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52
152. 불문의 승려들이 하는 면벽수련을 아시지요?2016.04.15.
사사사삭.
유난히 풀잎 소리가 도드라지는 장씨세가 내원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외곽.
나한승 셋은 고고히 눈을 감은 채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행하는 것은 명상이 아닌 참선이었다.
참선(參禪)은 선법 중 하나로 경론에만 의지하지 않고 마음으로 부처의 진리를 깨닫고자 함이었다.
“후우.”
거칠고 딱딱한 바위 위에서 좌선하던 방천이 문득 눈을 떴다. 그러자 마치 따르기라도 한 듯 방곤과 방윤이 차례로 눈을 떴다.
탁. 탁. 탁. 탁.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방천은 돌담에서 내려온 뒤 한달음에 달려나가 사내에게 예를 표했다.
“아미타불.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대사의 청정을 깨뜨려 미안하오.”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오시지요.”
방천은 알 듯하다는 얼굴로 광휘를 안으로 이끌었다.
광휘는 문득 그가 뒤로 숨기는 오른팔을 보았다. 부상이 아직 채 낫지 않아 불편한 모양이었다.
“대사. 그때 그 일은…….”
“그때 그 일입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방천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곤과 방윤이 하나씩 예를 표하고 광휘가 답례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초목 위에 세워진 정자는 장씨세가의 내원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지어져 있었다.
좋은 자리라고 여겨 이끌었던 방천이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허허. 멀리서 보기만 했지, 저희들도 처음 와보는지라……. 서서 얘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석가장과의 쟁투와, 뒤이어 이어진 팽가와의 알력 다툼으로 손을 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리에 앉기 힘들 정도로 긴 풀들이 덮여 있었다.
“난 상관없소.”
광휘의 대답에 방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씨세가 내원의 절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소승께 묻고자 하시는 것이 혹 광마가 되지 않는 방법이옵니까?”
“…….”
광휘는 시선을 내리깔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광마란 사실은 어찌 아셨소?”
“그때 그날, 시주를 상대하며 느꼈습니다. 한 올 한 올 몸에 밴 끔찍한 살기. 그때의 시주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사람을 베고 죽이는 한 자루의 검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
“어찌하다 그리되셨습니까?”
“……천중단에서.”
광휘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느 순간 그리된 것 같소. 한순간 마음이 풀어지면 동료의 목이 달아나는 일을 셀 수 없이 겪었으니까.”
“……허어.”
“예리해야 했소. 예리해야 살 수 있었소. 그러다 보니 살아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이 목적이 돼버린 것 같소.”
갑자기 말문이 열린 광휘가 낮게, 가늘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소림승들은 그의 주위에서 피 냄새가 자욱하게 풍기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소. 누군가가 광마라 불렀고, 그 현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었소. 다만 나만, 오직 나만 이제껏 그런 일을 네 번을 겪었고 아직 살아 있소. 아직.”
피를 토해내듯 긴 이야기를 단번에 말한 광휘.
그의 얼굴에는 차마 다스리지 못한 죄책감과 한스러움이 가득했다.
이제껏 이런 말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오래 묵은 마음을 털어놓자, 후련함과, 또한 나약한 자신에 대한 창피함만이 가득했다.
방천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시주.”
“말씀하시지요.”
“잠시 저희의 연무를 보아주시지 않으시렵니까?”
“……?”
***
휘이이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초봄의 눈이 싹튼 나무를 장난스레 흔들어 댔다.
정자 아래의 완만한 경사로 나온 방천과 광휘 주위에는 노송 몇 그루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엔 방곤과 방윤이 조용히 기립해 서 있었다.
“소림의 무공은 박대정심(博大精深-경지가 깊고 넓음)하여, 그 어느 하나도 절기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선사께서는 우둔한 소승께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셨으니, 그 하나는 봉술이고 또 하나는 별것 아닌 주먹질이었지요.”
한 손을 들어 반장의 예를 취하는 방천.
스윽.
그는 발을 한 자 너비로 벌렸다.
그 뒤 왼발을 조금 앞으로 내밀고 양 주먹을 쥔 채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광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런 박력 넘치는 기수식이 별것 아닌 주먹질? 그럴 리가 없었다.
