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83
383화
5장 남송의 결정(2)
시눈새가 악의가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자리의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타국에서 목숨을 걸고 이적의 군주에게 요청한 그 의기는 오히려 사대부로서 본받을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황제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에 신료들은 되도록 시눈새를 비호하는 방향으로 가되, 시눈새의 죄를 인정하며 죄인으로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 하오나 정사 시눈새는 본의가 아니었으니 부디 그 죄를 면하는 것이 가납(嘉納)할 것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죄가 없지는 않으나 그 공은 죄를 상쇄하고도 남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그런 신하들의 반발에 황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끊으며 말했다.
“지금 경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가? 지금 짐은 정사가 악의가 있음과 없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 상대의 말을 끊는 것은 예가 아니었고, 황제 조윤 또한 즉위한 이래 신하의 말을 함부로 끊는 일은 극히 적었고, 설령 있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고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황제가 이름을 부른 것에 이어 대놓고 신하들의 말을 끊으며 역정을 내기까지 하자, 신료들 중 불안을 느끼는 이가 점점 더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이 황제의 말과 행동을 멈추게는 하지 않았다.
“정사가 악의가 없음은 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죄가 없음이 아니며 그 행위에 대한 문제를 논하는 것이다. 재차 말하나 본국은 대신이라 할지라도 그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면 간관들과 논하고, 천자조차 작은 흠이 있다면 대간들이 솔선수범하여 간하니 그것에 악의가 없더라도 시정한다.
이것은 작은 흠조차 전례로 남겨 오점이 되어 후환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경계하며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본국의 정도(政道)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사 시눈새는 무지렁이도, 소관도 아닌 대관에 오른 식자(識者)로 선비와 신하의 도리를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신분과 위치에 있는 자로다. 이러한 자가 짐을 대리하여 외방으로 가서, 왕에게 스스로를 천자처럼 요구하였으니, 이 행위가 어찌 작은 흠이라 하며 언급조차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송나라는 성리학의 나라답게, 조선 시대만큼 아니, 원조 성리학의 나라답게 조선 이상으로 황제나 대신들이 품행에 문제나 흠이 있다면 대간과 간관들은 간언과 직언을 올려 시정을 청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전의 신하들도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리고 직후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신료들의 예상에서 한치도 틀리지 않은 내용이었다.
“묻겠느니 만일 지금 짐이 정사의 행위를 긍정하거나 넘어간다면 후일 천사가 번국에서 자신이 천자인 양 무례하게 구는 전례를 남기는 것이 아니더냐?”
직언과 간언을 남발하여 군약신강의 모습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 전제는 어디까지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 자신들의 주군. 천자께서 옳은 정치를 하시고, 본이 되며, 신료들은 그런 천자를 심신을 바쳐 보필, 봉공한다는 충의’란 명분이 있었다.
그것이 명분이든, 실제든 그 충성과 존숭은 결코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당장 고려 연호의 문제가 보고에 올리자 신료들은 제후 주제 참칭을 한 것에 비분강개한 것이었고, 정청지를 비롯한 다른 신료들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은 분명히 지적했던 것이다.
그런데 교화가 덜 되어 무식한 이적들도 아닌 사대부가, 그것도 대송의 신하라는 이가 황제의 권위를 훼손될 전례를 남길지도 모르는 것을 어째서 그 누구도 언급 하지 않았냐는 천자의 지적이었으니 그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이다.
“…….”
신하들 중 일부는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해 보려고 했으나 황제는 이미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 오호통재라. 짐이 처음 보고를 듣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대간이나 신료들 중 정사의 죄에 벌줄 것을 청하리라 여겼기 때문인데, 지금 대간이나 조정에서 한 사람도 말하는 자가 없으니 이것은 눈새의 위세가 두려워 그런 것인가, 아니면 조정에서 천자를 보는 것이 이러한 것인가?
지금 사태만을 본다면 도리어 외방의 제후가 먼저 천자와 천사의 관계를 바르게 판단하여, 천사의 월권을 반대하고, 조정의 신하들은 그런 신하의 권리가 큼만을 보며 제후의 처신에만 면박하는 것 같으니 참으로 우스우며 슬프지 않단 말인가.”
