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273
273. 누가 데려온 것 같아요.2017.06.14.
오래되고 주위 벽이 부서진 좁은 골목.
보자기 하나를 손에 쥔 여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라 주위는 캄캄했지만 여인의 발걸음은 편안할 정도로 능숙했다.
골목길도 어느새 끝에 다다를 때쯤, 골목 어귀에 내걸린 유등이 그녀를 천천히 비췄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오?”
유등 옆을 지나치던 순간.
숨어 있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여인이 몸을 흠칫 떨었다.
이에 사내, 묵객은 손을 내저었다.
“아, 놀라게 할 의도는 없었소. 몇 가지 묻고 싶어서 왔으니까.”
안심시키는 말투에 여인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조심히 물어 왔다.
“거기 보자기 말이오. 혹시 만두요?”
“그렇습니다.”
“흐음. 확실히 수상하구먼.”
묵객은 팔짱을 낀 채 보자기를 보며 턱을 쓸었다.
“보자기에 싼 만두의 양도 제법일 터인데, 기껏 만들어 놓은 만두를 들고 어디로 가는 거요?”
“그것이…….”
여인이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쩍거렸다.
그때쯤 묵객 뒤로 한발 물러나 있던 능자진이 그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괜히 소란 일으키고 싶지 않소.”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 보였다.
평소와 달리 위협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으로 몰려든 빈민가 사람들.
어디로 숨어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도움이 매우 절실한 상황일 것이다.
“아이고, 나리. 살려 주십시오! 쇤네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위협이 먹힌 것일까.
중년 부인이 급히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자 묵객과 능자진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쇤네는 정말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저 폐가 사람들의 부탁에 이것을 나르는 것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폐가 사람들?”
능자진이 의아한 물음과 함께 묵객과 눈을 맞췄다.
묵객은 굳은 얼굴로 여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석 달쯤 되었을 겁니다. 처음 보는 남정네가 돈을 줄 테니 사흘에 한 번씩, 삼백 인분의 만두를 구해 달라고 말입니다. 마침 기근이고 사람도 없어서 이렇게 들고 나르고 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잘못은 없다는 말을 계속 강조했다.
“이해하기 어렵구려.”
몇 마디 더 설명을 보태던 여인의 설명에 묵객이 끼어들었다.
“손이 있으면 직접 가지러 올 것이지. 왜 이 많은 양을 부인에게 시키는 거요?”
“그것이…….”
여인은 잠시 호흡을 고르다 재차 읍소하며 대답했다.
“거기에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문둥병…….”
살이 썩어 문드러져 뚝뚝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병.
의원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지만, 확실한 건 문둥병 환자의 모습이 워낙에 흉측해 사람들이 접촉을 꺼린다는 것이다.
동네에 따라서는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 돌로 쳐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문둥병이라면…… 그런 곳에 음식을 내다 판 것이오?”
능자진이 기막힌 얼굴을 했고, 묵객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럼 그곳은 외부의 출입이 거의 없었겠구려?”
“그렇습니다.”
“사방을 들쑤시던 관인들도 발을 들이지 않았겠군. 이 근방의 사람들도 얼씬조차 하지 않았을 테고?”
“맞아요.”
여인의 대답에 묵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스륵.
묵객은 무릎을 굽혀 여인과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안내하시오. 그곳에 부운현에서 온 사람들도 있을 터이니.”
*
화르르!
망루 사이에 끼워 놓은 두 개의 횃불이 주위를 밝히는 어두운 시각.
“누구냐?”
사박대는 소리에, 얼굴에 천을 두른 중년인 한 명이 긴 장대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수풀 사이로 낯익은 중년 부인의 얼굴이 보이자, 그는 얼굴을 풀었지만 다시 멈칫했다.
여인 뒤에서 나오는 사내들을 인지한 것이다.
“오해 마시오. 우리는 공격할 의사가 없소.”
묵객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여인을 앞지르며, 천으로 얼굴을 가린 중년인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본인은 칠객의 묵객이라 하오. 사연이 있어서 온 것이니 일단 얘기라도 들어 보지 않겠소?”
“칠객? 강호 칠객을 말하는 것이오?”
어디서 명호를 들어 본 것일까?
중년인의 눈빛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그렇소이다.”
중년인은 묵객의 말에 그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일단 문전박대는 아닐 거라는 판단 하에 예의를 더욱 차리며 말했다.
“저희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혹 부운현에 살았던 병자들을 알고 있습니까? 저희는 그들을 찾다가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
중년인은 어떤 반응도 없이 침묵했다. 이번에는 능자진이 나섰다.
“형장, 우리는 과거 방각대사께 빚을 진 사람들이오. 그분이 부운현의 병자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지. 그분이 돌아가신 후, 장씨세가의 장웅 공자가 그 일을 맡았소.”
능자진이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근자에 발호한 은자림 때문인지 일이 꼬였소. 자금을 보내는데 받는 사람도 찾기 힘들고 연락도 두절된 상황이오. 나와 묵객 대협이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건 그 때문이오. 조금 납득이 가시오?”
“…….”
중년인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저 탐색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볼 뿐이었다.
도통 설득이 되지 않자 다시금 묵객이 나섰다.
“만두 네 개,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 기억하시오?”
“……!”
묵객의 말에 순간, 중년인의 눈이 커졌다.
“장웅 공자가 말해 준 밀마이지요.”
묵객은 조용히 그의 반응을 살폈다. 능자진도 이번엔 내심 뭔가 기대하며 조용히 그의 기색을 살폈다.
잠시 고민하던 중년인이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어 사락사락 붕대를 풀어냈다.
“흡!”
일순, 묵객과 능자진의 표정이 굳었다.
횃불에 비친 중년인의 얼굴. 살이 썩어 문드러지고 흉악하게 일그러진 모습이 드러났다.
