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89
교랑의경 189화
주육낭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폐를 끼치는 건데! 애초에 네가 아니었으면 일이 이렇게 됐을 것 같아?
“네가 진작 말했으면, 우리도 대비했을 거 아냐!”
주육낭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처음부터 작심한 게 있으면서 이제야 알게 하다니. 그래 놓고 그때는 전혀 관심 없는 척 굴었지.
“그 과로신선은 본디 네 것인데 두씨한테 빼앗겼잖아. 그래도 괜찮냐고.”
“내 것도 아닌데 안 괜찮을 게 뭐 있죠?”
결과는 어땠지? 신선거의 옛터에 갑자기 태평거가 나타났다. 주점이며 가정집이며 여기저기서 다들 만들어 먹는 낙득자재도 저 애의 작품이고.
“그렇다니까요. 그 사람들이 만든 건, 정말 형편없었어요. 음식이 아까워서, 가르쳐 준 거예요. 사람들과 함께 즐겨야, 진짜 맛있잖아요.”
사람들과 함께 즐긴다고? 하, 그게 이 뜻이었군. 말장난에 도가 텄을 뿐더러 사람을 갖고 노는 재주가 있어! 사기꾼 같으니라고!
가만있자. 지금 저 말, 믿어도 되는 건가?
도움을 준다면, 다리를 고쳐 주죠. 주육낭은 정교랑의 말을 속으로 다시 곱씹으며 빈틈이나 허점은 없는지 한 자 한 자 되새겼다.
주육낭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넋을 놓고 있자, 정교랑과 진 공자는 주육낭을 내버려 둔 채 사환의 부축을 받아 대청으로 들어갔다.
“낭자, 정말 유혹적인 말씀입니다. 곧 죽을 사람에게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라 해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을 들 겁니다.”
정교랑이 자리에 앉으며 진 공자를 쳐다봤다.
“그래서, 할 수 있단 거예요?”
정교랑이 물었다.
“그럼요.”
진 공자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자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더 아끼는 법이죠.”
진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소생은 낭자와 함께하고자 합니다.”
진 공자는 시녀가 건네는 차를 받아 높이 들어 경의를 표한 후 단숨에 들이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유가 놈한테 바로 손을 쓰죠.”
“그럼 두칠은?”
주육낭이 문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패 죽이면 그만이지.”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주육낭은 마주 앉은 두 사람의 그런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이미 손에 여러 사람의 피를 묻힌 저 여인은 그렇다 치고, 이젠 십삼까지 난리네!
주육낭은 진 공자를 쳐다봤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온화한 얼굴에 봄바람처럼 따스한 미소였지만, 자세히 보니 자신을 쳐다보는 두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은은한 불꽃이 그 안에 불타오르듯이.
방금 말한 게 그런 뜻인가? 곧 죽을 사람에게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하면, 돕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라 해도 거리낌 없이 칼을 들겠지. 말로는 나더러 내려놓으라더니, 결국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어.
진십삼이 내려놓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저 여인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둔, 본인조차 잊고 있었던 본성을 건드리며 도발한 것일까. 사람을 죽인다니…….
“이렇게 된 이상, 그런 조무래기는 신경 쓸 것 없어.”
진 공자가 주육낭을 보며 말했다. 주육낭은 대꾸하지 않고 옆에 가만히 꿇어앉았다.
“아버지는 열흘 정도 더 있어야 돌아오실 거야. 아직 계획을 세울 시간이 있어.”
정교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이 없어요.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아요.”
뭐라고?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부랑배 몇 놈을 죽이는 것처럼 간단한 일 같아? 지금이 감정을 앞세울 때냐고! 그래, 아버지께서 전엔 널 무시하고 매정하게 대하셨어. 그건…… 널 주씨 가문의 혈육으로 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좋아. 듣기 거북하고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렇잖아. 넌 이제 쓸모가 있고, 바보가 아니야. 당연히 우리 주씨 가문의 혈육이지. 아버지께서 수수방관하실 리 없어. 몇 마디 나무라시긴 하겠지만, 절대 널 버리거나 외면하시진 않을 거야.”
주육낭이 말을 마친 후 실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이 그랬다. 전에는 폐인이어서 주씨 가문에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러니 버려둔 채 외면하고 가엾이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쓸모가 있다. 그러니 주씨 가문에서 살뜰히 보살펴 줄 것이다. 듣기 거북하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여인이 속으로 훤히 알고 있는 진실을 기어이 입으로 내뱉었을 뿐이다.
“감정을 앞세워요? 괜한 생각이에요.”
정교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육낭이 미간을 찌푸리며 정교랑을 쳐다봤다.
“이 일에서, 그쪽 아버지는 나한테 도움이 안 돼요.”
정교랑의 말에 주육낭은 깜짝 놀라 곧 얼굴이 시뻘게졌다. 뭐라는 거야.
“돌아오기 전이 최적의 기회예요.”
정교랑은 진 공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유 교리는 지금 모든 걸 주 노야가 사주한 것으로 알아요. 겁을 줬으니 주 노야가 돌아오기 전까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우리로서는 지금이 가장 안전하고 움직이기 편할 때죠.”
진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유 교리는 신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로선 기회예요.”
정교랑의 말에 진 공자가 씩 웃었다.
“우리, 라는 말이 마음에 드네요.”
“그래서 어쩌려고?”
주육낭이 말을 끊으며 물었다.
“오만방자하게 나가야죠.”
정교랑이 대답했다. 뭐라고? 오만방자?
점심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 거리는 찌는 듯이 더웠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주점으로 몰려들었다. 신선거의 대청에도 요 며칠은 손님이 많았다. 여름이라 과로신선을 주문하는 이가 적다 보니, 다른 주점처럼 볶음 요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두칠은 거울을 보며 새 꽃을 단정하게 꽂았다. 창문을 통해 대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이지? 재수 없는 기운이 사라지니 장사도 잘되네.”
