 자네를 믿는다고, 자네는 온전한 남자이고 젊은 시절의 나 자신보다 몇 배는 뛰어난 친구라고 말했다.
맥보란의 마음속에서 조태수는 이미 사위였다.
“어떤가? 오늘 저녁 이곳에서 같이 하는 것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얏호! 저녁 준비는 내가 할 거예요. 가장 맛있게, 두 분 모두 뿅 가버리도록 만들어야지.”
캐서린은 양손을 들어 올려 만세를 불렀다.
***
마가디노의 최측근 호위이자 기사인 레미가 운동복을 담는 끈 달린 가방을 가지고 왔다.
마가디노는 탁자 위에 가방을 놓고 지퍼를 열었다.
안에는 백 달러짜리 뭉치들이 가득했다.
“150만 달러, 자네 몫일세.”
“감사합니다.”
조태수는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프랭크의 전화를 받았네. 그 친구 성격이 조금 급하긴 하지만 괜찮아. 그렇지?”
“예! 부하들에게도 무척 자상하더군요.”
“권위는 부드러움에서 나오는 거야. 뭘 모르는 아이들이 아랫사람을 찍어 누르고 눈을 부릅뜨는데 그건 아주 모자란 행동이지. 옛날처럼 군림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해. 마피아도 변해야 한다고.”
조태수는 마가디노의 얘기를 조용히 경청했다.
마가디노는 자신만의 보스론을 얘기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레미의 커다란 눈이 가벼운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마가디노를 지켜왔지만 누군가에게 저토록 열의를 갖고 얘기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더구나 조태수는 카포데치나(중간보스, 또는 행동대장)도 아닌 우모 도노레(일반 단원)이다.
감비노 가계도를 볼 때 가장 낮은 직급인 것이다.
그런 인물을 앞에 두고 감비노 최고 수장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카포 파밀리아(패밀리의 보스)가 말단 단원과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맥 위원장의 아이와 절친하다고 들었네.”
캐서린을 의미했다.
조태수는 미소로 대답했다.
“착한 아이지.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네에 대한 맥의 배려가 보통이 아니야. 은근히 위험한 일은 시키지 말라는 암시를 주고 갔다네.”
그러면서 껄껄 웃었다.
***
낯선 사내들이 자주 보인다.
동네가 작다보니 조그만 외부 공기가 유입되면 예민한 사람들은 느낀다.
특히 제이콥처럼 불법을 저질러야 배가 부르는 사람에게는 외부의 공기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이콥과 선원들은 출어를 위해 그물을 손보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 아래 그물코를 꿰는 선원들 손놀림이 바쁘다.
그러나 그물로 고기를 잡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어선으로 위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진짜처럼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일 뿐이었다.
“다녀오겠네.”
제이콥은 출어신고를 하기 위해 부도 동쪽에 있는 해안 경비대 출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걸음으로 십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제이콥의 시선은 창가에서 포르노 잡지를 보고 있는 사무엘에게 고정되었다.
“제이콥 아닌가?”
출장소 소장이 아는 체를 했다.
사무엘이 고개를 돌려 제이콥을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에 나가나?”
소장이 묻는다.
“예!”
“고등어잡이로 바뀌었다고?”
“참치는 포기했습니다.”
“잘한 일이야. 수온 상승으로 우리 보퍼트 인근 해역에서 더 이상 참치는 볼 수가 없어.”
쾅!
소장은 도장을 찍고 출어증을 끊어 주었다.
“잠깐!”
문을 나서려는데 사무엘이 불렀다.
“나요?”
사무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배 이름이 뭐요?”
“캘로그 호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오?”
“참치잡이를 하다 고등어로 바꿨다고?”
“그게 뭐 잘못됐소? 미합중국 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소만?”
“물론 위배되지 않죠. 절대로.”
사무엘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무척 기분 나쁘다.
제이콥은 사람의 웃음이 이렇게 소름이 끼칠 수도 있나 하는 생각을 갖는다.
“오늘 나가면 언제 돌아오는 거요?”
“조황에 따라 다르지요. 2박 3일이 기본이지만 운이 좋아 첫 그물부터 고기들이 캘리포니아 오렌지처럼 열리면 하루 만에 돌아올 수도 있고 흉어이면 사흘 나흘이라도 바다에서 살아야죠.”
“그렇군. 가보시오.”
제이콥이 나가자 사무엘은 소장에게 다가갔다.
“지금 나간 친구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시오. 이곳에서 오래 계셨으니 잘 알 것 아니오?”
“평범한 친구요.”