요약하면 방금 전까지 고려로 인해 천자의 위엄이 떨어지고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던 신료들에게, 평소엔 흠이 있다면 직언을 올리던 너희가 지금 같은 문제에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 너희가 진짜 충신이냐는 말이었다.
당연히 신료들은 난색을 표했고, 정청지를 비롯한 신하들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패배를 인정하듯 죄를 청하기 시작했다.
“시눈새가 성상의 칙서를 전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제후를 면대하고 제 마음대로 고집하였으니 이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신 등이 처음에는 눈새가 악의가 없음만을 보고, 번국의 참칭에만 분노하여 눈새의 죄를 과소평가하였는데, 지금 황상의 하교를 받아 그 무례함을 알고 보니, 그 죄는 실로 용서할 수 없사옵니다. 신들이 우둔하여, 이러한 큰 문제를 놓쳤사오니 신들 역시 죄가 있습니다. 부디 벌하여주시옵소서.”
“고려왕 왕철의 연호 사용은 제후로서 매우 그릇된 것이며, 그것을 직면한 사신으로 간 시눈새가 사신의 신분으로 시정할 것을 청하는 것은 상국의 신하로서 큰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후 왕철이 그의 청이 천자의 명이 아니란 논리를 내세웠음에도 물러나지 않은 것은 분명 큰 죄입니다.
이는 눈새가 그 가문이 태조 시절부터 큰 우대를 받아 온 것이 오래되어 실로 자각 없이 거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니, 진실로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를 크게 벌하는 것은 마치 본국이 번국 고려의 겁박에 겁을 먹어 엄한 선비를 벌하는 것으로 전해져 조정과 나라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여기에 사숭지 또한 그에 동조하며 시눈새의 죄를 인정하자, 이윽고 대전의 모든 신료들이 죄를 인정하며, 시눈새의 죄를 주청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실상과 시눈새의 본의가 어떠하든 간에 그를 벌하는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은 황제의 권위에 훼손되는 전례가 남더라도 넘어가도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폐하께서 정치를 함에 있어 몰라뵈게 성장하셨구나.’
그리고 여기서 정청지를 비롯한 노회한 신하들과 눈치가 있는 신하들은 황제가 일부러 시눈새의 잘못을 언급하며 황권을 지킨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현 남송의 황제 조윤의 황권이 커진 것은 고려와의 외교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해동의 동이를 교화시켜 입조시켰다는 공적은 빈말이라 할지라도 황제의 권위를 높여준 것이다.
그러니 이번 고려의 연호 문제는 남송 황제에게도 큰 타격을 줄 문제였다. 교화되어 입조한 고려가 사실 교화가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상국을 이용하려고 입조한 것이고, 내부로는 자신들이 황제로 참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후한 대접을 한 황제는 그런 이적들의 속내조차 간파 못 하고 호구처럼 퍼준 것이 된다.
이러면 당연히 황제의 명예와 권위는 추락할 것이 뻔했는데, 황제는 여기서 시눈새의 행동을 월권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이를 지적하지 않은 신하 모두를, 이적조차 신경 쓰는 천자의 권위를 신경 쓰지 않고, 재량껏 천자의 권위를 이용해도 괜찮다는 전례를 관망한 이들로 만든 것이다.
충의의 대명사인 유학자로서는 군주를 허수아비로 만들려 한다는 권신, 간신 취급은 전신을 오싹하게 만드는 문제였다.
이러한 오해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일로 떨어진, 그리고 떨어질 천자의 권위를 지적하거나 권한을 축소하는 발언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렇다. 시눈새는 짐의 신하로서 그에게 부여받은 권한을 넘는 요구를 하고, 고려왕이 황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하였음에도 고집을 부렸다. 처음은 몰라도 고려왕의 대답에도 고집을 부린 것은 실로 그릇된 일이다. 대신에게 작은 과실이 있더라도 사(赦)하여 주는 것이지만 이것은 심히 공경스럽지 못한 일이니 버려둘 수 없다.”
