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322
322. 오기 전부터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지요.2017.12.01.
“제가 나갈게요.”
뜻밖의 상황에서 갑자기 아영이 나섰다. 이제껏 등 언저리의 옷자락을 붙잡혀 있던 당고호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아영아! 그게 무슨 소리냐!”
“이대로 계속 시간만 끌고 있을 건가요? 한시라도 빨리 저 아가씨를 돌려받아야죠. 그래야 싸울 수 있을 테니까.”
소녀처럼 앳된 얼굴의 여인이 흘깃, 광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
광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곧장 알아챘다.
장련이 붙잡혀 있는 이상, 그는 움직일 수 없다. 맹주 또한 자신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
그럼 남는 것은 오로지 구파일방만의 전력이다.
이들만으로 은자림의 마지막 수를 막기에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저를 믿어 주세요. 저도 생각한 게 있어요.”
“……?”
“고맙구나.”
동의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하는 광휘 대신, 맹주 단리형이 묵직하게 말했다.
뒤이어 재차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약속하지. 네 신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오늘 저놈들을 다 없애 버리겠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두 사람이 비장한 말을 나누고 있을 때, 장터의 장사꾼처럼 운 각사가 떠들어 댔다.
“자아, 아직도 고민하십니까? 보다시피 이 신녀는 두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나쁜 마음을 먹더라도 저 아이와 장련 소저에게 손을 쓸 수 없어요. 그래도 못 믿겠습니까? 그럼 다리 한 짝도 자를까요?”
“저런 미친놈.”
맹주가 이를 갈았다. 같은 편인 여인의 남은 한 팔을 잘라 버리고, 여기에 다리까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상종조차 하기 싫은 놈이었다.
“후우- 좋다. 받아들이지.”
맹주는 결국 그의 제안을 받기로 했다.
저놈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더 무슨 더러운 꼴을 볼지 몰라 손을 내저었다.
“좋습니다. 그럼.”
운 각사가 하선을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하선은 장련을 향해 눈짓을 했다.
*
인질 교환이 시작되었다.
먼저 첫발을 내디딘 건 아영이었다.
사박.
사박.
그리고 장련도 아영에 맞춰 한 발 움직였다. 상대의 보폭에 맞춰 느릿하게 움직였고.
사박사박.
사박사박.
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장련과 아영은 서로 마주 볼 정도로 지척까지 거리가 가까워졌다.
사박.
그렇게 거의 교차되는 거리쯤에서.
“듣기만 해요.”
아영이 말을 걸어오자 장련은 움찔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운 각사는 제가 맡을게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해요.”
“그게 무슨…….”
“걸음 늦추지 마요.”
사박.
아영이 지적했다. 장련이 느려졌던 발을 한 걸음 급하게 떼었다.
“앞으로도 잃지 말아요. 그 미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은 서로를 지나쳤다.
장련은 더 물을 틈도 얻지 못하고 아영을 등 뒤로 보내야 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오간 것을 느낀 하선이 아영을 향해 물었다.
“덕담이죠. 손 없으니 불편하지 않아요?”
그녀를 향해 아영이 미묘하게 웃어 보였고 하선은 불쾌한 얼굴을 팩! 소리 나게 돌려 외면했다.
사박사박.
사박사박.
서로를 지나친 장련과 아영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던 어느 시점.
다다다닷. 파앗.
장련이 내달리듯이 앞으로 뛰었다.
무릎까지 오는 그녀의 비단옷이 기다란 머리카락과 함께 바람에 휘날렸다.
“무사님!”
풀썩!
그리고 광휘의 품에 안기며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괜찮소, 소저. 이젠 괜찮소.”
“흑흑…….”
광휘가 품에 안긴 그녀를 다독였다.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운 각사.
저놈 옆에서 얼마나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을지.
그리고 이제 막 벗어난 복받침이 얼마나 클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오너라. 어서.”
반면, 마지막 한 걸음, 한 걸음을 느릿하게 걸은 아영이 운 각사 쪽으로 도착했다.
환희에 가늘게 떨며 운 각사가 자신 쪽으로 손짓을 했다.
착. 착.
몇 걸음 더 걸어 앞에 서서, 아영은 운 각사를 올려다보며 당차게 대답했다.
“결국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됐군요?”
“그래…… 십 년이나 되는 세월이었지. 뭐,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때. 드디어…… 네가 돌아왔구나.”
운 각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리자 아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안 거죠?”
