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25
교랑의경 125화
“몸종 하나가 죽었다고?”
소식을 들은 주 노야가 놀라 물었다. 안에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대던 주 부인도 조용해져서는 부축도 받지 않고 걸어 나왔다. 갑자기 몸종이 죽다니? 진짜 불길하게! 죽을 사람을 둘러업고 집으로 찾아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집에서까지 사람이 죽어 나가네!
“무슨 일이냐? 어떻게 죽은 거야? 갑자기 왜 죽어?”
노비는 물건이라 사고팔 수도 있고 교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비는 사람이기도 한지라 당연히 죽을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주인 마음대로 죽였다가는 관부에 가서 추궁을 받아야 했다. 결국 유야무야되고 말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성가신 일이었다. 삼사의 계상(計相: 재정을 주관하는 벼슬)도 시녀를 장살했다가 어사에게 들켜 외직으로 임명되는 바람에 앞길을 망친 일이 있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성가신 일이 많이 생기지? 전에는 하루하루가 평온했는데! 이게 다 그 애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주 부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은 그 얘기를 입 밖으로 낼 때가 아니었다.
“어서 말해라, 어떻게 된 일이야?”
주 부인이 여종을 보며 다그쳤다.
“부인, 다행히 바로 발견하여 죽지는 않았답니다. 안 죽었대요.”
여종의 말에 주 노야와 주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죽었으면 됐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주 부인이 물었다.
“그게, 세탁방에서 부인의 치마를 망가뜨린 아이랍니다. 본디 팔아 버리려고 했는데 마음을 잘못 먹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목을 맸대요. 다행히 밖에 있던 이가 바로 발견해서 제때 구했고요.”
여종의 말에 주 부인은 진노했다.
“이런 천것을 봤나. 잘못한 것만도 죄인데, 죽음으로 협박하려 들어!”
“죽고 싶으면 죽으라지. 안 죽었으면 내다 버려라. 뭐하는 계집이야!”
주 노야도 화를 내며 옷소매를 뿌리쳤다.
하인들 처소의 마당에서는 여종들과 몸종들이 모여 이쪽 방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얼마 안 가 몸종 하나가 들려 나왔다.
“아주 잘나셨네. 감히 죽으려 들다니.”
“가기 싫으니 저러겠지. 그래도 소용없어. 노야께서 내다 버리라고 하셨잖아.”
여종들과 몸종들은 거리낌 없이 떠들어대며 열을 올렸다. 여종들과 몸종들은 뒤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다가 기겁했다.
“여섯째 공자님!”
다들 황급히 예를 표하며 길을 열었다. 들것을 들고 나오던 사환과 사내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주육낭이 앞으로 다가갔다.
“아직 살아 있는가?”
“살아 있습니다. 아직 살아 있어요.”
집사가 대답했다. 들것 옆에서 내려다보니 귀밑머리는 헝클어진 채 창백한 안색으로 두 눈의 초점을 잃은 시녀가 보였다. 주육낭은 순간 이 시녀의 모습이 원래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생겼었나? 이렇게 생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몸종에게는 주씨 저택에서도 눈길 한 번 준 일이 없는데, 이런 애를 강주에서부터 데려왔다고? 눈이 삐었었나?
“죽으려고?”
주육낭이 들것 위의 시녀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쓸모없는 것!”
주육낭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쓸모없는 것!”
“쓸모없는 것!”
시녀들이 들어와 정교랑 앞에 놓인 낮은 탁자를 옮겼다. 탁자 위에 놓인 그릇과 접시들은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아씨.”
시녀가 물 한 잔을 올렸다. 물잔을 받은 정교랑은 고개를 돌리고 소매를 들어 입을 가린 후 입가심을 했다.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던 몸종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음식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간식을 들고 왔다.
“아씨, 태평 만두를 가장 좋아하셨잖아요. 제가 새로 몇 종류 만들어 봤어요.”
무릎을 꿇은 몸종은 흥분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돼지고기 수육 만두고, 이건 채소 만두예요.”
옆에 있던 시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수시로 정교랑도 쳐다봤다. 정교랑은 접시 위에 시선을 두면서도 말없이 있었다. 시녀가 얼른 손을 뻗어 정교랑이 속을 볼 수 있도록 만두를 갈랐다.
“아씨, 드셔 보세요.”
