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종남행(終南行) (1)
깊은 산속, 날이 스산하여서 산봉에 걸린 구름이 짙었고, 산세를 타고 스치는 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찬바람을 맞이하면서, 산그늘 속에서 한 사내가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는 맨발에 누덕누덕 기운 거적을 걸쳤고, 한 손에는 죽장을 그러쥐고 있었다. 머리에는 새끼줄을 꼬아서 이마에 둘렀다.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젊은 거지는 큰 눈동자를 연신 굴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표정은 심각했다. 길을 맞게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바람이 찬데, 새끼줄 두른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서, 눈썹 끝에 굵직하게 고였다.
개방의 젊은 거지, 신진 고수 중 하나로 손꼽는 시랑 중 한 사람으로, 백견개(白犬丐)였다.
백견, 흰 개라고 불리지만, 별로 하얀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새카만 얼굴을 한껏 구기면서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하이고야, 깊기도 깊다. 대체 이놈의 태극거(太極居)는 어디야?”
거지는 닳고 닳은 새카만 소매로 눈썹 위를 훔쳐 냈다.
길을 잘못 든 건 아닌데. 어째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는다. 찾는 태극거라는 곳이 분명히 여기 어디쯤이련만.
백견개는 죽장을 붙들고서 마지못해 험한 길을 다시 찾아서 들어갔다. 어차피 한참을 들어와서 발길 돌리기에도 늦었다.
“옷!”
무성한 수풀을 헤치면서 더욱 깊이 들어가다가, 백견개는 번쩍 목을 세웠다.
드디어 찾던 곳이 눈에 들어왔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초가를 올린 단칸 모옥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백견개는 들떠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제껏 아껴왔던 공력, 체력을 발휘하듯이 후다닥 몸을 날렸다. 그렇지만 막상 모옥 앞에 이르러서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과연 여기가 맞는 건가.
다른 이름은 없었고, 돌을 대강 쌓아서 울타리를 둘렀다. 회칠한 벽은 곳곳이 쩍쩍 갈라졌다.
문짝은 떨어져 나간 건지, 원래 없었던 것인지, 아무것도 없이 비좁은 내부가 훤히 보였다. 사람 사는 곳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곳이 없지 않은가.
백견개는 내부의 어둑한 곳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저어, 계십니까? 계셔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심조심 들어서니, 작은 향로 하나에서 향연이 고요하게 피어올랐고, 보랏빛 향연은 작은 창을 통해서 스며드는 햇빛을 받아서 나직이 퍼져 갔다.
그리고 노군일지, 도군일지, 짐작하기 어려운 작은 토상(土像)을 단 위에 놓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기척은 조금도 없었다.
백견개는 눈살 찌푸리고서 뒷머리를 벅벅 긁적거렸다.
기척이 조금도 없으니, 이를 어쩐다.
고민하고 있을 새에, 불현듯 나직이 묻는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맴돌았다.
“누구시오?”
“으, 으히히히히힉!”
기겁하는 소리가 왈칵 터져 나왔다. 조금도 기척 없는데, 마치 그림자가 말 거는 듯했다.
백견개가 질겁하는 통에 허름한 모옥이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말 건넨 그림자는 그 소란에 잠시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곧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이것 참.”
백견개는 우당탕하면서 구석까지 도망하다시피 바득바득 기어갔다가 그림자 모습을 다시 살피고서 눈을 크게 떴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향로 앞에 한 도사가 두 손을 소매 사이에 찔러 넣고서 슬쩍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죽장을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백견개를 대강 살피더니, 이내 내력을 파악하고서 물었다.
“개방 제자시로군. 개방에서 여기 보잘것없는 곳에 무슨 볼일이신가.”
“화, 화룡진인이십니까?”
“에헤이, 진인 소리는 참 부담스럽다니까.”
도사, 장사원은 난처한 듯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허리를 세웠다. 백견개는 부랴부랴 일어나서는 급히 전서를 꺼내 들었다.
“진인, 이 거지는 개방 백견개라고 합니다. 전서를 전하라는 명을 받은 바라.”
“오호? 개방에서 이 사람에게?”