장부를 맡은 관리인은 아직 그렇지 않다는 걸 훤히 알았지만, 주인장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다.
“네, 그럼요. 일이 다 해결됐으니, 이제 장사는 잘될 일만 남았죠.”
관리인은 웃으며 두칠의 말을 거들었다. 두칠은 모자를 만지며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거울 속에 비친 대청의 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 가던 두칠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거울 속 대청에서 소란이 일었고, 곧이어 귓가에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칠이 거울로 얼굴을 바짝 갖다 대자, 몽둥이를 든 사내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부숴라, 전부 부숴 버려!”
몽둥이를 사정없이 내려치는가 싶더니 탁자가 날아가고 음식들이 이리저리 쏟아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 역시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대청은 아수라장이 됐다. 손님들은 서둘러 나가기에 바빴다.
“뉘시오?”
점원들은 거칠고 우악스러운 사내들을 보고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두칠 나오라고 해!”
사내들은 점원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몽둥이를 들고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점원들은 머리를 감싸 쥐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 하는 놈들이냐? 이게 무슨 짓이야!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서둘러 나온 두칠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손을 내저었다.
“뭐 하는 놈이냐고? 네가 두칠이냐? 제기랄, 토끼 새끼처럼 치장하고 있는 꼴 하고는.”
서봉추는 눈앞의 사내를 보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우리 태평거에 똥오줌을 지려 놓은 그 망할 놈이냐? 그러고도 우리가 누군지 몰라?”
서봉추가 손에 든 몽둥이를 앞으로 훅 찌르자, 두칠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어깨를 맞고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서봉추는 바닥을 뒹구는 두칠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퉤, 넌 남의 손을 욕심냈으니, 난 네 팔을 가져가야겠다. 그래야 공평하지!”
* * *
“대인,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주인어른께선 그놈들 손에 벌써 관아로 끌려가셨습니다.”
관리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관리인 앞에 있는 사내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방금 한 말을 전혀 못 들었다는 듯이.
“유 대인…….”
관리인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유 교리가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자, 관리인은 움찔하여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태평거 사람이 두칠을 때렸다고?”
유 교리가 물었다.
“네, 방금 여럿이 쳐들어와서는 벌건 대낮에 우리 신선거를 뒤집어엎은 것도 모자라 주인어른까지 때렸습니다. 관부에서 나와 상처를 살폈는데 팔이 부러졌답니다.”
관리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이 뭐라고 하더냐?”
유 교리가 천천히 물었다.
“그러니까, 태평거가 무뢰배한테 당했다며…….”
관리인이 입을 열자 유 교리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너더러 말하라는 게 아니다.”
유 교리는 옆에 서 있던 시종을 보며 말했다.
“관아에 갔던 황씨는 돌아왔느냐?”
시종은 곧장 밖으로 나가 알아보더니 누군가를 데려왔다.
“두칠이 부상을 입었는데, 의원 말로는 팔을 못 쓰게 됐답니다.”
관리인은 그 말에 절규했다.
“대인, 주인어른의 팔입니다!”
“팔이 뭐?”
유 교리는 호통을 치며 관리인의 말을 끊었다.
“숙수도 아니고, 팔로 밥벌이를 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야. 목숨이 붙어 있는데, 그깟 팔이 대수더냐!”
아, 그런가? 관리인은 더 이상 울지 못하고 울상만 지은 채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놈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태평거에서 소란을 피우고 이대작의 손을 자른 게 두 대인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복수를 한 거라면서요.”
시종이 말을 이었다.
“경조부(京兆府)에서 증인이나 증거가 있냐고 하자, 저들은 증거와 증인을 대지 못하면서도 두칠의 소행이라고 잡아뗐습니다. 결국 경조부윤이 형장으로 다스린 후 하옥시켰고요. 대인, 사적으로 복수하려고 한 게 틀림없습니다.”
“대인, 잘됐습니다. 옥에 가뒀다니 거기서 옥사하게 만드십시오!”
관리인까지 나서서 소리치자 유 교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때에 이런 일을 벌인다는 건, 개죽음을 당하겠단 소리나 다름없다. 아무 증거도 없이 복수하겠다며 사람들 앞에서 가게를 뒤집어엎다니, 저 스스로 칼을 내주는 꼴 아닌가.
내가 나서기도 전에 경조부에서 곧장 하옥시켰다고 했다. 옥에 들어간 건 목숨을 내놓은 일이나 마찬가진데, 너무 아둔한 처사 아닌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유 교리는 신중한 사람이었고, 세상사의 어두운 면을 잘 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항상 최악의 경우부터 생각했고,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늘 가장 나쁜 쪽부터 헤아려 봤다. 세상인심이라는 게 그랬으니까.
겉으로만 공경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은밀히 다른 사람과 손잡고 유 교리를 계략에 빠뜨려 희생양으로 삼고자 한 이들이 있었다. 물론 겉으로만 공경하고 친절했던 그들은 결국 유 교리의 희생양이자 디딤돌이 되곤 했다.
세상엔 좋은 사람도, 친구도 없는 법이다. 오직 이용뿐.
태평거 사람들이 여봐란듯이 찾아와 두칠을 팼다. 저들이 말하는 대로 그저 복수하려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음모가 있을까? 주씨 가문이 나를 상대로 음모를 꾸민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또다시 사환이 뛰어 들어왔다.
“대인, 진 상공 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사환이 명첩을 올리며 말했다.
거봐, 동작 한번 빠르군. 굳어 있던 유 교리의 표정이 한결 홀가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