“몰랐다.”
“…….”
“하지만 살아 있을 거라고 보았지. 그냥 감이야. 너는 다른 아이와 달리 특별했으니까.”
사박.
운 각사는 무릎을 굽히고 몸을 낮춰, 아영과 시선을 맞췄다.
“아영아, 너는 진실로 특별한 아이란다. 구음진맥의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건…… 단순히 이능 정도가 아닌 권능이라 불러야 해. 그만큼 절대적인 능력이다.”
부르르르!
말과 함께 운 각사가 온몸을 떨었다.
아영의 눈살이 또 한번 찌푸려졌다. 운 각사의 기괴한 눈동자가 계란 노른자처럼 노래졌다가 파래졌다가, 다시 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본 것이다.
“당신…….”
아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결국…… 그 무공을 익혔나요?”
“오, 보이느냐? 그래. 어떠냐? 굉장하지 않느냐?”
눈을 희번덕대며 운 각사가 찢어질 듯 과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아영을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이제 의식을 치르자꾸나.”
“네 뜻대로 될 것 같아?”
“……?”
“죽어!”
파밧!
급작스럽게 아영이 뒤로 물러나며 한 손을 펼쳤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외침에 잠시 장련을 향했던 구파일방의 시선이 운 각사 쪽으로 몰려들었다.
파파파팟.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어.”
“저길 보시오!”
순간,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파라라라랏.
새카만 점들이 솟아올랐다. 운 각사의 뒤에 시립한 신도들의 손에서 빠져나온 새카만 원형의 구체들.
쉬르르륵.
그 폭굉이 빠르게 원을 그렸고, 일순간 운 각사 쪽으로 회오리처럼 모두 날아든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또다시 신귀 어린 광경이 포착되었다.
파락.
저저저저저저저적!
수백 발의 폭굉이 운 각사 앞에서 거짓말처럼 멈춰 버렸다.
아영이 펼친 염력이라는 이능을, 허공섭물이라는 무공으로 막아 버린 것이다.
“쓸데없는 짓이야.”
찰나 얼굴이 굳었던 운 각사는 아영을 향해 다시금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네 이능은 나에겐 어린아이 장난에 불과해. 내 규화보전과 결합했을 때야 비로소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아…….”
아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름대로 자신을 가지고 했던 반격이 초장부터 막혀 버린 것이다.
“이리 온? 어서.”
터벅. 터벅.
소녀처럼 덜 자란 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발짝, 한 발짝 운 각사 쪽으로 움직였다.
이를 악물고 저항해 보려 했지만 미증유의 거력을 도무지 거스르지 못하고 끌려가기만 했다.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보고 있던 당고호가 버럭 소리 질렀다.
“다들! 이대로 가만히 계실 겁니까!”
함께 지낸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어느새 당고호와 아영은 서로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장련 외에 아영이 유일하게 마음을 연 사람이 당고호였다. 그리고 당고호도, 누군지 모르지만 선대의 연이 닿아 도움을 받은 그 아이를 남처럼 여길 수 없었다.
“저 아이를 도와줘야 하지 않습니까? 맹주! 그리고 광휘 대협! 다들 뭐 하는 겁니까!”
첫 만남은 서로서로 매우 불쾌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허허 웃으며 넘어갈 옛일이 되었다.
지금 눈앞에서 죽어 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정도로 싫은 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저런 개죽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르신들! 저기, 맹주!”
“지금 달려가면.”
당고호의 외침에 맹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적했다.
“폭굉의 범위에 말려든다. 그럼 아영이는 바로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잔 말입니까!”
“기다려라, 일단.”
주변을 살피며 무언가를 헤아리는 맹주.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당고호는 팔을 걷어붙였다.
“빌어먹을! 그냥 나라도 가겠소! 위험하다고 겁먹은 개처럼 구는 건 우리 당가 사내들이 할 짓이…….”
“오지 말라고 했어요, 아영이는.”
“……?!”
멈칫.
당장이라도 뛰어들려던 당고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광휘에게 안겨 한참을 운 장련이 눈물범벅이 된 채, 바짝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 지나칠 때. 분명 저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아무도 오게 하지 말라고. 운 각사는 자신이 맡는다고.”
“하지만 지금 폭굉을!”
“기다려 보게. 아직 끝 안 났네.”
다시 맹주가 말했다.
그의 눈은 아까부터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다. 솜털 하나, 바늘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그 역시 잔뜩 집중해 있었다.