정교랑이 손을 뻗어 받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몸종이 긴장된 표정으로 쳐다봤다.
“여전히, 향이 너무 진해.”
정교랑이 말했다. 몸종은 순간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에헤, 이보시오, 낭자.”
이미 완전히 존재감이 사라졌던 장 노태야가 불쑥 끼어들었다.
“대충 먹을 만하면 그냥 넘어가시구려. 입맛이 너무 까다롭군. 성의를 생각해야지.”
정교랑이 몸종을 힐끔 쳐다봤다.
“네가 만든 만두는, 별로야.”
장 노태야는 고개를 내저었고 몸종은 고개 숙여 예를 표했다.
“네, 소인이 아둔했어요.”
몸종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과 함께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몸종이 고개를 들어 또 다른 간식을 내밀었다.
“아씨, 이거 드셔 보세요. 이건 수수 가루로 만든 경단이에요.”
정교랑이 힐끔 쳐다봤다. 시녀는 정교랑의 표정을 꼼꼼하게 살피며 이번에는 먼저 손을 가져다 대지 않았다. 정교랑은 자세를 바로 앉고 장 노태야를 쳐다봤다.
“잘 먹었습니다.”
정교랑은 장 노태야를 향해 예를 올린 후 다시 몸종을 쳐다봤다.
“네가 준비한 식사는, 훌륭했어. 하지만 간식은, 본디 입이 심심해서 먹는 거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야. 간식을 만들려면, 식사보다, 훨씬 정교하게 해야 해.”
몸종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아씨.”
몸종은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가르침에 감사드려요, 아씨.”
시녀가 놀라며 몸종과 정교랑을 차례로 쳐다봤다.
“이 손재주를 아씨가 가르쳐 주셨어?”
몸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다.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 아씨께서 내게 가르쳐 주셨지.”
시녀가 웃으며 정교랑에게 물었다.
“아씨, 대체 못하시는 게 뭐예요?”
정교랑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 둘 다 조용히 좀 해라. 새 사람이든 옛 사람이든 간에 누가 나한테 차 한 잔 따라 주지 않으련?”
장 노태야가 짐짓 화난 말투로 말하자 시녀와 몸종은 웃음을 지었다.
“난 시를 쓸 줄 몰라.”
정교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멈칫했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 그건 시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아까 침묵한 게 아니라 이 세상 일 중에 할 수 있는 게 뭐고 못하는 게 뭔지 속으로 생각 중이었나?
“아씨는 정말 대단하세요.”
몸종이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정교랑이 자세를 바로 했다.
“밥을 먹었으니 그만 가야겠어요.”
장 노태야도 웃으며 자세를 바로 앉았다.
“정 낭자, 밥을 먹으러 온 거였소?”
“네.”
정교랑이 몸종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밥은, 먹을 만하네.”
장 노태야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당연하지.”
“그래서, 제가 어르신의 몸종을 좀 빌리고 싶어요.”
정교랑의 말에 장 노태야는 멈칫했고 시녀 역시 놀란 표정이었다. 단 한 사람, 몸종만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씨, 절 도로 데려가시려고요?”
몸종이 소리쳐 물었다. 정교랑은 대답 대신 계속해서 장 노태야를 쳐다봤다.
“이 아이랑, 교환할게요.”
정교랑이 시녀를 가리켰다. 시녀의 안색이 변했다. 아씨가 왜 이름을 물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오늘 문을 나서면서 왜 그리 불안한 기분이 들었는지도!
“아씨, 제가 싫으세요?”
시녀는 정교랑의 옷소매를 붙잡고 엎드려 엉엉 울었다.
서재에 있던 장순은 울음소리가 들리자 손에 들고 있던 서책을 내려놓으며 인상을 썼다. 오늘 대체 왜 이러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에 두 번이나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저도 음식 할 수 있어요, 아씨. 아씨께서 가르쳐 주시면 저도 분명 할 수 있을 거예요.”
시녀가 정교랑을 붙잡고 울자 몸종도 표정이 복잡해졌다. 몸종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정교랑의 다른 옷소매를 붙잡았다. 눈물 앞에 마음이 약해진 아씨가 말을 번복할까 봐 겁이라도 난다는 듯이.
장 노태야가 손을 뻗어 이마를 꾹꾹 눌렀다.
“지금 울어야 할 사람은 나다.”
