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도량형 통일과 측량 사업 (2)
심결이 이하륜에게 물었다.
“그럼 향후 진행할 지도의 제작도 새로운 단위에 맞춰서 하란 뜻이지요?”
“예. 당연히 그래야죠.”
심결은 자를 들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청동 자엔 1미미 단위의 작은 눈금과, 세미 단위의 눈금, 10세미 단위의 눈금이 꽤나 정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건도 한마디 했다.
“이번에 공업학교를 통합하고, 몇 개를 더 신설하기로 했으니까, 그 공업학교에 지리학 과정을 신설해, 같이 인재를 길러내기로 합시다.”
“오! 좋은 생각입니다.”
태건은 사실 토목학과를 생각했으나, 토목학을 가르칠 사람이 홍은밖에 없어 다음 과제로 미루고 일단 측량기사와 지도 제작자라도 대거 육성할 생각으로 지리학과를 설치하기로 했다.
태건이 계획한 이 중등 과정의 공업학교는 훈춘의 국화사, 경흥의 조산사와 덕산사, 그리고 단천의 수하사에 세우기로 했다. 이들 중 경흥의 경우 각 분야 장인들에 의해 여러 공장학교, 즉 제철과 기계, 병기, 조선, 요업 분야를 망라하는 학교가 세워져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경흥공업학교와 조산공업학교로 통합하기로 했다.
“정밀한 지도와 지적도 제작 전에, 일단 주민들 거주지와 농토에 지번을 부여했으면 좋겠소.”
태건은 새로운 과제를 또 하나 꺼내놓았다.
“지번이요?”
태건은 대답 대신, 종이에 약도를 쓱쓱 그린 다음, 이를 토대로 설명해 나갔다.
“이건 경흥의 중앙로 약도요. 어떻소, 알아볼 수 있겠소?”
“아, 예. 하도 많이 다니는 길이라, 바로 이해가 됩니다.”
“그럼 이곳 면포전은 다섯 번째 집이니까, 6번지가 됩니다.”
“예? 오가 아니라 육… 아! 관청이 일번지로군요.”
“하하! 역시.”
태건은 미소를 지었다. 관상감 관리 출신이라 확실히 심결의 두뇌는 비상했다.
“이런 방식으로 주소가 생성되는 겁니다. 이 면포전의 주소는 정확히 경흥현 경흥진 6번지가 되는 거죠.”
“예, 알겠습니다.”
태건의 설명이 끝나자, 이번엔 이하륜이 나서서 체신 업무에 관해 알려 주기 시작했다. 우정국 설립, 우표 발행, 우정국 직원의 역할 등에 관한 꽤 긴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면 서신을 전달하느라 일일이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군요. 이걸 관에서 한꺼번에 모아서 배달해 주면 되니까.”
심결은 인편으로 서신을 일일이 전달하는 기존 방식과 이하륜이 설명해 준 우정 방식을 속으로 비교해 보더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후자가 편리하단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영토가 조선보다 훨씬 넓어지고, 가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일하게 됩니다. 우리 동해부가 그렇게 될 거란 말이죠.”
“조, 조선보다 커진다고요?”
심결이 살짝 놀라 이하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간 동해부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므로 우정국의 출범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죠? 비단 가족 구성원 간에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일뿐만이 아니라, 상단과 관청 역시 우정국을 통하면 훨씬 편리해지죠.”
“예. 저도 이제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주소 매기기 사업이 중요한 겁니다. 첫걸음인 셈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그 일부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이하륜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 * *
보산사 마을을 둘러본 태원과 진태종은 다시 말에 올라 보산천 상류 쪽으로 달려갔다. 보산사와 광산촌을 연결하는 도로도 벌써 말끔하게 포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천보산 광산을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라는 태건의 지시에 따른 결과였다.
그렇게 12km가량 나아가자, 드디어 천보동 광산촌이 시야에 들어왔다.
광산촌은 생각보다 크고 인구도 많았다. 꽤 많은 포로가 광부로 일하고 있다 보니, 이들을 관리하는 경관 병력도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동해광무공사 천보산 지사장이 태원과 진태종을 맞아 주었다.
“정말 고생이 자심하네요. 이런 외진 데서 일하다니.”
태원이 지사장을 위로해 주었다.
“허허! 광산이야 다 외진 데 있지요. 그래도 교대로 보산사에 다녀와 휴식을 취하고 있어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보산사는 광산촌 배후 도시 기능을 벌써 수행하고 있었다.
“포로들 형편은 어떻습니까?”
“광산에서 일하는 자들치고 신수가 훤해 보이는데요?”
진태종이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그는 군 지휘관답게 이곳에 오자마자 포로 상태부터 살피고 있었다.
“맞습니다. 현령 나리 지시대로 충분한 휴식을 부여하고, 식사를 풍족하게 제공하니 불만 없이 잘 따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매달 1원씩 주는 데다, 가족들이 찾아오면 면회를 허락해 주자 마음의 안정도 찾은 듯합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지요.”
이제 포로들 급여도 곡식 대신 돈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그래서 포로들이 모아 놓은 돈을 받아 가려고 가족들이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오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광산뿐만이 아니라 노역하는 포로들이 있는 모든 현장에서 일어났다. 예전처럼 1년에 한 차례 정산해서 곡식으로 주지 않고, 새 화폐로 지급하며 생긴 현상이었다.
조선인 농민보다 농업 생산성이 훨씬 떨어지다 보니, 변변한 돈벌이가 없는 여진족 주민이 더러 존재했다. 더구나 한창 생산 활동을 해야 하는 가장이나 장성한 아들이 포로가 된 집안은 더욱 그랬다. 그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1원은 꽤 큰돈이었다.
