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81
081 법적으로 부부라고요?
‘···계약이라고?’
김구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평범한 연인 관계라면 절대로 나올 리가 없는 그 낯선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드라마나 소설 같은 건 거의 보지 않는 그녀지만, 간혹 뉴스를 통해 말도 안 되는 사례들을 접했던 김구름이기에. 어렵지 않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설마 언니가 김하늘의 몸을 노리고!?’
강바다가 상당한 부자라는 것은 겉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
간혹 부자들이 화류계 사람들한테 엄청난 돈을 쥐여주며 애인처럼 데리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성격은 몰라도 외모는 반반하니까···.’
도수 높은 안경만으로는 가려지지 않는 것이 많았다. 체격이라든지, 턱선이라든지.
신기할 정도로 여자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본인만 인지를 못 했을 뿐. 항상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런 놈이 정작 여사친은 없지.’
글 쓴다고 맨날 골방에 틀어박혀서 생활하니까. 와중에도 게임 등을 통해서 남자 인맥들은 꾸준히 늘어난 게 유머다.
언젠가 ‘백장미’라는 쌍년 때문에 고생을 엄청 해서, 그 이후로는 아예 여자랑 담을 쌓고 살았던 게 원인인 듯했다.
‘···이거 영락없는 너드남이잖아?’
잘생기고, 성실하고, 가족 관계도 원만하며, 직업으로 인한 히키코모리 성향으로 여자관계까지 깔끔한. 그야말로 판타지.
최근 몇 년간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언급되던 너드남 판타지의 화신이 바로 김하늘이었다.
‘유일한 흠이 돈이 없다는 거였는데.’
강바다처럼 돈 많은 부잣집 아가씨라면 그건 문제가 안 된다. 아니,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 애완동물처럼 부릴 수도 있겠지.
‘그래서 계약이라고 한 건가!?’
하나씩 퍼즐이 맞춰진다.
라디오 사연에 당첨됐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통해 VVIP 병실로 옮겨졌던 부모님부터, 갑작스레 여유로워진 김하늘까지.
심지어 요즘에는 잡지 촬영에 SNS까지 하면서 반쯤 연예인이나 다름없는데. 그 모든 것이 ‘스폰’에 의한 것이었다면.
‘프린세스 메이커를 현실에서···.’
아주 어릴 적 잠깐 했었던 게임의 제목이 떠올랐다. 이름 그대로 공주님을 입맛대로 키워서 여러 엔딩을 보는 게임이었지.
평범한 사람들이 구단 경영 게임을 할 때, 어마어마한 부자들은 스포츠 구단을 실제로 구매해서 논다고 하지 않던가.
현실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이걸 어쩐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계약을 끊어내고 김하늘을 구해내야 하는데. 당장 눈앞의 강바다를 보니 그런 말이 안 나왔다.
헤헤-
조금 전의 차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헤실거리는 강바다. 그녀는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말해버렸다.”
“···저기, 언니.”
“네에-?”
읏-
김구름이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단순 성별을 떠나서,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는 강바다의 모습이 너무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김구름은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니까. 가족이 안 좋은 일에 엮여있다면 이유야 어찌 됐든 구해야지.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잖아?’
강바다는 이미 만취한 상태.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로 그녀가 말하는 계약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연인 사이에 규칙을 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까.
“계약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거예요?”
“돈 줄 테니까 나랑 결혼해달라고 했어요.”
“···네? 돈이요? 얼마나요?”
“500만 원!”
“혹시 매달이에요?”
“네!”
“···세후?”
“응응. 가족 행사는 별도예요!”
강바다의 당당한 태도에 김구름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요즘은 이게 당연한 건가?
그러니까 차분하게 강바다의 말을 정리해보면, 자신과 결혼하는 대신 김하늘에게 매달 500만 원씩 주기로 했다는 건데.
‘아니, 스폰 계약 맞잖아요-!!?’
김구름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몇 번이고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건 계약 연애가 확실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사실 그에 대한 답은 앞에서 이미 다 나왔다. 허나 이유를 알면서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주제였던지라 혼란스러웠을 뿐.
지금이라도 어디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농담이라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취하고 싶다.’
