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321
321. 우린 당신이 필요하다고.2017.11.29.
심주현과 안평(安平) 사이에 위치한 저잣거리에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상점이 들어선 거리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가게에도 사람들은 없었다.
기린의 목처럼 좁게 이어지는 길목 여섯 갈래가 북쪽, 호수처럼 큰 광장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다.
사람 하나 없는 객잔에는 휑한 바람만 가득했다. 그 앞에서 운 각사는 평상 위에 앉아 느긋하게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나요?”
그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광장을 바라보며 입을 연 것이다.
“곧 신시(申時)가 됩니다.”
여인이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소매 하나가 바람에 힘없이 휘날리는 여인, 신녀 하선이었다.
“흐음.”
운 각사는 짧게 침음했다. 잠시 멈췄던 부채를 다시 흔들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광장 주위를 바라봤다.
투욱.
팔이 뒤로 묶인 장련이 평상 위에 앉혀졌다.
“정말 태연하시네요.”
“태연하다니…… 무슨?”
운 각사는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눈짓을 보냈다.
“광휘 호위무사님에, 무림맹주에, 심지어 구파일방까지 부르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건가요?”
며칠 전까지 그녀는 불안해서 물도 마실 수 없었다.
하지만 운 각사가 이 일에 부른 인원들을 듣고는 그 불안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어이없음만 남았다.
아무리 무모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많이 나간 것이다.
“호오, 역시 장련 소저는 친절하시군요. 저를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내가 왜……”
“뭐, 그 친절에 한마디만 대답해 주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운 각사가 부드럽게 말을 받으며 웃어 보였다.
장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기분 나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들리는 소리부터 불쾌했다.
근래 들어 운 각사는 목소리 선이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말투도 어떤 때는 거침없는 하대를 하다가, 어떤 때는 명문가 규수나 쓸 법한 여인 같은 말투를 쓰곤 했다.
이쯤 되면 이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강호 최고의 고수 서른 명을 불러들여서 한 번에 처치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대체 가능하기나 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장련이 기가 막혀 물었다.
맹주와 광휘는 그렇다 쳐도, 구파일방의 장문인쯤 되면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가장 강하고 믿을 수 있는 고수가 각 파당 두 명. 이쯤 되면 강호 최고수란 최고수는 싹 다 쓸어 왔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운 각사는 장련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우린 당신이 필요하다고.”
“…….”
장련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전은 분명히 여인의 목소리였다. 시작은 여인네처럼 가느다랗다가, 갑자기 남자의 중저음으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마치 두 사람이 똑같은 소리를 각기 달리 내는 것 같은 모습. 보고 듣고도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아, 그리고 절 너무 걱정해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도 나름의 대비는 하고 있으니까요.”
딱.
스스스슥.
운 각사가 손가락을 마주치자 광장 일대에 흑의를 입은 수십 명의 신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장련은 이제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러운 등장도 그랬지만 저들의 얼굴에는 기분 나쁜 녹광이 서려 있었다. 보자마자 바로 직감했다.
‘은자림 최후의 고수들.’
“그리고.”
딱. 딱. 딱.
이번엔 운 각사가 손가락을 세 번 맞부딪치자.
스스스스스슥.
한적했던 마을 주변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아!’
순간, 장련이 입을 틀어막았다.
상점, 가게, 객잔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사람들.
숫자는 순식간에 수백 명이 되었다.
그중 대부분 남자로 보이는 청년과 중년인들.
목내이(미라)처럼 천을 두른 사람들도 있었고 보통 사람처럼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원래 이 마을 사람들입니다.”
장련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척 봐도 자아를 상실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에 퀭한 눈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그들의 손에 들린 물건.
손가락 셋 크기 정도 될까 말까 하는 작은 원형의 구체였다.
“폭굉…… 이 사람들을 구파의 방패막이로 할 셈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장련이 묻자 운 각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가씨.”
“당신은 정말 사람도 아냐. 힘도 싸울 의지도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다니!”
“힘이 없다니요. 그건 다릅니다.”
소리치는 장련에게 운 각사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오늘 모일 무림 고수들, 구파의 고수들은 질겁하며 경배할 겁니다. 그냥저냥 흔한 실혼인처럼 보이지만, 저들은 우리 소속의 신마들보다도 더 강할지도 모르니까요.”
“무, 무슨 말이에요?”
“선천지기.”
운 각사는 씨익 웃어 보였다.
