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voice phishing, but it's a lif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5
무비트리 송사장과 최명훈 감독과의 1차 미팅이 마무리된 다음 날부터 강주혁은 바쁘게 움직였다. 정리할 게 많았다.
무비트리 측과 최명훈 감독이 캐스팅 예상도를 그리는 동안, 강주혁은 가장 먼저 하정훈을 불러내 앞으로의 상황설명과 더불어 캐스팅 단계부터 참여하라고 못 박았다. 하정훈은 의아해했다. 당연하다.
보통 배우가 캐스팅 단계부터 참여하는 일은 드무니까.
물론, 애초에 감독이 처음부터 최상급 배우 한 명을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거나, 그 배우의 조건 중 캐스팅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가 있다면 참여시키지만.
보통은 작품 하나에 캐스팅된 전체 배우들이 처음 만나는 날은 대본 리딩날이다. 그때 첫인사를 나눈다. 그 자리에 모인 배우들은 각자 이미 누가 캐스팅됐으며 감독은 누군지, 스텝들은 어떻게 구성됐는지 등 모든 부분을 따져보고 계약서에 사인했기에 큰 잡음 없이 모여든다.
즉, 배우 자신이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소리.
반면, 하정훈의 경우는 다르다. 타의에 의해서, 강주혁 때문에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이기에, 강주혁은 하정훈에게 소속감과 주연배우의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 캐스팅 단계부터 참여하라 말한 것.
배우는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캐릭터에 집중한다.
작중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고, 최선을 다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하정훈은 대놓고 말하면 등 떠밀려서 사인했다. 연기를 대충 할 가능성이 있었고, 주연배우가 연기를 대충 하면 그 썩은 물은 아래쪽으로 천천히 흘러내려 작품 전체가 썩는다.
강주혁은 그런 문제점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정훈에게 영화 제작에 처음부터 참여를 시킨 거였다. 처음에야 툴툴거리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척살 제작에 자신의 손때가 여기저기 묻어있다면 사명감 또는 오기 같은 게 생겨나서 딱히 말 안 해도 미친 듯이 연기할 테지.
“ 자 다음으로. ”
다음은 개인사업자를 내는 문제와 사무실 그리고 강주혁의 반지하 월세방이었다.
“ 좀 올라가고 싶은데. ”
지금 사는 월세방이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다만, 햇볕이 드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사람이 환경의 동물이라고, 자꾸 침침한 곳에 있다 보니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강주혁이 인터넷을 비롯해 부동산을 오가며 사무실로 쓸 상가와 오피스텔을 확인해봤을 때, 딱 마음에 드는 상가는 정자역 주변에 있었고, 사무실로 쓸 상가 주변으로 오피스텔을 알아봤다.
“ 여기로 하자. ”
사무실로 쓸 상가는 3000/150. 일전에 인터넷쇼핑몰의 사무실로 사용하던 공간이라 넓이도 나쁘지 않았다. 40평 정도 되는 공간에 기본 옵션은 달려있기에, 주혁은 사무실을 한번 둘러보곤 곧장 계약을 진행했다.
다음으로 오피스텔.
정자 주변에는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오피스텔이 많았다. 강주혁은 초기 월세와 전세를 고민하긴 했지만 역시나.
“ 전세지. ”
오피스텔은 전체 총 4동에 아파트형식의 17층 건물. 그중 강주혁이 계약한 곳은 9층이었다. 전세 1억 6천. 꽤 오래되긴 했지만 20평에 이만하면 괜찮다 싶어 계약을 진행했다.
현재 주혁의 재산은.
-1,476,574,448
척살 투자금으로 빠질 10억을 제외하면 대략 4억 7천 정도. 사무실 계약과 오피스텔 계약 그리고 기타 잡비들이 빠지니, 3억 정도 남았다. 이사를 마친 주혁이 이삿짐이 가득 쌓인 거실에서 수첩을 꺼내 든다.