아득해진 정신 때문에 살짝 취기가 올라오긴 했으나, 이 정도로는 모든 걸 잊어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박도진을 꼬실 때도 느낀 거지만, 새삼 술에 너무나도 강한 집안의 유전자가 원망스러워지는 김구름이었다.
“언니 대체 어쩌다···”
“뭐가요?”
“왜 스포···. 아니, 계약을 하신 거예요?”
“그게 말이죠오.”
뭔가 불만스러운 듯 강바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목이 타는지 그녀는 술병을 털어 밑바닥까지 싹 비워내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아주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 저는 집에 사람이 없어서 늘 혼자 놀이터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강바다의 구구절절한 사연. 하나하나 나열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이야기였으나, 중간에 끊을 수도 없었다.
그 이유로는 지금껏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며 울분을 토하는 강바다의 모습도 있었지만, 내용 자체가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오빠 흉터가 그래서 생긴 거였구나.’
자신은 물론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지 않던 흉터의 비밀이 여기서 풀릴 줄이야.
그간 알게 모르게 김하늘을 원망했던 김구름은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었으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 인간답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고집불통. 곧 죽어도 자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은 또 어찌나 챙기는지. 가끔 좀 답답하긴 해도 착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그나저나···.’
뭔가 풋풋하고 감동적인 사연이기는 한데, 그거랑 돈을 주고 계약을 하는 게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운명적인 첫사랑을 어른이 되고 다시 만났으면 그냥 정상적인 연애를 하면 되지 않나. 그런 의문을 표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저를 못 알아보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먼저 식사하자고 말해도 아르바이트 가야 한다고 도망치고. 그저 돈, 돈!”
“엥? 오빠한테 말 안 했어요?”
“···그건 너무 부끄러워서. 왠지 저 혼자만의 추억인 것 같기도 하고. 은근슬쩍 찔러봐도 하늘 씨는 전혀 기억 못 하는 눈치라.”
“아니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 언니도 맹한 구석이 있네.
김구름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는 강바다를 보며 얼른 손을 내저었다. 일생에 영향을 끼친 사건을 어찌 잊어버린단 말인가.
물론 김하늘한테는 일종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겠지만, 평생 함께했던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단순히 그놈의 입이 무거운 거다.
‘뭐 이런 바보들이···.’
무슨 말이냐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바다. 그 얼굴에서 얼핏 김하늘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건 착각일까.
평소에는 똑 부러지는 사람들이 연애만 하면 왜 이렇게 순수해지는지 모르겠다.
“오빠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냥 지금의 언니랑 그 당시 여자애의 모습을 연결짓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베어브릭도 기억 못 하던데···.”
“베어브릭이요?”
“으응.”
강바다는 가방에서 웬 플라스틱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세월을 맞아 다소 낡기는 했으나, 정성스레 관리한 티가 나는 장난감이 들어있었다.
원래는 강바다가 차 키에 항상 매달고 다니던 것인데. 이번에 김하늘에게 새로운 베어브릭을 선물 받으면서 기존의 것은 포장해서 들고 다녔다.
“이게 뭐예요?”
“당시에 하늘 씨가 저한테 선물해줬던 거예요. 놀이터 근처에 문방구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1등 뽑기 상품으로 나왔어요!”
“어···. 그렇구나.”
김구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보통은 기억 못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자신도 어릴 때는 친구들이랑 마니또니 뭐니 하면서 이것저것 주고받았었는데, 당시 뭘 받았는지는 전혀 기억 안 났다.
‘그냥 언니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은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직업도 연구원이라고 했었지. 소울 파이터 결승전에서도 모든 도탄 각도를 계산해서 쐈다고 인터뷰했었고.
‘···머리가 너무 좋은 것도 피곤하구나.’
자신은 당연하게 기억하는 일을 남들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으니, 마음속으로 혼자 끙끙 앓는 강바다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언니, 그러니까 이건요···.”
이런 부분들을 잘 정리해서 설명하는 김구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강바다의 눈이 점점 커졌다.
나중에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손을 꼭 부여잡는 강바다. 이를 보며 이 순진한 언니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김구름이었다.
“정말 그런 걸까요!?”
“그렇다니까요.”
“하, 하지만···.”
“뭐가 또 있어요?”
