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어제 윤과의 대화 이후.
봉제인형 벨이 뭔가 사건을 벌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런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내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거의 확실해 보였으나, 그렇다고 내가 녹색 마탑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도 모호하지 않은가.
결국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지, 뭐.”
“음?”
“아무것도 아니야.”
내 옆에 있던 윤이 무슨 소리 했냐면서 힐끔 고개를 돌린다.
원래는 굳이 소환해 둘 생각 없었으나 마을 공기가 좋다면서 소환해 달라고 투정을 부렸었다.
“참 좋은 마을이야. 두 번째 생은 꽤나 멋들어진 장소에서 태어났구나?”
히죽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찌르는 윤.
겨울인지라 바람이 다소 춥긴 해도, 윤에게는 단순히 상쾌한 수준의 바람인 듯했다.
애초에 인형이라서 추위를 느끼지 못하니까 그런 걸 수도 있고.
눈이라도 올 건지 새하얀 구름이 하늘에 깔린 채로 비스듬히 햇살이 내려쬔다.
방학이라 아카데미 시절과 비교해서는 늦잠을 자긴 했으나 시간이 부족하진 않다.
우리 집에는 따로 마당이 없기에 아카데미에 가기 전에 자주 애용하던 언덕 위에 펼쳐진 들판으로 왔다.
카앙!
“장난해?! 거기서 가만히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넓게 펼쳐진 들판 위, 방패를 들고 있는 단발머리의 왜소한 체형의 여인이 거칠게 외친다.
이번에 새로 소환된 엠버는 마리아와 다이니의 연계를 직접 방패로 맞아주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기사단원들 중에서는 방패를 다루는 사람이 없었다 보니 이런 느낌의 훈련을 할 수가 없었다.
각기 개인의 기량을 올리는 건 이미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기사단.
사실 일대일로 싸우는 일보다는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싸울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냥 받아주기만 할 수 있는 단원이 없었다 보니 그런 부분을 훈련하지 못했는데.
“엠버가 나와서 다행이야.”
이 뒤로 방패를 사용하는 단원들이 더 나와주면 훨씬 더 호흡을 맞추는 훈련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거다.
“아예 레잔이 나오면 지금 있는 멤버 전원이서 같이 호흡을 맞출 수도 있을 텐데.”
레잔은 꽤나 독특한 기사였다.
왜냐면 녀석은 검을 들지 않으니까. 그 대신 사람 크기 정도의 거대한 방패를 짊어진 채로 기사단의 가장 큰 방벽이 되어주었다.
괜히 엠버가 처음 나와서 자신을 소개할 때 작은 방패라고 덧붙인 게 아니다.
“뭐, 천천히 해라. 너무 급하면 애들 다리도 찢어지니까.”
장죽을 입에 문 채로 조언하는 윤.
그녀의 말도 맞았다. 너무 급하게만 하다가는 부원들이 쫓아오지 못한다.
그러니까 일단은 같이 잘 어울려 다니는 다이니와 마리아의 호흡을 보고 있는 중인데.
“아오! 겁나 거슬리네!”
“누군 아닌 줄 알아! 억지로 맞춰주고 있잖아! 지쳤으면 좀 뒤로 빼라고!”
벌써 저 모양이다.
오늘 훈련 시작한 지 아직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문제야.”
그때 앞으로 나서며 둘을 중재하는 엠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은 한심하게 내려다본다.
“멍청하긴. 한쪽은 너무 제멋대로고 한쪽은 너무 맞춰주려고만 하니까 합이 안 맞지.”
마리아는 할 말이 없는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휙 돌렸지만, 다이니는 오히려 억울하다며 외친다.
“얘가 너무 자기 멋대로 구니까 그렇잖아요! 일단 호흡 맞추는 훈련이니까……!”
“그게 문제야. 얘가 너보다 기량이 높으니까 억지스러워도 일부러 맞춰주는 거지?”
“…….”
