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16
416화
25장 전후(戰後)(2)
“괜찮은가?”
고려 문관들 중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에 오른 최종준이 몸소 방문하였다고 한다면, 고려의 대다수는 집주인이라 할지라도 버선발 상태로라도 나와 인사해야 할 위치였지만, 공교롭게도 이 자택의 주인은 그 대다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니 괜찮네. 들어오지 말게. 감염될 걸세.”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집주인의 태도에 최종준도 히죽 웃으며 무시하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지 말라 하지 않았나.”
“이 친구야. 자네는 친구가 몸소 왔는데 추운 밖에 계속 세워 둘 셈인가?”
“그럼 그대로 돌아가지. 누가 오랬는가?”
갑작스러운 방문에 집주인 이규보는 대놓고 툴툴대면서도 이미 들어온 친구를 쫓아 보내지는 못하고, 따닥따닥 구워지고 있는 군밤을 덜어 건네주었다.
“허허허. 문하평장사이자 나의 친구가 와병 중인데 어찌 친구 된 몸이자 중신으로서 병문안을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받은 군밤을 수저를 이용해 알을 꺼내 호호 불며 먹는 친구 최종준을 보던 이규보는 얄밉다는 표정으로 짓고는 다시 침상에 누워 고개를 돌렸다.
“그거 먹고 가게. 나는 계속 아프네.”
“아, 거참 야박하게 시리. 우선 병문안 선물도 가져왔는데 이러긴가?”
“선물?”
선물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다시 고개를 돌리니 최종준이 소맷자락에서 감귤 몇 개와 한지로 꽁꽁 포장한 것을 꺼내 내놓은 것이다. 포장한 것은 단단히 포장되어 알 수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이규보는 부릅뜨며 반색했다.
“헉. 이것은 감자(柑子 귤)가 아닌가?”
“자네가 이것을 좋아하기에 가져왔는데, 계속 이럴 셈인가?”
이 시기 고려에서 귤은 자국에선 구할 수 없어 탐라, 대마도, 일본에서 바치는 것을 제외하면 아주 가끔 중국에서 오는 귤 말고는 구할 수 없어 매우 귀하여 고위 관리라도 쉬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규보는 이 귤을 매우 좋아했다. 귤에 대한 시를 자주 지었고, 한번은 최자가 제주로 부임했을 때 매해 귤을 보내주자 매우 기뻐 귤에 대한 화답 시를 적으며 그의 승진 소식을 몰래 미리 알려주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귤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였는데, 최종준이 병문안으로 들고 오자 바로 반색하며 받아들였다.
“어허. 이 친구가 사람 무안하게 시리.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면 상이라도 차렸을 것인데 허 거참.”
그리 말하면서도 눈은 귤에 꽂혀 있자, 최종준은 껄껄 웃었다.
“눈이 생생한 것이 보니 역시 꾀병이구만 그래. 지금이라도 상을 준비할 거면 이것도 올려주게나.”
“음. 그러고 보니 그건 또 뭔가?”
그제야 귤 밑에 있는 포장된 꾸러미에 시선을 주며 묻자 껄껄 웃으며 묶인 줄을 풀어서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잘 잘린 고깃덩어리가 있었는데 이규보의 눈은 다시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이것은 쇠고기가 아닌가?”
“과연 한 번에 알아보는구만.”
“거참. 내가 소는 농사나 공사 등에 유용하고, 귀하기에 소중한 동물이라 섭식(攝食) 하면 안 되어 끊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소를 먹으면 차후 농부들을 볼….”
“알았네. 그럼 다시 들고 감세.”
주절주절 말하는 이규보의 말에 즉시 알겠다며 냉큼 다시 포장을 하려는 듯하자 이규보의 양손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최종준의 양팔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크흠. 어허. 이 친구가 이리도 성급해서야 어찌 국정을 보는가. 농부들을 볼 면목이 없긴 하나 무릇 승려들도, 근본으로 가면 ‘삼종정육(三種淨肉)’이나 ‘오종정육(五種淨肉)’이라 할 뿐 그 외에는 섭식을 허용하였는데, 이미 잡은 소를 어찌 버리라고 권하겠고 마다를 하겠나! 내 바로 아랫것들에게 시켜 상에 올리라 하겠네. 여봐라. 거 아무도 없느냐?”
소가 중요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규보도 소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끊는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눈앞에 소고기가 있으면 홀라당 먹을 정도로 이규보는 소고기를 좋아했다. 그런 소고기와 귤을 들고 왔으니 이규보는 바로 침상에서 나와 최종준과 대작을 하며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으음. 맛있네. 맛있어! 완전 살살 녹는 것이 정말 내가 아는 쇠고기가 맞는가? 오랜만에 먹어 이러한가? 아니면 정말로 예전에 먹은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인가 모르겠군.”
