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46
446화
46장 이국의 무인시대(武人時代)
조큐의 난 이후로 일본의 권력이 막부로 돌아가면서 위상이 많이 하락하였다곤 하나, 일본의 공식 수도는 여전히 헤이안쿄(=교토)였고, 덴노를 비롯한 황족과 공경들 및 조정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가마쿠라 막부에서는 거리의 치안과 호위라는 명목으로 ‘로쿠하라 단다이(六波羅探題)’라는 관직을 만들어 교토를 경비하게 했으며, 남과 북으로 ‘로쿠하라 단다이 기타카타(六波羅探題北方)’, ‘로쿠하라 단다이 미나미카타(六波羅探題南方)’로 있었다.
이들의 존재와 실질 목적은 막부 정권의 안정을 위해 덴노와 황실, 조정을 경계하고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연히 조정이 아닌 막부의 지휘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로쿠하라 단다이 기타카타(六波羅探題北方)’ 호조 시게토키(極楽寺流)는 자신에게 보고를 한 부하를 향해 길길이 날뛰며 호통을 쳤다.
“이 멍청한 놈! 이 미야코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로쿠하라 단다이 미나미카타(六波羅探題南方)’가 살해되었는데, 아직도 조적들을 잡지 못했다는 말이나 지껄인단 말이냐!!”
“소, 송구합니다. 지금 서둘러 추격하고 있으니 곧 잡힐 것….”
“곧? 곧 잡힌다고? 네가 직접 가라. 만약 내일 아침까지 빈손으로 오게 된다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조, 존명!”
보고를 한 부하가 당황하며 자리를 뜨자 호조 시게토키는 침음성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야스토키 님께서 정정하실 때에는 입도 방긋하지 못하는 것들이 돌아가시자마자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다니….”
일본의 역사를 바꾼 조큐의 난에도 참여하고, 고세이바이시키모쿠(御成敗式目)라는 법령을 제정하며, 조큐의 난 이후 어떻게든 탈환과 재기를 노리던 일본 황실과 쇼군을 상대로 호조 천하 기반을 굳건히 다진 제3대 싯켄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는 닌지(仁治 일본 연호) 3년(1242년) 6월 15일. 과로로 인한 발병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싯켄의 죽음은 호조 정권이 혼란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당연하였으나, 비단 지금 호조 세력의 혼란은 싯켄만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호조 세력의 중추였던 요시토키, 마사코, 오에 히로모토들도 비슷한 시기 6~7월에 연달아 죽으면서 세력 자체가 단숨에 흔들리고 있던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야스토키가 말년까지 대립하던 덴노와 조정에 대한 감시와 경계가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명목상으론 황실과 조정이 있는 도읍을 수호하고, 실제로는 그들을 감시하는 일인 만큼 로쿠하라 단다이란 자리도 중직이었는데, 그만큼 호조 씨가 이를 맡고 있었다.
심지어 기타카타(北方), 미나미카타(南方)의 자리에 앉는 이들은 호조 씨 일족 중에서도 장래가 유망한 젊은 인재들만이 맡았고 이들은 실제 가마쿠라로 돌아가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데 그 ‘로쿠하라 단다이 미나미카타(六波羅探題南方)’를 맡은 ‘호조 도키모리(北条佐介流)’가 살해당한 것이다.
‘야스토키 님께서 돌아가신 만큼 불만을 가진 자들이 준동할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로쿠하라단나이 중 하나가 살해당한다는 사건이 일어날 줄이야. 이렇게 된 이상 서둘러 가마쿠라에 전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않으면 호조의 천하가…!’
* * *
로쿠하라 단나이 중 하나인 호조 도키모리의 죽음은 순식간에 일본 전국에 퍼졌고 발칵 뒤집혔다. 천하의 호조가의 사람이, 그것도 중직인 로쿠하라 단나이에 오른 자가 쿄 내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 호조가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동시에 호조가를 적대하고 있는 자가 있다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가마쿠라의 젊은 제4대 싯켄 호조 쓰네도키(北条 経時)는 보고를 듣고는 즉시 대응에 나섰다.
“쿄의 치안을 위해 병사 4천을 보내 미카도(御門 덴노를 말함)를 수호하고, 이번 사건을 확실히 조사하여 규명하라.”