“생명을 태우는 경의적인 힘이지요. 아, 물론 그로 인해서.”
“…….”
“오늘 안에 다 죽게 될 사람들이지만요.”
“이 악마!”
장련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미치광이도 이런 미치광이가 없었다.
하지만 장련의 격한 반응에도 운 각사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후후후.”
촤락.
다리를 꼬며 다시금 부채를 펼쳐 드는 운 각사.
그런 모습을 장련은 경멸의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
유시(오후 네 시)를 조금 넘었을 때 운 각사의 시야에 자그마한 흑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드디어.”
곧 흑점은 수많은 점들로 변했고 이윽고 이백 명이 넘는 무리들이 광장의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투욱. 투욱. 투욱.
제일 선두에 선 맹주와 광휘.
세 걸음 뒤에는 구파 일방의 수장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그들 뒤에는 각 파와 방의 장로와 호법들이 줄지어 서 있는 형국이었다.
맞은편에 십여 장 거리를 두고 운 각사가 사악, 손을 들어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차악.
뒤에는 하선이란 여인과 장련이.
그 뒤에는 괴이한 눈빛을 뿜어내는 신도 수십 명.
마지막으로 대체 어디서 모아 왔는지, 수백에 달하는 엄청난 인원의 사람들이 주르륵 흩어져 있었다.
스으으으으으-.
한순간에 대치 국면으로 변하자 스산한 분위기가 일대를 휘감았다.
촤라락.
운 각사는 한 발짝 걸어 나오며 부채로 살짝 얼굴을 가린 채 숙여 보였다.
“드디어 오셨군요. 이제껏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중에서도 운 각사는 한없이 기쁜 얼굴이었다.
사박.
운 각사와 마주하게 된 단리형의 시선이 그와, 그 뒤쪽 신도들에게 향했다.
‘일급 살수들.’
마공을 익힌 신자가 폭굉을 든 모습.
과거 천중단의 기준으로는 은자림 내 일급 살수들이다.
기분 나쁜 녹색의 눈동자와 특유의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에 악몽이 되살아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맹주의 시선은 옆으로 돌아갔다.
광장을 가득 메울 듯한 엄청난 사람들.
하나하나 주먹을 쥐어 손을 보이지 않게 한 것이 불길했다.
한데 더 불길한 것은 그들의 눈빛이었다.
“아미타불. 이 어찌…….”
단순한 실혼인처럼 초점 없는 눈이 아닌, 무림고수에게서 보이는 기광(氣光)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맹주, 혹시 저것은……?”
“예. 아마 규화보전을 익힌 듯합니다.”
방혜선사에게 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준비인지, 아니면 다른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단리형도 조금 충격받은 얼굴로 끄덕였다.
광휘가 오왕의 호출을 받고 황궁으로 올라간 지는 한 달이 겨우 넘었다.
그때부터 바로 주민들을 모아서 가르쳤다 해도, 한 달은 삼류 무사나 겨우 양성할 수 있는 기간이다. 한데 이들의 정기는 일류를 훨씬 넘고 있었다.
“실로 사이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모산파 장로의 말에 화산과 무당의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도랄까, 분위기랄까.
황실에서 싸웠던 신마들과는 확실히 뭔가 좀 달라 보였다. 전혀 생경한 무공을 익힌 무인들의 기수식 자세를 볼 때처럼.
“필경 지독한 사법이 쓰였을 겁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저런 무공을 익힐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맞는 말씀이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끄덕였다.
복장은 평범하고 기색 또한 평범했다. 어디를 보아도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한 달이라는 시일 내에 저렇게 키워 내는 게 가능했다면, 은자림은 진작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을 터였다.
“좋게 말해 최후의 수단, 저게 마지막이라는 것이요.”
“그렇소. 결과가 달라지는 건 없지.”
구파일방이 예상을 벗어난 광경에 투지를 불태우는 동안, 광휘는 괴인들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쿵. 쿵. 쿵.
그의 시선은 오직, 장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슴이 떨려 왔다. 절체절명의 상황에나 발작이 일어날 때 간헐적으로 보이던 증상이 갑자기 이곳에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장련 소저.’
두근두근.
숨이 막혔다. 부르고 싶었다. 그저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저릿할 정도의 행복함으로 가득 찼다.
‘무사님.’
십장 맞은편에서 광휘를 보는 장련의 눈빛 역시 다르지 않았다.
슬픔과 애잔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는지.
“흠, 일단은 좀 진정들 하시겠습니까?”
