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48
048 확 그냥 자빠트려버려
“잠시 저는 아이들 좀 재우고 오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래 주겠니?”
“그럼요. 잠깐 다녀올게요. 바다 씨.”
“네, 다녀오세요.”
원장님과 김하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강별이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띠며 물어왔다.
“미안해. 둘이 좋은 시간 보내는 중에 불러서.”
“응?”
“아까부터 계속 다리가 후들거리길래. 오기 전에 둘이서 얼마나 격하게 했으면···.”
“그, 그런 거 아니야!”
얼굴이 새빨개진 강바다가 얼른 강별의 입을 틀어막았다. 동생의 당황한 모습에 점점 웃음이 짙어지는 그녀.
“그래서, 진짜 결혼은 언제할 건데?”
“응?”
“너희 두 사람 계약 결혼이잖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우리는···.”
“거짓말할 때 왼쪽 눈썹이 떨리는 버릇은 여전하네. 가능하면 고치는 게 좋아.”
당황한 강바다를 바라보며 강별은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이후 다 알고 있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너를 몇 년이나 지켜봤는데. 설마 이 언니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언제부터 알았어?”
이건 추측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 강바다는 더 변명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심은 처음부터 했고, 확신은 방금 너희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알았지.”
“반응?”
“꼭 키스도 못 해본 애들처럼 굴잖니.”
“고작 그것만으로?”
“물론 그게 다는 아니고.”
강별은 자신이 의심했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늘어놨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강바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대부분은 정말 사소한 것이었으나, 한데 모아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정황 증거가 되었다.
“그렇게 어설퍼서 누굴 속일 수나 있겠니? 강태양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건지도 이해가 되네.”
“작은 오빠?”
“나도 아는데 그 양반이라고 모를까.”
“······.”
충격적인 진실에 강바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속여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냥 눈 감아 준 거였다니.
“···그래서?”
“그래서라니?”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야?”
“지금까지 전부 이야기했잖아. 결혼해서 예나 잘 키우라니까.”
“응?”
강바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헤어지라고 하거나, 이를 빌미로 무언가 협박이라도 해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읽었다는 듯, 강별이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 언니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
“뭐, 처음에는 화가 좀 나긴 했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단순한 계약 결혼이라기에는 서로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특히 김서방이 널 많이 아끼···.”
“정말!?”
전에 없던 반응에 강별이 멈칫했다. 그녀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강바다를 바라봤다.
“설마 몰랐어?”
“아니, 몰랐다기보다는···. 뭐랄까. 확신이 없다고나 할까? 보통 남자는 관심 있는 여자한테 스킨십을 한다던데. 하늘 씨는 딱히 그런 것도 없고, 고백도 안 하고···.”
“나참.”
강별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평상시에는 똑 부러지는 애가 왜 김하늘만 연관되면 바보가 되는지.
물론 그런 모습도 귀엽긴 하다만, 다른 사람 앞에서도 저러면 큰일이다. 여기서는 막내를 사랑하는 언니로서 좀 도와줘야겠지.
“네가 먼저 하면 되잖아.”
“내가?”
“그래. 입장 한번 바꿔서 생각해봐라. 김하늘이 너한테 먼저 대시를 할 수 있겠니?”
“···왜 못해?”
“아이고, 이 순수한 애를 어쩜 좋니.”
강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얼른 옆으로 다가온 강바다가 그녀를 재촉했다.
“하늘 씨 오기 전에 설명 좀 해줘. 응?”
“잠깐 기다려 봐.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니까.”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반응에 헛웃음을 터트린 강별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강바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그런 걸 어떻게 해!?”
“못할 게 뭐 있니? 법적으로는 이미 부부면서. 순서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거지.”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두면 회장님한테 걸릴 게 뻔해서 미리 말해두는 거야. 예나를 위해서라도 그런 사태는 절대 일어나면 안 돼.”
척-!
강별은 아직도 우물쭈물하는 강바다를 향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3개월 줄게.”
“3개월?”
“그래. 예나의 친권을 가져오는 소송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전에 승부를 봐서 김하늘을 네 걸로 만들어.”
“그런 게 갑자기 가능할 리가···.”
“네가 타이밍을 만들어야지. 예나랑 같이 살게 되면 그럴 기회가 올 것 같니?”
곰곰이 강별의 말을 따져보던 강바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후로는 관계 진전이 어려울 것 같았다.
“남자의 에너지도 무한하지 않단다. 상황이 워낙 특수하니까, 네가 적극적으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김서방이 먼저 지칠지도 몰라.”
“그런!?”
“그럼 기회를 만들어서 확 그냥 자빠트려버려. 연상의 매력을 보여주란 말이야.”
“연상의 매력···.”