문둥병이라고 해서 뭐 좀 징그러운 정도니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혐오감이 몰려온 것이다.
“큭큭. 강호에 협명을 떨치는 묵객도 이건 감당이 안 되시나 보오?”
중년인이 한스러운 탄식과 함께 냉랭한 비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건…….”
“실례라 할 것 없소. 우릴 보는 이들은 열에 아홉이 그런 얼굴이 되지. 하지만 말이오. 우리 마을에는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소.”
묵객이 사과하려 하자 중년인이 휙휙 장대를 휘둘렀다.
예를 차린 말투와 달리, 내용은 지극히도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본인은 전중(田重)이란 자요. 도우러 오셨다는 분들이…… 아직 환자들의 마음까지는 모르시나 보오. 지금 당신들 같은 눈빛. 그런 눈빛이 이미 썩은 우리들 가슴에도 한 서린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걸 말이오.”
“…….”
능자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묵객은 크게 탄식을 쏟아 냈다.
“형장…….”
“돌아가시오. 만두 스무 개든, 스물한 개든, 아직 아무 감당도 준비도 안 되신 분들은.”
홱!
그러나 중년인은 더 말할 것 없다는 투로 그대로 돌아섰다.
“허, 이것 참…….”
“가십시다.”
그때 능자진의 어깨를 묵객이 툭툭 치며 말했다.
“아니, 대협. 겨우 찾았는데…….”
“갑시다. 일단은.”
묵객이 말과 함께 눈을 찡긋했다.
능자진은 그 신호를 읽었다.
“알겠습니다.”
곧 둘은 몸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전중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터벅터벅 꼬불꼬불한 산길을 이리저리 걸었다.
사박사박.
그리고 길을 벗어나 수풀을 그대로 몸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한참을 더 걸어가자 작은 망루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뭐던가?”
망루에서 번을 서던 네댓 명의 사내들이 물었다.
“별것 아니네. 그냥 겁 많은 잡놈들이야.”
사락. 사락.
중년인은 벗은 천을 다시 얼굴에 두른 후 대답했다.
“혹 따라왔을지 모르니 주변을 확인해 보세.”
“그래. 자넨 저곳을 돌아보게.”
“자넨 저 주변으로.”
화르르르.
횃불을 들고 세 명의 사내가 일대를 뒤지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풀이 잔뜩 죽은 중년 부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부인 잘못이 아니오. 상대는 강호에서 엄청난 무명을 가진 고수들이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마을에서 묵고 가시는 게 좋겠소.”
“감사합니다.”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은 받아 든 보자기를 들고 조용히 한 곳을 바라보았다.
‘묵객이라…….’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어둠 속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사사사삭.
중년인의 뒤를 밟는 묵객과 능자진의 움직임이 은밀했다.
괜히 소란스럽게 일을 진행시키기보다 이런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일각쯤 지났을까.
중년인이 굽은 도로로 접어들 때 묵객이 능자진에게 신호를 보냈다.
투욱.
능자진이 걸음을 멈췄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살폈다.
열다섯 채 정도로 보이는 나무집.
각 문 앞에 달린 각등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딱딱.
조용한 어둠 속.
나뭇가지 부딪치는 소리가 침묵을 깨웠다.
중년인이 장대를 잘려 나간 나무 밑동에 툭툭 치는 소리였다.
그리고.
‘사람이야.’
끼이이익.
몇 번 숨을 고를 때쯤, 묵객과 능자진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대문들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온 곳이다.
“천천히들 들어라.”
중년인은 능숙하게 음식을 건넸다.
체구가 크고 작은 사람.
걸음걸이가 느리고 불편한 사람 등.
대부분은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보자기 안의 만두를 먹기 시작했다.
“형장…….”
“보고 있소.”
능자진의 물음에 묵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진 천을 두르고 몰려드는 사람들.
얼굴은 모두 가리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불신과 지독한 경계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는 내력을 돋우며 시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어둠 속이기도 했고 만약을 대비해 제법 거리를 벌렸기 때문이다.
“미안하구나. 요 며칠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데 오늘은 많이 가져오지 못했다.”
중년인은 먼저 아이들에게 만두를 건넸다.
그러다 흰 백발의 노인을 보고 물었다.
“아영(兒榮)이는?”
그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 와요.”
때마침 만두를 집어 먹던 한 아이가 한 지점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전중의 고개가 그곳으로 돌아갔고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두 여인이 있었다.
“빨리 와, 이년아!”
천을 두른,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과 조금 떨어진 채 힘없이 나부끼듯 걸어오는 소녀가 보였다.
특이한 것은, 소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천을 두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괜히 소름이 돋는구먼…….’
능자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한밤중에 깡마른 소녀를 보자니 뭔가 스산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빨리 와! 이 계집애야!”
재차 소리치는 부인이 소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끌다시피 하여 중년인 앞에 도착했다.
눈치를 보듯 주위를 힐끔힐끔 더듬던 소녀.
만두를 하나 집어 들려는 듯하다 이내 다시 손을 접었다.
“왜 안 먹느냐? 하루 종일 굶었으면서.”
조용히 물어보는 중년인.
앙상한 몸의 소녀가 겁에 질린 듯 말했다.
“무서워서요.”
“뭐가?”
중년인은 의아하게 바라보였다.
대답하지 않으려는지, 소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괜찮다. 여긴 무서운 건 없다. 그들은 없어.”
중년인이 만두 하나를 집어 내밀었다.
소녀는 주저하더니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있어요. 누가 데려온 것 같아요.”
“누가?”
부인이 눈을 뜨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바짝 마른 팔을 앞으로 내밀며, 앉아 있는 중년인의 미간을 짚더니 수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당신이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