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1학년에서 2학년이 되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해도 연말정산처럼 작년과 지금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했다.
넬슨의 소환을 시작으로 기사단원들은 대부분이 소환되었다.
이제는 정말 손가락에 꼽는 몇 명 정도만 불러낸다면 기사단원들의 소환도 끝내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환의 난이도가 어려웠던 힐다를 불러낼 수 있었던 게 컸다.
로아 제국에 가서 설마 힐다와 관련된 물건을 얻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우연찮게 소환할 수 있었던 덕분에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은 했으나.
“아이고, 그래서 언제 마법사가 되시겠어요?”
“…….”
“계산이 그렇게 느려서 되겠니? 너는 산수문제집부터 풀어야겠다.”
옆에서 쪼잘거리면서 내가 공부를 방해하는 힐다를 보고 있자니 짜증부터 난다.
“이거 도와달라고는 안 했는데.”
참고로 지금은 마법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아카데미의 간단한 과제를 처리하는 중이다.
힐다의 본격적인 마법 강의는 이걸 끝낸 뒤에 들어갈 텐데 벌써부터 호들갑스러운 걸 보니 심히 걱정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가라.”
역소환하고 싶어도 어차피 이거 끝내면 금방 다시 소환해야 한다. 마나 아까우니 일단 버티는 게 맞다.
“거기는 라이한 해협 작전이야. 그 정도는 좀 알자.”
근데 중요한 건 얘가 옆에서 계속 답을 말하는 게 문제다.
“나 문제 읽고 있었거든?”
“속독도 가르쳐야겠네.”
나름의 변명을 해봤으나 힐다에게 꼬투리 잡힐 점만 하나 더 추가됐을 뿐이다.
“근데 속독은 진짜 중요해. 우리는 보통 책을 읽는 데 시간이 가장 많이 할애되니까.”
“아, 알았다고.”
“지한테 도움되는 말 하는데 짜증내긴.”
“무슨 부모님이야? 적당히 해. 아니, 그것보다 문제 답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라이한 해협은 1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인데.”
생각해 보니까 그렇다.
도대체 힐다가 어떻게 알고 있나 싶었는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이게 바로 속독의 힘이지. 너 없는 동안 놓고 간 교과서랑 책들 다 읽었거든.”
“…….”
“과제 해줘? 3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내가 글씨체 신경 쓰느라 글 쓰는 게 좀 느리거든.”
순간 악마의 유혹이라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고 싶은 매혹적인 제안이었으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만하게 말하는 힐다의 모습을 보자니 바로 자존심이 세워진다.
“부탁할게.”
“아, 그럼.”
슬그머니 내민 노트와 펜.
분명 마음은 지지 않겠다고 했는데 몸은 어느새 귀찮기만 한 과제를 내밀고 있었다.
‘마몬 네 이놈.’
과제가 하기 싫어서 이런 식으로 내 몸을 조종했구나. 괜히 마몬을 탓해본다.
억울해도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까 그냥 참길.
슥슥슥슥.
힐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이미 답이 다 나왔는지 문제도 보지 않고 펜을 끄적거린다.
“그런데 말이야.”
심지어는 잡담까지 하려는 여유로움을 보며 약간의 패배감을 느꼈으나 일단은 편해졌으니까.
침대 쪽으로 가서 벌러덩 누우며 답한다. 테르토나가 소환마법을 찬양하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왜?”
“레이먼드 가문이 생겼다며. 그거는 어떻게 할 거야?”
“아…….”
오늘 학장이 로만 레이먼드에 관해서 물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가.
힐다였기에 솔직하게 내 감상을 말했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필요에 의해서 행했던 건 알겠다고.
나름 이해는 되지만 은빛사자 기사단을 반쯤 유기하고 다른 기사단으로 찢어서 만든 건 좀 불편하다고.
“흐음.”
대답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걸까. 힐다는 미묘한 콧소리를 내면서 펜을 내려놓는다.
“끝났어.”
“벌써 다 했어? 진짜 빠르긴 하네.”
다시 일어나서 힐다 쪽으로 가서 확인한다. 확실히 글씨체가 예뻐서 좀 어색하긴 해도 일단 과제는 끝났다.
“그럼 바로 마법을 배우는 건가?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법이 있긴 한데…….”
고화력의 마법이나 다수를 상대할 때 효율적인 마법같이, 검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마법으로 채워 넣고 싶었다.
하지만 힐다는 다리를 꼬며 고개를 젓는다.
“아냐, 오늘 배울 건 너와 나 그리고 은빛사자 기사단에 대해서야.”
갑자기 묵직하게 치고 들어온 힐다의 말.
다른 기사단원들에게 말을 못하는 제약이 걸려있어 당연히 힐다도 말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으나.
“말할 수 있는 거야?”
“내가 마법의 주체자야. 괜히 이르게 정보를 줬다가 네가 조급해할까 봐 통제하던 것뿐이야.”
그리 말하곤 그녀는 담담하니 진실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300년 전, 네가 죽은 이후에 말이야.”
“…….”
“너를 되살리려고 했어.”
무거운 내용이라는 건 알고 있다.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건 흑마법에서조차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주제였으니까.
“은빛사자 기사단은 마몬을 토벌한 이후, 찬란한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다들 공허함을 숨기지 못했어. 너라는 존재가 그들을 묶고 있었는데, 사라졌으니까.”
힐다의 눈동자가 우수에 젖어 있다. 그녀는 쓰라린 과거를 억지로 끄집어내며 말을 이어간다.
“단순히 은빛사자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단장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너를 그리워했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줬던 것 같지는 않은데.”