강바다의 눈에 조금씩이지만 결의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강별이 피식거리며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야. 익숙해지면 오히려 네가 더 좋아질걸?”
“응?”
“섹스 말이야. 섹스.”
“아, 언니-!!”
강바다가 기겁하며 거리를 벌렸다. 격렬한 반응에 강별이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후후. 3개월이야. 명심해!”
“······.”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강바다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강별은 또 한참을 웃었다.
* * *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된 후.
김하늘은 강바다와 함께 차를 탔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준 후 본인은 택시를 타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래 걸려서 죄송해요. 애들을 재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처형이랑은 이야기 좀 나누셨어요?”
“으응···.”
다만 김하늘의 마음에 걸렸던 것은 조금 전부터 강바다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
처형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딱히 두 사람의 사이가 나빠 보이지도 않고, 강별이 계속 눈치를 주기에 슬쩍 자리를 피해줬던 건데. 아무래도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다.
“고민 있으면 저한테 말해보세요.”
“···그런 거 딱히 없는데요?”
“바다 씨는 거짓말할 때 왼쪽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거 아세요?”
“으응!?”
강별과 똑같은 말을 하는 김하늘. 가족은 십수 년을 넘게 봐서 그러려니 한다지만, 김하늘은 대체 그걸 어떻게 아는 건지.
– 김서방도 널 많이 아끼니까.
머릿속에서 강별과 나눴던 대화가 주르륵 스쳐 지나가며, 강바다의 머릿속이 다시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나를 자세히 관찰했다는 뜻일까나?’
그 나름의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표지를 만들 때도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잔뜩 그리지 않았던가.
점점 강별의 말이 기정사실처럼 느껴지고 있다. 강바다는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음?”
휙-!
그러다 김하늘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리는 강바다. 심장이 쿵쾅거려서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으으···. 그냥 빨리 집에 도착하면 좋겠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당장 진도를 빼는 것은 무리였다. 아직 3개월이나 남았으니까···.
그때 갑자기 차가 갓길에 멈춰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바다가 당황하는 사이, 김하늘이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요.”
쿵-!
그 순간 강바다는 문자 그대로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우리 대화를 전부 엿듣고 있었나. 그래서 지금 자기보고 솔직하게 고백하라고 하는 건가.
“뭐, 뭐를요!?”
“처형이랑 무슨 이야기 했어요?”
역시-
강바다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 대화를 전부 엿들었다면 자신이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부 알아챘을 텐데.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다니. 솔직히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지만, 강별이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 당장 돈도 그렇고, 일단 겉으로는 네가 ‘갑’의 위치에 있잖니. 심지어 계약 결혼이라고 아예 못을 박아뒀는데, 김서방이 그 선을 넘어올 수 있겠어?
– 그 말은 내가 먼저···.
– 고백해야지.
쿵쿵쿵쿵쿵-
강바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널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차마 김하늘을 마주 보지 못한 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러자 김하늘이 대뜸 자신의 안전벨트를 풀더니, 강바다의 어깨를 붙잡아서 강제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놀란 강바다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하늘이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같이 해결하면 되니까.”
“그, 그···.”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해.
강바다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켰다. 과도하게 열이 오른 탓일까, 머릿속이 점점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아니, 지금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둘밖에 없는 차 안에서 서로 마주 보는 상황. 강바다는 바로 지금이 강별이 말한 ‘타이밍’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 내가 용기를 더 내야 해!’
연상으로서.
그런 마음에 강바다는 슬쩍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하늘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심장 소리가 너무 빨라서 귓가에 들리지도 않았다. 강바다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꿀꺽-!
입술이 왜 자꾸 바싹 마르는지, 마른 침이 계속 넘어갔다. 그 소리가 부디 김하늘에게는 닿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아뇨, 괜찮아요. 그저···.”
“그저?”
강바다는 말없이 김하늘의 얼굴을 바라봤다. 과부하를 버티지 못한 뇌가 전부 타버렸는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본능에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걱정스러운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하늘의 눈과 오뚝한 코, 그 아래로 이어지는 입술까지.
종국에는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마냥, 김하늘의 입술밖에 보이질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있잖아요. 하늘 씨.”
“네, 바다 씨.”
자신이 ‘하늘 씨’ 하고 부르면.
그는 언제나 ‘바다 씨’ 하고 대답한다. 강바다는 이 관계가 언제까지고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먼저 키스한다면 그의 표정은 어떻게 변할까. 여전히 변함없을까. 이렇게 다가가도 되는 걸까.
다시금 두려움이 머릿속을 잠식하려고 할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 확 그냥 자빠트려버려.
팟-
강바다가 자신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자동차 엔진보다 더 빠르게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김하늘에게도 옮겨주고 싶었다.
“······!?”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고.
차 안에는 깊은 적막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