슬슬 이 촌극이 귀찮아지기 시작한 김구름이었다. 그냥 옆방에 가서 당사자인 김하늘을 끌고 오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강바다가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이걸 저한테 주면서 나중에 저랑 결혼하자고 약속했는데···. 그것도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거예요!?”
아아, 그 쓰레기.
어릴 때부터 잔뜩 흘리고 다녔구만.
어지간하면 편을 들어주려고 했는데. 그동안 알게 모르게 김하늘을 사모하는 여인들에게 시달렸던 입장으로서 괘씸해졌다.
– 하늘 오빠는 뭐 좋아해?
– 혹시 너희 오빠 여자친구 있어?
– 나 대신 초콜릿 좀 전해주면 안 될까!?
지금이야 사람 됐지만, 눈에 뵈는 것이 없던 학창 시절의 김하늘은 분위기가 정말 살벌했는데. 그런 애가 뭐 좋다고 저리 들러붙는지.
나중에는 귀찮아서 죄다 무시했더니. 지들끼리 브라콘이니 뭐니 하면서 지랄을 해대서 머리채를 잡은 적도 여럿이었다.
‘언니가 훨씬 아까운데.’
이렇게 예쁘고, 착하고 심지어 순수하기까지 한 영혼을 김하늘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이젠 우리는 법적으로도 부부니까. 어찌 보면 약속을 지킨 거라고 봐야겠죠.”
“응?”
“응?”
“···법적으로 부부라고요?”
“네. 저번에 같이 혼인신고했거든요!”
아, 그러셨구나.
저는 따로 들은 게 없는데.
얼마 전에 집에 갔을 때도 부모님이 ‘너희 오빠는 언제 결혼하려나?’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걸 생각하면. 두 분도 모르시는 모양이고.
“하하하. 이런 미친놈을 봤나.”
“구, 구름 씨!?”
“걱정 마세요. 제가 원래대로 돌려놓을게요.”
“네, 네!? 잠깐만요!”
벌떡 일어나서 옆방으로 뛰어가는 김구름. 뭔가 이상함을 느낀 강바다가 간신히 붙잡았다. 그렇게 두 여인의 밤이 기울었다.
* * *
“죽어죽어죽어죽어.”
“···너 이번엔 뭔가 진심이다?”
“미친놈. 나가 죽어.”
“······.”
전날에 장난처럼 외치던 대사와는 다르게 뭔가 진심이 듬뿍 담긴 듯한 김구름의 저주.
저쪽에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게 뻔했기에. 나는 강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있었구만.
강바다의 얼굴이 새빨간 걸 보니 우리처럼 두 사람도 술 한 잔씩 더 걸친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
“뭐, 아무튼 일단 밥부터 먹죠. 오후부터는 니시오 씨가 축제 안내를 해준다고 하셨으니.”
“형님, 제가 괜찮은 식당을 찾아뒀습니다. 해장하기 딱 좋은 칼칼한 국물입니다.”
“오, 그리로 갈까.”
“예!”
하룻밤 사이 충신이 된 박도진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를 보며 경악성을 토한 김구름이 얼른 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리 와! 김하늘이 옮는다고!”
“으응?”
이제는 하다하다 역병 취급이냐.
하루 이틀 저러는 것도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다. 고개를 내저은 나는 습관처럼 강바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눈에 띄게 움찔하는 그녀.
“왜 그래요?”
“···저 오늘부터 술 끊을게요.”
“원래도 잘 안 마시잖아요.”
“이, 이제는 하늘 씨랑만 마실 거예요!”
“으응?”
일부러 의문 섞인 목소리를 냈으나, 강바다는 내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저 말없이 손을 꼬옥 마주 잡는 그녀.
스윽-
말없이 강바다를 쳐다봤더니 그녀가 당황하며 얼른 말을 이어붙였다.
“제, 제가 잘 설명해뒀으니까! 하늘 씨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러니까 뭐를?
정작 중요한 주어랑 목적어가 빠져 있는데. 정황상 김구름과 연관된 건 분명한데 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형님, 식당 예약해뒀으니 일단 가시죠!”
“쟤한테 말 걸지 말라니까!”
“······.”
결국 김구름 커플과 멀찍이 떨어져 걷게 된 우리. 남은 여행 기간이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