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01)
극복법 -1-
극복법
“으헝헝헝!”
시그문드가 목 놓아 통곡했다.
“으흐흑,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 죽는 줄 알았다고!”
“좀 닥쳐 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 좀 조용히 해보라고! 이 인간이 부끄럽게 왜 이래!”
노르드 여자답다고 해야 할까?
효르디스는 기쁘면서도 질색하는 표정이었다.
도와주러 온 초인들도 말을 보탰다.
“시그문드가 애처가이긴 하지.”
“효르디스. 얼굴 펴. 시그문드가 얼마나 마음고생 한 줄 알아?”
“너 반년 동안 성흔에 씌여 있다가 이제 깨어난 거야.”
“반년? 반년이 지났다고?”
“그렇다니까. 뭐해? 시그문드 좀 안아주라.”
효르디스가 쭈뼛쭈뼛 하다가 시그문드를 끌어안았다.
우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효르디스가 어색하게 시그문드를 토닥였다.
뭐야, 부부 맞아?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효르디스가 주위를 돌아보며 찌릿 눈빛을 보낸다.
무언의 축객령.
내가 실소할 때 시그문드가 끔뻑 정신을 차렸다.
“아, 내 정신 좀 봐. 자기야! 여기 이분한테 인사해. 이분 아니었으면 자기 진짜 죽었을 거야. 초인님, 어······ 미스터 김이라고 하셨죠?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효르디스의 손을 붙잡고 내게 와 감사 인사를 하는 시그문드.
나는 그저 손만 흔들어 보였다.
“아닙니다. 저도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건데요.”
“그래도 초인님이 오늘 안 오셨으면 정말 불의 항해를 시작해야 했을 겁니다. 저도 얼마 안 지나서 효르디스를 따라갔을 거고요.”
“불의 항해라니! 재수없는 소리하지 마!”
“정말이야. 진짜로 위험했다니까? 자기가 증발하기 직전이었어.”
“진짜로?”
“응!”
다른 초인들도 내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미스터 김. 고맙습니다. 미스터 김이 우리 단원을 살렸어요.”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우리 뿔피리 형제단을 찾으세요. 우리 형제를 구했으니 미스터 김도 우리 형제입니다.”
“저는 뭐 해드릴 건 없고 술 한 잔 사겠습니다. 토르 궁정 특제 벌꿀술을 원하는 대로 먹여드리죠!”
“헉, 벌꿀술? 형! 나는?”
“너는 새꺄 가서 맥주나 처먹어.”
다들 자리를 비켜주는 분위기.
그럴 만도 하지.
효르디스가 반년 만에 회복된 거라며.
부부 간에 밀린 말도 밀린 일도 많을 것이다.
초인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왔다.
집에는 나와 시그문드, 효르디스 세 사람만 남았다.
“벌꿀술이라도 드시겠습니까?”
“아. 제가 술을 잘 안 마셔서요. 커피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술밖에 없습니다만······”
“예? 그럼 냉수 한 잔 주세요.”
“흠. 외국 분이라 그런지 특이하시네요.”
시그문드와 효르디스는 벌꿀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저게 맛있나?
호기심에 한 잔 맛보았는데 참 기묘한 맛이었다.
막걸리에 꿀 살짝 넣고 빵가루 섞은, 그래서 조금 끈적하면서 살짝 달달한 맛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불호.
믹스커피나 캔커피가 마시고 싶어 입맛만 다셨다.
“맛이 어떻습니까?”
“맛있긴 한데 어, 생소한 맛이라서 말이죠.”
“어디서 오셨습니까? 중국? 일본?”
“한국입니다. 대한민국!”
“아! 케이팝?”
이 세상에서도 케이팝은 유명한가 보다.
잠깐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비로소 본론으로 넘어갔다.
“아까 느꼈습니다만, 초인님께서는 에인헤랴르 연공법을 익히신 게 맞지요?”
“예. 정확합니다.”
“절 찾아오셨던 건 우리 가문의 마력 연공법 때문이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시그문드.
아는 사람은 알 이름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 영웅 중 하나니까.
시구르드. 독일 이름으로는 지크프리드.
용 파프니르를 사냥한 것으로 유명한 그 영웅의 아버지가 바로 시그문드다.
볼숭, 시그문드, 시구르드 삼대.
이 세계에서는 시구르드 가문이 이 세 이름을 삼대마다 돌려 써가며 현재까지 남아 있다.
시그문드가 묵직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원래는 저희 혈족에게만 전승하는 마력 연공법입니다만, 제 아내를 구해주신 분께 박하게 대할 수는 없지요. 초인님은 제 형제나 다름이 없습니다. 기꺼이 가르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요. 초인님께 받은 것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효르디스는 제 영혼의 빛이자 기쁨이고, 인생의 등대이자 사랑의 여신입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랬지!”
난데없이 늘어놓는 사랑의 헌화가 부끄러웠던 걸까?
효르디스가 시그문드의 등짝을 내리쳤다.