“호흡을 맞춰서 연계를 하라고 했지 누가 얘 옆에서 눈치나 보면서 뒤처리나 해주라고 했어?”
역시 엠버.
우리 기사단 내에서 가장 성질 머리가 더러운 여성 기사.
삿대질하면서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게 상당히 거칠다.
샬롯 같은 경우는 바로 주눅 들 수도 있겠으나 마리아와 다이니에게는 오히려 이런 쪽이 훨씬 잘 먹힌다.
“그렇게 네가 얘 도와줘서. 얘가 지금 나한테 뭐 닿기는 했니? 방패에 다 막힐 뿐이지.”
“아 씨! 좀 더 하면 되거든요?!”
버럭하는 마리아였으나.
“개소리! 네가 내 방패 혼자서 뚫으려면 적어도 10년은 필요해!”
엠버는 물러서지 않고 역정을 낸다. 마리아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으나 결국 뚫지 못한 건 사실이기에.
패배가 예정된 공허한 말싸움을 계속 이어가진 않는다.
“호흡을 맞춘다는 게 누구 한 사람의 기량만 맞추는 건 줄 알아? 너희 둘의 기량을 한꺼번에 사용해서 평소에는 이기지 못하는 적도 이길 수 있게 만들려는 거잖아!”
“……그게 제 강함입니까?”
하지만 마리아는 얼마 참지 못하고 따지고 들었다. 애초에 말을 타고 싸우는 것도, 말의 힘을 빌린다는 생각에 싫어하는 마리아다.
다른 사람과 같이 연계하여 싸운다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는 거슬리면서도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도와줘서 이겨봤자, 그거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버럭 외치는 마리아. 어색하니 다이니가 나를 힐끔 바라보며 이거 어쩌냐고 물었고 나 역시 조금 당황해서 끼어들려고 했으나.
“의미가 왜 없어!”
거칠게 외치는 엠버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마리아를 노려본다.
“강함을 향한 갈망? 좋지! 필요해! 우리한테는 없어서는 안 될 자세야!”
“…….”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그것도 필요해! 언제나 동료들이 옆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쿵!
발로 땅을 내리찍으며 외치는 엠버의 목소리에는 묘한 처절함이 담겨 있었다.
원래부터 감정적이긴 했으나, 저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근데! 우리는 강하기만 해서는 안 돼! 이기고! 지켜야 해!”
“…….”
“혼자서 다 처리할 수 있으면 좋지!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최고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잖아!”
경험에서 절절히 울어 나오는 감정이 담긴 외침은 으르렁거리던 마리아도 점차 표정이 굳게 만들었다.
마리아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엠버가 느꼈던 무력감을.
“그놈들을 봤을 때 느꼈던 공포감을, 나 혼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공포감을, 동료들과 이겨냈어! 그렇게 우리는 승리했어!”
“…….”
“하지만 최후의 최후에는 가장 중요한 사람 하나 지키지 못했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한 사람을 구해내지 못했어!”
윤과 다이니의 시선이 정확하게 나를 향해 꽂혀 들어온다.
나 역시, 지금 엠버가 누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강해지는 건 좋지만! 그것보다는 이기고 지키는 게 먼저야! 네가 기사라면 말이야!”
엠버는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사실 강함과 동료와의 연계는 생각보다 연관이 없었다.
또한 자신보다 강한 적을 이기는 데 있어서 동료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건.
냉정하게 말해서 마리아가 아직 열일곱의 어린 소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기사로 살아가다 보면 져서는 안 되는 싸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때, 강함이니 개인의 신념 같은 걸 들먹여서는 안 된다.
비열하다고 해도, 비겁하다고 해도,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싸움.
나에게는 그것이 마몬과의 결전이었을 뿐이었고.
목숨을 잃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름 훌륭하게 성공해 내지 않았나 싶었으나.
남아있는 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게 엠버를 통해서 다시금 느껴졌다.
엠버는 몸을 휙 돌리곤 원래 자리로 돌아오더니 다시금 두 사람을 향해 자세를 잡는다.
