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41
교랑의경 341화
곁방에서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던 정 대노야가 별안간 미간을 찌푸렸다. 공당 안으로 들어오는 여인 서너 명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심지어 잡역부 한 명이 그 여인들의 앞에서 길을 안내하기까지 했다.
여인들이 관청을 드나드는 건, 지부 대인의 딸을 만나기 위함일 터. 지부 대인의 딸들은 다 뒤쪽 저택에 있을 텐데,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여인들은 잡역부의 안내를 받으며 다른 쪽 곁방으로 들어갔다.
방청하는 자들이라고?
정 대노야는 몸을 일으켜 문가에 기댄 채 밖을 내다보았다.
왜 우리 집안의 사건을 방청하려는 거지? 그리고 지부 대인은 왜 저 사람들을 안으로 들인 거야?
정 대노야는 갑자기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정 대노야는 손 관주가 정교랑에게 큰절을 올리던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 그 바보에게 붙은 악귀의 힘이 그렇게 센가? 혹시 손 관주가 바보의 기를 누르지 못하고 악귀의 힘에 굴복한 게 아닐까요?
정 대부인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정 대노야는 몸을 살짝 떨고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환각과 환청을 떨쳐냈다.
이와 동시에 공당 내에서 경당목이 탁자에 부딪히는 맑은소리가 들려왔다.
“조귀, 변명하지 말거라! 주 낭자가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이상, 그 혼수 역시 정씨 가문의 것이다. 그러니 네 놈은 벌건 대낮에 남의 점포에 쳐들어가 강도질을 한 것이야! 여봐라! 저자를······.”
“잠시만요, 대인. 조귀가 임구 외 몇 사람을 구타한 건 사실이나, 윗전의 부당함에 맞서 싸운 거잖소. 이는 가히 충효라고 할 만한 행동이지. 게다가 관청으로 와서 먼저 자수를 한 것은 하인의 충의와 도리를 지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어딜 봐서 강도질이라는 거요?”
공당 안에서는 드디어 통판 대인과 절추 대인이 논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 대노야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당의 재판에 귀를 기울였다.
두 대인의 의견 대립으로 공당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 대인, 그럼 대인은 저들이 남의 가산을 빼앗는 게 의로운 일이라는 거요?”
통판이 공당 아래에 있는 원고와 피고 대신 이 절추를 보며 말했다. 누가 들어도 그 말에 날이 서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저 목수 놈이 원체 재물을 탐한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어. 그래도 뼛속까지 목수의 천성이 남아 있어 매사 원리원칙을 중시해 다행이었지. 근데 오늘은 아주 얼굴에 철판을 까고 편들고 나서네?
주씨 가문이 도대체 뭘 줬길래 저러는 거지? 자칫하면 자신의 벼슬길이 끊길 수도 있는 사건인데, 왜 이렇게까지 발 벗고 나서서 돕느냔 말이야!
“통판께서 오해하셨소.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강탈하는 게 빼앗는 것이지, 원래 자신의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은 빼앗는 것이 아니오.”
이 절추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뛰어난 혜안을 가지셨습니다, 대인! 소인은 본래 아씨의 것인 혼수를 빼앗겨, 정말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된 겁니다.”
조귀가 곧바로 외쳤다.
“증인이 있는가?”
이 절추가 물었다. 통판이 경당목을 들어 탁자에 세게 부딪혔다. 그 소리가 조귀의 대답을 덮어 버렸다.
“자식이 부모의 잘못을 따지는 것도 모자라서, 재산 문제로 부모를 고소하다니. 참으로 악역무도한 일이다! 여봐라!”
통판 대인이 경당목을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장 스무 대를 쳐서 내쫓거라!”
두 줄로 서 있던 관졸들이 수화곤을 들고 험상궂은 얼굴로 일제히 조귀에게 다가갔다. 임구 외 몇 사람은 맞아도 싸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귀와 시종들을 비웃었다.
곁방에서 판결을 듣고 있던 정 대노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당 내부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양심도 없는 절추가 주씨 가문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을 상상을 하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절추 놈은 평생 돈을 만져본 적도 없었나?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멈춰라.”
공당 내에 절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인, 부모의 잘못을 따지는 것도 모자라서, 재산 문제로 부모를 고소하는 것이 악역무도하다 하셨소? 그게 사실이 아니면요?”
절추의 말을 들은 통판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통판은 속으로 어리석은 목수 놈을 끊임없이 외쳐댔다.
“어찌하여 아니라는 거요!”
통판이 호통쳤다. 통판이 저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송 지부와 통판은 동시에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인, 아씨께서는 부모의 잘못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재산 문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씨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은 재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위해서입니다.”
관졸들에 의해 바닥에 짓눌린 조귀가 다급하게 외쳤다.
“제가 증인을 데려왔습니다! 증인!”
“증인을 들라 하라!”
이 절추가 재빨리 손을 뻗어 경당목을 세게 내리치며 명령했다. 통판 대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빼앗긴 경당목을 쳐다보았다.
저 목수 놈이 미쳐도 제대로 미쳤구나!
네놈이 뭐라고 하든 간에, 어차피 한집 식구들끼리 벌이는 싸움이니, 결국에는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고 덮어씌우면 그만이야! 두고 보라고!
통판이 이 절추를 흘겨보고는 소매를 홱 털었다.
증인? 재산 싸움이 아니라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또 뭐야.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정 대노야가 인상을 쓴 채 곁방 밖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관졸이 방에서 여인 한 명을 부르더니 공당 안으로 데려갔다. 여인의 얼굴을 본 정 대노야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곧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대인을 뵈옵니다.”