그래도 시그문드는 좋다고 허허 웃고 있었다.
진짜 사랑꾼이네.
누가 보면 노르드 남자가 아니라 이탈리아 남자인 줄 알겠어.
“오래 끌 거 있습니까? 바로 시작하죠. 초인님? 여기 와서 엎드려 보세요.”
시그문드가 권하는 대로 소파에 엎드렸다.
내 등에, 척추에 손을 가져다 대는 시그문드.
웅혼한 마력이 쏟아진다.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강화되고 강렬한 느낌.
그러나 전반적인 결은 같다.
시구르드 연공법은 에인헤랴르 연공법의 상위 연공법이니까.
‘그래서 시구르드를 선택한 거지.’
다른 선택지로 베오울프 연공법과 헬기 연공법이 있지만 시구르드 연공법이 가장 범용성이 좋다.
콰콰콰.
도도한 마력이 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마력 회로가 거기 반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전신 세포가 올올이 깨어나는 듯하다.
감각이 집 전체를 뒤덮고 내 안의 마력 회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히 느껴졌다.
아울러 변화하기 시작.
큰 부작용 없이, 큰 반발 없이 한 모금 한 모금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력 속성이 바뀐다.
아니, 단순히 변하는 게 아니라 진화한다.
더 강하게.
더 단단하게.
한 층 더 거칠게.
그러다 심지에 불이 당겨지는 것처럼 화악 불이 들어왔다.
마력 회로가 순간 뒤집혔다.
벼락처럼 확장되면서 사지 백해에 불이 번졌다.
끄윽, 신음이 나오는 것과 함께 시퍼런 불꽃이 내 신경계를 관통했다.
[시구르드 연공법]“후아아.”
자연스럽게 입을 비집고 나오는 신음.
전신에 힘이 충만했다.
안 그래도 많았던 마력량이 거의 30%는 넘게 늘어난 것 같다.
마력의 질 변화까지 생각하면, 나는 절반 정도 더 강해졌다고 봐야겠다.
‘이게 시구르드 연공법.’
게임에서 그렇게 연공법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단순히 능력치 증가나 경험치 보정, 공격력 방어력 이동 속도 향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거의 환골탈태, 혹은 애벌레가 나비로 우화하는 것만큼이나 달랐다.
‘토르 교단에 미리 우호도 작업을 해야겠어.’
중급 연공법 위에는 상급 연공법이 있고 그 위에는 최상급 연공법이 있다.
중급에 전사의 이름이, 상급에 영웅의 이름이 붙었다면 최상급 연공법에는 신의 이름이 붙는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최고의 전사신.
‘오딘 연공법이나 티르 연공법도 괜찮지만······’
역시 토르가 낫지.
나는 마력을 수습하고 시그문드에게 사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쉽게 익혔습니다.”
시그문드는 평범한 전승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원래는 몇 달 옆에 두면서 말로 설명하고 마력 인도를 해주는 게 일반적인 전승의 전부.
나도 백소린과 쟈네트한테 그렇게 했잖아.
그런데 시그문드는 자기 마력 회로 일부를 아예 내게 심어 주었다.
그걸 씨앗 삼아 단숨에 내 마력 회로가 변이한 것.
다이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손해를 봤을 텐데 시그문드는 싱글벙글 웃었다.
“뭘요. 초인님께서 해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까도 들었던 말.
하지만 다시 들으니 무게감이 다르다.
시그문드는 자기 행동으로 자기 말을 증명했기 때문에.
세상에 받기만 하고 되돌려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호의를 베풀면 호구 취급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인 세상.
게임 속 주정뱅이가 실은 이토록 된 사람이었을 줄이야.
“식사 안 하셨지요? 축제, 축제를 엽시다!”
“아니, 두 분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셨는데 오붓한 시간을 보내셔야······”
반년 만에 깨어났다며?
그래서 동료들도 친구들도 자리를 비켜준 거 아니었어?
손사래를 치며 그만 가보겠다고 하려고 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조용히 앉아 있던 효르디스가 한술 더 떴다.
“축제다!”
증기 기관차 삶아 먹은 듯한 목청으로 소리를 지르더니 어디서 커다란 뿔피리를 꺼내온 것.
이어 뿔피리에 입을 대고 마력까지 동원해서는 길게 숨을 불어넣었다.
구아아아아앙!
집은 물론 주변 건물, 심지어 동네 전체를 진동시키는 소리.
도시 반대편까지도, 어쩌면 대미궁 깊은 곳까지 쩡쩡 울리는 하나의 아우성.
기다렸다는 듯 문이 벌컥 열렸다.
“축제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뭐가 이렇게 늦어?”
물러났던 초인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다들 술 한 잔, 아니 열 병 이상 들이부었는지 얼굴이 벌겋다.
누구는 고래고래 고함 같은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뚠뚠딴딴 춤을 추며 들어온다.
저마다 어깨에 영물 고기, 진귀한 술, 마법 향신료 버무린 안줏거리를 푸짐하게 짊어지고 있다.