괜히 과한 칭찬을 듣는 기분이라 어색함에 한마디 덧붙였으나 힐다는 고개를 젓는다.
“아냐, 그 정도였어.”
“…….”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내가 더 할 말이 없다. 침묵으로 다음 말을 이어서 해달라고 요구했고 힐다는 숨을 내쉬며 이어서 진행한다.
“그렇게 너를 되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대악마의 잔당들을 처리하던 도중. 마몬교의 놈들이 대악마를 다시 소환하려던 걸 현장을 급습하면서부터 일이 시작됐어.”
“그때도 그랬던 거야?”
“어, 문제는…… 놈들이 마몬이 아니라 다른 대악마를 소환하려고 했다는 점이었지.”
이미 몇 번이나 본 적 있었기에 그 광경이 얼마나 참혹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희생으로 대악마를 막아냈건만 또 다시 다른 대악마를 소환하려던 놈들에게 치가 떨렸다.
“놈들이 소환하려던 건 아스모데우스였어.”
“……아스모데우스?”
색욕의 대악마 아스모데우스.
나 역시 이미 들어본 이름이었다.
왜냐면 300년 전보다 훨씬 과거.
기사단이 이제 막 설립되던 시기에 날뛰던 대악마였으니까.
당시에 가까스로 토벌했다는 기록과 더불어 여러 정보들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마몬을 잡기 위해서 같은 대악마인 아스모데우스의 기록들을 열심히 읽기도 했었으며.
이안 아이넬의 몸으로 먹었던, 호우만이 만들어 준 영약의 주재료가 녀석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줬다는 꽃이기도 했다.
근데 문제는.
“이미 죽었잖아.”
그래, 방금도 말했듯 토벌당한 대악마를 다시 소환하려 했다는 점이었다.
“맞아, 아스모데우스는 먼 고대에 죽었어. 하지만 놈들은 다시 그녀를 소환하려 했지. 여기서 이상함을 느끼고 나는 조사를 시작했어.”
그리고 힐다는 밝히기 힘든 진실을 털어놓는다.
“라인, 대악마들은 죽여도 죽지 않아. 그들은 일정 주기를 반복하며 다시 부활해.”
“…….”
“게다가 놈들이 태어나는 방식도 여럿이야. 이렇게 땅으로 소환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의 몸에 기생해서 태어날 수도 있지.”
“잠깐 그렇다면.”
힐다의 손가락이 내 가슴을 가리킨다. 정확히는 마몬의 문양을.
“라인 레이먼드가 죽고, 이안 아이넬로 환생했으나. 마몬의 저주가 너에게 남아 같이 태어나게 된 거야.”
목숨을 바쳐서 놈을 죽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의 탄생이 다시 놈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어준 꼴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힐다의 말을 막진 않는다. 그저 주먹을 꾹 쥔 채로 화를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된 거야. 네가 마몬의 재림에 촉매가 될 예정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국 몸을 빼앗겨 그토록 싫어했던…….”
마몬, 그 자체가 된다는 걸.
힐다의 묵직한 한마디가 가슴을 때리듯 울려온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마몬이 내 몸을 강탈하려 했기 때문에 로아 제국에 가서 굳이 흑마법까지 배워 온 거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확실하게 듣자 조금 어지럽긴 했다.
“그래서 나를 따라온 거야?”
내 질문에 힐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를 되살리는 건 포기했어. 대신 우리가 너를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
“…….”
“소환마법이 많은 도움이 됐어. 우리가 아예 소환수가 되는 방식은 꽤나 위험하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성공했거든.”
“하지만…….”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300년 전.
은빛사자 기사단의 단원들은 갑작스레 종적을 감췄다고 나와 있다.
그 이유가 300년이나 미래에 있을 재앙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다.
결국 모두가 늙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치를 거스르며 재앙을 막기 위해 찾아왔다는 건. 숭고한 희생이었으나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힐다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이안.”
“어?”
“세상을 구하려고 온 게 아니라고.”
300년 후의 세상 따위.
멸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투.
실제로 그녀는 딱히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시대에 나타날 대악마는 이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 놈들이 막아야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근데 이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 놈이 바로 너잖아.”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다가온 힐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를 안으며 속삭였다.
“너를, 혼자 싸우게 두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아.”
“대악마라는 괴물들의 앞에서, 네가 혼자서 검을 치켜 들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우리가 함께할 거니까.
신념이 담긴 선언은 마음을 울려온다. 힐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듯해지며 먹먹한 감정이 들었다.
“앞으로 남은 기사단원이 넷인가?”
“맞아.”
나를 안은 채로 말을 이어가는 힐다. 그녀의 감귤향은 300년 전과 똑같았다.
“얼른 소환하자. 내가 도와줄게. 이쪽 세계의 소환마법 권위자라는 놈을 한번 만나보면 감이 좀 잡힐 것 같아.”
“테르토나? 벽 느끼겠네.”
보통 마법사들은 힐다를 만나면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좌절하거나 동경하거나.
테르토나가 부디 후자이길 바라면서도 힐다가 돕는다면 금방 소환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일단은 기사단원들 다 소환하고. 다 같이 모여서 그때 얘기를 해보자. 마몬은 사실 네가 주도권 싸움에서 이겨서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다른 대악마.
그리고 아직 의문의 존재인 천사까지.
우리에겐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때.
똑똑똑똑똑.
노크 숫자와 간격에서부터 다급함이 느껴진다.
늦은 밤이라서 따로 올 사람은 없을 텐데.
힐다를 문 옆으로 숨기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세요?”
잠깐의 정적.
문 밖의 사람은 자신을 밝히길 꺼려하고 있었으나 이내.
“나다.”
본인을 밝혀왔다.
“로만 레이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