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어? 어?”
“뭐야! 칼 어디서 났어!”
내 손에서 갑자기 검이 튀어 나오자 뒤에 있던 수감자들은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는 수감자들.
자신들이 지금 탈옥 현장을 보는 중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그들 역시 벌떡 일어선다.
“가, 가자!”
“도망치자! 여기서 도망치는 거야!”
“도시 밖으로만 나가면 된다!”
방금까지 민달팽이처럼 아무런 힘도 없이 무기력하게 바닥에 눌러 붙어 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덕분에 위쪽에서도 소란을 듣고 경비대가 내려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 여기도! 여기도 구해줘!”
“그 검으로 이쪽도 한 번만 베어주세요! 탈옥을 돕겠습니다!”
다른 유치장에 갇혀있는 죄수들도 구원을 바라는 신도들처럼 창살 너머로 손을 뻗어대며 나를 향해 외쳐댄다.
우습게도 말이다.
“무슨 개소리야, 이것들은.”
내가 무슨 자기들 도와주려는 건 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대로 몸을 돌려 내 뒤에서 따라오려는 죄수들에게 검을 겨눈다.
“가만히 있어. 뒤지기 싫으면.”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탈옥하는 거잖아!”
반발하며 외쳐대는 죄수들.
그들은 뭔가 억울하다며 아득바득 소리를 질러대지만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할 말만 이어간다.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탈출하는 건 맞는데, 너희 탈옥시켜 주려는 건 아니야.”
“아.”
“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죄수들.
개중에는 자신들이 함께하면 탈출할 확률이 올라간다거나, 고기방패로라도 써달라는 녀석들이 있었으나 전부 무시하며 밖으로 나선다.
삐이이이익!
감옥 전체를 찌르고 들어오는 호루라기 소리.
그와 동시에 마법 경보가 울리며 탈옥수를 잡아야 한다는 경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을 통해서 우르르 내려오는 경비대원들.
그들은 내가 칼을 쥐고 있는 걸 보며 당황하면서도 망설이진 않는다.
곧장 나를 막기 위해서 밀려오는 상황.
통로가 좁다 보니 진형을 갖추면서 나를 제압할 수는 없지만 애초에 이런 장소에서는 인력으로 밀고 들어오는 게 가장 위협적인 전술이었다.
전신을 감싸는 사각방패를 치켜들고 하나의 벽이 되어 밀고 들어오는 경비대원들.
로아 제국의 수도에 배치된 엘리트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 혼란에 빠지거나 미숙한 부분 없이 깔끔하게 대처한다.
“다행이네.”
내 입장에서는 그래서 다행이었다.
상대가 허술하거나 빈틈이 너무 많다면 의도치 않게 목숨을 뺏게 될 수도 있으니까.
성검을 쥔 양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간다.
내가 방패 자체를 뚫으며 밀고 들어갈 걸 알아챈 경비대들은 오히려 밀리지 않을 심산으로 앞으로 더 거칠게 밀고 들어왔으나.
검을 쥔 손을 크게 들어 앞으로 휘두르는 순간.
굉음이 터져 나온다.
한계를 넘어선 검술은 마법과도 같다던 윤의 말마따나.
검을 휘둘렀다는 다소 단조로운 움직임이었음에도 방패들은 일그러진 채 반으로 접히고 경비대원들은 힘에 밀려 그대로 넘어졌다.
며칠 동안 아예 검을 휘두르지 못했기에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 버렸다.
“너희가 유능해서 다행이야.”
쓰러진 채로 옅은 신음을 흘리는 경비대원들.
그들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덕분에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거다.
내 검을 본 수감자들은 입을 떡 벌린 채로 몸이 굳어 있다.
더 이상 내게 어떤 말도, 요구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나라는 폭풍이 지나가길 입 다문 채로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괜히 까불지 말고 그냥 그대로 있어. 죄를 지었으면 벌은 받아야지.”
내가 당당하냐고 말한다면 밀입국이라는 게 발목을 붙잡긴 하지만.