“검 들어, 세상 물정 모르는 얼간이들아. 일단 오늘만큼은 절대로 너희 따위에게 뚫리지 않아주마.”
“하.”
“…….”
이를 으득 문 마리아의 시선이 엠버의 방패에 정확하게 꽂혀든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투기와 넘실 흘러나오는 붉은 마나 속에서 그녀는 한마디 툭 내뱉는다.
“나한테 맞추지 말고 전력으로 해봐.”
그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협력하자는 호의적인 제안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이니를 향한 도전장.
엠버를 상대하면서도 다이니에게는 자신에게 밀리지 않을 수 있냐며 도발을 해온 것이었다.
마리아의 호기로운 모습에 다이니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슬쩍 내 쪽을 쳐다봤고.
“맘대로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가해 줬다.
부우우웅!
바람이 오염되어 간다.
갈색 머리 소녀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며, 그녀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쏟아지며 주변의 모든 걸 집어 삼키려 든다.
다이니의 마인화.
그걸 보는 순간 엠버의 입 꼬리가 씰룩 움직인다.
방금 전까지와는 아예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는 두 소녀.
“아줌마, 방패 반으로 쪼개져도 몰라.”
“괜히 얻어맞고 이안한테 가서 이르지나 마요.”
마리아와 다이니의 경고에 엠버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답해 왔다.
“적어도 오늘은 안 뚫린다고 했는데, 철회할게.”
“…….”
“…….”
“일주일은 너끈히 버티겠네.”
역시 서로 성격들이 지랄 맞다 보니 도발하는 폼도 뛰어나다.
화려하게도 시작된 세 사람의 훈련. 그걸 보면서 응원하는 윤을 내버려둔 채로 나는 다른 쪽으로 간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여기도 마찬가지로 평원 위.
벨레스와 샬롯이 워즈에게 교육을 받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쪽은 반대로 검을 워즈가 검을 휘두르고 두 사람은 그것을 막아내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두 사람의 뒤에는 작은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워즈의 검을 열심히 막아내고는 있으나 검은 두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파악!
워즈의 검이 정확하게 샬롯의 검과 벨레스의 창 사이를 찌르고 들어갔고.
얻어맞은 돌탑이 와르르 무너진다. 어색하니 깔린 침묵 속에서 워즈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시 세워라.”
“네, 넵!”
“…….”
빠릿하게 움직이는 샬롯과 당황하는 벨레스.
워즈가 두 사람에게 가르치고 있는 건 지키는 입장에서의 전투였다.
마리아와 다이니가 공격이라면 샬롯과 벨레스는 수비를 배우고 있는 것.
물론, 이렇게 역할이 고정되는 건 아니고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돌아가면서 배우게 할 예정이었다.
“기사란 무릇 지키는 자. 적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등 뒤에 있는 사람을 지켜야 할 때도 당연히 있는 법이다.”
워즈의 쓴소리에 두 사람은 변명도 하지 못했다. 둘이서 어떻게든 막으려고 해봐도 결국 뚫려버리니까.
“단순하게 검을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니야.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보다 더 큰 테크닉과 심리전을 요한다.”
워즈는 일부러 두루뭉술하고도 얄팍한 정도의 힌트만 건네주면서 두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깨달을 수 있게 지도하는 중이었다.
샬롯과 벨레스는 그의 조언을 듣고는 둘이서 쪼그려 앉아 돌탑을 쌓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 때문에 창을 소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아. 이번에는 내가 맞추면서 해볼게.”
“그래, 알았다.”
돌탑을 무너뜨려서 다시 쌓는 동안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워즈는 나름대로 팽팽하게 시간을 사용하며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애들이 잘하고 있다.
앞으로 겨울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마을에 머물 생각이니까 이대로 두면 네 사람 다 여러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며칠 후.
“이, 이, 이안 아이넬 님! 맞으십니까?!”
어머니가 말하셨던, 녹색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가 내게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