“자, 그럼 저쪽으로 가시지요.”
지사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태원을 광산 시설로 안내했다.
광산촌은 주거 구역과 제련 시설, 숯가마 구역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광산촌을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 골짜기에서 꽤 넓은 면적을 점유하게 되었다.
태원은 시설을 일별하다 어느 한 곳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오오! 벌써 제련을 시작했어요?”
“물론입니다. 은광석 캐는 일이 예상보다 수월하다 보니, 바로 제련 시설까지 만들어 돌리고 있습니다.”
“노천 광산이라더니.”
“맞습니다. 노두가 다 드러나 있어, 은광석 생산량이 빠르게 늘고 있지요. 정말 여기가 왜 천보산인지 알 것 같더군요.”
실제로 천보산 은광이 발견된 것도 노두 덕분이었다. 어디서나 노두가 보이자 근처 농민들이 너도나도 은광석을 채굴해 천보산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아직 개발하지 않았지만, 여러 군데서 은광석 노두를 찾았습니다. 인력과 시설이 충분해지면 그곳도 개발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천보산이군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현령 나리. 이거…….”
광무공사 직원 하나가 제련이 끝난 은괴를 태원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도 반짝반짝 빛나는 게 보기 좋군요.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도독님이 몹시 기뻐할 겁니다.”
진태종도 은괴를 받아들더니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곳에 동광도 있다고 하지 않았소?”
진태종이 물었다.
“예. 벌써 찾았습니다. 역시 노두가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았지요. 그걸 우리 회사에서 개발할지, 민간 채굴업자에게 맡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천의 경우, 은광이 너무 많으니 일부 광산 지분을 민간에 넘기고, 개발을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오자 태건은 이를 일부 수용했다. 그래서 민간업자는 포로를 활용할 수 없으므로, 포로가 투입되는 은광만큼은 공사가 직접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어쨌든 이 조치로 사기업이 은광 경영 사업에 뛰어들 기회를 열어 준 셈이었다.
“다른 광산은 어떻소? 도독님 말을 들으니, 여기엔 없는 게 없다던데.”
“연과 아연이야 은광석에 부수되어 나오고 있으니, 이들도 제련해 모으고 있습니다.”
“잘됐군.”
“근데 도독님이 수연이라는 걸 찾아보라던데, 그게 뭡니까?”
태원이 물었다.
“예, 저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보는 광석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틈틈이 찾아보고 있지요.”
수연은 ‘몰리브덴’이다. 태건은 몰리브덴을 원광석 형태라도 모아 놓으라고 지시해 두었다.
몰리브덴은 녹는점이 높은 단단한 금속이라, 이를 제련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몰리브덴을 소량이라도 넣으면 강철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고, 스테인리스 강철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훗날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물질이었다.
* * *
안춘현 성장산성 내에 자리한 육군 제2군 사령부.
사령관 정강빈 소장은 방금 서쪽에서 온 전령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제6연대가 어라손을 점령한 다음, 솔빈강을 따라 허을손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저항하는 적은 전혀 없습니다.”
“남둘루가 싸움을 포기했다고?”
“예. 남둘루 주민이 어라손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정찰병의 보고가 있었는데, 본대가 도착했을 무렵엔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어라손은 미래의 왕청현 부흥진이다.
경원 무관 출신 연대장, 윤신평 정령이 지휘하는 제6연대는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지자 온성 회파사에 있는 주둔지를 나와 국토령을 넘었다. 이들은 태건이 장령현 방면으로 친정 나갔을 때 처음 전투를 벌였던 삼도현에 이르자, 장령진 방향이 아닌 동쪽의 대강청하 ― 후세의 대왕청하 ― 상류 쪽으로 나아가 고개를 넘은 다음, 결국 어라손을 점령한 것이다.
제6연대의 다음 목표는 허을손 부락으로 미래의 라자구진이란 곳이다. 어라손부터 솔빈강 수계에 속한 곳이라, 이 강을 따라 허을손까지 북상하며 솔빈강 유역에 자리한 남둘루 부락을 모두 점령할 계획이었다.
“허을손을 점령하면 굳이 거기에 병력을 배치하지 말고, 양천동까지 더 나아가서 진지를 구축하라고 전하게.”
양천동은 솔빈강과 그 지류인 삼첨랍자하가 합류하는 곳이다. 제6연대에서 온 전령이 물러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북쪽에서 제8연대장 장익천이 보낸 전령이 도착해 바로 보고했다.
“라예령을 넘어 난천하 유역을 모두 점령했습니다. 이후 병력을 나눠, 절반은 동쪽의 호포도하를 따라 북진하고 있고, 절반은 만보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라예령은 미래의 노야령이란 곳으로 안춘 북쪽에 자리한 고개이다. 호포도하는 솔빈강의 지류인데, 훗날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역할을 하는 하천이다. 만보동은 미래의 노흑산진이란 곳이다.
“남둘루의 저항은?”
“도주하기 바빠 별다른 충돌이 없었습니다.”
“음, 지난 전투의 여파가 큰 모양이군.”
전령의 보고를 듣고 있던 소형 참령이 정강빈에게 물었다. 소형은 황진의 부장 출신 장수이다.
“지난 전투의 여파라면… 저들이 크게 당한 모양입니다?”
“후후! 그렇소. 아주 비참하게 패했지. 그래서 작은 부락들은 대항할 엄두도 못 내고 있지. 아마 동녕진에서나 전투가 벌어질 것 같군.”
“그럼 제6연대와 8연대는 서남쪽과 남쪽에서 동녕진을 압박해 들어가는 형국으로 움직이고 있군요.”
“그런 셈이지.”
정강빈은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도 출진해 볼까?”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부장들이 일제히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