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319
319. 한 문파가 남았어.2017.11.22.
심주현 장씨세가 앞에서는 진귀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보통 양민들은 살면서 평생 보기도 힘든 무림의 원로 고수들이 이백이 넘게 몰려온 것이다.
먹물 들인 승복 입은 승려들과, 관을 쓴 도사들.
문파마다 가지각색으로 다른 옷을 입은 무림인들이 문 앞에 서 있자 장씨세가 사람들도 몰려나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저기 저분들도 소림파인가?”
“예끼, 이 사람! 소림에 여승이 있던가? 비구니인걸 보니 아미파겠지?”
“어. 저분들은 화산파야. 소매 아래에 저 매화 문양. 본 적은 없지만 들은 적은 있어.”
“갈색 피풍의? 어. 저거 어느 문파인지 아나?”
소림, 화산, 무당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고, 그 특색도 확실하다.
하지만 청성, 종남, 공동, 점창 등의 도문 4파는 다르긴 다른데 정확히 어떤 곳인지를 알지 못했다.
하기야 강호 무인이 아니고서야 도복과 검의 수실만으로 정확히 알아맞히기는 힘들었다.
양민 기준에서는 그냥 승복을 입으면 불문이고, 그중 남자면 소림, 여자면 아미 정도였으니까.
“해남파다!”
“오랜만에 오시는군! 남도의 기상!”
물론 과거에 들렀던 해남파는 바로 알아보았다.
덕분에 은연중에 갈채에 차이가 났고, 그건 또 혈기 방장한 일대 제자들을 뿔이 나게 만들었다.
“하. 이 무지한 것들이 정말…….”
“자중하라.”
도인답지 않게 성미를 돋우는 일대 제자를, 점창의 장문인 안평대사(安平大師)가 책했다.
거사를 앞두고 괜히 감정적인 대응으로 소란이 일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대규모로 모인 무림인들이 은연중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저벅저벅.
구파 사람들에겐 낯선 사내였다.
초가을에 들어선 날씨인데 겨울에나 입을 길고 두터운 장포 차림.
허리에는 기이하게 꺾여 있는 기형검이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저벅저벅.
그를 따르는 낯익은 가삼의 노승들.
특히나 소림사 쪽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다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
“…….”
대문 앞으로 나와 깊게 포권을 한 사내의 모습에 구대문파 사이에는 일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거 뭔가 하고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불쾌하게 얼굴을 찌푸린 이들도 있었다.
“저런, 저…….”
“이런! 망측한! 대체 누구야!”
“지금 여기 누가 오셨는지 알기나 하는가!”
급기야 혈기 넘치는 일대 제자들이, 장로와 장문인이 만류하기도 전에 폭갈을 토해 냈다.
낯선 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던진 상대에는 강호상 최고 배분인 구파의 장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승을 하늘처럼 섬기고, 자기네가 최고라 여기는 각파의 일대 제자들은 거품을 물 만도 한 일이다.
“넌 뭐 하는 놈이냐!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놈! 어디서 귀하신 손님들을…….”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벌컥벌컥 화를 내던 일대 제자들의 목소리가 천천히 줄어들었고.
이런 때 ‘흠!’ 하며 은근히 노한 기색을 보일 장로들의 반응이 영 잠잠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구파일방 모두가 그랬다.
무당과 화산은 조용했고, 청성은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장로들 사이에서 뭔가 차가운 목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즉각 수그러들었다.
심지어 소림파는 간간이 침통한 얼굴로 불호만을 외는 이들도 있었다.
“……아미타불.”
그들의 제일 앞에 나선 장문인의 시선은 낯선 사내가 아닌, 그 뒤에 선 세 명의 노승에 고정되어 있었다.
“괜찮겠소?”
장포의 사내가 묻자 그 뒤에 선 노승들이 조용히, 한 손을 들어 반장했다.
“괘념치 마십시오, 대협. 이런 때에 숨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소림?”
승려의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구파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합장이 아닌, 한 손으로 예를 표하는 것. 이는 무림에서 오로지 소림만이 행하는 것이다.
소림의 개파 사조인 보리달마. 그 제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한 팔을 자른 혜가를 기리는 예.
“잠깐만. 소림의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이곳에 왜 소림이 아닌 이들이…….”
“하하하하. 또 왔네, 광휘. 잘 지냈지?”
