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51
451화
51장 북방의 괴장(怪將)(1)
문하시중과 평장사 두 친구가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무관의 거물들인 수문하시중 박서와 이자성도 대화를 이번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일도 전하께서 생각하신 것이겠지요?”
“내게 묻는 건가? 나보다 이 장군이 전하를 더 뵙지 않았는가?”
“하오면 달리 묻겠습니다. 수문하시중께선 이번에 대전에서 나온 폐하의 하교 뒤에 깔린 전하의 저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자네가 본 전하는 어떠한 분이시던가?”
“예?”
“이 노장이 황상과 태자 전하의 보은으로 수문하시중이라는 과분한 지위에 오르긴 했으나, 정작 전하를 제대로 뵙고, 대화를 한 적은 없네. 간혹 뵙더라도 공무 중이거나, 아니더라도 지나가듯 뵌 것이 전부라 남들처럼 잘 알지를 못하네. 하여 전하를 아셔야 자네의 질문에 내 나름의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네.”
“전하시라면 수문하시중과 자주 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의외군요.”
“전하께서 원체 공사다망하신 분이 아니신가. 허허허.”
“…소장도 용강후나 김방경과 같이 전하의 측근이라고 자부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소장이 본 것으론….”
이자성의 설명이 다 끝나자 박서는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촌평했다.
“하면 막리지와 대각간을 추가하여 문무의 저울을 맞추겠다.
–라는 것은 전하의 진심이긴 할 것이야.”
“그렇습니까?”
이번 무반 재상직 막리지와 대각간의 추가에 혹시 자신이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뿐, 태자의 다른 의도로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이자성으로서는 박서의 그 대답에 아주 조금이지만 허탈감과 누구에게 향하였는지 모를 실망감을 느꼈다. 박서의 이어진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러나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야. 이것은 자네도 짐작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저의가 무엇이옵니까?”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신장이라는 송 낭장이라면 모를까 내가 어찌 사람 마음을 알겠는가? 하나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신 전하의 모습들과 자네의 말을 고려하면 전하께서 이번 무반 실직은 상장군과 대장군과 같은 순수한 실직보다는 다소 겸직에 가까운 실직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
“예?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저….”
* * *
발해서경.
“크하하하하!! 그 수급을 내놓아라 아앗!”
“자, 잠깐!”
호통과 함께 번개처럼 내려오는 대도 앞에서 마적(馬賊)의 수괴는 비참한 단말마와 함께 목이 날아갔다. 잘린 마적 수괴의 수급은 그 즉시 괴인의 손에 의해 대도와 함께 치켜들어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는 데 사용되었다.
“마적의 수괴는 죽었다! 남은 도적놈들도 모조리 어육으로 만들어라!”
“와, 와아아!”
괴인의 포효 어린 지시에 언덕 위에서 풀숲에서 화살을 쏘던 병사들도 뛰쳐 내려와 화살에 맞아 낙마한 마적들을 처리하듯 베어내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본 마적들은 꽁지 빠지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퇴, 퇴각!”
“두목이 죽었다. 도망가라!”
“이놈들. 어디로 가느냐!!”
거구의 괴인은 도망가는 마적들을 보고 벼락같은 호통을 날리지만 정작 마적들을 살펴볼 뿐, 그 발은 마적들을 쫓지 않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대정(隊正 고려시대 무반 품외직 종9품)의 말대로 우리만으로 이겼군요!”
부관으로 보이는 병사 하나가 괴인에게 다가가 눈앞에 일어난 자신들의 승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대정이라 불린 괴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크하하하. 그러니까 내 말대로만 한다면 이긴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아. 하하. 그런데 정말 추격할 듯 행동만 하고 추격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수괴마저 죽었다면 마적들은 오합지졸인데 조금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서는 이대로 추격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부하가 추격을 권하자 괴인 대정은 부하를 돌아보고는 씨익 웃으며 반문했다.
“뭐냐. 이걸로도 수급이 부족하냐? 에잉. 욕심 많은 녀석이군.”
“아니, 그게 아니라 저 도적놈들을 남겨두면 또 약탈하러 올 것이니 이대로 확실히 근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정께서도 살려둬 봤자 귀찮아질 놈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들 앞에서 말했던 대정의 말을 지적하는 부하였지만 대정은 그래도 추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서라. 아서! 지금 우리가 기습에 성공하여 수괴를 죽이는 데 크게 성공해서 우세를 점하고는 있지만, 이쪽은 말이 없는데 저들은 죄다 말이 있다. 추격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무리하게 추격했다가 이 산에서 벗어나고 저들이 정신을 차린다 생각해 봐라.
그때부터는 우리는 저들을 전멸을 시키는 게 아니라 반격부터 걱정해야 해. 그렇게까지 하면서 추격할 이유는 없지. 없어.”
