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35)
황금 쌓는 김사제 -1-
황금 쌓는 김사제
신림동 외곽 빌라촌.
가파른 언덕을 따라 만들어진 곳.
‘난장판이네.’
와서 보니 내가 살던 고시원 뒷골목이 생각난다.
도로는 전혀 관리도 안 되어 바닥이 쩍쩍 갈라진 상태.
위생도 최악이라 까만 쓰레기봉투가 아무렇게나 버려졌고, 그 위에서 파리가 잔치를 벌이고 시궁쥐가 찍찍대는 중이다.
숨을 거의 참다시피 하며 언덕길을 올랐다.
하필이면 내 목적지, 김사제가 살고 있다는 동아빌은 언덕길 끝에 있었다.
그나마 건우봉 자락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덕에 악취가 조금 가셔서 다행.
‘같은 산자락이어도 이렇게 다르네.’
관공서가 있느냐 없느냐.
주변에 중산층이 사느냐 아니냐.
그게 동네 운명을 갈랐다.
3층짜리 허름한 빌라 건물.
명함에 찍힌 대로 205호를 찾아가자 문에 대충 페인트칠한 것이 보였다.
[기공원]예전에 고시원 주인 아줌마가 소개해준다고 했던, 불법 무허가 병원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계십니까?”
아무도 없나?
민감 특성을 활성화하고 귀를 기울였지만 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쾅!
“아무도 안 계세요?”
그제야 느껴지는 인기척.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리더니 거의 10분 이상이 지난 다음에야 문이 열렸다.
“꼭두새벽부터 뭐에요.”
짜증 난다는 얼굴로 날 보는 한 남자.
아니, 소년.
10대 후반이나 됐을까? 고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 정도로 보인다.
강아지처럼 유순하게 처진 눈매.
유독 창백한 얼굴.
기묘한 금속광택이 감도는, 하얗게 탈색된 머리.
맞다.
김사제가 분명했다.
이마가 X자 상처 없이 매끈하다는 것이 달랐으나 분명히 스마트폰에서 보던 그 얼굴.
조금은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12시가 넘었는데 아침이요?”
“저한테는 아침이라고요. 한참 좋았는데······ 진짜 무슨 일이세요? 아직 보호비 낼 때 안 됐어요.”
“소개받아 왔습니다.”
나는 미리 챙겨뒀던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김사제가 눈을 끔뻑이며 명함을 보다가 활짝 웃었다.
“뭐야, 손님이었어요? 또 철권파 깡패 새끼가 온 줄 알았죠! 얼른 들어오세요, 들어와요.”
빌라 안은 좁았다.
흔히 말하는 1.5룸 구조.
거실은 영업장으로 꾸며놓았고 침실은 김사제의 생활공간이었다.
영업장에는 미용 베드가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각상 하나, 괴상하게 생긴 향로 하나가 놓여 있었다.
김사제가 미용 베드를 가리켰다.
“누우세요.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기공 치료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엥? 기공원에 치료받을 거 아니면 뭐하러 와요?”
“이거 때문에요.”
골프백을 열어 뿔피리를 꺼냈다.
언뜻 보기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뿔피리.
뿔피리가 발하는 마력 파장과 테이프에 빼곡히 적힌 신성 문자를 본 김사제의 눈이 짧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미리 챙겨온 신사임당 스무 뭉치, 즉 1억 원을 내려놓자 아예 태풍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격한 진동을 일으켰다.
“뭐, 뭐, 뭐에요?”
“이거 봉인 해제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봉인 해제요? 번지수 잘못 찾으신 거 아니에요? 여기 기공원인데요. 그거 보니까 신성 문자인데 어디 큰 신전 같은 데 가셔서 해달라고 해야죠. 저어기 종로에 옛 아버지 대신전이나 강남에 가이아 대신전 가세요.”
“거긴 너무 비싸요.”
비싸기만 하면 다행이지.
결과물이 좋아 보이면 강제로 뺏기도 한다.
신실하고 겸손하며 박애가 넘치는 성직자?
이 세계에선 소설과 만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상이다.
“하, 하지만 여기는 기공원이라고요.”
확실히 거짓말은 못 하네.
나는 김사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김사제 씨.”
“예에에? 응? 어? 어어?”
“다 알고 왔습니다. 김사제 씨는 기공사가 아니라 사제 계열 초인이시잖아요. 어떤 신을 모시는지도 다 압니다.”
“거, 거짓말!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기공 치료랑 안수 치료는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공원에서 기공 치료라고 하고는 안수 치료를 한다? 그럼 뻔하지요, 뻔해.”
“치잇!”
김사제가 구석에 놓인 조각상을 한 번 보고는 잇소리를 냈다.