치안 강화는 어디까지나 명목이고 덴노와 조정에 대한 압박과 경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을 그 자리의 모두가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그리고 그것은 명분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정수(正手)에 해당하는 대응이기도 했다.
말년까지 황실과 조정이 권력을 되찾으려는 것을 철저히 막은 선대 싯켄이 죽은 지금, 권력을 되찾을 기회라고 여기고 움직일 세력으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덴노와 공경(公卿)들이었기 때문이다.
“미카도께서 계시는 궐의 병사들도 늘려라.”
“싯켄님. 섣불리 궁궐에 병사들을 늘리면, 공경들의 반발이….”
교토에 있던 호조 가의 중진이자 쓰네요시의 대숙부(大叔父)인 로쿠하라단나이의 호조 시게토키(極楽寺流)조차 신중히 움직이려 하고 있을 때, 막 싯켄이 된 젊은 쓰네도키는 유례없는 사건을 직면하고도 젊은 나이가 무색하게, 혹은 그 젊은 나이에 어울리는 혈기로 과감히 행동에 나섰다.
“어차피 입밖에 없는 놈들이다. 그런 반발 따위는 무시하고 속행해라. 이번 사건은 우리 호조에 대한 도전이다. 이런 상황에서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욱 저들의 기가 살아서 다른 모두가 우리 호조의 권력에 도전하려 들 것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 호조가 굳건하다는 것을 천하에 증명해야 하는 법이다.”
“싯켄께서는 쿄(京)가 관련된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계십니까?”
쿄라고 돌려 말했지만 실질 덴노를 비롯한 그 세력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고 확신하냐는 가신의 물음에 쓰네요키는 단정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쿄밖에 없지. 안 그래도 나라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전부 우리 탓으로 하고, 선대(야스토키)의 죽음에 대해선 법황의 저주라며 권력을 황실과 조정에 반환해야 한다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허언을 내뱉는 놈들인데 뻔하지 않느냐!”
그렇게 거침없이 도쿄 견제만을 생각하는 쓰네도키에게 곁에 있던 쓰네도키의 동생 호조 도키요리(時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도 호조가의 일원으로서 호조 세력이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 소집된 것이다.
“형님. 어쩌면 ‘유도 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고를 들은 이후 줄곧 침묵하며 생각에 잠긴 동생의 첫 말이 불길한 감상이란 것에 싯켄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유도 당하고 있다? 그게 무슨 의미지? 설명해 봐라.”
‘유도 당하고 있다’는 말에 명백히 가시가 돋친 형의 시선을 받으며 도키요리도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부이신 야스토키 님의 사후 조짐부터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몇 가지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전에 겐토쿠(顯德院 고토바 법황의 작중 시기 시호) 법황님의 유해를 운구하던 중 풍랑을 맞아 사라진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하지.”
“세간에는 이를 두고 누군가 법황께서 생전에 말한 대로 죽어 원령이 되어 우리에게 자신의 신체를 넘기지 않게 풍랑을 불러 사라졌다고 하고, 혹자는 겐토쿠 법황이 사실 죽지 않고 몸을 숨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야스토키 님의 죽음에 대해서도 겐토쿠 법황의 원령이 내린 저주라는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고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혹시 쿄 나 겐토쿠 법황을 이용하여 우리의 이목을 미야코의 조정에 집중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법황의 문제도 그렇고, 야스토키 님이 죽고, 여러 중신들이 죽은 지금 이번 사건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의심받을 곳은 쿄 가 아니겠습니까?”
“즉, 누군가가 우리와 쿄 조정의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분쟁일지 아니면 관심을 돌리려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쿄의 공경들이 정말로 자신들에게 정의가 있음과 우리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과감히 나선 것일지도 모르지요.”
“…쇼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지금 가마쿠라에 있는 가마쿠라 막부의 4대 쇼군 후지와라 요시쓰네(藤原 頼経)는 형식상 싯켄보다 위에 있는 이였다.
쇼군이란 자리는 본래 일본의 권력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였으니, 조큐의 난 이후 싯켄에게 실권을 빼앗긴 자리이기도 했다. 덕분에 쿄에 있는 조정을 제외한다면 호조가에게 있어선 제일 의심스러운 대상이긴 했다.