사실 독방 생활만으로도 이미 죗값은 치루지 않았을까 하고 내 나름의 간편한 변명을 내뱉어 본다.
쓰러진 경비대를 밟으며 밖으로 향한다.
이미 지하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위에서 알고 있는지 역으로 소란 없이 잔잔하다.
아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겠지.
‘오랜만에 몸 풀기에는 딱 적당한 것 같고.’
뻐근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린 후, 성검을 어깨에 툭 걸친다.
계단에서 막지 않을까 했는데 방금
“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창문도 그렇습니다! 뭔가에 막혀 있습니다!”
다소 조용하던 1층에서 울려오는 비명에 가까운 보고.
외부에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서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경비가 있었던 모양이다.
힐다가 마법으로 외부로 나갈 수 없게 차단해 뒀으니 누구도 나가지 못하겠지.
일종의 감옥이 되어버린 이곳에서.
나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경비대원들을 향해 뚜벅뚜벅 계단을 올랐다.
* * *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니야?”
대강 건물 내부를 정리한 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툴툴거리는 힐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처음 1층에 올라왔을 때로부터 대략 30분 정도가 지났다.
“정확히 34분 15초야.”
“그렇게 자세하게 셌다고?”
“전성기였으면 5분도 걸리지 않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부정하려 했으나, 막상 생각해 보니 또 5분도 다소 길게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치? 5분도 좀 길게 잡은 거지? 봐 봐, 아직 한참 멀었다니까.”
로아 제국 수도에 위치한 경비대인 만큼 규모도 크고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몸을 푼다는 명목으로 싸우긴 했으나 그들의 숫자가 꽤 많았다 보니 지친 감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힐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인가 생각해 보면 또 애매하다.
“야, 이게 얼마나 성장한 건데. 옛날에는 30분 동안 검도 못 휘둘렀어.”
마나량이 워낙 많았다 보니 태생적으로 신체가 허약했다.
도착점을 생각하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시작점을 생각하면 정말 훌륭하게도 여기까지 왔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힐다는 팔짱을 끼며 더없이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그래도 부족해. 여기서 이렇게 만족하고 있을 순 없잖아.”
“……왜 그렇게 조급해 보이냐?”
당장에 힐다의 마법을 통해서 마몬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막다른 길에 몰렸던 며칠 전에 비해서는 훨씬 나아진 상황.
너무 과할 정도로 긴장되어 있기보단 조금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괜찮다는 걸 힐다가 모를 리 없다.
“…….”
내 말에 힐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팔을 만지작거리며 힐다는 솔직하게 답했다.
“마몬한테 네몸이 빼앗긴 걸 이미 한번 봤어.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게 어려운 거야.”
“힐다…….”
“라인, 강해져야 해. 계속 강해져서 누구도 너를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몬은 물론이고 다른 대악마, 심지어는 갑자기 등장한 천사라는 놈들도.”
그녀의 목소리가 살포시 떨려온다. 그렇기에 더욱 간절함이 느껴져 마음을 울려왔다.
“너는 대륙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어. 그 마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겠지.”
“따로 엄청난 과업을 짊어져서 그런 건 아닌데.”
단순히 기사로서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지켜야 할 존재들의 폭이 넓어졌을 뿐이었다.
대륙 최고의 기사로서 성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품게 되었을 뿐이었으며 나는 그걸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그건 실로 당연한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나한테는 대륙보다 네가 더 중요해.”
“…….”
“대륙을 구하는 너를 내가 지킬 거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온 힐다가 옷자락을 슬그머니 붙잡는다.
애원이 섞인 행동이었다.
“내가 불안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 부탁이야.”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 * *
“슬슬 가볼까?”
달이 둥실 떠있는 새벽.
나와 힐다는 경비대 밖으로 나선다.
경비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힐다의 마법에 의해서 잠에 든 상태.
소란스럽게 싸운 것과 철창을 부순 걸 제외하면 사실상 경비대에 큰 피해는 없었다.