여인이 공당에서 무릎을 꿇은 채 큰절을 올리고 말했다.
“소인은 정 이부인의 노비로, 이노야와 이부인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왔습니다.”
관직에 있는 정 이노야는 당연히 공당에 오지 않을 것이고, 이노야 없이 이부인 혼자서 오진 못하니 자연스레 이부인의 여종이 증인 자리를 대신한 것이었다.
“무엇에 대해 증언하겠느냐?”
이 절추는 속으로 한숨을 돌리며 물었다.
천만다행이군. 정말로 증인이 있었어!
“아씨는 자신의 부친인 이노야를 고소하려는 게 아닙니다. 실은 그 누구도 고소할 생각이 없으시죠.”
여종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집에서 수차례 연습했지만, 공당에 증인으로 서는 것은 처음인지라 온몸이 경직되고 손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긴장한 여종이 말을 더듬긴 했지만, 다행히도 증언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혼, 혼수 때문인데요.”
“혼수가 왜?”
이 절추가 물었다.
“대노야께서 아씨를 혼수도 없이 시집 보내시겠다고 해서······.”
여종이 대답했다. 공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혼수도 없이 자식을 시집보내겠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노야의 여종이 대노야를 지목해서 증언한 사실이었다.
곁방에서 증언을 듣고 있던 정 대노야는 화를 못 이겨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는 게 느껴졌다.
평소 이방 내외가 자신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장으로서 남의 시기를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가장 노릇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가족 간의 균형을 맞추고 가문의 영광을 이어 나가는 게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아우가 더 이상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 대노야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리사욕이 고개를 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에, 정 대노야는 변해 버린 아우의 모습을 나무라는 대신 이해하려 노력했다.
나는 이렇게까지 너를 이해해 주었는데, 너는 왜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냐!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정녕 네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실성을 한 게야?
얼굴에 핏기가 가신 정 대노야는 문틀을 짚으며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노발대발하며 화를 내고 싶기도 하고 대성통곡을 하고 싶기도 했다.
정 이노야가 정교랑을 찾아간 사실도 알고 있었고, 거기서 좋은 말이 오가지는 않았으리라는 것도 이미 예상한 바였다. 뒷담화 정도야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뼈를 부러뜨린다 해도 근육은 이어져 있을 테니, 험담을 나눈다고 한들 자신과 아우의 사이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한 뒷담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칼을 휘두를 줄이야.
아우가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 대노야는 공당에서 오가는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웅웅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울릴 뿐이었다. 정 대노야는 제 힘으로 서 있기도 힘에 부쳐 문틀에 기대어야만 했다.
주씨 가문이 도대체 뭘 했길래, 얼마나 잘 해줬길래, 이방 내외가 나한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지? 미쳤구나, 다 미쳤어!
정 대노야는 주먹을 꽉 쥐고 문틀을 세게 쳤다. 핏기 없이 창백했던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좀 전의 환각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정교랑에게 큰절을 올리는 손 관주의 옆에 두 사람이 더 늘어났다. 바로 정 이노야와 정 이부인이었다.
악귀가 사람을 홀리나? 그 바보가.
정 대노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안사람처럼 무지한 여인네들이나 하는 생각이거늘! 내가 왜 이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게야!
공당 안에서 진행되는 문답 소리가 차차 정 대노야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혼수를 안 준다고? 그 혼수는 정 낭자의 모친이 남겨둔 거고?”
“예, 그렇습니다. 그건 정 아씨의 모친께서 남겨 주신 혼수입니다.”
“대인,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저희 아씨는 재산 때문이 아니라 모친의 명예 때문에 나서신 겁니다. 이대로 혼수도 없이 시집을 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모친 없는 저희 아씨를 얼마나 비웃고 조롱하겠습니까.”
공당 안은 좀 전과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통판 대인은 아예 입을 다물고 싸늘한 눈빛으로 방관하고 있었다. 구타 사건의 피해자로 왔던 임구 등도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그저 가만히 서서 이 절추와 조귀, 그리고 여종의 문답을 듣고만 있었다.
결국 혼수 얘기가 나왔군.
공당의 상황을 듣고 있던 송 지부도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이 절추의 결심을 얕잡아봤어.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통판도 저리 비아냥댔는데, 고군분투하여 결국 목적을 달성해 내다니.
저 목수 놈, 제대로 미쳤군!
“모친을 위해 혼수를 달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혼수를 주지 않는 것도 그 아이의 모친을 위해서라면 어떻소?”
남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공당 안에 울려 퍼졌다.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던 정 대노야가 결국 공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송 지부도 자세를 고쳐앉고 몸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공당 안으로 들어서는 정 대노야를 본 이 절추가 굳은 표정으로 마른기침을 한 번 했다.
“누구시오.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찌 함부로 공당에······.”
“이 대인! 적당히 좀 하시오!”
이 절추의 모습을 보다 못한 통판이 소리쳤다.
“원리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이 절추가 정중하게 말했다. 통판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다시 뭐라고 하려던 찰나, 정 대노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인께 아뢰옵니다.”
정 대노야가 공수의 예를 표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생 정남(程楠), 선조의 은덕으로 희평(熙平) 8년에 봉작을 받았습니다.”
통판이 이 절추를 흘겨보고는 정 대노야를 향해 손을 내밀며 예를 표했다.
“정 노야에게 자리를 내어드리거라.”
통판의 행동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절추도 말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통판과 정 대노야의 언짢은 눈빛을 못 본 척 했다.
정 대노야는 관졸이 가지고 온 낮은 의자에 앉았다. 공당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이부인의 여종은 고개를 떨구고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었다.