장사원은 의아한 기색으로 건네는 전서를 받아 들었다. 그는 찬찬히 전서를 펼쳤다. 그 앞에서 백견개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 사람이 중여화룡…… 다음 대의 천하제일인인가…….’
참으로 고요하여서, 백견개는 장사원의 모습이 마치 깊게 뿌리내린 산중의 고목처럼 웅장하게 보였다. 그런데 차분한 모습이 한순간 요동쳤다.
흐르는 기운은 일변했지만, 고개 든 장사원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다. 다만 눈매에 머금은 안광이 한층 뚜렷했다.
“이것이 참말인가? 백견개 소협.”
“예, 예.”
“허어, 만검산장에서 이런 일이…….”
그는 전서를 거두면서 목을 한껏 움츠리고 있는 백견개를 바라보았다.
“그럼, 벽력개는 지금 만검산장에 있다는 건가?”
“예, 진인. 듣기로는 진인의 도움을 급히 청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허어, 내가 없었으면 어찌하려고.”
“헤, 헤헤. 그때에는 또 그때이겠지요.”
백견개는 넉살 좋게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하기야 그 말도 옳다. 장사원은 곧 모옥 밖을 돌아보았다.
창천, 해가 높아서 날은 아직 밝았다. 그러나 전서대로라면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만검산장은 거대한 흉사를 겪은 다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개방을 통해서 도움을 청할 정도라니.
“흐음, 이렇게까지 청한다면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지.”
장사원은 짧은 한숨을 삼키고서 퍼뜩 손을 뻗었다.
토상 뒤에서부터 한 자루 고검이 부웅 날아서는 그의 손에 덜컥 잡혔다.
그것으로 장사원의 길 떠날 채비는 끝난 셈이었다.
***
햇빛이 밝게 비추었다.
자연석을 네모반듯하게 깎아서 바닥에 빼곡하게 깔아 놓은 자리는 존의당(尊儀堂)이라 하여서, 만검산장 선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드넓은 사당이었다.
계곡을 뒤흔든 큰 소란에도 여기 존의당 전각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그만큼 깊은 곳에 자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튼튼하게 지은 곳이기도 했다.
고진무는 그 앞에서 슬쩍 옷깃을 들추었다.
잘 다린 새 옷이 바스락거렸다. 목덜미에 닿은 동정이 까슬까슬했다.
남색의 비단 장삼이 햇빛을 받아서 다채롭게 빛났다. 빛깔은 물론이고, 걸친 느낌까지도 가볍고 포근했다.
아무리 문외한이라고 해도 한참이나 값비싼 비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치수도 딱 맞아서 약간의 불편함도 없었다. 그러나 고진무는 한참 어색하여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불편하시오?”
“그, 그것이…… 아, 아닙니다. 불편하다기보다는 그저 어색하여서.”
사운경이 차분하게 물었다. 고진무는 옷깃을 더듬던 손을 급히 내렸다.
만검산장에서 따로 마련하여서 선물한 옷이었다.
비단옷을 받은 건 고진무 한 사람만은 아니었다. 여기에 같이 자리하지는 않았지만, 백옥상과 금강쌍서, 그리고 도우빈도 새 옷을 선물 받았다.
다만 지금 자리는 사운경이 고진무에게 따로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사운경은 머뭇거리는 고진무에게 살짝 미소 지었다.
“다른 여러분도 그렇지만, 은공께서 본 산장에 보인 협의와 인의는 가볍지 않소. 마음 같아서는 옷가지 하나가 아니라 본 장의 기둥뿌리라도 건네 드리고 싶은 마음이라오. 하하.”
무엇보다 지금 사운경은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아직은 위태위태해서 검을 지팡이처럼 세워서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그것만도 엄청난 회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운경은 한 걸음 다가섰다.
두 다리가 정신없이 휘청거렸지만, 처음 자리를 털고 일어섰을 때에 비하면 훨씬 상태가 좋았다.
지금 사운경은 뒤틀린 채 굳은 다리 근육을 풀면서 새롭게 근육을 붙이는 중이었다.
근골을 다시 다잡는다는 건 지독한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고, 언제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주화입마에서 벗어나 반신불수 상태를 이겨 냈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운경은 다시 태어난 듯했다.