-영화 ‘척살’ (진행 중)
-신약개발 ‘성천바이오’ (진행 중)
적힌 내용을 쳐다보던 주혁은 이내 펜을 들어 성천바이오의 대한 내용을 지워낸다. 이제 수첩에 남은 건.
-영화 ‘척살’ (진행 중)
영화 척살만이 남았다. 성천바이오의 가짜약 사건은 확인만 해보면 그뿐. 어차피 주식도 모두 털었기에 주혁은 성천바이오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어서 개인사업자를 낸 강주혁. 상호는 ‘보이스 프로덕션’으로 정했다. 딱히 큰 의미를 뒀다기보다, 보이스피싱에서 보이스를 따와서 지은 게 전부였다. 상호야 뭐 나중에 바꿔도 되니까.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된 시점에 송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얼추 잡혔다. 내일 진행할까? ”
“ 그래요. 그럼 하정훈은 내가 전화할게. ”
“ 오케이~ ”
미팅 일정이 잡혔다.
다음날 무비트리 사무실.
송사장은 말끔해진 강주혁을 보고 외쳤다.
“ 아니 누구세요?! ”
“ 장난치지 마요 형. ”
“ 이야 누군가 했네. 정장 뽑았네? 수염도 밀고. 진작에 그렇게 하고 다녔어야지. 그 잘생긴 얼굴 계속 썩혀두길래 달라고 할뻔했잖아. ”
강주혁은 송사장의 말을 무시하면서 미소짓고 있는 최명훈 감독과 악수를 한다. 악수를 나누는 틈에 최명훈 감독도 한마디를 거둔다.
“ 아직 짱짱하시네요. 천상 배우를 하셔야 하는 얼굴인데. 아까워서 어째요. ”
최명훈 감독의 위로에 강주혁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 뭘요. 배우 말고 딴 거 하면 되죠. 뭐. ”
말을 끝낸 주혁이 회의실을 둘러본다. 둥그런 책상에 수많은 파일과 종이들이 놓여있고, 한쪽에는 플라스틱 컵이 쌓여있다. 대충 봐도 여기서 얼마나 밤을 새운 것인지 짐작이 갔다.
“ 후- ”
회의실의 상황을 보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주혁이 회색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친다. 흰색셔츠의 끝 단추 두 개 정도 풀고서, 주혁이 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
-덜컥!
회의실에 문이 다시 한번 열렸고, 잔뜩 멋을 낸 남자가 들어온다. 그 남자를 보고 주혁이 한마디 던진다.
“ 왜 이렇게 늦게 왔냐? ”
“ 얼마나 늦었다고 잔소리야. 감독님, 사장님 늦었습니다. ”
하정훈의 사과에 송사장이 대수롭지 않은 듯, 의자를 빼주며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그 의자에 앉은 하정훈의 입이 다시 열렸다.
“ 저는 보기만 하면 됩니까? ”
“ 뭔 소리야. 일해야지. 형 오늘 얘 계약서 사인까지 끝내요. ”
“ 그래그래 아주 좆대로 하세요. ”
하정훈이 투덜거렸고, 강주혁은 확신했다.
‘ 하정훈이는 확실히 잡혔다. ’
그리고 송사장이 회의실에 풍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첫 시작을 알린다.
“ 좋아좋아! 시작해보자고! 일단 이거 하나씩 가지고, 보면서 가보자. 우리 이거 만든다고 캐스팅팀 갈았다 갈았어. ”
강주혁이 파일의 첫 장을 펼쳤다. 배역의 이름이 적혀져 있고, 그 옆으로 적당한 배우들이 나열돼있다. 쉽게 말하면 캐스팅 위시리스트라고 볼 수 있는데. ‘캐스팅 제안 우선순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이 위시리스트에 들어있는 배우의 판단은 무조건 유명하고 몸값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싼 스타들로 구성하는 드림 캐스팅이 아니다.