차악.
모인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운 각사가 소리 나게 부채를 접었다.
그는 시위하듯 장련 쪽으로 슬쩍 다가서, 그녀의 소매를 당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은 폭력을 피하고 평화적인 교환부터 하지요. 보시다시피 장련 소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아영이란 아이는 어디에 있지요?”
피식. 픽.
운 각사의 말에 장문인들이 기가 막힌 웃음을 지었다. 은자림에게 평화 어쩌고 하는 말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말도 없었다.
탁. 쓰윽.
살집이 투실투실한 당고호 뒤에 소녀처럼 앳된 외모의 여인, 아영이 꾹 이를 다문 채 앞으로 나왔다.
“그래요, 그래요. 그 아이. 저는 저 아이를 매우 애타게 원했습니다. 작정하고 저를 피해 마을 깊숙이 숨어든 아이. 벌써 시일이 몇 년이나 지났는지.”
“…….”
“역시나 정파 쪽에 기어들어 가 있었군요? 좋아요, 광휘 무사. 그 아이만 넘겨주시죠. 그럼 저도 광휘 무사님께서 원하시던 이분을.”
툭.
운 각사는 장련의 어깨를 앞으로 밀치며 말했다.
“넘겨 드리겠습니다.”
좌중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단리형은 슬쩍 광휘를 바라본 뒤, 신경이 온통 장련에게 쏠려 있다는 걸 보고는 다시금 아영이 쪽을 바라보았다.
맹주와 장문인들을 포함해 다른 구파의 사람들도 시선이 모여들었다.
“광휘.”
“……나한테 묻지 마.”
맹주의 부름에 광휘는 신음했다.
그로서는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장련의 인질 교환. 지금으로서는 두말 않고 찬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상대는 다름 아닌 운 각사였다. 저놈이 아무 생각 없이 인질을 넘겨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또 하나의 독니를 드러낼 터였다.
문제는 그게 대체 뭐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것.
“장련 소저를 넘겨주겠다고? 아무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믿지?”
광휘가 침음하던 사이 맹주가 나섰다.
“간단합니다. 이 여인은 제게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운 각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너무 순순히 내놓는 게 의심스럽군. 이러려고 이 사람들을 여기까지 불렀나?”
광휘가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그렇게나 의심스럽다면, 뭐.”
운 각사가 두 손을 쫙 펼치며 말했다.
“어찌 될지를 말씀드리지요. 다들 여기서 십 장 정도 거리를 더 벌려 주십시오. 혹 인질을 교환하는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여기 모인 분들은 하나같이 위세 쟁쟁한 분들 아닙니까? 구파의 장문인들, 무림맹주, 그리고 저 광휘란 분까지 하나같이 신법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
“장련 소저는 아영이와 정확히 한 발짝씩 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야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 여기에 하나 더, 중간 지점에서 만날 때 아영이란 아이가 갑자기 당신들 쪽으로 돌아갈 수 있지요? 그를 대비해 안전장치 하나를 넣읍시다. 장련 소저의 다섯 걸음 뒤로 신녀 한 명을 따르게 하겠습니다.”
“네놈이 무슨 수를 쓸 줄 알고!”
맹주가 발칵 소리쳤다.
광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제안에는 문제가 있군. 인질 뒤에 고수를 따라붙이겠다니. 교환을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이건…….”
“오호, 그런 생각이십니까? 일단 고수는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지요. 이 여인은 무력을 쓸 수 없습니다.”
운 각사가 파락, 다시 부채를 펼치며 펄럭거렸다.
“단순히 그 말만 믿기로는 전에 꽤 화려했지?”
비아냥거리는 광휘의 말에 운 각사는 슬쩍 하선이라는 신녀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그렇지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씨익 웃으며 부채를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윽!”
하선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한 손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이 모든 것을 맞은편에 보고 있던 구파일방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
“저런 미친놈!”
“크으으…….”
운 각사가 하선의 팔을 팔꿈치부터 잘라 버린 것이다. 펑펑 쏟아져 나오는 피를 간단히 지혈하고, 운 각사는 부채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요? 자아, 두 손이 없는 신녀. 아무리 신녀라 해도 아영이의 방비를 막으며 장련 소저에게 딴 짓거리를 한다?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말이 맞겠지요.”
“크윽…….”
신음 소리를 내는 하선을 등 뒤로 하고 운 각사가 모두를 향해 씨익 웃었다.
“자아, 어떻습니까. 받아들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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