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274
274. 너는 강한 아이다.2017.06.16.
오싹!
수풀 뒤에 숨어 있던 능자진은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거리는 얼추 해서 십여 장.
인기척은 최대한 줄였고 숨도 쉬지 않으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어지간한 일류 고수라도 눈치 못 챌, 아니, 백대 고수쯤 되어야 가능할 거리였다.
그런데 소녀는 단 한 번에 두 사람이 숨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자가 우리를 데려왔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묵객은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분명 전중이란 자는 자신이 말한 밀마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만두 스무 개든, 스물한 개든’이라고 말한 그것이 바로 답을 했다는 의미였다.
다만 무슨 의도였는지 자신들을 내쫓았고 이곳으로 불러들어 빈민촌의 참상을 보여 주려 했다.
그런 와중에 소녀가 자신들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삐이이이-.
“침입자다!”
“적이다! 모두 대비해라!”
때마침 요란하게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두를 먹던 문둥이들을 보호하듯, 십수 명의 사내들이 일거에 나타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칩임자가 저곳에 있는 듯합니다.”
아영이라는 소녀.
그녀가 가리킨 풀숲을 향해 모두가 창, 쇠스랑 등 농기구와 병기를 들고 대비하고 있었다.
“아하하. 이런.”
결국, 묵객과 능자진은 바위에서 몸을 드러내기로 판단했다.
“저기, 저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묵객이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며 사내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뒤이어 능자진도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이곳에 병든 사람이 많다고 들었고, 그들에게 도움을 갚으러 온 사람입니다. 방각대사의…….”
“전중! 이놈!”
안면이 있다는 걸 강조하려고 한 게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일까.
능자진이 지목했던 전중을 향해, 주변의 나병 환자와 사내들이 험악한 얼굴을 했다.
“설마 밖의 놈들과 교류하며 지금까지 우리들을 염탐했던 것이냐?”
“아니. 나는…….”
“종수(鐘秀). 저놈을 묶게.”
전중은 한숨을 쉬며 순순히 포박당했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묵객에게 원망스러운 얼굴을 했다.
“내 그리 눈치를 줬건만…….”
척. 척. 척.
전중은 한쪽으로 이탈했고 남은 열두 명이 날카로운 병기를 꺼내 들었다.
이후, 각 여섯 명씩, 묵객과 능자진을 포위했다.
“이거 참…….”
능자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옆을 바라보았다.
묵객도 난처한 얼굴로 서 있자 그는 넌지시 말을 던졌다.
“이리된 것 진정시킬 필요가 있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군.”
대화가 끝나는 순간.
타탓.
둘은 재빠르게 좌우로 갈라졌고.
솨솨솨솩!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을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채채채채채챙!
곧바로 칼을 꺼내 들어 화살을 쳐 낸 능자진.
이후, 앞으로 출수하며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여섯 방위의 공격을 모두 막아 냈다.
‘삼류 셋. 이류 둘. 일류는 하나다.’
자경단(自警團)으로 보이는 이들의 공격은 잘 훈련된 합격진이었다.
그 과정에서 능자진은 상대의 실력을 단번에 파악했다.
‘문둥이촌이라더니 어떻게 이런 고수들이 있는 거지? 제길, 생각할 틈이 없군.’
쉬익! 쉬익!
능자진은 한쪽 눈을 천으로 가린 사내를 주시했다.
그는 여섯 중 가장 뛰어난 무위를 가지고 있는지, 보법을 펼치는 능자진을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하앗!”
캉! 캉! 캉!
능자진은 먼저 날아온 검을 정신없이 쳐 냈다.
그러다 지척까지 다가온 무인에게 느닷없이 다리를 뻗었다.
쇄애액.
컥.
일순, 턱을 가격당한 한 사내가 쓰러졌다.
쓱. 쓱.
능자진에게도 피해가 있었다.
머리카락과 왼쪽 어깨가 적의 칼날에 얕게 베인 것이다.
“거, 도와주러 왔다고 말을 해도…….”
쓰윽.
능자진은 다시금 에워싸는 적들을 향해 검을 위로 세우며 한쪽 다리를 옆으로 벌렸다.