“이래서 한 군데서 오래 하기가 싫었는데······”
“이건 저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 비밀로 해드리죠.”
“하아, 비밀 지켜주세요. 다 알고 계신 것 같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 신님은 베스트팔렌 조약에 기재되지 못하셔서 알려지면 사이비라고 이단심문관들이 떼거리로 쫓아와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입은 무겁습니다.”
나도 조각상을 한 번 보았다.
황소와 사자, 용을 대충 아무렇게나 기워 붙인 듯한 조각.
아니, 신상(神像).
나는 저 정체를 안다.
게임 설정상 지금은 신격을 잃고 이름마저 잊힌, 영락할 대로 영락한 신이긴 하지만 김사제 개인 퀘스트를 통해 부활하거든.
신은커녕 소악마 급에 불과한 힘이긴 해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뿔피리와 1억 원을 김사제에게 밀어주었다.
김사제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거 힘들어 보이는데······”
그래도 1억 원이다.
빈민들 치료나 근근이 하는 수준으로는 몇 달을 일해도 벌기 힘든 돈.
김사제는 1억 원을 조각상 앞에 놓고는 스스로 미용 베드에 걸터앉았다.
뿔피리를 조심스럽게 쥐고는 눈을 감는다.
머리가 한 차례 번들거리고 금속성 광채가 어렸다.
후광이자 마력광.
혹은 신성력의 발현.
빛이 일렁이며 팔을 향해 스르륵 내려왔다.
평소 기공 치료랍시고 약하게 안수 치료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신성력 투사.
김사제의 이마에 땀이 맺히고 창백하던 얼굴이 더 하얘졌다.
윙······
변화가 있었다.
테이프 위 신성 문자가 빨갛게 변한다.
그러더니 가장 첫 글자부터 흐릿하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신성 문자를 노려보는 김사제.
흰자위가 빨갛게 변하고 눈가가 찢어져 피눈물을 흘리는 그때.
퍼억!
신성 문자가 일거에 지워졌다.
작은 폭발과 함께 노란 테이프가 휘리릭 풀린다.
그 안에서 떠오르는 마법 문자들.
아니, 음표들.
악보처럼 혹은 서적처럼 줄지어 떠오른 고대 글자가 허공에서 춤을 춘다.
그러면서 어떤 형상을 그려내는데, 그 모습이 흡사 인체 도식 같았다.
“어?”
김사제가 살짝 입을 벌렸다.
“와, 이거 대박이네요!”
“그렇죠?”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거 아마 연공법 같은데요? 마력 연공법이요!”
새삼스레 나를 훑어보는 김사제.
“어쩐지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저 큰돈을 턱턱 내놓는다 했더니······ 뭐가 들었는지 알고 오셨나 봐요.”
“짐작은 했죠.”
짐작이 아니라 확신했지.
나는 뿔피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김사제가 혹시 떨어뜨릴세라 조심스럽게 뿔피리를 건네준다.
뿔피리를 받자마자 뿔피리 주변에서 춤추던 마법 문자가 내게 몰려들었다.
칭얼거리듯이 내 몸을 핥고, 마력 회로에 스며들었다가 도로 나오고, 신경계를 간지럽히고, 마력심이 깃든 심장에 들어가고 싶어 노래를 부른다.
김사제가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 어디서 흡수하실 거예요? 직접 쓰시려는 거 맞죠? 그거 가방으로는 절대 안 가려질걸요. 밖에 들고 나가면 바로 눈에 띄어요!”
“괜찮으시면 여기서 하죠.”
“전 괜찮아요! 제가 호위도 서 드릴게요!”
나이가 어려서 그럴까?
아니면 본래 성격이 그래서일까?
게임에서도 그러더니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다른 닳고 닳은 초인 같으면 호위비로 돈 천만 원 정도는 우려내려고 했을 텐데.
편하게 누워서 뿔피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직감한 듯 마법 문자들이 기뻐 날뛴다.
눈을 감고, 특성을 교체하고,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불었다.
뿔피리를. 마력 연공법을.
구아아아아앙-
장엄한 울음이 울려퍼진다.
뼛속까지, 건물 골재까지, 심지어 대지까지 진동시키는 울음.
음파가 중첩되고 중첩되다가 사람의 고막으로는 들을 수 없는 영역으로 진입했다.
“컹컹컹!”
“으르릉, 왈왈!”
“멍! 멍! 멍멍!”
사방에서 울리는 개소리.
“야아아오옹!”
“찌익! 찍찍!”
합창하듯 내지르는 고양이, 쥐 떼.
“짹짹짹!”
“까악! 까악!”
새들도 발작적으로 우짖는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지?”