주어진 예산, 현실적인 테두리 안에서, 조금 욕심을 내는 정도로 캐스팅을 진행한다. 거기다 현재 유행과 더불어, 대중들의 니즈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때 송사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 일단, 주연 하정훈. ”
자신이 불리자 어깨를 으쓱하는 하정훈이 물었다.
“ 박현주? 현주가 이거 한답니까? 걔 지금 드라마 들어간다고 하던데? ”
웬일로 답변은 최명훈 감독에서 나왔다.
“ 일단 쑤셔 넣어보는 거죠. 근데 드라마 들어가면 라이브라 힘들긴 하겠네요. ”
최명훈 감독이 말을 끝내자, 송사장이 턱을 긁적이며 여주 배역의 물망에 오른 여배우들을 나열한다.
“ 일단, 박현주, 김주은, 최소라 정도가 적당해. 너무 급이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낮지도 않아. 그런데 연기력은 수준급이니까. ”
송사장의 브리핑에 강주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나열된 배우들의 급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B급 정도. 말이 여주지 영화 척살에서 여주의 비중은 조연에 가깝다.
즉, 주연으로 하정훈을 때려 박았어도, 여주에는 탑스타를 올릴 순 없단 뜻이다.
그러니 이정도에 여배우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음으로 여동생 배역을 맡을 여배우. 강주혁은 이 여동생 ‘소희’라는 배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흔히들 감초 역할 또는 서사의 핵심이라 부르는데, 대사나 등장은 적지만, 존재감이 폭발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소희 역할에 내정된 여배우들이 썩 맘에 들지 않았는지, 주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소희가 20대 후반도 아니고,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한 19살 아니야? 이거 나이가 너무 튀잖아요? ”
심각한 얼굴로 송사장이 답한다.
“ 그렇긴 한데, 그 나잇대에 연기력이 뛰어난 얘들이 없어. 죄다 연기를 연기처럼 하니까. 쪼도 심하고. 소희는 대사보단 대부분 표정이나 감정연기로 찍어 눌러야 하는데, 연기가 안 되면 연령대가 맞는다고 무슨 소용이냐. ”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너무 아쉬웠다. 척살이 개봉하면 틀림없이 대중들은 이 ‘소희’라는 배역에 빠져들 거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
‘ 누구 없나. 좀 신선한······ ’
주혁이 고민을 할 때, 송사장이 한마디 거든다.
“ 일단 오늘은 여주만 픽스 합시다. 남주, 여주만 픽스해서, 바로 투자, 배급 던지자고. 우리 시간 없어요. 미팅이 줄줄이야. 벌써 소식 듣고 전화가 미친 듯이 온다고. ”
송사장이 말을 잠시 끊고 하정훈을 쳐다보며 다시 말을 잇는다.
“ 다 우리 하정훈 배우님 덕분입니다. ”
“ 하하. 제가 뭘. ”
말로 표현은 안 해도 하정훈의 표정은 이미 송사장의 칭찬에 심취해 있다. 강주혁은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웃기만 할 뿐이다.
‘ 저 정도 뽕을 넣어줘야지. ’
주연배우가 빛나는 부분도 많겠지만, 자신이 맡은 작품이 망했을 때의 책임감도 뒤따른다. 어느 정도 치켜세워주는 건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정훈의 어깨가 넘실거릴 때, 흐뭇해하던 송사장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임한다.
“ 일단 지금 3명 넣었는데, 전부 안 되면 그 밑으로 추호정, 소이, 황수정. 이렇게 생각해보자. ”
“ 급이······ 확 떨어지네요. ”
말 그대로였다. 쉽게 생각하면 방금 송사장이 말한 대비책 배우들은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모르거나 아니면 걸그룹, 드라마 몇 번 찍은 정도의 배우들.