‘백보신권. 소림 칠십이종 절예의 제일.’
후우우.
숨을 들이마신 뒤 내뱉자 방천의 입가에 허연 김이 새어 나왔다.
초봄이었지만 아직 조금은 추운 날씨.
하지만 광휘의 예리한 감각은, 김이 아니라 토해낸 기(氣)를 뿜어내는 동작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합!”
기합과 함께 그의 오른 주먹이 뻗어 나오자 마주 보고 있던 광휘의 옷자락이 심하게 요동쳤다.
슈아아앙.
콰아아앙! 우찌지끈.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노송 한 그루의 등허리가 뭉텅이로 뜯겨져 나갔다. 보고 있던 광휘의 고개가 저절로 뒤로 돌아갔다.
후우우우.
방천은 숨을 다시 몰아쉬었다.
쏘아낸 기를 갈무리한 그는 광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조금 뜻밖이오.”
“허. 소승이 너무 힘을 썼군요. 오 할 이상의 내공이었으니 시주께서도 제법 놀라실…….”
“그게 아니오. 방법이 틀렸다는 말이오.”
“……!”
지켜보던 방윤과 방곤은 당황한 눈으로 광휘를 바라보았다.
열여덟 소사미(少沙彌-십계를 받고 불도를 닦는 어린 남자 승려) 계를 받은 이후 일평생 봉과 권에만 매달려온 방천이다.
죽은 방각을 제외하고는, 백보신권에 대해 가장 뛰어난 소림 고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광휘는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낀 바를 솔직히 피력했다.
“위력은 충분히 강해 보였소. 하지만 예리한 느낌을 받을 순 없었소. 말하자면 뭔가…… 선사의 죽비(竹篦-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되는 도구)처럼 계도하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예리하지 못한 죽비라…… 허허허.”
방천은 미소를 보였다.
스스로의 무공이 약하다 부정하는 말인데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무공은 불가의 것입니다. 승(僧)은 사람을 죽이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죽여서라도 중생을 구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배우기에는 적절치 않아 보이오. 그런 무공은 내 검을 오히려 약하게 할 테니까.”
“그것이 시주를 광마로 변하게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 말에 광휘는 반박하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천중단 시절, 검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지금에 와서는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방천의 말대로 예리해지면 예리해질수록 제어하기가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었다.
광휘는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
“해서 여기 온 것이요. 광마가 되지 않고 지금의 힘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대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말이오.”
“흐으음…….”
이번엔 방천이 깊게 침음했다.
잠시 뒤 생각을 정리한 그는 한쪽에 나 있는 풀들을 손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불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수련하는 이,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蓬佛殺佛蓬 父母殺父母).”
“……!”
침잠해 있던 광휘의 눈이 처음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할 때 그 무엇에든 얽매어 있어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음 수련할 때는 법칙과 예식이 있으나, 그 단계를 넘어서고 나면 법칙도, 예식도, 모두 깨뜨리라는 의미이지요.”
“일체의 고정관념과 틀을 부수라…….”
“예. 방각대사와 저희가 파불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깨부수었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겁니다. 해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건대…….”
“……?”
“무공을 버렸다 하셨지요. 그걸 다시 익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광휘는 곧장 반박했다.
“그것도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오. 하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결론에 도달했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마치 고집부리는 아이의 눈빛.
방천은 광휘에게서 그것을 봤다.
하지만 내심 그런 반응도 이해가 갔다.
그는 천중단이란 곳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며 살아왔다.
그러니 다시 정론으로 돌아선다는 자신의 말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이미 시주께선 실전적인 무예의 끝에 다다르셨습니다. 그러니 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둘러본다면 미처 놓쳤던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르지 않을 것이오. 무공을 버리기 전엔 무공을 사용했었소.”
문득 과거를 떠올리던 광휘의 목소리에는 처연함이 묻어 나왔다.
“아니, 나보다 더 고명하고 전통의 무공을 사용한 자가 천중단에 많았지. 하지만 그들의 그 끝은 죽음뿐이었소.”