쿵. 쿵.
술렁임이 퍼져 나가는 가운데, 구파 중 박장대소하며 앞으로 걸어 나오는 기골 장대한 노인이 있었다.
장씨세가 사람들도 낯이 익은, 해남파 문주 진일강이었다.
“여기 남는 밥 좀 있나?”
긁적긁적.
그리고 그 옆에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를 입은 거지 하나, 개방 방주 능시걸도 있었다.
“어어…….”
아까 버럭 했던 일대 제자들은 이제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별것 없는 개 꼬리인 줄 알고 밟았는데, 알고 보니 집채만 한 호랑이의 꼬리 같은 기분이었다.
차아악.
저벅저벅.
때마침, 잿빛 가사를 입은 깡마른 노승.
소림의 장문인 방혜선사(方蕙先師)가 무리를 떠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진일강과 능시걸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옆으로 피해 주었고, 방혜선사는 광휘를 향해 느릿하게 반장을 해 보였다.
“나무아미타불.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유 시주.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허…….”
“대체 무슨…….”
이제 일대 제자들은 오금이 다 저려 오기 시작했다.
강호상 최고 배분이라는 방혜선사가 먼저 인사를 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끽해야 마흔. 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평범한 사내에게.
“팔 년 만이구려, 방혜대사.”
주변에서 웅성이거나 말거나, 광휘는 감정의 동요 없이 말을 받았다.
“아니지요. 얼마 전 해가 지났으니 구 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소?”
“예. 소승이 기억하지 못할 리 없지요. 그날을.”
방혜는 쓰윽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치 들으란 식으로 목소리를 한껏 높이더니 광휘에게 말을 이었다.
“전대 무림맹주 유역진 대협. 귀하가 모두를 위해 직을 내려놓은 그날을 말입니다.”
*
“……전대 무림맹주?”
“지, 지금 소림 방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거야?”
소곤거리던 웅성임은 이제 모두가 들을 만큼 커져 있었다.
전대 맹주. 시일이 9년이나 지났다는 이야기까지.
구대문파의 모두는 어느새 소림의 방주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벅.
“역시나 했는데 유 대협이셨군요.”
두 사람의 대화 중에 나선 이가 있었다. 코 옆에 사마귀가 솟아 있는, 공동파의 남색 도복을 입은 이였다.
“……오성대사(悟性大師)?”
“그렇습니다. 먼발치에서 긴가민가했는데 직접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의각 회의 때 본 뒤로 처음이지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대협.”
뒤이어 나온 자는 육십이 넘는 나이에도 고아한 목소리를 가진.
아미파 장문인, 수월신니(水月神尼)였다.
“대체 이 무슨…….”
“허허.”
구파의 장문인들이 하나둘씩 나서자 좌중의 혼란은 이어졌다.
장로들은 입을 쩌억 벌이고 있었고 호법들은 지금 본 게 맞는지 눈을 비비고 있었다.
“곤륜파 장문인 당초도장(唐椒道長)입니다.”
“청성파 장문인 석명도사(石明道士)입니다.”
“점창파 장문인 안평대사입니다.”
곤륜과 청성, 점창파 장문인까지 하나둘 읍을 해 보이자 장내의 사람들은 충격을 넘어서서 아예 경이로움을 느꼈다.
구파일방의 일대 제자들은 혼돈에 빠졌고, 이 과정을 지켜보던 장씨세가 사람들은 신기하기만 했다.
뭔가 사달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서로 인사를 자청하며 예를 갖춘다. 다른 자도 아닌, 강호의 기둥이라는 구파의 장문인들이.
‘전대 무림맹주라면…….’
하나둘씩 나서는 와중에, 무당파 장문인인 대원진인은 한 발 떨어진 채로 보고 있었다.
직접 나서서 예를 표하던 다른 장문인과 달리 그는 아직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 거지…….’
화산파 장문인인 현각도사도 매한가지였다.
지금 상황에 그 역시도 제대로 납득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들 오랜만에 뵙소.”
광휘의 대답에 좌중의 소란은 봇물 터진 것처럼 커졌다.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일대 제자, 좀 더 사정을 듣고 싶은 장로들까지 혼란이 극심해진 것이다.
하지만 구파의 장문인이 나선 상황에 대놓고 질문을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 먼발치 떨어진 곳에서 피풍의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무리들이 있었다.