“지진? 지진 났어?”
“뭔 일이야! 뭔데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황홀한 감각에 잠겨 있었다.
인간의 청취 영역을 벗어난 음파는 어느새 증발하여 무형의 글귀가 되었다.
마법 문자와 무형 문구가 결합한다.
그 결과 빚어지는 것은 기억이자 정보 집합체.
마법적 지식이 내 대뇌 주름에 새겨진다.
전방위 폭격하듯 쏟아지는 개념, 경험, 잠언.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에인헤랴르 연공법]북유럽에서 기원한 마력 연공법.
거칠고 폭력적이면서도 영원히 싸우는 전사들답게 강렬하면서도 묵직하다.
파산검법과 더불어 3레벨, 4레벨까지는 충분히 쓰고도 남지.
“후우우.”
벌써 마력이 빠르게 안정되는 게 느껴진다.
북해 바다는 겉으로는 격렬하게 휘몰아쳐도 심해에서는 고요하고 안정되어야 하는 법.
마력 안정 특성을 병행하자 자연스럽게 마력 흐름이 바로잡히고 있었다.
이 정도면 보름만 지나도 완전히 마력을 흡수할 수 있겠다.
그래, 보름.
그때 나는 완벽한 3레벨 초인이 된다.
“와아아.”
김사제가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전사 계열 초인님이 마력 연공법 흡수하는 거 처음 봐요!”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죠.”
무문에서 대대로 전승하는 비전이 아니면 보기 힘들지.
나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몸이 여러모로 조금 어색했다.
너무 가볍고 활기가 넘쳐서, 또 민감해진 감각을 통해 막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져서.
김사제가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저희 협회······ 아니 교단에서 번제 올릴 때 쓰는 차인데 정신과 마력을 맑게 만들어줘요.”
“좋죠. 한 잔 주세요.”
김사제가 경건한 태도로 차를 우려서는 내게 한 잔을 주었다.
나는 차 맛도 커피 맛도 모르는 인간이지만 확실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 에인헤랴르 연공법과 마력 안정 특성 효과가 폭증하면서 마력 흐름 안정화에 속도가 붙었다.
‘이거 좋네.’
내가 차를 마시는 사이 김사제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를 우린 김에 번제를 올리려는 모양.
“제가 있어도 됩니까?”
“네, 상관없어요. 어차피 다 아시고 계신데요. 돈도 많이 주셨으니까 쉬고 싶은 만큼 쉬고 가세요.”
“고맙습니다. 나중에 혹시 제가 다치면 그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돈 많은 고객은 언제나 환영이죠!”
신상 손에 먼저 찻잔을 올린 김사제.
이어 절을 한 번 하고 찻잔에 차를 채운다.
그 찻잔을 들어 기도문을 외고, 찻잔은 조각상 앞에 내려놓고 신사임당 한 뭉치를 손에 올렸다.
저런 식으로 진행하는구나.
김사제가 모시는 신은 재물의 신.
돈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당연······
잠깐만.
이상하다?
게임에서는 안 이랬었는데.
내가 고개를 갸우뚱할 무렵이었다.
김사제가 한쪽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하나 꺼내왔다.
뚜껑을 여니 휘발유 냄새가 진하게 난다.
김사제가 신사임당 뭉치를 아깝다는 눈으로 한 번 본 후 고개를 홱홱 저었다.
미련을 떨치려는 듯이.
이어서 휘발유를 신사임당 뭉치에 주르륵 부어버린다.
“어어?”
뇌 정지가 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설마 돈을 태우려고?
그 귀중한 돈을? 목숨보다 중요한 돈을?
김사제가 주머니에서 싸구려 라이터를 꺼냈다.
“잊힌 신이시어, 제 제물을 받으사 마침내 부활하시고 그 권세와 영광을 영원토록 되찾으소서.”
화악!
부싯돌을 당긴다.
불꽃이 일어난다.
그리하여 벌건 불길이 돈뭉치를 덮치려는 찰나.
나는 가까스로 몸을 던졌다.
“야 이 미친놈아!”
김사제를 감싸며 그대로 바닥을 구른다.
“케헥!”
둘이 하나가 되어 몇 바퀴를 구르자 김사제가 비명을 질렀다.
나야 괜찮지만 김사제는 사제 계열 초인.
상대적으로 연약한 몸이라 조금 아팠던 모양.
김사제가 항의하듯이 소리쳤다.
“왜, 왜 이러세요! 신님한테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요! 저희 신님은 돈밖에 안 받아요! 돈을 태워야 신님께서 신성력을 내려주신단 말이에요!”
“틀렸어! 등신아!”
나는 목 놓아 부르짖었다.
“돈이 아니라 황금을 태워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