하지만 신하들이라고 순순히 이에 당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습니다. 하오니 이를 지적한 고려왕 왕철에 대한 대처도 이것을 결한 후 처리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먼저 결(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정 재상?”
“지금 시눈새의 행동은 잘못됨이 맞고, 또 고려왕 왕철의 대답도 일리는 있으니, 변고 같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들이 배반하고 있는가는 적실히(적실히:틀림없이 확실하다.) 모르는 것이니,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하면 확실히 하는 방도는 무엇인가?”
황제의 물음에 정청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황제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맞는 명을 내리자, 신료들도 모두 고개를 숙이며 따랐다.
* * *
겨우 회의를 끝내고 퇴정을 하는 신료들 사이에서 사숭지는 정청지와 함께 나란히 걸으며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수고하였소.”
“아니오.”
정청지, 사숭지 둘 다 이번 고려 연호의 문제에 금과 관련하여 크게 경계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으나 둘 모두 사실 고려에 대한 경계심은 대전에서 말한 것만큼 크지는 않았다.
물론 경계하고,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고, 불안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전에서 한 것처럼 금의 정통성을 얻은 고려가 ‘정강의 변 재림’을 시키리라 우려한 것은, 둘 모두 현실적으론 여전히 침소봉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현실적으로도 그러했다.
즉, 완전한 단교도 고려와 대립하는 것도 후일은 몰라도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둘이 정전에서 고려에 대한 경계와 문제를 과하게 주장하였으니 그 목적은 다른 것들에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젊은 신료들 위주로 미묘한 상국과 과분한 대접을 받는 번국 고려라는 현실의 불만에 주전론과 신중론과 별개로 반 고려파를 위주로 한 제3의 당파가 나올 뻔한 것을 재빨리 간파하여 막고자 끼어든 것이다.
실제 정청지는 재빨리 끼어들었고, 그런 그의 행동을 사숭지도 즉시 간파하곤 동조하여 제3의 당파를 막았다고 할 수 있었다.
“황상 폐하께서 참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아니 그렇소?”
“그렇소이다. 간신과 소인배들에게 휘둘리는 일은 없겠소.”
말만 듣는다면 황제의 성장에 기뻐하는 대신들 같았지만 정작 둘은 목소리는 착잡함이 섞여 있었다.
정적이라 불리는 둘의 협력은 고작 신 당파의 등장과 신진관료들의 폭주를 막고자 하기 위해서만 아니었고 주목적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목적이자 주목적은 바로 황제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단평입락과 송몽전쟁 이후 정청지나 사숭지는 어느 누구도 조정에서 주도권을 제대로 거머쥐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주도를 할 것 같이 힘이 세진다 싶으면 황제가 끼어들어 조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청지나, 사숭지라고 모를 리 없었고, 내심 황제에게 휘둘리는 듯한 이 상황이 달갑지도 않았다.
그러나 단평입락, 송몽전쟁 이전 이후 부쩍 커진 황제의 권위와 반대로 다소 부족해진, 혹은 아직 모조란 그들로선 홀로 황제를 제압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이유를 꼽는다면, 황제의 권위가 커진 것에는 남송 내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보장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고려였다. 둘이 합친다 하더라도, 고려의 문제에 있어서 이미 공적을 세운 황제의 발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코가 꿰인 듯한 상황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찰나 황제의 든든한 업적이 된 고려가 연호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에 당연히 두 대신은 즉시 ‘고려 위험론’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들도 우방국 고려의 존재 가치는 알기에 단교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며 그런 주장이 나온다면 어떻게든 막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교화를 부정하며, 황제의 공적을 약화시킬 수는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정전에서 보여준 황제의 대처로 인해 조정 내에선 황권이 당분간 견고함이 지속될 것이 자명했다.
정말 황제는 과거에 비해 정치 능력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행동에 성과가 없다고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나 폐하께선 마지막에 실수를 하셨소. 이를 보면 아직은 홀로 정치를 하시는 것은 힘드신 것이 아니겠소?”
사숭지는 안도하며 말했고, 정청지도 그 주장에 수긍은 했다. 비록 일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