“자네는 영웅이야!”
“우리의 히어로!”
“한 잔 받으시라고!”
가장 먼저 내게 달라붙어서는 술을 퍼먹이기 시작한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반항은 부질없었다.
노르드, 더 익숙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이킹 초인들은 내 의사와는 아랑곳없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였던 효르디스까지 술을 병나발 부는 건 너무하지 않아?
내 상식은 이 상남자 상여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
마력 회로를 내게 전해줘서 쉬어야 하는 시그문드까지 탁자 위에 올라가 엉덩이춤을 추는 걸 보고 다 포기했다.
“하하하, 하하하.”
맥없이 웃자 백발 여인이 내 옆에 앉아 피식 웃는다.
“노르드식 축제는 처음인가 보죠?”
“예. 처음입니다. 적응이 잘 안 되네요. 우리나라랑은 많이 다르기도 하고.”
“코리아에서 오셨댔죠? 거긴 어떤데요? 성흔에서 회복되면 어떻게 축하합니까?”
“성흔에 걸린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만, 신열에서 회복된 경우는 봤죠.”
“아, 옛 아버지 교단······”
백발 여인이 얼굴을 살포시 찡그렸다.
“그 패악질 때문에 신멸 전쟁이 발발했었는데, 요즘 동아시아에서 횡포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성녀가 8레벨이 되고 더 심해졌다고요.”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죠. 우리 교단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요. 가이아 교단도 마찬가지고요.”
신멸 전쟁 당시 옛 아버지 교단과 가장 격렬하게 충돌했던 게 토르 교단과 가이아 교단이다.
결국 토르 교단과 가이아 교단이 승리했고 유럽의 기득권을 지켜낼 수 있었지.
진짜 승자는 인류 진영이었고 토르 교단과 가이아 교단은 거기 숟가락을 얹은 것에 불과하지만.
“마셔! 마셔! 마셔!”
“부어라! 토해라!”
“배를 타고 떠나간다네♪ 불을 짊어지고 떠나간다네♪ 시작하세나 불의 항해를♪”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새꺄!”
불의 항해는 곧 장례식.
작은 보트에 태워서 강이나 바다에 띄우고, 불에 태우는 것을 말한다.
노르드 초인이 노르드 초인의 명치를 후려갈기고, 얻어맞은 노르드 초인은 되레 기가 살아서 쩌렁쩌렁 장송가를 불렀다.
“미친 자식!”
“재수 없는 자식!”
“오딘 옆에나 가라!”
“싫은데? 난 토르 옆에 갈 건데? 요즘 세상에 누가 발할라를 가? 끝도 없는 전쟁? 무한한 돼지고기와 벌꿀술? 세상엔 그것보다 더 좋은 게 많아!”
“맞아, 맞아.”
“지금은 21세기! 젖과 꿀이 넘쳐나는 시대지!”
“콜라를 찬양하라!”
“아이스크림을 찬양하라!”
노르드 초인들이 벌이는 광란의 파티.
다행히 초반에만 나한테 술을 먹였지 시간이 지나자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백발의 여인.
토르 교단 사제 때문이지.
나는 들고 있던 술잔을 단번에 비운 후 사제를 돌아보았다.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그게 말이죠······”
사제가 노르드 초인들을 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시선이 유독 효르디스에게 향하고 있다.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다.
그러나 나는 먼저 말하는 대신 사제가 입을 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원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법.
망설이던 사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혹시 말입니다. 성흔의 치료법을 어디서 배우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치료법이 아니라 극복법입니다.”
“극복법······”
“저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어느 초인에게 얻어들은 거여서요. 다시 찾아보려고 했지만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성흔 몇 개 극복법은 아는데, 많이는 모릅니다.”
어둑해졌던 사제의 눈에서 광채가 쏟아졌다.
거 사람 부담스럽게.
내가 슬쩍 딴청을 피우자 사제가 내 손을 잡고 간곡히 말했다.
“초인님. 어려운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죠.”
“네?”
“극복법 가르쳐 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렇게 합시다.”
“지, 진심이세요? 정말로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사제가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보상부터 협상할 줄 알았던 모양.
성흔 치료법은, 극복법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환자들이 5레벨 이상의 고레벨 초인들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고.
나는 대범한 척 빙그레 웃어 보였다.
“인류를 위해 대미궁을 막고 계신 분들을 위한 건데요. 당연히 가르쳐드려야죠.”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무료로요.”
“세상에!”
사제가 감격해서는 부르짖었다.
“초인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성인이십니다!”
글쎄다.
과연 공짜일까?
그 호쾌함의 대명사 토르 교단이, 동맹인 가이아 교단이, 또 직접적으로 혜택을 볼 수호자 연맹이 극복법을 받아먹고 입을 싹 씻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게임식으로 말하면 나는, 미리 공략집을 보고 제 3의 선택지를 고른 거였다.
히든 퀘스트 루트를 개방하는 선택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