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33
133 가족도 포기할 수 있겠니?
“음. 저번에는 생각보다 별로였는데, 계속 먹다 보니 또 괜찮네. 고작 반 숟가락에 십만 원씩 나간다는 게 흠이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덤덤하게 캐비어를 품평하고 있자, 김구름이 순간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허나 그보다 먼저 우리 정여사님의 서늘한 눈빛이 김구름에게 닿았고, 이에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언니.”
“응?”
“방금 이 인간이 말한 ‘대한 그룹’이 제가 아는 거기 맞아요? 지금 저희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 만드는 그 회사?”
“네, 맞아요.”
이미 예상했던 질문인지라 강바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대답에 당황한 것은 도리어 우리 가족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한 그룹은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젓가락을 든 아버지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김구름은 저러다 턱이 빠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을 떡 벌렸다.
“그동안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딱히 물어본 적이 없기도 하고. 어디 가서 내 입으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대부분은 너랑 비슷한 같은 반응을 보이니까.”
“아···.”
강바다의 설명에 김구름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었어도 아마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판단한 거겠지.
서로의 관계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대한 그룹’이라는 이름만으로 갑자기 거리감이 확 느껴졌을 테니.
“바다 씨는 대한 그룹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강바다’라는 사람으로서 우리를 마주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그러니 다들 그렇게 ‘속았다’라는 표정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 네 말이 맞다.”
큼큼-
한 차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가다듬은 아버지가 내 말을 두둔했다. 그는 곧바로 강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당황해서 잠시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얼추 부잣집 따님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미안하다, 새아가.”
“아버님! 아니에요. 제가···.”
이에 당황한 강바다가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정여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만 해요. 며느리가 당황하잖아요.”
“아니, 나는 그러려던 게 아니라···.”
“무슨 말인지는 알아요. 그래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아버지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 그거대로 난감하지 않겠어요?”
“···으음. 그것도 그렇겠네.”
“새아가, 부디 네가 이해해 주렴. 이 사람이 워낙 정직해서 요령이 부족하단다. 널 그만큼 아낀다는 뜻이니 오해하지 마렴.”
“그럼요.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능숙한 조율 덕에 강바다는 한결 편안한 표정이 되었고, 분위기도 이전보다는 훨씬 가벼워졌다.
덕분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며 대화를 나눌만한 환경이 만들어졌고, 이에 아버지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을 이으셨다.
“그래, 일단 사정은 이해했다. 애초에 너희들은 동거 중이기도 했으니, 결혼하겠다는 말도 크게 예상 못한 건 아니었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구나.”
“그거 아니에요.”
나는 한껏 진중해진 아버지의 표정을 통해 무슨 질문을 하실지 훤히 꿰뚫어 봤다. 예상 문제이기도 했던 터라 단칼에 끊었다.
“···난 아직 질문도 안 했다만?”
“사고 쳐서 결혼하려는 거 아니에요. 결혼은 정말 오래전부터 함께 고민했거든요. 다만 그 시기를 못 정하고 있었을 뿐이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그렇다기보다는 일종의 준비 단계라고 해야죠. 상견례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으니까요. 무엇보다···.”
나는 슬쩍 강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줄곧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와 눈이 중간에서 딱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 우리는 서로 말없이 믿음의 대화를 나눴고, 미리 준비해왔던 말을 꺼냈다.
“가능하면 저희는 예나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안정적인 가정을 제공하고 싶어요. 만약 그때를 기준으로 정한다면, 앞으로 대략 반년 정도밖에 안 남아서 말이죠.”
“입양이라···.”
흐음-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무거워지셨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계시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으시겠지.
그건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입술을 오물거리며 무언가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말 예나를 입양할 생각이야?”
그중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김구름이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으로서 가장 고민되는 부분을 물어왔다.
“물론 오빠와 예나의 이야기는 알고 있어. 애초에 우리 가족은 오빠가 변해가는 과정을 옆에서 쭉 지켜본 사람들이고.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야.”
“예를 들자면?”
“사실 대중들의 시선은 별로 걱정 안 해. 물론 일부 커뮤니티나 언론은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있네, 숨겨둔 자식이네 하면서 제멋대로 떠들어대겠지만. 최근에는 응원하는 사람의 수도 크게 늘어났으니까.”
“그건 그렇지.”
생각보다 예리한 김구름의 말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현재 우리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물론이고, 강바다 역시 최근에는 멘탈이 급성장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의 비난은 코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예나는 다르지.’
지금도 여기저기서 엄청난 관심을 받는 중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더욱 심하게 아이들의 입방아에서 오르내릴 거다.
예나 역시 멘탈이 무척 강한 편이라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진심으로 그녀를 딸처럼 여기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시선이 썩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
‘때문에 이미지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
예나의 이야기를 흘린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어떻게 해도 숨길 수 없다면 역으로 이용해버리자는 강별의 의견에 따라서.
그 일환으로 강바다는 재단을 만들고, 전국 곳곳에 있는 보육원과 고아들을 적극 후원하면서 착실히 이미지를 쌓았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고.’
최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집필하여 출간하는 등,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동안 모아둔 자본을 풀어 국내의 긍정적인 입양 사례들을 찾아 TV, 신문, 유튜브, 커뮤니티 등 모든 미디어 매체에 뿌려댔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꼭꼭 숨어있던 몇몇 입양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준 덕에 효과도 제법 나쁘지 않았고.
‘···그래도 아직 한참 부족하긴 하지.’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압도적으로 출생률이 꼴지인 나라다. 오죽하면 국가소멸 위기라며 전 세계 학자들이 이곳을 주목하겠는가.