“무림맹주를 뵙습니다!”
그들과 거리가 가까워질 때쯤, 일대 제자 하나가 인상착의를 알아보고 예를 표했다.
구파의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허리를 숙이며 깊게 포권을 했다.
“무림맹주를 뵙습니다!”
“무림맹주를 뵙습니다!”
함성과 같은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걸음을 멈춘 무리.
무림맹주 단리형이 무영대를 데리고 이곳에 온 것이다.
“다들 먼 길을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맹주가 느릿하게 포권을 하자 장문인들도 화답했다.
조금 떨어져 있던 화산파 장문인과 무당파 장문인도 직접 다가와 예를 표했다.
그들을 알아본 단리형이 입꼬리를 올렸다.
“두 분께서는 황궁에서 뵙고 또 뵙는군요.”
“그러합니다.”
“며칠간이지만 잘 계셨지요?”
단리형은 두 장문인의 말을 받으며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장문인과 달리 화산파와 무당파만 멀찍이 서 있는 모습에 대충 상황이 그려진 것이다.
“두 장문인께서는 당시 어가를 호위하시느라 광휘란 친구와 만나지는 못하셨지요?”
“음, 그렇습니다.”
“솔직히 고명을 듣는 것조차 오늘이 처음이오.”
두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 단리형은 탄식하다시피 길게 한숨 쉬며 말했다.
“광휘 이 친구는 한때 저보다 먼저 무림맹주로 추대된 적이 있습니다. 한데 당시의 맹의 회의에서는 이것저것 반발이 많았지요. 그 일로 소림과 화산, 두 파의 전대 장문께서는 항의하는 의미로 직을 내려놓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아니. 그럼, 소림방장께서는?”
“방혜대사께서는 그즈음에 광휘 이 친구와 몇 번 면식이 있었으니 바로 알아본 것입니다.”
맹주의 말에 방혜선사가 쓰윽, 한 손을 들어 반장을 취했다.
무당과 화산의 두 장문인은 안색이 변했다.
정확히 아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들도 전대 장문인에게 뭔가 들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맹주, 그 말씀은 혹시 이분이…….”
무당의 대원진인이 뒤늦게 불편한 얼굴로 물었다.
“예. 전대 천중단 단장입니다.”
“……!”
“……!”
“……!”
맹주의 말에 쑥덕대던 좌중의 목소리가 삽시간에 멈춘 듯 흘러갔다.
전대 천중단 단장. 그렇게 말한 단리형이 침묵에 빠져든 좌중을 향해 덧붙였다.
“그리고 이 늙은이의 친우이자, 중원을 구하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친구이옵니다. 당시에는 정말 맹내의 분위기가 흉흉했지요. 큰 문파의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맹주 같은 중차대한 직을 맡…….”
“흠, 흠. 맹주. 지난 일을 말하기에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닌 것 같소이다.”
뜨끔한 얼굴로 화산파 장문인 현각도사가 나섰다.
맹주는 피식 웃는 얼굴로 그를 보다가 쓱 고개를 돌렸다.
“하긴, 그것도 그러하외다. 지금 여기 모인 이들은 선불 맞은 송아지처럼 겁도 없이 구파 일방에 도전장을 낸, 은자림 놈을 징치하러 온 것이니 말이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무당과 화산의 두 장문인이 재깍 대답했다. 단리형은 능글능글하게 그들을 보고 웃다가 정색을 했다.
“그럼 출발하기 전에 잠시 입장을 확인하지요. 무림의 해악, 은자림을 징치하는 일에 대해 각파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단리형이 기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자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후.
“소림은 맹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소림 방장인 방혜대사가 나오며 예를 표했다.
그러자 다른 장문인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공동도 함께하겠습니다.”
“우리 곤륜파, 강호의 정의를 바로잡겠습니다.”
“해남은 말할 것도 없소.”
이윽고 모든 문파 장문인이 동의 의사를 표명하자 단리형이 슬쩍 광휘를 보며 웃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무표정한 광휘. 그가 아직도 기다리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결국 단리형이 물어 오자 광휘가 고개 저었다.
“한 문파가 남았어.”
“한 문파? 어디?”
쓰윽.
광휘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가리켰다.
사람들 사이에 작게 자리 잡은 노란 깃발을 든 한 무리의 도인들을 향해.
“모산파의 귀인들께서는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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