그의 자세를 알아본 것일까.
사뭇 이채로운 기수식에, 한쪽 눈만 내놓은 사내가 눈썹을 들썩였다.
“화산파?”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는 즉각 능자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쉿! 쉬잇!
‘보인다.’
지금 능자진의 눈에는 묘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먼저 덤벼드는 일류 무인의 움직임.
그뿐만 아니라 우측 그리고 좌측.
심지어 등 뒤에서 뛰어드는 사내들의 동선까지 눈에 그려졌다.
패애애애액!
그 상황에서 능자진은 검이 이끄는 대로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검이 반응하자 자연스럽게 초식이 나간 것이다.
채채채채챙!
순간, 다섯 개의 검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사내들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툭. 투투투툭. 쨍강!
이후, 그들의 시선은 바닥에 맥없이 떨어진 자신들의 검으로 향했다.
“매화검수…….”
앞서 능자진의 자세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내가 신음했다.
바람에 떨어지듯 휘몰아치는 검법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화산파의 매화일수이라 불린 검성(劍星) 백군령(白君嶺).
과거 강호를 격동케 했던, 그의 매화구궁검법(九宮劍法)이었다.
“알아보시나 보군요. 그러니 이제 그만…… 응?”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능자진의 눈매가 올라갔다.
타다다닥!
갑자기 천을 두른 아이들이, 어디에서 구했는지 사내들에게 병기를 건네주기 시작했고.
일부 장정으로 보이는 자들은 검을 들고 능자진 주위를 포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참…….’
능자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섯이던 숫자가 무려 스무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더 나타났다.
*
“후우…….”
묵객은 한숨은 내쉬었다.
괜히 손에 사정을 두며 제압하려고 하니 오히려 일이 꼬이고 있었다.
손으로 마혈을 두드려 쓰러뜨린 사내들은, 악착같이 뻣뻣해진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렸다.
마비된 몸에 억지로 힘을 주면 통증이 상당할 터였는데도 포기할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쇠스랑을 들고 사내들 사이에 낀 마을 사람들.
“아저씨! 저도 싸워요!”
거기다 사내들 사이로 애들까지 섞여 있었다.
‘이를 어쩐다…….’
묵객은 도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단월도를 쓴다면 사내들은 몇 명이든 손쉽게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무예를 익힌 자들은 보폭이나, 호흡 등 일정한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노인은 다르다.
농기구를 들고 서 있는 것만 봐도 무예가 제대로 여물지 않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초식이나 형식이 없는, 전혀 예상 밖의 공격을 하기에 자칫 잘못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었다.
물론, 묵객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을 것은 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뭘 물으러 온 입장에서 피를 보아서야 곤란하지 않은가.
“쳐라!”
망설이는 묵객의 모습을 기회라고 여긴 것일까.
사내 중 하나의 외침과 함께 묵객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일거에 달려들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묵객은 탄식했다.
사내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 무려 스무 명이나 되는 자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합격진도 안 되는 마구잡이 공격이기에 묵객 자신이 아닌, 양민들 스스로를 찌르고 벨 것 같았다.
캉! 캉! 쩌저저엉!
묵객은 단월도를 빼내 힘으로 세 개의 검을 날려 버렸다.
캉! 퍼억!
그리고 뒤쪽으로 파고들던 사내의 검도 날려 버렸다. 일단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리게 한 것이다.
퍼억!
그의 뒤. 뒤이어 달려오는 자경단 사내를 본 묵객은 발로 눈앞의 사내의 가슴을 찍어 동시에 둘을 물러나게 했다.
‘위에!’
거의 동시에 공중에서 내려찍는 자경단 사내가 보였다. 급히 몸을 비틀어 상대의 검을 피하려 한 순간.
‘이런!’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아이가 있었다. 자신의 앞으로 대책 없이 달려드는 작은 몸짓이 묵객의 시야에 포착된 것이다.
‘피하면 안 돼.’
공중으로 솟구친 사내.
몸을 내던지듯 달려든 아이의 공간을 계산해 봤을 때 피하면 아이가 칼에 베인다.