“가진 이능도 이능이지만, 때때로 음험할 정도로 독한 구석이 있던 아이야. 저 아이가 그리 말했다면 일단은 두고 보자. 옛날 천중단에서, 우리에게 가장 요주의 대상이었던 아이다.”
“…….”
그제야 당고호 또한 떠올렸다. 아영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이들이라는 것을.
*
터억.
운 각사는 아영을 완전히 제압했다. 허공에 날아오른 폭굉은 다시 신도들 손으로 되돌아갔고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녀의 등 뒤, 명문혈에 손을 대고 뭔가를 외기 시작했다.
“……악!”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영이 고통을 호소했다. 발작하듯 몸을 꿈틀거렸지만, 운 각사의 손은 아교로 붙인 듯 떨어지지 않았다.
“아라타샤…… 아라샤…… 사이세라타…….”
“……아라타샤…… 사이타샤아…….”
괴이한 주문은 반 각 정도 진행되었다.
운 각사의 손에서 은은히 녹광이 뿜어 나오고, 붙잡힌 아영의 입에서 울컥! 검붉은 선혈이 뿜어 나왔다.
“육시랄! 도저히 못 보겠다!”
참고 참던 당고호가 이를 악물며 품속에 손을 넣는 순간.
“아악!”
또다시 이어지는 비명과 함께 퍽! 하는 소리가 들렸고, 아영이 공중에 치솟았다.
“아영아?!”
타닥!
온몸의 살집은 어쨌는지, 당고호가 반사적으로 아영을 안아 들었다.
새파랗게 질린, 숨만 겨우겨우 내쉬는 게 당장이라도 넘어갈 듯했다.
“크악! 크아아악!”
뒤이어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운 각사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가 좀 전의 아영처럼 고통을 호소하며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술렁술렁.
운 각사 뒤의 무리들이 불안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상한 무공으로 변질된 수백 명의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짓을…….”
“왜 이러는 거지?”
구파 사람들도 웅성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쿠우웩!”
온몸을 떨듯 괴로워하던 운 각사가 뭔가를 토해 냈다.
칠공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새어 나오자 맹주도, 구파의 장문인도 광휘도 바짝 긴장해서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이년이…….”
흐느끼던 운 각사가 고개를 들었다.
눈과 코, 입으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상황에서도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네 이년이 몸에 독을 탔구나!”
“네 이년이 몸에 독을 탔구나!”
“네 이년이 몸에 독을 탔구나!”
“……?!”
한 번에 세 번의 소리가 들리는 괴이한 상황. 광장에 한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지독한 이질감 속에서 점창 장문인 안평대사가 방혜선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사…… 방금 저자의 목소리는?”
“예, 들었습니다. 아미타불…….”
방혜는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반장을 하며 이 현상에 대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 남자, 그리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이.”
“허어!”
“이런 말세가!”
커다란 혼란이 일었다.
규화보전이란 무공을 모르는 이도, 알고 있는 이도 섬뜩함을 느꼈다.
“독을 탔어. 네년이!”
“독을 탔어. 네년이!”
“독을 탔어. 네년이!”
그건 무공의 강인함이 아닌, 기괴함과 혐오감이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제삼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귀로 듣고만 있을진대 공포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분명 한 번 말했는데 두 번이 더 들리다니, 이 무슨 변고입니까?”
아미파 수월신니가 찌푸리며 물었다. 직접 듣고 느끼지 않았다면 믿지 않을 괴사였다.
맹주가 침음하며 대답했다.
“전음입밀(傳音入密)이오. 그중에서도 최상위 경지, 어기전성(御氣傳聲)이외다.”
“예?”
“그게 무슨!”
곧장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염력 같은 능력을 지닌 아이보다 더 희귀한 능력이라는 이능.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맹주의 말을 소림의 방혜대사가 받으며 탄식했다.
“아미타불. 불가에서도 보살의 경지에 오르면 육신통(六神通-말이 아닌 뜻 자체를 전달)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방혜가 인상을 찌푸린 뒤,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사이함과 기괴함으로 그런 경지를 넘었군요. 이는 본문의 혜광심어(慧光心語-초능력)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혜광심어와도 조금 다르오.”
그때 광휘가 끼어들었다.
“육신통이든, 혜광심어든 한 사람에게 펼치는 것이오. 저놈은 방금…… 기를 펼쳐 이곳에 있는 모든 이에게 소리를 전달했소. 이런 경우는 나 역시 보도 듣도 못했소.”