“혹 그들 중에서도 무공을 버린 자들이 있었습니까?”
“꽤…… 있었소.”
“그렇군요. 그럼 확실해졌습니다.”
방천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시주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요. 시주께서는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까?”
순간 광휘의 눈썹이 크게 떨렸다.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말이었지만 또렷이 느껴지는 것은, 방천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였다.
그들과 다르다.
그러니 방향 또한 다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시주. 자고로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단순히 초식을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숨 쉬는 법, 발 구르는 법, 손을 뻗는 법 하나하나에 모두 옛 무인들의 생각과 기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명가일수록, 오랜 문파일수록 형과 체에 앞서, 옛 무인들의 구결을 먼저 가르칩니다.”
무공에는 그 무공에 한평생을 바친 무인들의 삶과 깨침이 녹아들어 있다. 가벼운 수련 동작 하나하나가 무에 대한 고심과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그럼 대사께서는 내가 다시 무공을 배운다면…… 예전의 힘을 유지하면서 광마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시오?”
“그걸 소승이 대답해드릴 수는 없겠지요. 시주께서 가셨던 길은, 그리고 가시는 길은 감히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
광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눈꺼풀은 더욱 바닥으로 내려가 있었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이들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이곳에 왔다.
사실을 알고 있어도 온 것은, 무언가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여기 이 잔풀이 보이십니까?”
툭툭.
방천은 광휘에게서 고개를 돌려, 바닥에 난 풀을 가리켰다.
신기하게도, 단단한 청석에 새겨진 미미한 실금. 그 위로 소복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여린 새싹이었다.
“처음 약수가 바위에 떨어질 때 그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거라 누구도 그걸 장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지금은 그것이 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지요. 시주께선 지금까지 많은 도전을 해오셨을 테고 많은 조언을 들으셨을 겁니다.”
방천은 재차 말을 이었다.
“허나, 지금까지 그것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시주께서 가는 길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입니다. 누구도 경험하지도 못한 곳이지요.”
“…….”
“그러니 어떤 길을 가더라도 누구도 그것이 틀렸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왕에 그렇다면, 무공을 익히기에 앞서 시주께 한 가지 바람을 말씀드려 보고 싶습니다.”
“……?”
“불문의 승려들이 하는 면벽수련을 아시지요?”
일순 광휘의 눈썹이 역팔자로 치솟았다.
소림 무승들이 몇 년 동안 절간에 갇혀 벽만 보고 스스로를 가다듬는다는 면벽수련.
지금 자신더러 그걸 하라는 말인가?
“못하오. 그런 건.”
혹여나 시킬까 싶어 광휘는 정색을 하고 고개 저었다. 방천은 그런 광휘의 그 반응이 재밌다는 듯, 풋 웃어 보였다.
“어차피 그걸 하시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행려들이 면벽수련을 몇 년간 거치고 나면, 저잣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탁발 수행이지요.”
“……저잣거리?”
“예. 면벽은 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삼라만상은 결국 자기 자신에서 시작되니까요. 하지만 자신 안의 자신을 보는 것이 끝나면 그때는 다른 사람에 깃든 자신의 모습도 보아야 합니다. 경을 읽고 참선을 하는 것은 시작점일 뿐. 세상과 부딪치고, 엮이고, 흔들림을 겪은 다음에야 진정한 고요함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
“전통의 무공이란 것은 고리타분하며 때론 편협하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오래된 주춧돌과 같아서 바로 서기만 하면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바로 모든 일의 시작이 마음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혹여.”
광휘는 방천의 말을 듣다가 조금 주저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무공을 다시 배우고, 사람에 다시 섞인다. 의도는 알겠소. 그런데 그러다가 너무 무뎌지면…….”
“마음을 세우다 칼이 무뎌진다면 다시 마음의 공부로 일으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세운다?”
방천의 말에 광휘는 눈을 홉떴다. 방천은 불문의 고승답게 미묘한,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예. 한번 했던 것을 다시 못 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광마도, 시주의 예리한 칼도, 그리고 그 힘에 대한 부작용도 모두 마음에서 오는 법.”
“…….”
“시주의 문제는 무공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래서 권하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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