하지만 도키요리는 그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법황의 문제에 대해선 쇼군가도 자유롭지도, 떳떳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니까 더욱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지른 것일 수도 있으니 없습니다. 라고는 확신 못 하겠군요.”
“쯧. 결국 모른단 말이냐. 너의 말만 믿고 쇼군을 견제하다가 그 반발로 정말로 쇼군이 쿄의 공경들과 손을 잡는다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곤란해진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하지만 허투루 넘길 수도….”
“알았다! 알았어!”
그 조언을 귀찮다는 듯 대답하면서도 심각성은 인지한 싯켄 쓰네도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분명 쓰네요시 쇼군께는 아들이 있다지? 아직 어리니 당장 혼례를 치르는 것은 힘들겠지만 약혼이라면 우리 가문의 적당한 여식과 당장이라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약혼이면 정략혼(政略婚)을 하자는 것입니까?”
“그래! 쇼군을 경계하긴 해야 하나. 지금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역시 쿄의 조정이다. 쇼군께서도 쿄의 조정이 권력을 되찾게 된다면 우리들만이 아니라 전국의 무가도 무사하진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러니 야스토키 님이 돌아가시고 황실과 쿄의 조정이 수상한 지금 협력을 구하자는 거지. 그리고 지금 쇼군과 우리 가문의 자녀가 약혼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쿄의 공경들은 물론, 이번 사태로 의심하는 이들도 다시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할 테지.”
“과연. 주변에선 이번 일로 더욱 세력이 커졌다고 생각하니 쿄을 비롯한 전부가 몸을 사릴 것이며, 그동안 우리 호조는 혼란을 잠재우고 기반을 단단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어떠냐?”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현 쇼군도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어 보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휘둘린 반동에 가까우니 우리가 제의한 정략혼으로 얻는 이점을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쿄가 아닌 쇼군이 이번 일의 배후라고 한다면 이번 정략혼을 제안하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
호조가의 공적과 현 가문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싯켄의 집권에 불편해하는 이들은 많다. 현 쇼군 후지와라 요시쓰네(藤原 頼経)도 그중 하나였다.
어린 나이에 쇼군에 강제로 올라, 호조가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겨우 나름의 세력을 모으고, 권력을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려에서 왕검이 최충헌, 최우가 구축한 단단한 권력 구도에 좌절할 뻔하였듯, 호조가 또한 이미 야스토키 시점에선 싯켄과 호조가 중심의 권력체계를 공고히 한 이후였다.
이런 상황에서 쇼군이라는 입장만으로 자신에게 모든 권력을 양도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것을 요시쓰네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무사의 정점인 쇼군에게 원래의 권력을 돌려줘야 한다는 ‘정론’은 세력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고, 명분적으로는 똑같은 논리로 교토에 계신 일본의 정점, 현인신(現人神)인 덴노에게도 돌려줘야 한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호조가의 노괴이자 괴물 야스토키를 비롯한 중역들이 죽고, 급기야 로쿠하라 단다이 중 한 명이 살해당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그런 싯켄 천하 앞날이 어수선한 시기에 새로 집권한 싯켄이 정식으로 보낸 호조가의 가신이 호조가와 쇼군가의 정략결혼을 제의가 온 것이다.
이에 주변의 사람들은 쇼군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절반이고, 아닐 것이라고 믿은 사람이 절반이었다. 그만큼 호조가의 세력은 아직도 강력했고, 동시에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쇼군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였다.
“좋다. 싯켄이 내 아들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마련할 것이라고 믿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지.”
“물론입니다!”
슬쩍 미소를 보이며 내놓는 쇼군의 긍정적인 대답에 제의를 하러 온 호조가의 가신은 임무를 달성했다는 기쁨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갈 수 있었고 쇼군도 가신을 인자한 미소로 돌려보냈다.
‘이것으로 호조 천하는 계속된다!’
쇼군과 싯켄이 손을 잡은 이상 쿄의 미카도께서 권력을 되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확신하고 자축하는 호조가의 가신은 어서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말을 재촉하였다.
한편, 호조의 가신이 돌아가자마자, 요시쓰네는 방금까지의 미소가 거짓말인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애송이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