장 노태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젠 몸종한테도 버림받는 처지가 된 것이냐?”
시녀와 몸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장 노태야를 향해 엎드리며 죄를 고했다.
“노태야, 그런 게 아니고요.”
시녀와 몸종이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두뇌 회전이 빠르던 시녀조차도 순간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 본디 말주변이 없던 몸종은 더더욱 말이 나오지 않았다.
“됐다, 그만 울어라. 똑똑히 못 들었느냐? 빌려달라고 했어, 교환한다고. 빌려줬으면 돌려줘야 하고, 교환이라 함은 주고받는단 뜻이다.”
거기까지 말한 장 노태야가 손을 내저었다.
“빌려주고 교환하고 할 것 없이 필요하거든 다 데려다 쓰시구려. 여기 남아서 매일 훌쩍이기라도 하는 날엔 다들 내가 몸종을 구박하는 줄 알 거요.”
울던 시녀와 몸종이 웃음을 지었다.
“노태야.”
시녀와 몸종은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장 노태야의 옷소매를 하나씩 붙잡았다.
“노태야는 역시 최고예요.”
장 노태야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달 후에 돌려드리죠.”
정교랑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 후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장 노태야는 어디에 쓰려고 빌리는지 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배웅했다.
“아, 참.”
장 노태야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정교랑을 불러 세웠다.
“방금 이 세상 일 중에 시 쓰는 것만 못한다고 했소?”
정교랑이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네.”
손님이 갔다는 소식을 들은 장순이 찾아왔다. 장 노태야의 맏손자인 장 대공자 역시 와 있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여기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던데요. 찬모인 반근이 떠나게 돼서 운 거예요?”
장 노태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떠나야 할 사람은 안 울고 남게 될 사람이 울었지.”
장 대공자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꿇어앉았다.
“할아버지, 아까 반근의 주인이 왔던 거예요? 어느 댁 낭자죠?”
반근이 어제부터 대문간을 서성이며 왔다 갔다 한 탓에 반근의 옛 주인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온 집안 사람이 다 알았다. 노비가 옛 주인을 보면 두려워하는 게 보통이고 기뻐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정씨 가문의 낭자다. 거기도 강주 사람이지.”
장순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기에 부친의 무탈함을 확인한 후 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버지, 아버지.”
장 대공자가 뭔가 생각난 듯 부친을 불렀다.
“오늘 제가 누굴 봤는지 아세요?”
장순이 걸음을 멈췄다.
“예부의 합격자 명단 소식이라도 들었느냐?”
삼 년에 한 차례 열리는 과거가 끝났다. 벌써 이월 말이니 삼월이면 방이 붙을 것이다. 응시자 중에는 장순의 제자도 있었다. 다들 지인의 시험 결과를 궁금해했기에 은밀히 정보를 주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게 아니고요, 동 내한을 봤습니다.”
장 노태야가 미간을 찌푸렸다.
“종유를 먹고 신선이 되려 했던 그자 말이냐? 거의 승천할 뻔했다지 않았어?”
장 대공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 말씀 한번 매정하게 하시네요.”
장 노태야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하지 않았다.
“전에 죽을 뻔했는데 살아났더라고요.”
장 대공자가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1만 관을 주고 신선의 손에서 목숨을 사 왔답니다.”
장 노태야는 더욱 기가 찬다는 표정이었다.
“할아버지, 진짜예요. 오늘 보니까 보름 만에 전보다 원기가 더 왕성해졌더라고요. 하얗게 셌던 귀밑머리가 다시 검어진 게 제일 신기했어요.”
장 대공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그 신의가 그렇게 신통하대요. 듣자니 도교 이 진인의 가르침을 받았다는데 죽을병이 아니면 안 고친답니다.”
장순은 고개를 내저으며 일어나 자리를 떴다.
“얘야, 너도 이제 임직하러 갈 몸이 아니냐. 그런 허황된 말을 귀담아들으면 못쓴다.”
“허황된 말이 아닙니다. 다들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진짜였어요. 전보다 훨씬 기력이 왕성해 보였습니다.”
“세상엔 비술이 많은 법이다. 그게 뭐 그리 신기하다고 호들갑이야.”
장 노태야는 그 화제를 그만 얘기하고 싶은지 근심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아이의 솜씨에 입맛이 길들여졌는데, 다른 이가 한 게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한 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