자기 애도 낳아서 기르기 힘든 판국에 무슨 입양을 하겠나. 사람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으로서 아무래도 걱정스럽긴 해. 분명 나도 예나가 사랑스럽고 좋은 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언젠가 두 사람만의 자녀도생길 테고.”
“···음.”
사뭇 진지한 김구름의 태도에 나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다만 우리가 예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은 진즉에 끝난 지 오래. 무슨 일이 있어도 번복할 일은 없다.
“다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
“하지만 이건 입양할지 말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에요. 누가 뭐라고 하든 예나는 이미 제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느끼고 있어.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 해도 부족하겠지. 그래도 나는. 아니, 우리는 예나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한 나는 강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나는 저희를 엄마와 아빠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건 단순히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저희 두 사람을 진짜 부모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예요.”
“······.”
“비록 제가 직접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지만, 모성애라는 게 뭔지 깨닫는 중이에요. 지금의 전 예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그렇구나.”
우리의 단호한 태도에 김구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든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던 아버지께서는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눈을 감으셨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신 모양.
“그래, 이야기는 잘 들었다.”
그러던 중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정여사였다. 지금껏 침묵을 고수하던 그녀는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두 사람의 결정을 반대할 생각이 없다. 그 누구보다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일 테니.”
“···어머님.”
“다만, 그전에 우리 새아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구나. 아까 분명 예나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었지?”
“네, 맞아요.”
“그럼 가족도 포기할 수 있겠니?”
“···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여사의 질문에 강바다는 물론이고, 나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까지 당황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문자 그대로 네 가족을 포기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 거란다. 솔직히 두 사람의 결혼만으로도 강회장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어. 하물며 거기에 예나가 포함된다면?”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그동안 네가 대한 그룹의 일원으로 태어남으로써 받았던 모든 혜택을 잃어버리게 될 거란다.”
“······.”
“아니, 강회장의 성격이라면 그 이상의 것을 전부 빼앗아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 그 인간이 독하게 마음먹으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건 일도 아니야.”
과장이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가능하겠냐고 묻는 순진한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현 대기업 중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이 얼마나 있으랴.
특히 대한 그룹처럼 건설 사업을 포함해 여기저기 발넓게 펼치고 있는 기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당장 강태양만 봐도 답이 나오니까.
“만약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 눈앞에 닥쳐오더라도, 넌 정말 예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어머니, 그건 제가···.”
“나는 지금 바다에게 물어보고 있는 거란다.”
“······.”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막아서려고 했으나, 정여사는 칼같이 내 말을 잘라냈다.
그녀의 눈빛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호수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함과 묵직함이 담겨있었고, 이에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하물며 그 시선을 직접 마주하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막다른 골목에서 맹수와 마주친 것마냥 강바다의 몸이 애처롭게 떨렸다.
“······.”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지고.
보다 못한 내가 다시금 입을 열려고 할 때.
테이블 밑으로 들어온 강바다의 손이 나를 붙잡았다. 그렇게 나를 말린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정여사와 눈을 마주쳤다.
“···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힘겹게 내뱉은 한 문장.
그 안에 담긴 결의는 어느 때보다 분명했으나, 정여사는 그것만으로는 대답이 되지 않는다는 듯 더욱 거세게 강바다를 몰아붙였다.
“너는 진짜 가난이라는 게 뭔지 겪어보지도 못했잖니. 애초에 그런 상황이 너한테 닥칠 거라고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거야.”
“······.”
“뭘 할지, 뭘 먹을지, 어디로 갈지. 지금껏 숨 쉬듯 당연하게 결정해왔던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네 목을 죄어오겠지.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만 남게 될 거란다.”
“······.”
성량이 크지도, 그렇다고 목소리가 날카롭지도 않은 말투였으나. 어쩐지 심장에 콕콕 박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를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동안 어머니가 걸어왔던 길, 이 대화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본인이 직접 걸어왔던 길이기에. 그녀는 지금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강바다를 걱정하는 것이다.
“새아가, 영원할 것 같은 사랑마저도 증오로 물들이는 것이 바로 가난이란다. 특히 너처럼 온실 속에서 자라난 화초에게는 더더욱 힘겨운 일이 되겠지. 그럼에도 제 발로 그 가시밭길을 향해 걸어갈 셈이니?”
“······”
꿀꺽-
누군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것이 나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강바다는 정여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어 그녀의 떨림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가다듬으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이후 바다처럼 맑고 투명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어머님 말씀이 전부 맞아요.”
“······.”
“저는 가난을 견디지 못할 거예요. 솔직히 지금도 저희 아버지를 마주할 자신이 없거든요. 사실 두 분을 먼저 찾아뵌 이유도 그런 거예요. 한 명이라도 더 저를 지지해주길 바라서. 그 사람을 마주할 용기를 얻고 싶어서.”
“······.”
강바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본심을 털어놓는 그녀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떨리고 있었으나, 뒤로 갈수록 점점 뚜렷하고 확고해졌다.
“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심각한 겁쟁이예요. 분명 제게 지독한 가난이 닥친다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고 말겠죠.”
“···바다 씨.”
“하지만.”
그때 문득 그녀가 내 손에 깍지를 껴왔다. 그와 동시에 나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곳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담겨있지 않았다.
심지어 홀가분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표정에 내가 잠시 멍을 때리는 사이, 강바다는 다시금 정여사를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하늘 씨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해낼 거예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저희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거예요.”
“······.”
꼬옥-
강바다가 힘차게 내 손을 붙잡았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그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