“둘 다가 아니겠는가. 이 고기는 태자 전하와 함께 갔던 병사가 도축한 고기인데, 그 병사가 말하길 태자 전하와 함께하면 고기를 많이 먹어 맛을 들였다가 군에서 도축하는 법을 배웠으며, 제대로 도축한 고기는 그렇지 않은 고기에 비해 맛이 아주 좋다고 하더군. 하여 한번 구해봤는데, 과연 진미(珍味)가 따로 없네! 따로 없어!”
갑자기 태자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기를 집었던 이규보의 젓가락이 멈칫하다가 이내 다시 입과 화로 위에 고기가 올라간 판을 오가기 시작하더니, 한두 점을 더 먹은 후에야 감상을 토해냈다.
“…후우. 역시 전하께선 육식을 즐기시는 것인가?”
“듣자 하니 딱히 쇠고기를 즐기시는 것은 아니신 듯하지만 고기가 보양이 되어 자주 먹는다고 하시더군. 사냥도 자주 하시니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뭐, 그렇긴 하네만, 일국의 태자가 사냥과 육식을 즐긴다는 소문이 왜곡되어 퍼져 그 명성에 누가 끼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일세.”
“전하께서 어디 유희(遊戲)로 하겠는가. 다 사냥과 보양을 위해서지. 실제 음주나 여색를 즐기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 않은가?”
이규보도 그것에 대해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는 사냥을 하여 잡은 동물들을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자주 연회를 하긴 하더라도 딱히 과한 음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고, 가끔 심도에 와서 모두와 술을 마실 때에도 적당히 한두 잔 정도만 마실 뿐 과음은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참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태자비 하나만을 둘 뿐, 따로 후궁 두기는커녕 여자를 가까이하지도 않는 등 여색을 별로 탐하지 않으니 금상처럼 처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들리는 판국이 아닌가.
물론 이에 대해선 태자 전하께서는 현 태자비 전하와 밤 중 나누는 사랑만으로도 굳이 해소할 여색이 없어져서가 아니냐는 음담패설에 가까운 낭설도 떠도는 듯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폭군이나 암군이 될 정도의 여색과 음주를 탐하거나 그 외 유희를 즐기는 모습도 안 보이는 것이 현 태자였으니, 굳이 따지자면 활쏘기나 무술을 단련하는 것이 태자로서 바른지 그리고 그 모습이 무부를 연상시킨다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조차 평소 문무양도를 고집하시고, 시간이 나면 서연에도 자주 참석하니 뭐라 할 구석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네만 소문이란 것이 어디 진실만을 퍼뜨린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왜곡된 소문이 퍼지지 않게 바로 잡거나 조정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네도 어서 조정에 나오게. 자게나 와병 중이라는 말에 황상께서도 많이 걱정하셨네.”
친구의 그 말에 이규보는 처음으로 젓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그러고 싶어도 내가 연로하여 이제 예전과 같지 않아서 말이네. 아무래도 슬슬 퇴직을 해야 하는 것….”
“나도 하는데 자네가 무슨 연로함을 핑계 대는가. 태자 전하께 매해 산삼도 선물 받아 꾸준히 먹으면서 말이야. 헛소리 그만하게.”
원 역사에선 1241년 졸한 이규보였지만 왕검이 보내준 꾸준한 보양식과 장생법(운동) 가르침에 빛을 발했는지 아직 쌩쌩한 이규보였다. 아니, 쌩쌩하다고는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었다. 그 과로는 원역사 최 씨 정권 밑에 있었을 때와 비교해서 훨씬 많아 꾀병을 부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꾀병을 좌시하지 않는 자가 바로 그의 벗이었으니 이규보로서는 서운한 심정이었다.
“…….”
“미리 말하는데, 계속 그러면 나는 안경공 전하께 자네가 퇴직하여 시간이 많이 남아돈다고 전할 것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규보의 얼굴은 뭐라도 씹어먹은 것처럼 구겨졌고 안색도 어두워졌다.
“제발 나 좀 살려주게. 안경공 전하와 만날 때마다 문인(文人)으로서 나의 명이 점점 깎여나가는 것 같네.”
“껄껄껄. 하면 어서 일어나 출근하게. 자네가 지금 죽으면 내가 자네의 무덤을 파헤쳐 주검을 끌고 오고, 명부에 가서 자네의 혼을 끌고 와 시킬 것이야.”