“진짜 거물들일수록 주위에서는 평범한 사람처럼 행세하고 살아가지요.”
소장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가 제이콥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배를 타는 사람들처럼 민간신앙에 집착하는 부류도 드물다.
바다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항상 죽음을 대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사소한 일이나 사건에도 반응을 한다.
배로 돌아온 제이콥은 심각했다.
출어를 하느냐 마느냐.
내일 밤 공해상에서 전번에 만났던 화물선 화이트 샤크 호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코카인 30톤을 옮겨 실을 예정이다.
그런데 조금 전 사무엘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평범한 사내가 아니었다.
누구든지 법을 위반하면 찢어 죽이고 말 것 같은 사악한 기운을 갖고 있었다.
갈까 말까.
최소한 하루 전에 연락을 해줘야 그쪽에서도 대비책을 세운다.
30분만 더 고민하기로 마음을 먹고 담배를 물었다.
***
회의가 열렸다.
맥그리거가 주재하는 긴급 회의였는데 안건은 캘로그 호에 관한 것이었다.
“사무엘이 보퍼트 항에 나타났다면 뭔가 냄새를 분명히 맡았다고 봐야 합니다.”
인도 출신 요기인 모디가 입을 열었다.
조태수는 모디를 볼 때마다 놀란다.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허약한 몸인데 무술 솜씨는 반대이다.
마피아 단원이 되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무술 따위를 한 개씩 배운다.
아무리 총이 대세라지만 맨손 격투는 마지막에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때문이다.
모디는 중국 쿵푸의 조상이라는 인도의 칼라리파야트의 고수이다.
움직임과 봉이나 검을 갖고 상대를 제압하고 쓰러뜨리는 형은 완전한 쿵푸이다.
인도 사람들은 칼라리파야트가 보리달마라는 사람에 의해 중국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오늘날의 쿵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무엘은 내가 잘 압니다.”
그는 과거 사무엘과 본의 아닌 조그만 사건으로 만난 적이 있고 대결까지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의심이 많고 직감에 의존하는 수사관이라고 했다.
“그가 캘로그 호의 선장인 제이콥을 건드렸다는 건 이미 수사망에 걸렸다고 봐야죠.”
화이트 샤크 호는 이미 콜롬비아 바랑키야 항을 떠났다.
만약 중간에서 캘로그 호와 만나지 않으면 코카인을 실은 채로 조지타운 항으로 입항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세관에 걸리는 건 아니다.
단지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한번 정보가 들어간 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화이트 샤크 호는 FBI의 감시 대상에 들어간다.
그래서 에버튼 선장은 이번이 화이트 샤크 호라는 이름으로는 마지막 항해라고 했다.
다음번에는 대대적으로 배를 개조, 수리하고 이름도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번만 잘 넘기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왔으나 마땅하지가 않아 분위기가 무거운데 전화가 걸려왔다.
조태수가 액정을 보더니 일어나 한쪽으로 다가가 통화를 했다.
10분 가까이 통화를 하고 돌아온 조태수가 입을 열었다.
“채 낚기로 하죠.”
모두가 눈을 둥그렇데 뜬다.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다. 캘로그 호는 노출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사무엘이 해안 경비대는 물론 초계기까지 동원해 집요하게 달라붙을 겁니다.”
“채 낚기라면?”
채 낚기는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잘 밀봉한 코카인 자루를 바다에 빠뜨린 후 나중 기회를 봐가면서 건져내는 방식이다.
“조지타운 뒷골목에 줄리아니라고 아주 유명한 친구가 있더군요.”
“줄리아니?”
생소한 이름에 모두가 눈을 빛낸다.
“밤의 황제로 불리는데 그 지역 매춘과 불법 도박장을 지배하고 있죠. 그 사람으로부터 어업 지도선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도대체!”
맥그리거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모르는 일을 언제 진행했느냐는 의미였다.
“사실은 위원장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석에서는 형님 동생으로 가까운 처지라고 하더군요.”
위원장이라면 맥보란을 의미하는데 그가 소개해 줬다는 뜻이었다.
조태수는 어느새 맥보란의 광범위한 인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피아에게는 큰 힘으로 작용하고 또한 능력으로 인정된다.
맥보란이 본격적으로 조태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했다.
현재 감비노의 공식 서열 1위는 마가디노이고 2위는 언더보스인 맥그리거이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서열은 맥보란을 2위에 올려놓는다.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고 미국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 있었다.
맥보란은 지금도 20여 명에 가까운 명사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감비노를 잡아먹을 듯 추적하는 FBI 간부도 있다.
물론 후버 국장은 그 사실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