“ 후- 정훈 씨 여주 역할이 애매해서 그래요. 어디 내밀기가 미안해. 역할 비중도 좁은데, 행여나 망하기라도 하면 필모 망가진다고 손도 안 대요. ”
역시나 초기 미팅 때 거론됐었던 여주 캐스팅 문제가 골치였다. 명색에 여자주인공이고, 영화 크레딧이 올라올 때 두 번째로 올라올 여주지만, 말 그대로 말만 여주인 배역.
회의실은 순식간에 적막에 빠져들었다. 초기 투자를 위해선 여자주인공까지는 든든하게 맞추는 게 좋을 테지만, 안 되면 안 되는 데로 투자배급사의 급을 낮추더라도 갈 길을 가야 했다.
강주혁이 마음먹고 입을 열려는 순간.
-똑똑
회의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문이 살짝 열리더니 무비트리의 입구 데스크에 직원이 얼굴을 빼꼼 내민다.
“ 저······사장님.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
송사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 오늘 일정 잡은 거 없는데. 잠깐 기다리시라 해. 차 좀 드리고. ”
하지만 직원은 부동자세로 말을 이었다.
“ 그게······그럴 수가 없어요. ”
“ 왜? 누군데 그래. ”
“ 지금. 우왓! 안돼요. 지금 회의 중이라. ”
뒤에 누군가가 있는지 직원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고, 직원에 뒤쪽에서 살짝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잠시면 됩니다. ”
목소리를 들은 송사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직원을 불렀다.
“ 경수야. 누군데? ”
“ 그, 그게. ”
“ 답답하네. 왜 그래. 일단 들어오시라 그래. ”
“ 아, 네. ”
잠시 후 회의실로 우락부락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남자가 걸어들어온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은색 니트, 남색 롱패딩을 입은 남자는 회의실로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인사한다.
“ 안녕하세요. ”
남자의 인사에 강주혁을 포함해서 회의실 안은 더욱 적막해졌다. 다들 뭐 하는 새끼지? 같은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볼 뿐이다.
참다못한 강주혁이 물었다.
“ 누구십니까? ”
남자는 그 우람한 몸을 움직여 강주혁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느닷없이 주혁의 손을 꽉 붙잡는다.
“ 엇? ”
주혁이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지긋이 강주혁을 쳐다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고마움을 표시하듯이.
한참을 주혁의 손을 잡고 흔들대던 남자는 이내 속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책상에 올린다. 그러면서.
“ 작품 들어가신다고 들었습니다. ”
책상에 놓인 명함을 집으며 주혁이 속으로 생각했다.
‘ 산적? 아니 산적 두목쯤 되나? ’
풍기는 오라와 행색이 딱 그랬다. 남자를 멍하니 보며 명함을 집던 주혁이 명함에 박힌 글자들을 보고 눈이 커진다.
-빅엔터테인먼트
-박필수 실장
명함을 본 주혁이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 빅엔터? ”
남자는 그저 주혁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때 송사장이 슬슬 다가와서 말을 건다.
“ 저······ 누구신지? ”
“ 작품 찍으러 왔습니다. ”
“ 그, 그대가 누구신 데요? ”
“ 저는 매니접니다. ”
“ 예? 매니저가 무슨 연기를. ”
송사장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 아하하. 아니요. 저 말고 류진주가 할 겁니다. ”
“ 아~ 그렇죠. 전 또 하하하. 류진······예?! 누구요? ”
“ 류진주요. ”
“ 그 류진주요? ”
“ 하하하. 네 류진주요. ”
송사장의 얼굴이 미묘하게 구겨지며 강주혁을 쳐다봤고, 이미 강주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바로 그때.
-또각또각
회의실 안으로 더블코드에 후드를 껴입은 류진주가 들어온다. 칙칙하던 회의실이 단숨에 환해진다. 그녀가 회의실을 한번 슥 둘러보더니 강주혁에서 멈춘다.
“ 선배님. 안녕하세요. ”
잠시 류진주를 쳐다보던 강주혁이 다시금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얼굴을 감싼다.
“ 하- 그 아저씨 입 겁나 싸네. ”
끝
ⓒ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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