“하지만. 저대로 두면….”
대정의 설명에 병사도 납득은 했는지 더 이상 추격을 권하지는 않았으나 내심 불안과 미련이 남았는지 마적들이 도주한 방향을 연신 바라보고 있으니, 대정은 그런 병사의 등을 손바닥으로 치며 호탕하게 말했다.
“크하하하. 안심해라. 네 녀석의 불안도 잘 안다. 그것도 해결할 것이다. 이제 슬슬 병력을 늘려야지. 언제까지 멋도 안 나게 이런 수로 발발 기어 다니냐.”
거구에 걸맞은 우악스러운 솥뚜껑 같은 손바닥에 맞고 바닥에 주저앉아 등을 만지던 병사였지만 마지막 말에 고개를 들어 반문했다.
“으윽. 그, 근데 병력을 늘린다고 하셨습니까? 어디서 증원이라도 오는 겁니까? 갈라전에서 오는 겁니까? 저는 증원 이야기 들어본 적 없는데요?”
의심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자 대정은 짐짓 과장되게 눈썹을 씰룩이며 대소하며 대답했다.
“하하하. 이놈이 또 의심하는구나! 이 사내대장부 임연(林衍)이 허언을 한다고 생각하냐?”
* * *
송문주의 막하에 있다가 임승주는 송문주의 천거로 발해 서경의 대정이 되어 발해서경으로 떠나기 전에 자신이 이제 대정이 되었고, 당당히 출사하게 되니 지금까지의 이름이 아닌 무장으로서 어울리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달라고 송문주에게 간청했다.
이에 송문주는 떨떠름하면서도 ‘시야를 넓히라’는 뜻으로 연(衍)이란 이름을 권해주었다. 그리고 임승주는 크게 기뻐하며 그대로 개명하여 임연이 되었다.
그렇게 대정이라는 자리와 새로운 이름을 받은 임연은 북방에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송문주의 곁에 있을 때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착실하게 일하던 그의 모습을 아는 이라면 지금의 그와 그때의 그가 동일 인물인지 의심할 정도의 상이(相異)한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것밖에 없는 거야!”
그는 오자마자 규정과 다르게 부족하게 배속된 병사들의 수를 보고는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자기 부하들을 주먹과 발로 팼다.
“내가 송문주 대장군의 천거를 받았소. 알아두시오.”
상관들이나 같은 동료들에게는 자신이 바로 그 송문주 장군의 밑에 있던 부하이며 천거로 왔다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언행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게 나왔으나 외모부터 거대하고 흉악한 그에게 감히 덤비는 이는 적었다. 간혹 있긴 하였으나 그 거대한 체급에 걸맞게 어려서부터 물구나무를 서며 마을을 돌아다닐 정도로 힘과 체력을 가졌으며 장군의 밑에서 무술을 닦은 임연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역으로 두들겨 맞고 강제로 조용해지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런 작태에 병사들은 임연보다 높은 사람들을 찾아가 그의 악행을 보고했지만 그들도 태자의 측근인 송문주의 추천장을 받은 임연을 쉽게 벌하는 것은 꺼렸다.
“병사들의 기강을 잡으려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하게.”
하여 그를 소환하고 그만두라고 적당히 말로 경고를 하고 놓아주었는데 임연은 풀려나고 다음 날 제 사비로 술자리를 마련하고는 자신이 때린 부하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개과천선한 것인 양 자신이 지금껏 과하게 행동했으며 더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며 사과한 것이다.
물론 이미 당했던 병사들 입장에선 병 준 놈이 이제 와서 약 주며 퉁치겠다고 하는 열불 터지는 상황이었으나, 무력으로도 안 되고, 상관들도 벌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를 치도곤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눈앞의 괴인이 부임 온 이상 당분간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현실을 알기에 그가 먼저 사과하는 것을 받아주어야 했다.
그러고는 부디 말로는 사과를 하면서 그 폭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빌던 여진과 고려 병사들이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 이후 임연은 술자리에서 한 말을 지키긴 것이다.
조금 경박하거나 거친 언행을 하긴 했으나, 처음 왔을 때와 같은 난폭한 폭력은 보이지 않았고 어쩌다가 손을 들어도 바로 사과하거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당사자와 화를 풀어준 것이다.
난폭하긴 하나 시원시원하기도 하고, 의외로 친근하게 대하는 그의 모습에 부하들은 폭력에 겁을 먹으면서도 생각보다는 좋은 사내라고 인식하며 순순히 따랐다. 그 일련의 과정 모두가 재빨리 상하 관계를 주입 시키고, 채찍과 당근으로 부리려는 임연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모른 채로 말이다.
“마적들이 나타났다고 하니 이를 우리가 토벌할 것이다.”
“…우리들만으로는 무모합니다!”