“친구라는 자가 친구의 안정을 지키기는커녕…. 에구. 내 연세면 이미 퇴직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인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거기까지 하게. 그 관련 이야기에선 솔직히 전생은커녕 현생에서 우리 모두 떳떳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알겠네. 알겠어. 난신적자에게 빌붙은 과거의 내가 문제지. 문제야. 내 이번 주만 쉬고 가겠네.”
“안 될 일일세. 내일 바로 나오게.”
단호히 말하는 친구의 말에 이규보는 큰 탄식을 하며 고기를 먹고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이번 남조 절일사에 가는 것인데….”
남조에는 볼거리가 많다던데 절일사로 가는 동안 유람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고기를 꾸준히 섭식하는 이규보였다.
* * *
“…와아.”
남송의 도성 임안부에 있던 남송의 백성들은 놀라서 대로를 지나가는 행렬들을 보며 놀란 얼굴로 웅성거리며 구경했다.
그들은 바다 건너 황후의 절일을 축하하러 온 고려의 절일사 일행들과 그들이 가져온 공물을 잔뜩 실은 수레가 이어지는 대로에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고려의 절일사가 온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공물도 처음은 아니라 그들이 올 때마다 이런 구경은 계속되지만, 이번 절일사의 공물은 지금까지보다 배는 많아 더욱 구경하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군중들이 혹시나 고려의 사절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된 병사들도 이전보다 크고 긴 행렬에 슬쩍슬쩍 구경하며 감탄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군중들 중에는 민가나 담장, 주루(酒樓) 기둥을 타거나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남송의 군중들은 고려의 절일사들과 그들이 들고 오는 여러 신기한 물품들을 구경했다.
“와아. 저 뒤에 따라오는 것들이 전부 말이란 말이냐? 수백 마리는 족히 되겠구나.”
“고려왕이 천자님을 흠모하신다 하시더니 사실인가 봐. 저렇게 많은 말들을 조공해 오다니….”
“저건 여진족의 복장 같은데? 어째서 여진 놈들이 고려 사신에 끼어 있는 거야?”
특히나 아이들은 휘황찬란한 고려 사신 행렬과 수많은 말들과 그것을 모는 여진 차림의 말몰이꾼에 눈길을 빼앗기며 수군댔는데, 그때 머리가 한층 더 큰 소년이 어디서 들은 것이 있는지 말했다.
“나 알아! 여진은 금이 멸망하고 요동으로 도망갔다가 고려군에 패해서 복속되었다고 했어. 그러니 저기 있는 여진 놈은 고려에게 복속된 종이야.”
“아! 그렇구나! 그럼 고려는 여진과도 전쟁한 거야? 몽고랑 전쟁한 거 아니야?”
“어라? 나는 고려가 거란과 전쟁했다고 들었는데?”
“어… 음. 그러니까. 어….”
소년의 말에 주변 아이들은 저마다 궁금한 것을 질문을 던졌는데, 그 소년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었는지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득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 다시 기고만장하게 아는 체했다.
“그, 그건. 전부! 그래. 전부 다 싸운 거야!”
“거짓말. 어머니가 말했어. 거란이나 여진, 몽고 모두 강하고 무서운 이적들이라고 했어. 사람을 잡아먹는 흉포한 녀석들인데 어떻게 고려가 전부 잡았다는 거야! 너는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 너는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자 큰 소년도 움찔했지만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기에 다시금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아, 아니야! 울 아버지께서 말하셨어. 고려도 난폭하고 성질이 독해서 마음에 안 드는 상대가 있다면 지독하게 싸운다고 했어. 때문에 과거에는 수(隋), 당(唐)과 전쟁했고, 지금은 거란과 여진, 몽고와 전쟁을 하는 거야!”
이 시대 어느 나라의 백성들이 그러하듯 남송의 백성들도 대부분이 세상을 모른다. 두리뭉실하게 바다밖에 여러 나라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가까이 있는 고려조차 동쪽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란 정도였다.
북송 시절 고려에 사신으로 간 서긍조차 왕건은 고 씨 고려의 신하였으나 신하들에게 추대되어 왕이 되며 고구려의 연장선으로 이어진 것이 오늘날 고려라고 생각한 정도였으니, 백성들 중에는 고려 국성(國姓)이 뭔지도 모르는 이가 태반이었다.