촌극의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갔다.
“아!”
“저럴 수가!”
칼날이 아이의 몸을 스쳐 가자 저마다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달려들던 환자들도 걸음을 멈추며 상황을 주시했다.
“대체…….”
공중에서 묵객을 공격했던 규성(規城)이란 자는 이미 땅을 밟고 있었다.
검 끝에 피가 약간 고여 있는 걸로 보아 공격이 성공한 듯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당황하고 있었다.
조금 전, 눈앞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괜찮으냐?”
“왜…….”
묵객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피. 규성이 내려치는 검을 묵객이 몸으로 막아 떨어지는 피였다.
“왜라니. 당연한 거지 않느냐.”
스르르륵.
말하는 도중 아이의 얼굴에 둘러진 붕대가 벗겨졌다.
그리고 물집이 툭툭 피어오른 흉한 얼굴이 드러났다.
“어어어!”
버둥버둥!
묵객이 소년을 일으켜 세우기 무섭게 소년은 급히 풀려진 얼굴부터 가렸다.
당장 죽이겠다고 달려든 것이 언제인지, 소년의 곱아 버린 손은 애처로웠다.
“하, 하지 마!”
얼굴을 가리려는 붕대를 붙잡히자 소년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괜찮다. 보지 않으마.”
하지만 뜻밖에도 따스한 목소리가 울려 소년은 당황했다.
쓰윽. 쓱.
보지 않는다는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것일까. 묵객은 눈을 감은 채 소년의 얼굴에 천을 천천히 둘러 주었다.
“네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붕대를 감아 매듭을 지어 주는 묵객.
그는 의아해하는 소년에게 그제야 살짝 눈을 떠 보였다.
“팔 하나를 잃을 뻔했다. 그것도 도를 드는 오른 팔이. 무기는커녕 젓가락도 집지 못하도록 완전히 망가졌었지.”
“어…….”
소년은 눈을 껌벅였다.
그냥 양민에게도 한 팔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하물며 무기를 쓰는 무인에게 오른팔이 어떤 의미인지는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불구가 되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었지. 가장 무서운 건 사람들의 시선이더구나.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 동정하는 시선. 그런 건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내 상처를 더 헤집는 것인데 말이지.”
툭툭.
묵객은 소년의 얼굴에 감긴 붕대를 주욱 훑어냈다.
그의 손에 문둥병자의 진물과 진액이 뚝뚝 묻어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더러워진 손을 자신의 옷에 문질러 닦았다.
“그때의 나보다는 지금의 네가 더 강하구나.”
“……내가요?”
“나는 사람 앞에 나서기도 무서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서. 하지만 너는 병마도. 시선도.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지 않느냐. 그저 너희 마을 사람을 지키려고 말이지.”
피식.
그리고 묵객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아이를 향해 그는 씨익 웃어 주었다.
“보장하마. 강호 칠객 중의 하나인 묵객의 이름으로. 너는 강한 아이다.”
“나, 나는…….”
목이 멘 듯 입만 뻥긋거리던 아이가 후다닥! 사람들 사이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후우…….”
“험. 험.”
나직한 헛기침. 불편해하는 기색들.
어느새 주변에서 덤벼들던 사람들은 모두 손을 멈추고 있었다.
심지어 맞은편에서 싸우던 능자진 쪽 사람들도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둥병.
살이 썩어 문드러져 나가고, 자신에게 옮을지 모른다는 무서움에 시선을, 돌을, 심지어 칼날까지 날려 오던 외지인들.
그런 그들과 묵객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붕대를 감아 주며 손에 나풍병자의 진물이 묻어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수년을 마을마다 내쫓기며 개처럼 살아오던 환자들은 묵객의 행동에 놀라고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곳 분들을 도우러 온 사람이오. 그대들이 부운현 사람들이라면 말이오.”
묵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 달라진 분위기가 그의 피부로 전해져 왔다.
묵객은 더 당당한 몸짓으로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운객잔에서 만두 네 개,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를 밀마로 받고 여기로 왔소. 여기에 이 의미를 아시는 분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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