오히려 우리 덕분에 편하게 잠들고 일어나서 쾌적하게 나를 추격하겠지.
물론, 그때는 이미 내가 앤을 데리고 도망친 뒤겠지만.
“피곤하네.”
눈가가 무겁다.
소환수인 힐다가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내 마나도 필요했기에 자연스럽게 피로도 역시 나에게도 흘러 들어왔다.
“황궁으로 돌입해서 앤이라는 공주를 구하면 되는 거지?”
“그렇지.”
“공주를 구한다니. 무슨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
재밌다면서 히죽거리는 힐다.
새벽 거리를 걸으면 보통 경비대에서 잡을 때가 있는데 우리가 정리해서인지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슬쩍 한 걸음 다가오며 묻는 힐다.
잠시 고민한 나는 별 고민 없이 답했다.
“뭐, 황궁에 잠입하려면 꽤나 고생하지 않겠어?”
“그렇지? 몰래 들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걸?”
힐다가 저 멀리 있는 황궁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그녀에게는 황궁에 마련된 경보 마법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는 모양이었다.
“300년이나 지나서 그런가 마법이 많이도 발전했네. 당장 가서 바로 해체해 보고 싶다.”
입맛을 다시는 걸 보니 그녀의 마음에 들 정도의 마법도 보이는 모양이다.
“뭐, 우리는 도둑이나 암살자가 아니라 기사랑 마법사니까.”
정석적인 조합이기에, 오히려 이런 유연함이 필요한 상황에 다소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정면대결이 아니라 잠입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앤을 구해내야 하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자 힐다는 히죽 웃으며 지팡이로 어깨를 톡톡 두들긴다.
무슨 말을 할지 벌써 알아챘다는 표정에는 다소 나쁜 짓을 할 때나 지을 법한 짓궂음이 담겨 있었다.
“하여간 기사라는 것들은 무식해서 탈이라니까.”
“그래서 싫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표정에서부터 그녀의 대답은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힐다는 짐짓 대답하기 곤란한 척하며 말을 돌린다.
“300년이나 지났으니까 새로운 마법들이 엄청 많겠지?”
“몸 씻는 마법도 나왔더라.”
지난번 하수구에서 앤이랑 같이 있을 때 경험했던 마법이다.
내 말에 힐다는 빵긋 웃으면서 깔깔거린다.
“좋은데? 나중에 나도 가르쳐 줘. 씻는 시간도 아까울 때가 많았는데.”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정보였으나 뭐 어쨌든. 힐다는 능글맞게도 기지개를 켠다.
“이런 미지의 마법들이 널려 있는 세상, 나를 위해서 머리부터 박는 기사들이 있다는 건 딱 좋네.”
“너를 위한 건 아니야.”
“그거나 그거나.”
그녀의 심드렁한 대답을 들으며 내 뒤로 마나가 길게 퍼져간다.
힐다와 흑마법의 도움 덕분인지 이제는 거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몸에 무리는 좀 있겠으나 어쨌든 가능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등 뒤로 길게 뻗은 마나들은 바닥에 낙서처럼 여러 문양을 그리며 뻗어갔고.
그것들은 다수의 마법진을 그려내며 화려하게도 나의 부하들을 끄집어낸다.
옆에 있는 힐다를 슬쩍 보며 말했다.
“색깔 바꾸는 마법 배웠거든? 알려줄 테니까 써주라.”
“그 뿌리가 되는 마법을 만든 사람이 나일걸? 너희 갑옷색 더러워지면 내가 다시 은색으로 칠해줬잖아.”
“아……!”
옅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전장에선 힐다가 종종 그런 식으로 갑옷을 칠해준 적이 있었다.
“어쨌든 애들 갑옷색 좀 다른 걸로 입혀줘.”
“내 취향을 곁들여도 되나?”
“……그냥 검은색으로 해.”
아쉬워하는 힐다를 뒤로한 채 나는 로아 제국의 황실을 바라본다.
기사와 마법사가 활용되기 힘든 상황이라면.
우리가 자신 있는 무대로 상대를 끌어오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