#작가의 말
除却耽羅見尙難 (탐라가 아니면 보기조차 어려운 것)
遠來何況水程艱 (더구나 머나먼 바닷길로 보내왔음에랴)
貴人門閥猶稀得 (귀인의 집에서도 얻기 어려운 것)
最感年年及老殘 (해마다 늙은 사람 생각해줌이 고맙네)
圓於金彈粲堪珍 (금탄보다 둥글고 찬란한 보배는)
猶似霜林始摘新 (서리 내린 숲에서 새로 따낸 듯)
呼作洞庭尤可喜 (동정귤이라 부름이 더둑 기꺼운 것은)
飮筵宜伴洞庭春 (술 좌석엔 동정호의 봄빛 짝하는 것 알맞기 때문이로세)
先生見替渡江淮 (선생이 바뀌어 강회를 건너오면)
更有何人餉我來 (다시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내주랴만)
此果難嘗眞細事 (이 과일 맛보기 어려운 것이야 정말 작은 일이라)
祝君尋拜省郞廻 (그대가 곧 성랑되어 돌아올 일 축하하네)
– 中 (제주에 부임한 최자(崔滋)가 동정귤(洞庭橘)을 보내왔기에, 시로 사례하다.)
牛能於甫田 (소는 큰 밭을 가는데 능하여)
耕出多少穀 (많은 곡식을 가꾸어 낸다네)
無穀人何生 (곡식이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랴)
人命所自屬 (사람의 목숨이 모두 여기에 달렸다네)
又能駄重物 (게다가 무거운 짐까지 운반하여)
以代人力蹙 (모자란 인력을 보충해 주누나)
雖然名是牛 (하지만 이름이 소라 하여)
不可視賤畜 (천한 가축으로 보아서는 안 될 걸세)
何忍食其肉 (어찌 차마 그 고기를 먹고서)
要滿椰子腹 (야자의 배를 채우랴)
可笑杜陵翁 (가소롭다 두릉옹이)
死日飽牛肉 (죽는 날 쇠고기를 배불리 먹었던 것이)
– 中 (단우육(斷牛肉 쇠고기를 끊다.))
고씨(高氏)가 이미 멸망되었으나 오랜 뒤에는 점차 회복되어,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그 나라에서 왕 노릇 하였고 후당(後唐) 동광(同光) 원년(923)에는 사신을 보내어 조회하러 왔었는데, 국왕(國王)의 성씨를 사관이 빠뜨리고 기재하지 않았다. 장흥(長興) 2년(931)에 왕건(王建)이 나랏일을 권지(權知)하여 사신을 보내어 공물(貢物)을 바치고, 드디어 작위(爵位)을 받아 나라를 차지했다.
(중략)
왕 씨의 선조는 대개 고려의 큰 씨족이다. 고 씨(高氏)의 정사가 쇠퇴하게 되매, 나라 사람들이 왕건을 어질게 여겨 드디어 함께 군장(君長)으로 세웠다. 후당(後唐) 장흥(長興) 3년(932)에 마침내 스스로 권지국사(權知國事)라 칭하고 명종에게 봉작(封爵)하여 주기를 청하니, 곧 왕건에게 원도주도독(元菟州都督)을 제수(除授)하고 대의군사(大義軍使)에 충임(充任)하여 고려의 왕으로 봉하였다.
– 中
*이규보는 귤에 끔벅 죽었는지 관련된 시가 종종 보입니다.
**예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보통 고려 시대에는 육식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오해도 가끔 보이는데 이 오해의 원인은 대부분 고려가 불교 국가라는 것과 송의 서긍이 적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고려인들은 육식을 하지 않아 고기 요리하는 법도 잘 모르고 맛도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삼종정육, 오종정육이란 모두 불교에서 먹어도 된다고 허용한 고기들을 말합니다.
삼종정육(三種淨肉):나를 위해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란 말을 듣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지 않는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내가 죽이는 것을 보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해서 죽이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하여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고기, 수명이 다하여 자연히 죽은 고기, 짐승이 먹다 남긴 고기
이중 오종정육에 대해선 현장 법사(서유기 삼장법사의 모델)이 기록한 에도 짤막하게 나옵니다.
****송에서 고려에 대한 인식은 고구려 그 자체로 봤는데 정확히는 당이 고구려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시간이 흘러 점차 회복했고, 왕건은 그런 고구려에서 강한 세력인데 고씨 왕족의 세력이 약해지자 고려의 왕에 올랐다는 인식입니다.
아마도 궁예가 초기 고구려(고려)를 자칭한 것도 있는 데다가 하필 당시 중국도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라 기록이 미흡하여 궁예의 성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왕건이 암군을 몰아내 왕위에 올랐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져 여기저기 비어 있는 부분을 자체적으로 왕건이 고 씨 왕을 몰아내고 올랐다고 추측 결론 내며 일어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