“장주, 확실히 공을 이루셨군요.”
고진무는 사운경의 걸음을 보고서 옷깃을 더듬던 손을 거두었다. 바로 두 손을 맞잡았다.
사운경의 기파에 큰 동요가 없었다. 만검고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처럼 내가공력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걷는 게 아니라, 회복하여서 스스로 걷는다는 말이었다.
대공이라는 말에 사운경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아닙니다. 은공. 공은 이루지 못했소.”
그는 야위어 있는 다리를 한 손으로 꾹 누르면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어두운 기색은 아니었다.
“만검귀일은 닿지 않는, 닿을 수가 없는 경지라는 걸 똑똑히 깨달았다오.”
“닿을 수가 없다니요?”
“하하, 놀랄 것 없소.”
사운경은 고진무가 뜻밖의 말에 눈을 다시 뜨자, 차분하게 웃었다. 그는 검초에 한층 몸을 기대어서 지친 다리를 쉬었다.
만검귀일에서 만검산장의 태청검법이 비롯했으나, 당대까지 전해지면서 소실이 있거나, 잘못 전해지기도 했다.
그 차이를 지금 극복했지만, 태청검법으로는 만검귀일을 이룰 수는 없었다.
사운경은 그리고 씨익 웃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 더 욕심을 낼 수야 없지 않겠소. 이야말로 이 사람에게는 대공에 버금가는 기연이니. 하하하.”
미련을 털어 내고서, 사운경은 당장 이룰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자 뜻을 세운 것이다.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고진무는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여서 봉문(封門)을 결정하신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고진무는 사운경이 지금 자리를 청하기 전에 언질을 들은 바였다.
사운경은 잠시 멈칫하고서 고진무의 눈빛을 마주했다. 그 눈길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일문의 봉문이라는 것은 절대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봉문을 선언하는 순간부터 모든 강호 활동을 멈추고, 외부와 교류를 끊는다. 이는 스스로 가두는 형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개방에게도 물론이고, 일대에 큰 죄를 저지르지 않았소이까. 그리고 당장에 본 장은 여력이 남지 않았으니.”
고진무는 소리 없이 한숨을 삼켰다.
지금 만검산장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당장 가까이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은공 덕분에 길이 열렸다오. 제대로 된 태청검법, 그 단초를 얻었으니.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삼 년, 딱 삼 년이라면 어찌 작은 성취라도 이룰 수 있을 듯하오.”
“삼 년이군요.”
고진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검고도 잃었고, 만검당도 마찬가지. 이 사람도 그렇지만, 본 산장 또한 다시 정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겠소.”
“예, 장주.”
고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만검산장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문제였고, 고수가 문제였다.
“한데 주변이 걱정이군요. 당장 검하현만 하여도 크게 불안해 할 것이고, 복우산 주변으로도 적지 않은 소란이 있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렇소. 하여 생각해 둔 바가 있다오.”
만검산장도 그렇지만, 봉문한 이후 복우산 일대, 더욱 나아가서는 등주 일대가 크나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 불문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일대의 동요를 다잡을 방책으로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운경은 사운초와 양하, 그리고 도기홍, 벽력개까지. 모든 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리고 용케 방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결국 외부의 도움을 받는 셈이라서, 딱 잘라서 방책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했다. 그러나 지금 만검산장에 다른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군요. 그분이라면, 예, 확실히 일대 소란을 억누르기에는 그만한 사람도 없을 듯합니다.”
지금 사운경이 말한 사람이라면 확실히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었고, 고수 중의 고수라고 할 만했다.
중여화룡 장사원, 만검산장은 개방과 더불어서 그에게도 도움을 청하기로 한 바였다.
“개방도 그렇지만 화룡진인께도 도움을 청하였으니, 이제 부끄럽지 않도록 자숙하고 내실을 다져야겠지요.”
사운경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곧 지팡이 삼아 세운 검을 두 손으로 굳게 다잡으면서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어렵게 고개를 숙였다.
“은공, 언제까지라도 이 사람과 만검산장은 은공과 종남파가 보인 협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운경은 한결 맑은 눈으로 고진무를 바라보았다. 그 눈길 앞에서 고진무 또한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