“무모하지 않아! 나만 믿어라!”
“하,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마적의 수는 적게 잡아도 50이 넘는다고 들었는데….”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토벌을 하겠다고 장담할까? 나만 믿어라!”
이후 이 난폭한 고려 대정이 소수의 인원으로 50이 넘는 마적을 토벌하겠다는 무모한 지시를 내렸을 때도 기습할 것이니 안전하고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설명에 병사들은 반신반의, 불안해하면서도 따랐다.
그리고 임연은 정말로 10여 명밖에 되지 않는 병사들로 마적들을 소탕하는 데 성공하였다.
“…알겠습니다. 실제 대장(大將)의 말대로 해서 이번에 승리도 했으니 좀 더 믿어보겠습니다.”.
“알았다. 알았어! 비싸게 굴긴. 이것도 직접 보여주마. 보여줄 터이니 저 녀석들보고 마적 놈들을 그만 죽이고 포박하게 해. 특히 몸 성한 놈들은 절대 죽이지 말고 포박해 두고.”
“예? 방금 전에는 다 죽이라고….”
“어허. 이 대장(大將)님이 다 생각이 있느니라!”
그렇게 임연이 힘껏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데 저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무리가 보였다. 혹시라도 도주한 마적들이 다시 돌아온 것인가 싶어 마적들을 포박하고 있던 병사들이 바싹 긴장하고 있었는데, 임연의 곁에 있던 병사가 소리쳤다.
“깃발을 봐라. 긴장 풀어. 아군이야.”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동안 임연은 그 깃발을 보고는 껄껄 웃었다.
“판관(判官) 나리시군. 하지만 우리가 다 이기고 나서야 오시다니 너무 늦지 않소이까. 송의(宋義) 나리. 껄껄껄!”
발해서경은 이름 그대로 발해의 서경 지역이란 말로, 이 지명이 고려의 정식 지명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명칭으로 사람들에게 불리고 현재로서는 공문서에도 기록되고 있었으며, 고려의 정식 경(서울)은 아니더라도 발해의 서경이었다는 이유로 일반 주현에 비하면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예가 현재 임연이 지금 맡고 있는, 본래 경군이나 지방의 부병정, 부창정, 부호정, 제단정(諸壇正)들 중에서 받는 대정(隊正)의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특별 대우한다고 하더라도 준경(準京 현대의 서울)이나 경주(京州)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실제 지금 발해서경에 부임하는 이 또한, 유수가 아닌 방어주사(防禦州使)의 자격으로 부임되었다. 물론 말이 과거 발해의 서경이지 실상은 오랜 기간 동안 방치되어 황폐한 불모지 같은 땅임에도 일반적인 주현들보다 위로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대우긴 하지만 말이다.
“마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왔는데 이 광경은 너희가 한 것이냐?”
지금 수십의 기병을 이끌고 온 발해서경 방어주의 판관(判官) 송의(宋義)는 병사들의 배는 될법한 죽거나 포박된 마적들과 말들을 보고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질문에 임연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는 것과 함께 베어낸 수괴의 수급을 들어 올리고는 대답했다.
“예. 판관 나리. 일전에 소장이 장담한 대로 격퇴하고 이렇게 수괴의 수급마저 거두었나이다.”
송의는 임연이 보여준 수급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끄덕였다.
“…확실히 들은 것과 일치하는구나.”
#작가의 말
==========================
임연(林衍)의 원래 이름은 임승주(林承柱)이다. 그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주(鎭州)에 붙어 지내다가 주리(州吏)의 딸에게 장가들어 임연을 낳자 이를 인연으로 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임연은 인상이 흉악했으며[蜂目豺聲] 행동이 재빠르고 힘이 세어 물구나무선 채 팔로 걸을 수도 있었고 지붕 위로 이엉 다발을 던져 올리기도 했다.
– 임연 열전 中
==========================
“고려가 강화도(江華島)로 도읍을 옮겨 원나라 황제의 군대에 저항한 것은 송의가 한 짓입니다. 지금 고려가 도읍을 도로 옮기자 송의가 죄를 받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귀부해 왔을 뿐입니다.”
라고 하였다.
– 윤수(尹秀) 부 송화 열전 中
========================
*이미 눈치챈 독자분들이 많겠지만 임승주=임연입니다.
**작중 나온 송의는 실존 인물입니다.
***작중 임연으로 개명한 것은 실제 임연이 대정으로 임명받은 후 임승주에서 임연으로 개명되었다는 기록이 떠올라 창작한 전개로, 실제 역사에서는 임연으로 개명한 것은 송문주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작중 방어주(防禦州), 방어주사라고 하였는데 보통 방어진(防禦鎭)이나 방어진사라고 더 많이 쓰입니다. 차이는 해당 지역이 주(州)냐 진(鎭)이냐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