“……!”
이제 사람들은 문득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말인즉슨 방주와 맹주, 그들과 더불어 천중단 단장인 광휘조차 모르는 전인미답의 경지라는 것 아닌가.
빠각빠각.
고통스러워 발작을 하던 운 각사가, 고개를 좌우로 꺽으며 다시금 얼굴에 빛을 띠며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각자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칼로 찌르자.”
“갈아 마셔 버리자.”
“살 껍질을 벗겨 태우자.”
무당의 장문인도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건……?”
“귀신이다! 그것도 세 명이나.”
보기만 해도 기괴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분명 한 사람의 성대에서 나온 목소리일진대, 뚜렷하게 세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러던 한 순간.
“크아아아아!”
운 각사의 비명 소리와 함께 코와 입에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끈적끈적하게 떨어진 액체가 흙을 태우는 것을 보고 당고호가 기겁했다.
“저건!”
“뭐냐! 짚이는 것이 있느냐?”
개방주 능시걸이 재빨리 물었다. 당고호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신음했다.
“흑염독(黑炎毒)입니다.”
“흑염독? 당가에 그런 독이 있었나?”
“아니오! 본가에도 없는 것입니다! 전대의 독공 중에 이론상으로만 기록된 것인데 아영이가 어찌 저걸…… 그것보다 대체 저걸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이제 알겠군. 처음부터 그 독이었어.”
맹주가 신음했다. 독이라는 말에 짚인 것이 있었던 것이다.
“아영이는 운 각사가 흡정대법인지 뭔지를 쓸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일부러 갔던 거고. 결국 한 방 먹인 셈……… 가만, 저자는 흡정대법이!”
말하다 말고 맹주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규화보전.
양과 음. 두 기운의 중성을 담아내는 기운.
본시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힘이라, 그것을 조율해 낸 이는 무림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무공과 이능이라는 두 가지 힘.
운 각사가 이것을 버무리는 것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그리고 방금 아영이에게 뭔가 조치한 것이 그 흡수라면.
“당고호! 아영이의 상태는 어떤가!”
그가 기겁해서 묻자 당고호가 재빨리 맥을 짚었다. 그리고 ‘어?’ 하며 갸웃한 순간.
“후우, 겨우 살았군.”
공기가, 변했다.
운 각사의 목소리에 장내의 모두는 아찔함은 느꼈다.
어느새 이질감이 사라져 있었다.
또한, 셋으로 갈라졌던 운 각사의 목소리가.
한 사람의 것답게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이 되고 있었다.
“아, 정말 위험했습니다. 저년이 독을 타서 말입니다. 예전이면 모르겠지만 지금 제겐 통하지 않지요. 염력을 내 것으로 만든 이상, 몸에 들어온 독이라도 배출해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괴로워하던 운 각사가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온전해……졌어?”
누군가가 흘린 말이 모두의 심경을 대변했다.
온전한 규화보전의 힘.
무공으로서는 이룩될 수 없는 사이한 힘이, 구음진맥을 극복한, 열여섯이 넘는 아영이를 통해.
구음진맥과 염력을 통해 조각이 맞아 들어간 것이다.
“전설상의 탈마라도 된 건가?”
“그 이상이겠지, 아마도.”
맹주는 광휘를 보며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원하던 건 얻었고. 상황은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
대체 어디까지 가게 되는 것일까.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진 모두를 향해 운 각사는 씨익 웃으며 입가의 피와 독을 훔쳐 냈다.
“모두 덤비시지요. 아, 그 전에.”
따악!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뒤에서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작은 청동 상자를 들어 열었다.
운 각사는 그 안에서 작은, 옥색의 굼벵이 같은 미물 하나를 들며 말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한 명은 잠시 빠지셔야겠습니다.”
“고독……?”
사천당문의 당고호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수긍이라도 하듯 운 각사가 끄덕이고 옥색의 굼벵이를 들어 터뜨렸다.
“아악!”
풀썩.
그리고 그와 함께 맹주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장련이었다.
“련 소저!”
광휘가 급히 장련을 부축했다. 번갯불처럼 급변한 장내의 공기 속에서 운 각사는 웃어 보였다.
“오기 전부터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지요.”
푸르게, 누르게, 그리고 금빛으로.
계속해서 색이 계속 변하는 기이한 눈동자를 들며.
“당신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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